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집들 -2-

윤슬이 작성일 17.02.25 18: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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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5층 문을 열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다음에 살았던 집이다.

 

 

IMF가 겹치고 전원주택 그 집은 빚 청산으로 넘기고 허름한 아파트로 갔다.

 

약 2년 정도 살았던 기억이 난다. 그 집에 살다가 군대를 갔었다.

 

 

휴학도 했고 오랫동안 집에서 살지 않아서 그 집에 살면서는 엄마와 천변으로 운동도 자주 하러 다니고 오랜만에 가족들과 지냈던 곳이었다.

 

 

짧게 살아서 기억이 잘 안 났던 곳인데 들어와 보니 그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내 방에서만 불이 켜져 있고 다른 곳들은 다 어둡다.

 

 

그런데 내 방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음악소리인지 누가 흥얼거리는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

 

 

그저 지금 왜 이런 상황이 나에게 일어나는지가 궁금하다. 왜 전에 살던 집들이 자꾸 나타나는 것인지.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니 음악소리다. 들어본 적이 없는 멜로디.

 

 

생각해보니 직장생활에 치이다보니 음악도 듣지 않았다. 학생 때는 귀에 항상 이어폰을 꼽고 다녔는데 언젠가부터 음악은 사치가 되어버렸고 들을 여유도 없다.

 

 

운전 시에 연결되는 폰에 있는 몇 년 전 빌보드 차트 노래만 반복적으로 들을 뿐.

 

 

멜로디는 점점 소리가 커지고 있다. 귀를 기울여야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이내 집 안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전혀 들어본 적도 없는 저 소리가 왜 내 방에서 새어나오는 것일까.

 

갑자기 소리가 멈췄다. 집 전체에 퍼지던 소리가 갑자기 멈추니 너무나도 고요했다.

 

 

집 안은 적막과 함께 공포가 다시 퍼지는 기분이었다. 내 방 문을 열 생각도 없이 현관문을 통해 나가면 될 것 같았다.

 

 

현관문이 열리지 않는다. 내 방을 열어보고 가야 한다는 소린가.

 

 

시키는 대로 해야 나갈 수 있다는 말인가. 대체 나에게 원하는게 뭔가 싶었다.

 

 

어쩔 수 없이 내 방 문을 열었다. 큰 책상. 그 책상은 꽤 오래 사용을 했다. 독립할 때까지 계속 이사하며 가지고 다녔으니. 책상 위에는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MP3 플레이어 기계가 놓여져 있었다.

 

저기서 나온 음악이었을까. 궁금함에 MP3 를 보았다. 재생중인 음악의 제목이 반복적으로 돌고 있었다.

 

 

“ 네가 머문 자리에.mp3 "

 

 

내가 머문 자리...

 

 

뭘 말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분명 이유가 있겠지.

 

 

“끽~~~~~~~~~~~~~~~~~~~~~~~~~~~~~~~~~~~~~~~~~~~~~!”

 

 

귀를 막았다. 갑자기 집 안 전체를 이상한 소리가 덮고 있었다. 칠판에 긋는 소리.

 

 

서둘러 방을 나와 현관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나서기 전 신발장 위의 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내 모습이 비춰졌다. 피가 범벅이 되어 있다. 얼굴과 상의에 피와 함께 뭔가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얼굴을 만져봤다. 손에 뭔가가 묻어져 나온다.

 

 

이게 뭘까. 새끼손톱크기도 안 되는 것들 같은데. 꼭 살점이 떨어져 나간거 같은 기분이다.

 

 

나가야한다. 현관문을 열었다.

 

 

5층.

 

 

6층. 5층. 6층. 5층.

 

 

6층 문을 열었다.

 

 

지금 부모님이 살고 계신 집이다. 직장 다니며 독립하기 전까진 나도 이곳에서 살았다.

 

꽤 큰 평수의 집이다. 구조가 좀 복잡하지만 운 좋게 이 집을 구해 잘 지내고 계신다.

 

 

이 집으로 이사 오면서 직장도 잡게 되고 집안 전체 일이 조금은 잘 풀린 것 같다.

 

 

역시나 어두웠지만 현관문을 열자마자 왼쪽에 있는 내 방에선 불빛이 나온다.

 

 

거실에 있는 큰 티브이에 비치는 내 모습이 뭔가 어색하다.

 

 

어쩔 수 없이 내 방 문을 열었다. 이제 6층이니 7층이면 나오겠지 라는 막연한 기대.

 

 

방은 내가 생각한 모습과 전혀 달랐다.

 

 

온통 어지러워져 있었고 벽은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열자마자 보이는 컴퓨터 모니터에는 시커먼 것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으며 그것들은 붉은 벽지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저건 도대체 뭘까 라는 생각보단 아까부터 보인 그것의 연속이라는 생각이었다.

 

 

그 기괴한 무언가는 조금씩 벽으로 스며들더니 이내 방 전체에 새카맣게 물들고 있었고 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내 발목을 조여오고 그것은 나를 움켜쥐는 것 같았다. 내 다리의 살점을 뜯어내고 씹어 먹는 것 같았다. 칼로 한 점 한 점 살을 발라내는 것 같았다.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내 몸을 그 기괴한 것이 다 삼키려드는 것 같았다.

 

 

목안에서도 시커먼 것이 나올 것만 같았다. 등 뒤에서는 손길인지 무엇인지 느낄 수 없는 뭔가가 내 다리를 타고 허리 등 목으로 손길을 주고 있었다.

 

 

목 뒤로 손 모양의 형태가 내 귀를 잡았다. 귀를 잡고 무언가가 속삭였다.

 

 

 

“어때?”

 

 

 

벗어나야 한다. 이건 지금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비명을 지르고 몸부림을 쳤다.

 

 

무언가는 계속 귀에 대고 속삭였다.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때로는 남자의 소리. 때로는 여자의 소리.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속삭이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소리가 귀에서 윙윙거렸다.

 

 

살려줘 라고 말을 하려는데 입안에서도 시커먼 것들이 흘러져 나온다. 말을 할 수도 없다.

 

 

점점 이것이 내가 되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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