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소설] 그곳에 있었다[1]

하하모드 작성일 17.05.08 16: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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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20대 초반 건강한 남자 대부분 국방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이 그렇다는 것이다.

 

각자의 꿈과 미래, 이상을 잠시 접어두고 나라를 위해 2년이란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어쩌면 낭비라 생각할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진정한 남자로 거듭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어찌됐든 인생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20대 초반 원하든 원하지않든

대부분 이 기간 '속박'된 삶을 산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지금부터 내가 쓰는 글은 바로 이 시기를 살아온 평범한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누구나

공감하면서도 소름끼칠만한 픽션이다.

 

1인칭 시점의 소설이라는 것이다.

 

다만 어디까지가 픽션이고 어디까지가 논픽션인지는 스스로의 판단에 맡기도록 하겠다.

 

# 자대배치


영택이(신교대 알동기)놈은 뭐가 그렇게 신났는지 군용 버스 맨 뒷칸에 몸을 싣자마자

키득키득 훈련소에서 그랬던 것처럼 연신 까불거린다.

 

"븅X 같은 놈... 어디 놀러가나? 뭐가 저렇게 신났어?"

 

난 속으로 실없는 욕을 한마디 내뱉었다.

그래봐야 저 놈에게 들리진 않겠지만 일종의 자기만족 같은 것이다.

 

사람마다 달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훈련소 생활과는 차원이 다른

위로 고참들만 있는 자대 배치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던 나와 달리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마냥 들뜬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별로 친하지도 않았고 내성적인 탓에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속으로 삼킨 것이다.

 

군대 훈련소를 흔히 인간군상의 집합체라고도 한다.

 

사회 각지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인데,

그래서인지 아무리 한달 가까이 함께 지냈다고 해도, 그것도 같은 자대에 배치받았다고 해서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과는 결코 친해질수 없었다.

 

같은 분대에 옆 관물대를 사용했던 민석이는 동갑에 통하는게 많아

친하게 지냈는데, 이 녀석과 같은 자대에 배치된 것이 그나마 위안이다.

 

민석이도 나처럼 내성적인 편인데, 이 녀석도 그저 묵묵히 차창밖을 응시할 뿐

별다른 말이 없다.

 

경기도 모 지역에 위치한 XXX기갑부대...

 

우리가 자대배치 받은 곳이다. 신교대에서 차로 3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였다.

 

그러나 우리를 싣은 군용 버스는 바로 부대로 향하지 않고 중간에 위치한 여단에 도착했다.

아무래도 점심때가 다가오자 중간에 점심을 해결하고 갈 모양이다.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고 빨리 도착해 적응하고 싶었지만

빌어먹을 군대라는 조직이 훈련소 생활 한달만에 느껴본 바 워낙 융통성이 없기 때문에

이제 갓 짝대기 하나를 얹은 이등병 나부랭이들이 뭐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우리를 인솔하던 인솔장교는 별다른 설명없이 그냥 하차 지시만 전달하곤 담배 한대를 꼬나물며 그늘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까지도 까불대던 영택이 놈을 선두로 우린 하나 둘 씩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마치 원래 다녔던 곳이냥 당연하듯 아주 본능적으로 '전우식당' 이라고

쓰여진 곳을 향해 일렬종대로 헤쳐 걸어갔다.

 

누구의 인솔도 받지 않고 이제 갓 이등병 짝대기를 단 사회물도 제대로 안 빠진 것들이

그래도 꼴에 훈련소 수료했다고 어느정도 각이 잡힌걸까?

 

그때였다. 여단 취사반장이란 중사 하나가 다가와 어쩌고 저쩌고 설명을 해대며 손을 씻으라고 지시했다.

 

군대에서 지시는 참 일상적이다...

 

그냥 기계마냥 시키는대로 움직여야 할 뿐인가?

 

손을 모두 씻고난 뒤 각자 식기대에 꽂혀있던 이름모를 여단 병사들의

식판과 포크숟가락(숟가락 가운데가 포크모양처럼 생긴)을 지참해 식당안으로 들어갔다.

 

난 날도 덥고 자대 생각에 입맛도 없었다.

 

게다가 짬밥이라 더 그렇다.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어쨌든 까라면 까야하는 군대기에 금식은 절대 허용되지 않으므로

그냥 억지로 우겨넣었다.

 

대충 먹고 함께 먹은 인원들이 다 먹을때까지 기다린 뒤 아까 우릴 인솔하던 인솔장교가 짱박힌 그늘 쪽으로 향했다.

 

"씨X... 그래도 스물이나 넘긴 성인 새끼들이 애새끼들 마냥 코앞을 가도 이렇게 모여서 가야 하다니..."

 

짜증이 솓구쳐 올랐지만 역시 그냥 속으로만 삼켰다.

 

인솔장교는 상사 계급을 달고 있는데, 나이는 한 30대 중, 후반정도로 보인다.

 

지금까지 인지조차 못했고 또 굳이 눈여겨 볼 필요도 없었지만 그냥 느낌상 그렇다.

 

그리고 게슴츠레한 눈매와 축 처진 턱살과 뱃살이 저게 진짜 군인이 맞나 싶을정도로 한심하게 다가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알바 아니지만, 우린 땡볕에 세워놓은채 지는 그늘에 앉아 담배를 아주 맛나게 빨면서

일장 연설을 또 지껄이고 있다.

 

사회였으면 말도 섞지 않을 아저씨지만 지금 우린 최대한 가식적인 표정과 제스처, 혹은 리액션으로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는걸 표현해야만 한다.

 

여긴 빌어먹을 군대니까...

 

아무리 군대라지만 도대체가 제대로 들을만한 내용이 없다.

 

한마디로 개소리가 반, 쓸데없는 소리가 반이라고 해야하나... 뭐 건질게 있어야 듣는 시늉이라도 하지...

 

끝이 날 것 같지 않던 인솔장교의 교장선생님 훈화말씀급 개소리가 끝나고

우린 다시 군용 버스에 올라탔다.

 

그렇게 까불대던 영택이 새끼가 조용해졌다...

그것 하나만으로 위안을 삼는다.

 

그리고 버스는 약 10분을 더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처음 차창밖으로 보이던 신교대급(새로 지은 건물이다) 시설에 난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그래도 시설은 좋네"

 

그런데 0.5초도 지나지 않아 이렇게 짧은 순간 급격한 감정기복을 겪었던게 언제 있었을까 싶을정도의 충격이 찾아왔다.

그 시설 좋은 곳은 바로 옆에 인접한 부대였고 버스가 들어가는 진짜 우리들의 자대 위병소 정문은 말 그대로 '헬' 이다...

 

그 옛날 6.25 전쟁 중 지었는지 빨간색 벽돌에 슬레이트 지붕을 얹어놓은 듯 보이는

가건물 몇 채가 각각의 중대 깃발들이 우리를 향해 바람에 휘날린다.

 

"씨X... X 됐다..."

 

21년을 살면서 대단한 금수저도, 자랑거리도 아니지만 나름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소위

'발에 흙 한 번 안 묻혀본' 나로썬 상상도 할 수 없는 환경에 직면한 것이다.

 

이후에 일이지만, 각종 벌레는 물론 저긴 '쥐'도 있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은

예감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어쨌든 우리들은 대대 본부에 도착해 간단한 신고 연습을 하고

창고같이 생긴 대기실에 앉아 초조하게 대대장이 오길 기다린 뒤

그가 도착하고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대대장 신고를 마쳤다.

 

그리고 다시 이어진 잠깐의 대기시간...

 

우리, 그러니까 그쪽 입장에서는 '신병 인솔'을 위해

대대 본부로 각 중대 계원들이 하나 둘 올라온다.

 

멀리서 바라보는 저 광경이 왜 이렇게 끔찍한지... 같은 사람이지만,

지금 그들은 마치 죽음을 인도하는 저승사자와 같은 모습이다.

 

가장 친했던 민석이는 본부중대, 깝치던 인택이는 2중대, 이름만 아는 안 친한 동기 하나는 1중대,

그리고 난.... 3중대 계원이 인솔했다.

 

말로만 들었지 진짜 순간적으로 이 계원놈들이 꿀빤다고 느낀게

이 놈은 군대에서 한창 일만 한다는 일병 짝대기를 달고 있지만

피부가 새하얗다 못해 백지장 같다...

 

원래 피부가 하얗다기엔 너무나 새하얗다...

 

반면 한여름 훈련소 생활 내내 구르고 옘병한 내 피부는 인종자체가 다르게 보일 정도로 시커멓다...

 

내 인솔계원의 이름은 영석이다.

 

김영석... 아마 밥은 안되지만, 군번이 풀려 사수를 일찍잡은 모양이다.

일병짬에 분대장 견장을 달고 왠지 행정반에서도 영향력이 있는 듯 보였다.

 

녀석은 나와 몇살 차이도 나는 것 같지 않은데 나를 상당히 어린아이 다루듯하며 내 손을 잡고

중대 행정반처럼 보이는 곳으로 걸어간다.

 

뒤에 맨 더블백보다 이놈의 손이 더 소름끼치게 떨쳐내고 싶다.

 

그리고 몇걸음 가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중대 행정반이라 짐작되는 곳에 도착했다.

 

긴장속에 내가 2년간 생활할 자대 행정반의 헬게이트가 열린다.

 

행정반 내부는 밖에서 보는 모습보다 더 참혹했다.

 

뭔가 시골 읍내에서나 볼법한 책상과 의자, 어디서 줏어왔는지

여기저기 뜯겨진 흔적이 보이는 작은 쇼파...

 

그나마 컴퓨터 모니터가 가장 현대적인 물건처럼 보일 정도다.

 

무엇보다 그냥 오래되고 낡은 곳이라 그런가보다 치부해버리기엔 수 많은 남자들이 뒤엉켜 생활하는 양기충만해야할 곳이 그것도 한여름 더위가 무색하게 음산하면서도 소름끼치게 스산했다.

 

마치 여긴 정상의 사람이 오면 안되는 곳이라고 경고하듯...

 

하지만 잡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조차 사치일 만큼 이제 갓 자대에 배치받은 이등병 신분으로서의 긴장감이 더 컸다.

 

그리고 계원 영석이가 잠시 쇼파에 앉으라고 말하며 선풍기를 가져다 틀어주면서 한마디 한다.


"기다리고 있어, 중대 배정받았으니까 이제 소대 배정도 받아야지"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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