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미수와 구렁이

자뭅 작성일 17.03.08 1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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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수는 조선 중기의 학자로, 신통력이 있다는 소문이 있을 만큼 용한 사람이었다. 이것은 그가 젊은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가 살던 옆 마을에는 이상한 풍습이 하나 있었다. 산 안쪽의 굴에 젊은 처녀를 한 사람 데려다놓고 제를 지내야 마을이 평화롭고 안정된다는 것이었다.

 

 "어째서 그렇소?"

 

 "그 굴에 커다란 구렁이가 사는데, 마을에 해를 입힐 게 분명하니까 처녀를 바쳐서 진정을 시키려는 게요."

 

 "그런 제라면 나도 가서 구경해도 되겠소?"

 

 허미수의 말에 마을 사람들은 마음대로 하라고 대답했다.

 

 제를 지내는 날이 되자 허미수는 동생을 데리고 동굴 앞으로 갔다. 마을 사람들은 떡 벌어지는 상을 차려놓은 다음 젊은 색시를 제물로 데려다놓고 제를 올렸다. 허미수는 사람들이 다 돌아가고 난 다음에도 동생과 함께 한쪽 옆에 숨어서 가만히 동굴을 보았다. 

 

한참 기다리니 동굴에서 엄청나게 커다란 구렁이가 슬슬 기어 나와 상을 통째로 삼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제물로 바쳐진 처녀는 겁에 질려 울다가 실신을 했고, 구렁이는 상을 다 삼킨 다음 처녀에게로 슬그머니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때 허미수의 동생이 벌떡 일어났다.

 

 "저런 놈은 당장에 잡아죽이지, 형님은 뭘 기다리고 있는 겁니까?"

 

 그리고서는 구렁이에게 달려들었다. 구렁이는 갑작스러운 사람 소리에 실신한 처녀를 내버려두고 허미수의 동생에게 달려들었다. 동생은 평상 위로 펄쩍 뛰어오르며 몸을 피했으나 구렁이도 그 뒤를 따랐다. 구렁이의 몸집이 어찌나 큰지 평상을 둘둘 감고도 몸이 남을 정도였다.

 

 동생은 잘 드는 낫을 꺼내 구렁이를 찌르고 토막토막 잘랐다. 구렁이는 끝까지 몸을 꿈틀거리다가 마침내 죽었다. 두 사람은 제물로 바쳐졌던 처녀를 구해서 마을로 돌아왔고, 동생은 구렁이의 시체를 땅에다가 잘 묻었다.

 

 그 뒤로 이상하게도 아침에 나와 보면 구렁이를 묻은 자리에서 무지개처럼 오색 기운이 뻗어 나오는 것이었다. 동생은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죽은 구렁이가 무슨 해를 끼치랴 싶어서 신경 쓰지 않았다.

 

 얼마 후 동생은 혼인을 했고, 부인은 금세 아이를 가졌다. 태어난 첫 아이는 눈이 또록또록하고 인물이 훤했다. 동생은 형님 허미수를 찾아갔다.

 

 "형님, 아이를 낳았으니 이름을 좀 지어 주십시오."

 

허미수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가 동생을 보았다.

 

 "그 아이는 아무래도 키워서는 안 되겠다. 없애거라."

 

 "없애다니요?"

 

 "몹쓸 아이니 죽이라는 거다. 내 말을 따르거라."

 

 동생은 기가 막혔으나 형님이 워낙 용한 신통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지라 집으로 돌아가 부인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부인은 오랜 고민 끝에 허미수의 말을 따르기로하고, 두 사람은 첫 아이를 죽였다.

 

 얼마 후 부인은 다시 둘째 아이를 갖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보니 첫 아이를 잃은 슬픔을 잊을 수 있을만큼 이목구비가 준수하고 똘똘해 보이는 아이였다. 이번에는 괜찮겠지 생각하고 동생은 다시 형님을 찾아갔다.

 

 "둘째 아이를 낳았는데 이번에는이름을 좀 지어주시지요."

 

 허미수는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동생을 보고 대답했다.

 

 "이번 아이까지 없애야겠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번 아이까지 없애야 신상에 이로울 것이야."


 동생은 기가막힌 채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가서 부인에게 형의 말을 전했다. 그러자 부인이 화를 왈칵 냈다.

 

 "낳는 족족 아이를 죽이면 도대체 어떡하란 말씀이십니까!"

 

동생도 부인의 말이 맞다 싶어서 다시 형에게로 돌아가서 말했다.

 

 "집사람과 의논을 했는데, 이번에는 절대로 죽일 수 없다고 합니다. 어쩌면 좋습니까?"

 

 "그러면 너와 나는 형제의 연을 끊어야겠다."

 

 허미수의 말에 동생은 깜짝 놀랐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네가 구렁이를 죽인 다음에 그 시체를 싹 태워 없애지 않고 묻어줘서, 구렁이의 넋이 네 아이가 태어나는 족족 달라붙고 있는 것이다. 네가 그대로 아이를 키우면 자라서 결국에 역적이 될 것인데, 역적이 되면 삼족이 멸하니 나는 일찌감치 너와 형제의 연을 끊어 화를 피해야겠구나."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동생은 형제의 연을 끊기로하고 자리를 떨치고 나왔다.

 

 그러나 훗날 정말로 아이는 역적이 되었고, 집안이 전부 다 멸하는 와중에 허미수만 유일하게 화를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관련사이트들

 

http://culturecontent.kr/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2&cp_code=cp0521&index_id=cp05211391&content_id=cp052104010001&search_left_menu=2 

 

http://yoksa.aks.ac.kr/jsp/ur/List.jsp?ur10no=tsu_1590&ur20no=Q_1590_1_07D 

 

 

- 바다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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