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괴담] 기지 살인사건4

새터데이 작성일 10.06.19 16:5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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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당황한 나는 품 속 깊이 숨겨진 권총을 제대로 뽑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때 나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이 있었다.

 

갑자기 김병장의 눈이 뒤집이더니 광신도들의 방언처럼 알 수 없는 말을 쏟아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알루라알라얄라...울러러알라워워워..울러러..알라라.샬러러럴..."

 

"정신차려!!! 미 친 새꺄!!!!!!!!!!"

 

지금 이곳이 달리는 차량 내부임을 직감한 나는 김병장이 잡고 있는 운전대를 얼른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러나 너무 늦어 버렸다.


고속으로 질주하던 차량은 천둥같은 파열음을 내면서 강물 쪽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


나는 순간 오른쪽 머리를 무엇인가에 세게 강타당하였다.


육중한 무게의 군용차의 바퀴는 일그러진 가드레일을 넘어 강물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하였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오른쪽 뺨에는 뜨거운 액체가 연신 흘러내렸다.


사물이 울렁거렸고, 초점이 맞지 않는 안경을 쓴 듯 세상이 뿌옇게 흐려졌다.


김병장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앞유리를 뚫고 몸의 반이 밖으로 나가 있음이 보였다.


뭔가를 잡고 버티고 싶었지만 몸이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냥 허공에 손을 휘저을 뿐 내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 순간.....

 


"응애...응애....응애...."

 


어디선가 들리는 작은 아기 울음소리......


내가 만들어 낸 환청인가? 진정 저 소리가 이 사건의 모든 진실인가?


나는 어떡해서든 이 환각같은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한 참을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고 있는데 갑자기 차량이 기우뚱하더니 강물 쪽으로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밑으로 보이는 강물이 죽음의 사신처럼 다가왔다.


순간 지금껏 내가 살아왔던 나의 일대기가 파노라마처럼 눈 앞을 지나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너무나도 기뻤던 임관식 날, 한 때 내 영혼을 바쳐 사랑했던 여자,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

 

예전 공수부대에 있을 때 교관의 말이 떠 올랐다.

 

"사람은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고 판단되며, 과거의 기억을 한꺼번에 쏟아내어 지금껏 살아오면서 보았던


모든 것들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지.


그러나 최소한 군인이라면!!!


안되면 되게 하라는 정신을 가진 특전부대 용사라면!!!


그 파노라마를 되돌릴 줄 알아야 한다.


죽음 직전의 너에게 최소한의 무엇인가가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고 있다면!!!


너는 아직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이다."

 


그래 나는 아직 살아있다.


나는 아기 울음 소리를 들었고, 깊은 물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그러나 미처 들이마시지 못한 숨으로 인해 활용할 공기의 양이 부족하다.


귀가 아파오고, 폐에 물이 차오르는 것 같다.

 

예전 해상특수훈련 때 힘이 빠져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나를 꺼내 준 교관이 있었다.


그는 숨가쁜 소리를 내며 헐떡거리는 나를 눕히더니 내 얼굴에 수건을 덮고 그 위에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마치 얼굴에 비닐 봉지를 씌운 것처럼 전혀 호흡을 할 수가 없었다.


발버둥치며 괴성을 지르던 나를 강제로 제압하며 그 교관이 말을 했다.

 

"수심이 깊어지면 수압으로 인해 평형감각을 잃게 되지...위 아래가 어디인지 몰라.


살려고 발버둥 치면서 수면 위로 올라오려고 하지만 실상은 강바닥을 파헤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살 수 있는데도 죽을 것이라는 공포감에 정신을 잃고 헛 짓거리 하다가 그렇게 죽는거야.


지금 너는 물에 빠져 죽기 전의 느낌을 받고 있는 것이다.


살고자 한다면 정신을 잃지 마라..."

 

 

 

"쿵....."

 

 


묵직한 작은 충격음이 내 귀에 들려왔다.


차량이 강 바닥에 닿은 듯 했다.


수압으로 인해 고막은 터질 듯이 아팠고, 들이 마신 숨이 없어서 곧 죽을 것만 같았다.

 


주변은 칠흑같이 어둡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자. 정신을 차리자.


그제서야 파손된 차량 앞유리를 통해 차량의 여기저기를 더듬 듯이 빠져나왔다.


수심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고, 이대로 몇 초만 더 있으면 곧 물귀신이 될 것 같았다.


폐 속의 마지막 공기가 다 소비되었는지 가슴을 찢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바로 그 순간 나의 뇌는 마지막 구원의 메세지를 보냈다.

 

나는 벨트 뒷쪽에 숨긴 권총을 꺼냈다.


그리고 오른쪽 앞 타이어를 손으로 확인한 후 탄알 한 발을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근접 사격임에도 물 속이라 그런지 두꺼운 고무재질을 총탄이 뚫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난 이제 죽는걸까?


그 때 내 왼손에 뭔가 잡히는 것이 있었다.


바로 공기 주입구의 돌출된 핀이었다.


나는 이제 몇 발이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권총을 들고, 마지막으로 그 핀을 향해 미 친 듯이 총탄을 쏟아 부었다.

 

"텅! 텅! 텅! 텅! 텅!"

 

둔탁한 총소리가 몇 번 울리자 갑자기 생명의 공기방울이 화염방사기처럼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주입구에 입을 대고 폐 깊숙히 공기를 집어넣었다.


두 세번을 반복한 나는 그제서야 내 머리쪽에서 어렴풋이 비춰지는 빛을 느낄 수가 있었다.


칠흑같은 어둠은 죽음의 사신에게 지배당한 내 머리가 상상한 허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빛은 느낄 수 있었지만 수심은 족히 20미터는 넘어 보였다.


나는 서둘러 헤엄을 쳤고 이별할 것 같았던 물 밖 세상으로 고개를 내 밀었다.


물 밖의 신선한 공기가 내 가슴 속 깊이 스며 들어왔다.


살아있다는 것이 이거구나....


내가 숨 쉬고 있다는 것이 이거구나....


나는 수면 위에서 몇 초 동안 생존의 기쁨을 만끽한 후 강 밖으로 헤엄을 쳤다.

 

강 밖으로 빠져 나온 후에야 나는 하루 전 쏟아진 비로 인해 강물이 상당히 불어나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수 차례의 기침과 구역질이 멈추자 나는 물 속에 두고 온 김병장이 생각났다.

 

"이런...........젠장"

 

그를 구하러 가야 된다.


그런데 순간 나는 사고 직전 김병장의 기이한 행동이 떠오르면서 구조를 주저했다.


솔직히 김병장이 무서웠다.


김병장이 있는 저 깊은 물속으로 다시 들어가야 하다니....

 

1초...2초...3초....

 

나는 딱 3초를 고민했던 것 같다.

 


나는 모든 생각을 지워버리고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강의 중앙부가 아닌 비교적 가장자리임에도 수심이 상당했다.


그러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차량이 강의 가장자리에 빠졌기 때문에 내가 다시 뛰어들었을 때 그 차량을 찾기가 쉬웠다는 것이다.


시체처럼 늘어져 있는 김병장을 꺼내 물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그가 깨어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앞 머리는 크게 찢어져 과도하게 피를 쏟아낸 것 같았고, 손과 입술은 이미 파랗게 변색되어 있었다.


숨은 멎어 있었고, 심장도 뛰지 않았다.


나는 곧 바로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

 

"정신 차려 임마....정신 차려!!!"

 

나는 그를 깨우려 소리치며 심폐소생술을 이어갔다.


복부 전체가 파랗게 멍든 것으로 보아 운전대에 복부를 부딪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미 그의 장기는 파열됐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심폐소생술을 멈추지 않았다.


늘어진 시체를 붙들고 장난질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가 나처럼 죽음의 문 앞에서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느끼고만 있다면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살아나지 못했다.

 


뒤늦게 구조된 나와 김병장은 똑같이 의무대로 이송되었다.


나는 부상자로 그는 사망자로........

 

내 얼굴은 유리 파편으로 인해 산탄을 맞은 것처럼 엉망이 되어 있었다.


또 오른쪽 머리는 5센티 가량이 찢어져 있었다.

 

다른 부위는 크게 다친 곳이 없어서 그냥 부대로 복귀하려 했지만, 군의관의 권유로 나는 의무대 입원실에서 그 날 밤을 보냈다.

 

수 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면서 잠시 나의 잠자리를 방해했지만, 그 날은 엄청난 피로감으로 인해 깊은 수면에 빠질 수 있었다.

 

다음 날 해가 중천에 뜨고서야 나는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그제서야 어제는 느끼지 못했던 통증이 여기저기서 몰려왔다.


끙끙대며 상체를 일으키자 잠시 후 의무병이 식사를 준비해 가져왔다.

 

밥이 목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나는 아픈 몸을 하고서 허겁지겁 숟가락질을 했다.

 


"자주 뵙습니다. 대위님...."

 

식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사건 조사를 위해 헌병대 수사관이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에게 무엇을 말해야 하나?


일련의 아기 울음 시리즈라도 얘기해야 하나?


내 머릿속은 복잡해 졌다.


그러나 나는 단순한 것을 선택했다.


졸음운전... 운전미숙...


총기 사용에 대한 수사관의 집요한 심문이 나를 괴롭히기도 했지만, 나는 빈틈없는 대답으로 응했다.

 

오후 늦게서야 나는 의무대를 빠져 나왔다.


대대장의 면담이 끝나고 부대 행정실로 돌아온 나는 그 동안의 사건을 서류로 정리하였다.


헌병대 수사관에게 말했던 거와는 달리 나는 그동안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솔직하게 정리했다.


믿든 안 믿든 내일 이 자료를 사단장에게 제출할 것이다.

 

나는 밤 늦게서야 서류작업을 끝낸 후 부대원들의 안부를 뒤로 한 채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 날 날이 밝자 나는 지체없이 복장을 갖추고 사단본부로 향했다.


출근 시간이 가까워졌지만 사단장은 아직 본부에 나타나지 않았다.


당번병의 안내로 나는 사단장의 집무실로 향했다.

 

-사단장 장태섭-

 

집무실 탁자에 반듯이 놓인 그의 명패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맞은 편 소파에 앉아 사단장을 기다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준비해 온 서류를 매만지던 나는 문밖에서 들리는 수 차례의 경례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곧 사단장이 집무실로 들어왔다.

 

나는 예를 갖춘 후 그에게 준비해 온 서류를 내밀었다.


엉망이 된 나의 얼굴을 몇 차례 확인하며 안부를 묻던 사단장은 조용히 그 서류를 받아들었다.


10분 여가 지났을까?


부동자세로 열중쉬어 자세를 취하고 있는 나에게 사단장은 소파에 앉을 것을 권유했다.


그리고는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연신 담배를 태우면서 준비해 온 서류를 계속해서 뚫어져라 읽던 사단장이 몇 차례 담배 연기를 내 뿜고는 입을 열었다.

 

"자네, 지금 이 걸 나에게 믿으라고 하는 건가?"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제가 보고 느낀 그대로 작성한 것입니다."

 

"내용을 보니 헌병대 조사와는 많이 다르구만.

나도 다른 견해를 얻고 싶어서 자네에게 사건 조사를 맡긴 건데 이건 너무 심하지 않나?

애기 울음 소리에 다들 죽어간 것처럼 묘사되어 있으니...누가 알면 비웃음만 듣겠군."

 

"그 것 때문에 죽었는지는 모르지만 사실 그대로 작성한 것입니다."

 

"지금 이 보고서의 내용을 자네 말고 아는 사람이 있나?"

 

"어제 밤에 작성을 마치고 바로 이 곳으로 들고 온 서류입니다."

 

사단장은 다 타들어 간 담배를 재털이에 누르고는 나를 응시한 채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박대위. 사건조사를 여기서 끝내야 하겠네."

 

뜬금없는 사단장의 말에 나는 잠시 멈칫한 후 입을 열었다.

 

"사단장님, 조금만 더 조사를 해보면..."

 

'더 조사를 해보면 뭐가 나오나?

이미 최중사는 기소되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네.

모든 정황증거나 물증은 최중사가 범인이라고 말하고 있어.

나도 최중사를 살리고 싶어서 나름대로 자네에게 조사를 맡겼지만 이 보고서를 재판부에 제출하면 뭐라고 하겠나?

귀신의 장난이니 최중사 살려주십시요 이래야 하나?"

 

"저는 그냥 뭔지 모르는 숨겨진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진실? 이미 밝혀진 모든 것들이 진실 아닌가?

명령이다. 박대위. 사건을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여기서 마무리짓는다."

 

나는 잠시 입을 굳게 다문 채 말을 아꼈다.


나의 굳은 표정을 잠시 살피던 사단장이 말을 이었다.


"자네 군인이 되고 싶어서 장교를 한 것 아닌가?

자네 정도의 집 안 배경에 내 입김까지 작용한다면 자네는 대령까지 초고속 승진이 가능하지.

물론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경우에 말야.

그런데 최중사나 죽은 김병장 사건에 자네가 연루되어 이름이 오르내린다면 어떻게 되겠나?"

 

사단장은 나를 위로하려는 듯 보였지만, 그의 말은 정작 나에게는 분노와 배신감만을 치밀게 만들었다.

온 몸 여기저기서 다시 통증이 밀려오는 듯 했다.

잠시 인상이 찌푸려지자 얼굴 위에 여기저기 붙여진 작은 반창고들이 내 피부를 당기기 시작했다.

 

"그냥 최중사는 부대와 아무 상관없이 개인적인 사고를 친거야. 알겠나?

그렇게 마무리 지으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거야."

 

그제서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사단장님은 지금 저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단장님의 진급을 걱정하시는 겁니다."

 

그러자 갑자기 사단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예하 부대원의 목숨보다 사단장님 본인의 진급이 더 중요한 겁니다."

 

예기치 못한 나의 말에 사단장은 조용히 나에게 명령했다.

 

"그 입 다물지 못하겠나?"

 

그러나 나는 격해진 나의 감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미 나의 목소리는 두 세배나 커져 있었다.

 

"부대원이 수렁에 빠졌을 때 진정한 지휘관이라면!! "

 

"입 다물어!!!"

 

"비록 거두어야 할 예하 부대원이 만명이 넘을지라도!! "

 

"박대위!! 이 강아지!! 어린 놈의 새끼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그 수렁 속에서 쓸쓸히 나 혼자 죽어간다는 것을.........."


나는 숨을 한 번 들이켰다. 그리고 몸이 풀어지듯 숨을 내 쉬며 마지막 말을 던졌다.


"절대로.....절대로 느끼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단장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내가 제출한 보고서를 주먹을 쥐듯 움켜쥐고, 무서운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잠시 동안 살인적인 적막과 긴장감이 집무실을 감돌았다.


그 소름끼치는 적막을 깬 것은 사단장의 나즈막한 목소리였다.

 

 

 

"니가 지금 고난을 자초하는구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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