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한 살,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 여름"

babyARA 작성일 13.07.25 09:2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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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유저 업로드에 따로 올리는 이유는, 보다 많은 분들이 보시고, 21살의 친구에게, 친구라는 단어가 낯간지럽다면 그저 같은 커뮤니티에서 활동했던 회원에게 격려, 위로를 한 줄 씩이나마 적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에서 입니다. 

보통 링크만 올리는 경우에, 많은 분들이 뒤로가기를 누르시기에, 부득이 글을 옮겨놓습니다. 작성자께서, 혹은 다수의 엠봉 회원님들께서 문제삼으실 경우 바로 자삭하겠습니다. 

원본 링크: http://bbhumor.co.kr/bbs/board.php?bo_table=news&wr_id=381689 

이하 본문 



스물 한 살,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 여름. 

작성자 fa15ef85 

자랑아닌 자랑을 하자면 난 꽤 공부를 잘했다. 
얼굴도 모나지 않았으며 키도 180을 넘었고 사교성도 꽤 있는편이라 친구들도 많았다. 
살면서 나쁜짓 한 번 한적이 없고, 게임과 영화를 좋아하는 평범한 애였다. 
게다가 너무나 자상하고 가정적인 아버지, 자식들에게 헌신적이며 자애로운 어머니 
사랑스럽고 말 잘들으며 애교있는 여동생. 
너무나 화목하고 행복해서 불화 한 번 없던, 정말 이상적이고 사랑스러운 가족들. 
집도 부유해서 살면서 뭐가 부족하다고 느낀적은 딱히 없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지금의 상황이 된게.. 

내가 고3 시절, 난 담임 선생님들을 비롯해 부모님들에게도 기대를 받았다. 
공부를 잘했기에 서울대, 최소 연고대를 갈거라 예상하셨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친구들에게도 질투 반, 부러움 반 섞인 눈빛을 받았지만 난 그게 꽤 부담스럽다고 생각했다. 

2011년 4월의 어느날. 
내 기억으로는 갑자기 숨이 잘 쉬어지질 않았다. 
가슴까지 오는 물에 빠져 물의 압력으로 인해 숨이 안 쉬어지는 것처럼 
호흡하기 곤란해졌다. 
전날 게임하느라 공부 할 시간이 없어 밤늦게 공부를 해서, 그 때문에 몸이 피곤해져서 그런거라 생각했다. 
며칠 뒤에는 기침이 나왔다. 
숨쉬기 힘든 것도 여전해서 감기에 걸린줄로만 알았다. 
일주일정도 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침은 계속 나왔으며, 숨쉬기 힘든걸 떠나서 격렬한 운동 후 헉헉 대는거처럼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몸이 나른하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몸이 너무 좋질않아 담임 선생님께 조퇴를 해도 되냐고 물었다. 

허락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길에 
정말 숨이 턱 막히는 경험을 했다 
마치 오랫동안 잠수를 한 뒤 공기를 마시는거처럼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미친듯이 숨만 몰아쉬었다. 
그럼에도 숨은 잘 쉬어지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기침도 미친듯이 나왔다. 
마시는 공기는 얼마 없는데, 기침으로 계속 공기를 내보내며 숨쉬는걸 방해하니 상황은 더욱더 안 좋아졌다. 
난 난생처음으로, 그것도 길바닥에서 기절을 했다. 

정신을 차린후 직감적으로 병원이란걸 깨달았다. 
옆에 걱정하는 부모님과 동생의 얼굴이 보였다. 
인상이 좋은 의사가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며 몇가지 검사를 해보자했다. 
동생이 살짝 눈물맺힌 눈으로 비리비리 허약하다고, 헬스나 다니라고 새침하게 소리치는게 귀여우면서 안심이 됐다. 
하지만 상황은 나, 그리고 가족들이 걱정하는것보다 훨씬 더 좋지 않았다. 
소세포 폐암이란다. 
난 암이면 무조건 1기, 2기 이런식인줄 알았는데 
소세포 폐암은 좀 다르단다. 
제한기와 확대기로 구분하며 난 확대기와 제한기 사이에 걸쳐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너무나 현실성이 없어 실감이 가질 않았다. 
바보처럼 그냥 멍하게 있었다. 
엉뚱하고 장난치는걸 좋아해 근엄하다기보단 친구같은 아빠가 깜짝 이벤트로 
몰래 카메라같은 장난을 치는줄 알았다. 

태어나서 그렇게 굳어있는 아빠는 처음봤다. 
엄마는 고개숙여 소리없이 우셨다. 
항상 이미지 관리한다고 슬픈 드라마를 보면서도 표정관리 하면서 울던 동생이 
얼굴의 온갖 부위를 찡그리면서 눈물 콧물을 흘리고 소리쳐 우는 것도 처음 봤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어 헛구역질이 나왔다. 

암이라고 들은뒤 고작 하루가 지났는데 
엄청나게 아파졌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꾀병을 부린다고 생각할만큼 
미친듯이 아파졌다. 
나 스스로도 의아할정도로 바로 어제까지만해도 큰 문제는 없던 내 몸이 
정말 이상하게 변해버렸다. 
아빠, 엄마, 동생은 번갈아가며 매일 같이 병원으로 왔다. 
친구들과 선생님, 친척들도 병문안을 왔다. 
난 가족, 그리고 친구들을 맞아줄 준비가 되질 않았었다. 

난 담배를 피지도 않았으며, 아빠를 비롯해 가족 누구도 태어나서 담배를 핀적이 없다.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이라 옆집등에서 간접흡연 할 위험도 없었으며, 친구들도 담배를 피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피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걔들이 필때 옆에 가지않았다. 
피시방도 손으로 셀 수 있을만큼 적게 가봤고, 거의 유일하게 간접흡연할만한 곳은 
길에서 담배피고 지나다니는 사람 정도. 
하지만 이것도 드물어서 길에서 담배피는 사람을 한 달에 두 번 봤으면 많이 본거라 생각한다. 
이정도면 간접흡연으로 폐암이 생길리도 만무. 
차라리 매일 마시는 미세먼지나 매연등이 더 안좋았으리라. 
유전적으로도 부모님 어느쪽에서도 암에 걸리셨던 분은 없었다. 
왜 생겼을까? 그것도 어린나이에? 
의사가 내 나이에 이런경우는 드물다고는 하지만 
그 드문경우가 생겼다. 
그 사람이 나 자신이다. 
현실을 부정하고 너무나 억울하고 원통하며 서글퍼서 
난 주위 사람들에게 미친듯이 생기는 짜증과 분노로 내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다행스럽게 그들은 날 이해해주었다. 
위로해주었다. 
그렇게 난 암에 걸렸단 사실은 인정하고 받아들였으나 
심한 우울증에 걸렸다. 
노트북으로 인터넷 검색은 물론, 암에 관련된 카페에 가입했다. 
그곳에서 의사가 잘 말해주지 않던 사실을 많이 알게됐다. 
폐암, 그것도 소세포 폐암은 현실적으로 완치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치료방법도 '완치'가 아닌 조금이나마 '긴 생명연장'을 목표로 치료한다. 
이 사실을 안 날부터 사는걸 포기하고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이나 선생님들, 친척들은 몰라도 
가족들은 매일매일 번갈아가며 병원으로 왔다. 
하루나 이틀은 엄마가 병원에서 지내고, 엄마가 쉬러가면 동생이나 아빠가 오는식으로. 
하지만 검사결과가 나온 그 날부터 우리 가족은 변했다. 
일부러 내색하려고 하진 않지만 
가족들에 얼굴에서도 우울함을 발견할 수 있었고, 내 앞에서 절대 예전처럼 하하호호 웃지 않았다. 
아니, 내가 없는 곳에서도 웃지 않았으리라. 
3살 차이나는 동생이, 활발하고 친구도 많아 밖에서 노는걸 좋아하던 동생이 
학교만 끝나면 병원으로 바로바로 왔다. 
자고 가지 않는 날도 있었지만 병문안은 매일매일 왔다. 
그러면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 얘기하거나 옆에서 공부 하는걸 볼때면 
그날밤은 항상 베개에 소리없이 눈물만 흘렸다. 
우리집의 마스코트였던 동생이 저렇게 어린데, 나보다 더 어린데 나때문에 일찍 철 들고 
노는 것도 맘대로 못놀며 웃지도 못하고 날 더 신경써주는게 너무 슬퍼서 눈물만 나왔다. 

항상 장난끼 많고 친구같던 아빠. 
늘 유쾌하고 자상하고 가정적이던 아빠. 
입원하기 2주일 전만해도 낚시하면서 서로 낄낄대며 웃던게 엊그제 같은데 
아빠의 굳은 얼굴은 펴질줄 몰랐다. 
밤마다 아픈 내 몸을 어루만져 주며 안마를 해주셨고 
항상 내가 잠들기전까지 손을 잡아주셨다. 
언젠가 잠결에 이상한 소리가 들어 잠이 깼고 
무슨소리인지 확인하자마자 난 다시 누워 다시 잠들게 해달라고 무교인 내가 신에게 처음으로 빌었다. 
세면대 물을 틀고 정말 펑펑 울며 통곡하던 아빠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엄마. 
너무 사랑하고, 날 너무 사랑해주는 엄마 
엄마에게 꼼짝 못하는 아빠를 볼때면 우리집의 보스는 엄마라고 동생과 낄낄대던 기억이 난다. 
그게 사실이었을까? 
엄마는 적어도 겉으로보기엔 가족중에서 가장 강하신 분이다. 
찡그리거나 어두운 얼굴 한 번 보인적 없이 항상 날 보며 웃어주셨다. 
누가보면 내가 아픈줄 모른다고 생각할만큼 예전과 똑같이 대해주셨다. 
10년전 유행하던 오리가 얼면 언덕 같은 썰랭개그를 선보이며 
깔깔대는 엄마의 노력 때문에 억지로 웃는 일도 나름 고역이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아침에 엄마 눈이 퉁퉁 붓는 이유를. 
내가 잠든 밤새 사랑한다고 말해주며 내 머리를 쓰다듬던 손길을. 

처음엔 대학가서 눈부시게 사는 친구들과 비교되게 병실에 처박혀 하루하루 연명하는 내가 비참해서, 친구들이나 친척들이 병문안을 못 오거나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늦게오면 그게 너무 섭섭하고 서러워서 소리지르고 화내던 내가 너무 불쌍하고 역겨워서 
죽고싶은 마음뿐이었다. 

근데 생각보다 암이란게 참을만 했다. 
아니 고통은 점점 더 심해졌지만 
생각한만큼 바로 죽진 않았다. 
당연하지만 암을 처음 걸려봤고, 주위에 암 걸린사람을 본적이 없어서 
암, 그것도 폐암이라면 한 두달 안에 죽는줄로만 알았지만 난 꽤 꾸역꾸역 살아가고있었다. 
혹시 완치 되는거 아냐? 라는 말도 안 되는 헛된 희망도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런 내 속마음을 암이란 놈도 안 것일까? 
아니면 오만했다고 꾸짖기라고 하는걸까? 

어느새 확대기로 진행된 내 암은, 방사선과 독한 약, 화학치료 등으로 인해 
매일같이 변기를 붙들고 토해가며 일어서는 날보다 누워있는 날이 더 많아 자살하고 싶단 생각을 
농담 아니라 하루에도 수백, 수천번씩 했던 것 같다. 

한 달쯤 전부터 정신이 점점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항상 약에취해, 고통에 절어있으며 가끔씩 10~30초 정도 기절하며 몽롱하던 정신이. 
늘 호흡곤란에 기침, 나른하고 힘이 안 들어가 물컵을 놓쳐 깨트리던 손이, 쌕쌕거리던 듣기 싫은 숨소리를 내던 내 몸이. 
점점 잦아들기 시작했다. 
누가보면 병이 호전된다고 생각할만한 상황이지만 난 알 수 있었다. 
훨씬 더 안 좋아졌으며 점점 스물 한 살의 끝이 보이고있다고. 

그와 동시에 내 주변의 분위기도 변했다. 
굳어있던 아빠의 얼굴은 항상 눈에 물기가 맺혀있고 
산책할때 손이나 팔짱을 끼며 '이러면 누나동생으로 보이겠지?' 라고 웃던 엄마의 팔과 손이 잘게 떨리는걸 알았고 
징그럽다며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나랑 자는걸 싫어하던 동생이 
병원에 와서 자는날이면 항상 내 품속에 들어와 나와 같은 침대에서 잠드는걸 보면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다. 

그래서 밤마다 생각한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내가 살면서 무슨 잘못을 했을까? 
난 평생 주먹다짐 한 번 해본적 없고 범죄 한 번 저질러본적 없다. 
살면서 저질렀던 나쁜짓은 
중학생때 부모님이 여행간 사이 술 맛이 궁금해서 아빠 양주를 동생과 몰래 홀짝였던일, 
거짓말하고 학원을 빼먹고 노래방을 갔던 일이 내가 기억하는 나쁜일의 전부다. 
그러고보니 난 꽤 순진하게 살았던 것 같다. 
말싸움이라면 해본적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때 축구를 하다가 싸운적이 있다. 
무슨 이유로 싸웠는진 기억이 나지 않지만 태어나 목소리 높여가며 말싸움을 해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아직도 기억이 난다. 
사과를 하고 싶었으나 괜한 자존심에, 그리고 서로 다른 중학교를 가게 돼서 아직도 하지 못했는데.. 
김지한 
이 글을 볼지 모르겠지만 그때 너무 미안했고 사과 하고싶었어..ㅎ 
미안하다 지한아 

하루종일 인터넷을 한다. 
입원 초기엔 영화와 책을 주로 읽었지만 볼만한건, 읽을만한건 어느새 다 읽었다. 
아니 그걸떠나 작위적이고 인공적인 '삶'은 보기가 싫어졌다. 
인터넷으로 dc, 엠봉, 심지어 요즘 논란이 많은 일베까지. 
수많은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게시물을 본다. 
화나거나, 짜증나고 슬프고 웃기며 심지어 막장까지 있지만 
그 커뮤니티 속 게시물의 이야기는 살아있다. 
창살없는 감옥에 갇혀, 태어나서 한 일이라곤 학교만 다녔고 
나이트나 클럽은 커녕 면허를 따지도 못해 드라이브도 못해봤고 홀로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보지도 못한 내게있어 
커뮤니티의 이야기는 내가 살아갔어야할, 내가 겪었어야할 상황들의 대리만족이다. 
그들의 울고 웃고 슬프고 화나는 이야기를 보고 읽으며 
오늘도 난 세상이 어떤지, 사회는 어떤건지, 살면서 어떤 고민이 생기는건지 
이론적으로나마 체감하며 느낀다. 

2주일 전엔 처음으로 각혈을 했다. 
평소 해대는 기침과는 다른 꺽꺽 소리를 내며 기침이 나오더니 
입을 막았던 손바닥에서 주르륵 흘러 내리던 피가 기억에 생생하다. 
병의 증상이라는게 사람마다 똑같지 않다. 
어떤 사람은 이런 증상, 어떤사람은 저런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기침과 호흡곤란, 무기력증, 천명, 흉부통증 등이 그동안 내 폐암의 증상이었다면 
각혈은 처음으로 나타난 증상이다. 

각혈을 하고나선 매일같이 면도를 한다. 
수염이 빨리 자라는 체질이지만 그동안 면도를 자주 하지않았다. 
귀찮고 아프니깐. 움직이면 힘드니깐. 
하지만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하루에 한 번 샤워를 꼬박꼬박하며 
몸을 청결히 단정했다. 
정말 나도모르게. 
회진오던 의사 선생님이 요즘 면도를 매일 하네라는 말에 내가 매일 면도를 하는구나라고 인지했다. 
그날 밤새 생각했다. 
왜? 
왜 갑자기 내가 면도를 매일하지? 
그것도 무의식중에? 
답은 나와 있었다. 
내몸이, 내 정신이, 내 무의식이 끝이 멀지 않았다고 말한다. 
겉멋을 좋아하던 니가, 집 앞 마트만 가도 머리손질하고 나가던 니가 단정치 못한 모습으로 떠날거냐고 묻는듯 하다. 

처음 각혈을 한 이후, 매일은 아니지만 이삼일에 한 번씩 각혈이 나온다. 
상황은 점점 더 좋지않아지고 있다. 
번갈아가며 병원에 오던 가족들이 어느새 아빠,엄마,동생 모두 모여 
병원에 있은지 일주일이 지났다. 
처음 입원 하던날 날 위해 각자 하시던 사업을 접겠다던 엄마와 아빠에게 
동생 생각은 안 하냐고, 어차피 난 가망이 없는데 쓸데 없는 짓을 한다고 
그러면 콱 죽어버릴거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며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으며 막았었지만 
엄마와 아빠는 여전히 병원에 계신다. 
동생도 부모님의 허락하에 무단결석을 하고있다. 

손과 입가에 묻은 피를 씻기위해 세면대로 갈때면 
17kg 이상이 빠져 해골같이 말라붙은 얼굴과 몸 
진하고 진한 다크서클과 퀭한 눈 
누가봐도 죽어가고있고 죽을 날이 머지않은. 
이게 나인가? 
이게 고작 2년밖에 안 지난 나인가? 
헛웃음도, 울음도, 분노도 짜증도 설움과 슬픔도, 아무것도 나오질 않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허무할뿐이다. 

바라는게 하나 있다면 완치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적어도 가을까진, 여름을 넘기고 죽고싶다. 
여름을 너무 좋아해 여름만 되면 바다로, 계곡으로 놀러가자는 동생이, 
처음 만난장소가 해수욕장이라 역시 여름을 좋아하는 부모님이 
혹시나 내가 여름에 죽으면 여름을 싫어할까봐.. 여름은 넘기고싶다. 

돌아다녔던 커뮤니티에서 왜인지는 몰라도 엠봉에 정이가고 애착이 간다. 
글이 올라오는 속도는 다른 커뮤니티에 비해 빠르다곤 할 수 없지만 
그래서 하나하나 자세하고, 진지하게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이 많은게 좋은 사이트 같다. 
그래서 엠봉, 익명게시판을 하는 사람들이 꽤 정겹다. 
나보다 힘든 일을 겪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나보다 행복한 사람도 많겠지만 
항상 모든일이 잘 해결됐으면 좋겠고 항상 건강하길.. 

아빠, 아니 아버지 어머니 소현아 
사랑해 
너무 사랑합니다 
정말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사랑해요.



http://bbhumor.co.kr/bbs/board.php?bo_table=com01_1&wr_id=8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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