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연재] 군대에서 4

새터데이 작성일 10.06.11 22:5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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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병은 고개를 모두 돌려 그 정체모를 형상의 얼굴을 확인할만큼 강심장은 아니었다.




고개를 돌리는 와중에 박상병은 방아쇠를 당겨 허공에 총탄을 날린 후 미 친 듯이 초소를 뛰쳐나왔다.




그리고 나무다리를 건너 참나무 아래에 웅크린 후 초소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그래도 난 아직도 박상병이 엄청난 강심장의 소유자였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일 그 여자 형상이 초소안에서 내 뒤에 있다고 생각되었다면 난 그자리에서 기절하였을지 모른다.







모든 얘기를 마친 박상병은 내무반으로 조용히 이동하였다.





이미 내무반은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였고 무슨 영문이지도 모르는 부대원들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들어오는 박상병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야. 당분간 박ㅇㅇ, 야간근무 열외시켜."






행정반에서 들리는 소대장의 말소리를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무표정한 얼굴의 박상병은 침상에 걸터앉아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두 세번의 긴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몇몇 병장들의 괜찮냐는 질문에 박상병은 괜찮다며 근무복장을 조용히 해체했다.




그러나 빨갛게 충혈된 박상병의 두 눈을 보고 더 이상 아무도 말을 걸지 못했다.




그 뒤로 박상병은 며칠 동안 불면증에 시달렸다.










위병소에 이어서 이번엔 탄약고라니........




부대 전체는 그야말로 소름끼치는 공포가 서서히 엄습해 왔다.



박상병 사건 이후로 위병소와 다른 초소는 정상적으로 돌아갔지만 탄약고는 두 시간 교대 복초로 바뀌었다.





밤 근무를 두 시간씩이나 서야 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혼자 공동묘지를 끼고 산속에 한 시간동안 처박혀 있는 것보다 나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파견 나간 부대원들이 돌아오면 한 시간으로 줄기 때문에 당분간은 견딜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귀신소동은 드디어 나에게까지 찾아왔다.




그 날은 정말로 기분 나쁠 정도로 날씨가 좋지 않았다.






새벽 2시 근무였는데 하늘에 구멍이 났는지 장대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나는 판쵸우의를 뒤집어 쓰고 밖에 서 있었으며, 나의 사수인 정ㅇㅇ상병은 초소안에 처박혀 무엇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시끄러웠다. 판쵸우의로 덮은 헬멧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주변 숲의 나무잎을 강타하는 빗소리가 너무나도 크게 들렸다.





게다가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장대비가 쏟아져서 그야말로 전방 1미터안의 물체도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정말로 누가 바로 코 앞에 있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내가 그 형상을 발견한 건 근무시작 20분이 지났을 때였다.






난 아직도 그 시간을 기억한다. 새벽 2시 20분.....





내가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손목시계에 내장된 조명등을 켜고 봤을 때이니까.




2시 20분.....시간을 확인한 나는 다시 고개를 들고 전방을 주시했다.




그런데 이게 뭔가?




전방 십수미터 정도에 희멀건 형상이 미류나무쪽에 매달려 있는 게 아닌가?




너무나 어두워 미류나무에 매달려 있는 건지 그냥 떠 있는 건지 모르지만 그냥 미류나무쪽이었다.




난 순간적으로 움찔했지만 고참들이 얘기해 준 적응시라는 말이 떠올랐다.









"불빛을 보고 아주 어두운 곳을 쳐다보면 망막에 잔상이 남는다. 보통 파르스름하게 잔상이 나타난다.



그 때는 눈을 10초 정도 감았다가 떠라.



그리고 한 곳을 오랫동안 쳐다보지 마라. 니 머리가 사물을 왜곡시켜 표현한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속으로 10초를 세면서...



그리고 눈을 떴다.




그러나 나는 다시 눈을 감아야 했다. 그것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번째 10초를 세는 동안 나는 이미 등골에 싸늘한 기운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다시 눈을 떴다. 아직도 그 형상이 있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헛기침이 나왔고 나는 입 속에 빗물이 쏟아져 들어감에도



위를 향해 입을 크게 벌려 긴 호흡을 하였다.




그 희멀건 형상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나를 내 스스로 진정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 형상을 주시한 채 정상병을 불렀다.





"정ㅇㅇ 상병님!!!!!!!"




들릴 리가 없었다.




4~5미터 거리지만 서로 볼 수도 없을 뿐더러 내 목소리는 이미 빗소리에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정상병이 있는 반대편 초소로 이동했다.




그리고 가만히 초소안에서 전방을 주시하고 있는 정상병을 불렀다.





"정ㅇㅇ 상병님!!!!!!!"




그러자 갑자기 정상병이 움찔하더니 나를 뒤돌아 보았다.






"앗.. 신발 놀래라.....무슨 일이야?"





"잠깐 나와 보시기 바랍니다."





"뭔데?"






"저기 미류나무 쪽에 뭐가 있습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정상병은 판쵸우의를 뒤집어 쓰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내가 가리키는 쪽을 쳐다 보았다.




보이지 않았다. 마치 영화처럼 조금 전만 해도 미류나무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는데......





그런데 정상병은 내 말을 믿어주었다.






"이렇게 어두운데 보였단 말야?"




"네."





"어떻게 보였는데?"




"그냥 희뿌옇게 보였습니다."





"어디로 갔어?"





"미류나무쪽 중간 쯤 있다가 아래로 내려오는 것까지 봤습니다."




"그 귀신년인가 보다. 이 신발년 죽여버리든가 해야지..."




상병 말호봉인 정상병은 짬밥에 걸맞게 아무 것도 아닌 냥 나에게 겁먹지 말라고 충고했다.





정상병은 내가 걱정되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두려움을 없애려고 하는지 초소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나와 똑같이 비를 맞으며, 내 옆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나는 다소 안심이 되었지만 그 편안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번엔 소리가 들렸다.




천지에 쌀알이 쏟아지는 듯한 빗소리에 섞인 작은 소리........




"에..엑..우...."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수 가 없었지만 몇 십초가 지나자 곧 알아들을 수 있었다.



토하는 소리였다.




"우...에..엑......우.....에..엑"




나는 그 때 처음으로 오금이 저리다는 것을 느껴봤다.




전기를 맞은 것처럼 무릎관절이 찌릿거렸다. 정말로 주저앉고 싶었다.




정상병도 나와 똑같은 소리를 듣고 있는게 확실했다.






"이....신발년...."





정상병은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로 욕을 내 뱉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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