계약하고 와서 잠이 안오네요...

검정곰 작성일 14.09.19 03:4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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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50평대 아파트를 계약하고 왔습니다.

잠이 잘 안오네요.  덧글 외에 글을 쓰는 것은 오늘이 처음 입니다.

집안 형편이 갑자기 좋지 않아지고 학비도 내기 어려줘져서, 호기롭게 독립을 했다가...

여물지 않은 시기에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지내다보니, 상황이 악화되고, 적응을 못해서..

캐리어 한개와 박스 하나에 모든 짐을 다 넣고, 돌아다녔던 때가 기억납니다.

여자친구 집 앞에 가서 전화를 하고, 친구네 집에 짐만 잠시 맏기고

지금의 아내에게 몇 만원을 빌리고,

가진 돈을 모아 다시 맡겨둔 짐을 찾아가지고, 고시원에 가방을 놓고,

언 발을 녹이고, 방안에 멍하니 앉아서 가방을 풀지도 못하던 때가 생각 납니다.

 

10년 전에도 지금도 열심히 사는거 쉬지 않는거, 잠 줄이는거...  그거 밖에 못하네요.

이런 저런 이야기 쓰면 끝도 없고...

새삼 생각해보니...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함께 한다는게 참 힘이 됩니다.

계약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 여기까지 왔네, 하며 맥주한잔을 걸쳤습니다.

취업도 안하고 공부만하다가 어떻게 할려고하냐..

철없이 아무것도 없이 결혼한다고 하던 사람들도 많았는데.

그래도 여기까지 왔네요. 

 

계약직이면 어떻고, 공부만 하면 어떻고, 차가 후지면 어떻고, 어떻게 살던 남에게 보여지는 게, 남들이 하는 평가가 내 인생에 끼어들지 못하게 해야합니다. 내가 추구해야하는 가치와 신념을 가지고  살아야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죠...

 

그런 생각으로 살았는데,  아직도 갈길이 멀어서 막막한 때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시원 살다가...  원룸살다가... 소형 아파트지만 내 힘으로 내집을 가지고... 중고차도 생기고...  이제 두번째 집을 사서 이사갑니다.  계약직이면 어떻고 소득이 적으면 어때요, 일을 한두개 더 하고 잠을 줄여야겠죠....

 

올해 이직하면서 연봉도 줄어들고... 하지만 잠이 안오는건 하우스푸어라던가 하는 것이 불안해서가 아닙니다.

 

내가 더 열심히 살 수 있고,  아주 천천히지만 지속적으로 살아온거구나 하는 게 오늘 갑자기 느껴진거죠.

그 겨울, 고시원의 적막함을 생각하니....  불과 10년전의 내가 너무 생생한 겁니다.

지금도 나는 대단한 벌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딱 한걸음씩만 가고 있는거에요.

한계단씩 올라가는  그 과정에서의 일들이 이어서 떠오르는데,  왠지 마음이 짠하네요.

 

여러 고민들을 읽다가 보니...  내가 했던 고민들이라서...  많이 공감하고... 용기내시고 열심히 살았으면 해요.

9급 공무원도 준비하다 영안되고... 공사장도 일년반동안 주말에 다녔고.. 세차장에서도 일년동안 일하고, 동네 술집과 마트에서도 일하고... 만년계약직으로 살고... 그래도 한걸음씩 계속했고, 쓸모없는 경험도 많이 했지요. 뭐 대단한 자리에가서 높은 연봉을 받지 않아도, 꾸준히 오늘하는일에 보람느끼고 오손도손 살다보면 그럭저럭 상황은 계속 좋아집니다.

 

긍정적이 되고, 남들이 하기 싫다고 하는 일도 나서서 하다보면, 더욱 좋은 기회가 찾아옵니다.

꾸준함이 생활이 되면, 당연해지고, 언젠가는 나에게는 당연한 일이 남들에게는 벽처럼 높아보일날이 오겠지요.

안심하거나 오늘에 자만하지 않고 계속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이 힘든건 시기의 문제인 것 같아요. 익숙해지고 나면 편해보이던게 굉장히 불편해집니다.

누워있다보면 편해지고, 서있는게 건강에 좋다는 것을 잊게 되죠. 한 걸음씩 걸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씁니다. 내일 더 잘 걷기위해서 오늘 자야겠네요.  걷기위해 준비하시는 분들... 앉지말고 조금씩이라도 꼭 걸어가시기 바래요. 가능하면 젋을 수록 꿈은 매일 꾸는 것이 좋아요.  젊을 때는 길을 쉽게 잃어버리기 때문이네요.

 

표현하기 어렵지만... 정말 복잡하게 기분좋은 날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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