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산부인과에서 일할때~

몽냉이 작성일 16.12.27 03:4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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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잠시 쉬고있지만 한때는 산부인과에서 일할때 있었던 일이다.

원래 일반 개인의원중에서는 산부인과가 젤 힘들다.

배울것도 많고 일할때 쓰는 용어도 많고 일할것도 많다.

어지간하게 내가 편하게 일할려면 한곳에서 1년은 있어야 일할맛도 나고 나도 편하고 옆에 같이 일하는 사람도 편하다.

산부인과하면 산모와 애기만 생각할수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요즘엔 애들을 안낳아서 소아과와 산부인과는 사양길이다.

뷰티나 비만을 같이 겸해서 진료하는경우가 다반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산부인과는 애만 낳는곳이 절대로 아니다.

애들이 젤 많이 죽는곳이 산부인과이기도 하다.

산부인과에서 일할려면 핏국에 밥말아서 먹을 정도가 되어야지 일할수 있을정도이고 그게 아니면 설령 간호사라 할지라도 병원에서 절대로 일을 못한다.

간호사라도 피만보면 거품물고 쓰러지는 경우도 다반사이고 그냥 혼절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밤에는 더 무섭다고 한다. 난 참고로 수술실에서 잠도 잘자는 케이스다.

난 수술방체질인거지 한마디로 ㅎㅎ 딴사람들은 기절초풍을 한다 심지어는 미쳤다고도 한다.

수술실에서 귀신도 봤다고 떠들어댄다. 난 한번도 본적은 없는데 느낌은 있었다.

누군가 꼭 있는것 같고 날 계속 지켜보는것 같은 느낌이 계속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눌러버리면 되지 싶어서 신경도 안썼다.

근데 첫번째 병원에서 5년을 있었는데 거기서도 이정도는 아니었다.

두번째 산부인과에서는 완전 후덜덜 한마디로 죽을뻔했다.

아~ 그러고 보니 죽을뻔 한적이 두번이나 있었네.

제가 지금은 열심을 낸것이 좀 떨어졌지만 옛날엔 엄청 열심 멤버였었다.

그때는 그렇게 안하면 자칫하면 사고로 이어질수 있어서 열심을 낼수밖에 없었다.

두번째 산부인과는 당직하는 첫날 꿈으로 알려줬는데 시끄러운 동네라는 것을 알려줬다. 내귀로 들려온 소리가 있었는데 자박자박 발소리가 왔다갔다 정신이 없을 정도의 발자국 소리가 나서 아~ 여기도 만만찮겠구나 싶었다.

왜냐 여기서 일할려면 각오는 어느정도 해야하기때문이다.

사람들도 오래 못붙어 있었다. 좀 같이 일할라치면 나가고 또 들어와서 일할라치면 나가고 다 그게 이유가 있다.

산부인과는 어지간한 강심장 아니면 못 붙어있는다. 기가 세야 하고 깡따구도 있어야 하고 절에 열심히 다니던가 아니면 교회를 열심히 다니던가 해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난 열심히 교회를 다녔다 기도도 많이하고 일할곳이 어떤곳인지 알려주신다. 특히 애를 낳을때는 애기가 안전하게 나올때까지 기도를 달고 살았을정도였다 안그럼 사고나니깐.

맘여리고 그런사람은 절대로 일못한다. 같이일했던 사람중에 하루 일하고 나서 도망간 사람이 있는데 그사람이 나더러 병원에 귀신이 있는것 같다면서 몇마디 말하고 도망갔다. 그것도 첫날 당직할때 그랬단다. 일반외래진료실에서 수술방 올라가는 쪽계단이 있는데 거기를 통해서 올라가거나 내려갈때에 누가 자기옷을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면서 어떻게 이런곳에서 일을 하냐면서 자기는 일못한다고 내뺐다. 얼른 여기서 나가야 한다고 그쪽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할때마다 머리가 쭈삣쭈삣 털이곤두선다면서 무섭다고 난리났었다.

난 수술방에서 잠도 자는데 뭘요 그랬더니 놀래자빠지는 얼굴이었다.

여기서도 낙태수술을 많이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아필이면 그날따라 꾼꿈이 하도 요상해서 적어볼라고 한다.

꿈에 어떤 대궐같은 기와집에 화단이 여러개가 있었고 문도 여러개가 있었다. 화단에는 머리만 있는애들이 수십명에 팔다리 잘려진 애들이 수십명에 달했다.

근데 그애들이 내가 거기를 지나가고 있었는데 "엄마 살려주세요 엄마 나 살고싶어요 엄마 살려주세요" 그러면서 나를 불렀다.

거기를 내가 어떤 이유로 지나가고 있었는지는 알수가 없었지만 온몸이 다 찢겨져 나가있는 그 애들을 보면서 맘이 찢어졌다. 내애는 아니지만 자식을 키우는 엄마로서는 맘이 아프고 엄청 힘들었던걸로 기억이 난다. 마지막문이 가까워지면서는 나중에 기운이 하나도 없을때였는데 꿈에서 내가 하는말이 "하나님아버지 나좀 살려주세요 나도 살고싶어요" 라고 기도를 하고 방언이 터지면서 쏼라쏼라 하면서 거기를 빠져나왔던 기억이 나는 꿈이었다. 마지막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면서 기도를 하며 거기를 나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저 그때 꿈속이었지만 죽을것 같았거든요. 자다가 가는경우도 있으니까 겁도 났고요 아무튼 굉장히 쇼킹한 꿈이었다.

잊어버릴래야 잊어버릴수도 없이 지금도 뇌리에 박혀있다.

첫번째 산부인과에서는 5년을 다녔어도 그런게 없었는데 여긴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5년있었던 병원은 어른귀신소굴이었다. 내가 다 쫒아냈지만서도.

여기가 옛날에 애들만 죽어있었던 공동묘지였던가 아니면 애들을 많이 낙태시켜서 그런것인지는 알수가 없다.

꿈을 깨고 나서도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온몸에 땀범벅이었던걸로 기억이 났다.

그러면서도 난 안나갔다. 다른 사람같으면 무서워서 나갔을수도 있는데 난 안나갔다.

웃긴게 뭐냐면 여기서 오래있다보니 사건이 꼬리를 물며서 터지고 또 터지는 병원이더라는 것이다.

말그대로 바람잘날없는 병원인것이지 한마디로.

지금도 거기는 좋은 병원이라기 보다는 안좋은 병원이라는 인식이 있다.

우리예전에 같이 일했던 직원들 중에 몇몇은 아직도 그병원에 있는데 가족들중 누구 하나라도 이병원에는 아무도 안온다.

실체를 다아니까. 이병원으로 오라고 권유를 할수 없을 정도로.

의사가 기본이 안되어있고 돈만 밝혀서 환자들 등꼴을 빼는 병원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는 직원들중에 충분히 자연분만이 가능한테 하나도 안도와주고 억지로 수술시켜서 애를 낳게 하는걸 보고 다 후덜덜 ㅠㅠ.

심지어는 수선생님의 이모아들의 마누라가 베트남 사람이었는데 나라에서 산모에게 주는 고운맘카드가 40만원인데 그것까지 홀랑 빼서 쓰게 하는병원이었다.

중간에 애가 유산되었는데 이것 저것해서 다 빼쓰게 했다는거에 우리끼리 크레이지의사라고 욕하고 딴데가라고 하지 왜 여기로

오라고 했냐고 우리가 수선생님한테 뭐라고 했다.

수선생님도 몰랐다고 한다. 평일날 오프라서 쉬는날 그랬는데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더라고 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앞으로 쓸얘기가 많은데 여기까지 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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