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악령 5

씨바둥 작성일 17.07.10 00:2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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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창고 안을 자세히 살펴 보았어요. 유리
창은 전혀 없고 사람 머리만한 환기창이 위쪽
에 두 개씩 달려 있더군요. 다른 병사들이 흩
어져서 담배 한 대씩 피우는 동안 저는 일단
임성수 씨가 시킨 대로 먼지를 확인해 봤어요.
바닥을 손으로 훑어 비교해 보니 똑같더군요.
저는 다른 병사들 몰래 주머니에서 부적을
꺼내 문에다 풀로 붙였어요. 풀은 위에다만 살
짝 발랐는데 신기하게도 부적이 쩍 달라붙었
어요.
소대장이 대검을 든 채 닭의 목을 따지 않고
망설이고 있더군요. 제가 가서 대검과 닭을 받
아서 목을 땄죠. 닭피가 튀자 정 상병이 지금
뭐하는 거냐고 깜짝 놀라며 묻더군요. 저는 닭
피를 사방에다 흩뿌리면서 시체를 파낼 때 우
리 고향에서 하는 의식이라고 얼버무렸죠.
다른 병사들은 찜찜한 표정으로 나와 소대
장을 번갈아 보았죠. 나는 개의치 않고 복숭아
나뭇가지를 받아 중앙에다 놓고 불을 피웠죠.
금방 꺾은 나뭇가지라 불이 잘 붙지 않았어요.
석유를 조금 부으니까 그제서야 불이 붙더군
요. 석유가 모조리 타고 나자 나뭇가지가 타들
어가기 시작했어요. 매캐한 연기가 창고 안으
로 조금씩 퍼져 나갔죠.
다른 병사들은 모두 겁을 먹은 듯한 눈치였
어요. 소대장이 일 끝나면 저 닭을 안주삼아
술이나 한잔 하자고 꼬드겼죠. 그제서야 분위
기가 조금씩 바뀌더군요. 누군가 휴가와 애인
이야기를 꺼냈고 다시 분위기가 살아났죠.
저는 플래쉬로 바닥을 천천히 살펴보았어
요. 임성수 씨 말대로 원심력에 의해 힘이 모
아진 거라면 중앙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어서였죠. 바닥을 플래쉬로 유심히 보니 먼지
들이 나이테처럼 둥근 원을 그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나이테 안으로 들어가 보았어요. 창고 안쪽
에 수많은 원들의 정중앙이 자리하고 있었어
요. 저는 소대장에게 이곳에 시체가 있는 것
같으니까 파들어가자고 했죠. 소대장은 순순
히 그러자고 하더군요.
소대장이 작업을 시작하자고 했어요. 저는
곡괭이를 들고 바닥을 파헤치기 시작했죠. 너
무 겁을 먹은 때문인지 곡괭이를 몇 번 휘두르
지도 않았는데 군복이 땀으로 흠뻑 젖더군요.
내가 땀을 뻘뻘 흘리자 정 상병이 곡괭이질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면서 내 손에서 곡괭이
를 뺏어 갔죠.
그는 사회에서 공사판을 떠돌았다고 하더니
정말 곡괭이질을 잘 하더군요. 바닥 콘크리트
는 그리 두껍지 않았어요. 이어서 선임하사와
손 일병이 들어가 삽질을 하기 시작했죠. 바닥
은 딱닥한 흙이었어요. 삽날이 잘 박히질 않더
군요.
소대장은 불을 비추었어요. 정 상병과 제가
한 조가 되어 곡괭이질을 했고, 선임하사와 손
일병은 우리가 으깨놓은 흙을 삽으로 퍼냈죠.
곡괭이가 돌에 부딪히면서 가끔씩 요란한 소
리를 냈죠.
제가 곡괭이를 휘둘렀으면서도‘쨍!’하는 소
리가 나면 깜짝깜짝 놀라곤 했어요. 혹시 악령
이 곡괭이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나면 어떡하
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스쳤죠.
정 상병은 원래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는지 열심히
일만 하더군요. 저는 한시라도 빨리 일을 해치
워 버리고 싶어서 죽어라 곡괭이질을 했어요.
한참 일을 하고 나니 땀이 나서 그런지, 무
서움도 덜해졌죠. 거기다가 장정들이 다섯이
나 되는데 설마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 하는
낙천적인 생각이 들더군요. 다른 사람들도 여
유가 생겼는지 농담을 하기 시작했어요.
제일 먼저 시체를 발견하는 조에서 시체와
키스하기, 나중에 발견한 조는 시체 껴안고 블
루스 추기 등등.
허리쯤 파들어 가고 나서 시계를 보았어요.
쉬지 않고 일을 해서인지 밤 한시가 조금 넘었
더군요. 몸도 피곤해서 건성으로 곡괭이질을
하고 있는데 바닥이 뻥 뚫린 듯한 기분이 들었
어요. 놀라서 손전등으로 밑을 비춰 봤어요.
내려 앉은 바닥사이로 시꺼먼 것이 보였어
요. 우리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시꺼먼 부분
을 삽으로 긁어냈어요. 잘 보니까 군용담요였
어요. 군용 담요가 왜 묻혀 있을까 궁금하더군
요.
우리는 그 주변을 집중적으로 파헤쳤어요.
보고만 있던 소대장도 흥분했는지 삽을 들고
작업에 끼었어요. 우리는 미친 듯이 그 주변을
팠어요. 한 십여 분쯤 파들어가니까 윤곽이 들
어나기 시작했어요.
시체는 군용담요에 덮어 있었어요. 군용 담
요는 낡을 대로 낡아 있었죠. 장 상병이 대검
으로 군용담요를 갈랐어요. 낡은 새끼줄처럼
손쉽게 갈라지더군요. 소대장이 시체를 비춰
봤어요.
손전등에 비친 시체는 너무도 무서웠어요.
40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시체는 조금도
썩어 있지 않았어요. 머리카락이 원래 길었던
건지 아니면 계속 자랐는지 전신을 덮고 있었
죠. 손톱 또한 무지하게 길었어요.
시체는 눈을 부릅뜨고 있었는 하얀 눈자위
에서 파르스름한 빛이 뿜어져 나왔죠. 우리는
너무도 무서워서 숨조차 쉴 수 없었어요. 금방
이라도 벌떡 일어날 기세였으니까요.
소대장이 시체를 들어내라고 지시했죠. 군
용담요 끝을 잡고서 가까스로 시체를 들어냈
어요. 미끈미끈한 땀이 이마에서 계속 흘러내
렸죠. 사실 그때는 내 정신이 아니었어요.
시체를 들어내자 더 끔찍한 것이 보였어요.
탱크에 깔려 죽었다는 두 딸인 모양인데 뼈들
이 엉켜 있었어요. 꼭 껴안 채 죽었었나 봐요.
여기저기 토막난 뼈들이 보였죠.
뼈들을 간추려서 꺼내다 보니까 이상한 생
각이 드는 거예요. 40년전에 같이 묻는 건데
약초장수의 시체만 안 썩었다는 사실을 깨닫
고 나니 섬뜩했어요. 우린 일단 뼈를 모두 주
워 밖으로 끄집어 냈어요.
1차 작업이 끝나자 소대장이 담배나 한대씩
피우라고 하더군요. 소대장은 아무래도 시체
를 소각장으로 옮기려면 담가를 가지고 와야
겠다며 밖으로 나갔어요.
나는 담배를 꺼내다가 주머니에 부적이 한
장 남아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렸어요. 그
래서 재빨리 부적을 꺼내 시체로 다가가 이마
에 붙였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부적이 얼굴에
쩍 달라 붙더군요. 빨판이 달린 오징어처럼 말
예요.
저는 그때 부적을 붙이고 나서 다른 병사들
에게도 알렸어야 하는 건데 그러지 않았어요.
다른 병사들이 알아 봤자 겁만 더 먹지 좋을
게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죠. 나의 판단 착오로
엄청난 일이 일어났죠.
정 상병이 담배 꽁초를 버리고 플래쉬로 시
체를 비춰 보다가 부적을 발견한 거예요. 갑자
기 정 상병이‘이게 뭐지?’하고 다가섰죠. 그
러자 선임하사가‘뭔데 그래’하면서 뒤따라갔
어요.
내가‘만지지 마세요!’하고 주의를 주었지만
그들은 내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죠. 내가
뛰어갔을 때는 정 상병이 이미 이마에서 부적
을 떼어들고 있었고, 선임하사는 정 상병 손에
들린 부적을 뺏으려다가 그만 부적을 찢고 말
았죠.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소대장이 담가를 들고
그때 들어선 거예요. 문이 열리는 순간, 바람
이 세차게 불었어요. 그와 동시에 타들어가고
있던 복숭아 나뭇가지가 회오리 바람에 휩쓸
려 밖으로 내동댕이 쳐졌죠.
녹슨 철문이‘덜컹!’하고 닫혔어요. 우리는
너무도 놀래 서로 말똥말똥 쳐다보고만 있었
어요. 한동안은 잠잠했죠. 나는 숨을 죽이고
있었어요.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죠.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데 바람이 불기 시작
했어요. 문은 닫혀 있는데 둥글게 원을 그리면서.
바람이 점점 세졌죠. 우리는 너무도 겁이 나
서 철문을 향해 달려갔어요. 손 병장과 내가
문을 열려고 힘을 써 봤지만 철문은 꿈쩍도 하
지 않았죠. 철문이 끄떡도 하지 않자 점점 공
포가 밀려 왔죠.
바람은 무서운 속도로 불고 문은 닫히지 않
으니 정말 사람 환장하겠더라고요. 모두들 철
문에 달려들어서 힘을 써 봤지만 역부족이었
어요. 손 일병이 뒤늦게 문에 붙은 부적을 발
견하곤 이게 뭐냐고 기겁을 하더군요. 저는 떼
지 말라고 다급하게 말렸어요. 그것까지 떼었
다가는 무슨 괴상한 일이 벌어질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러는 사이에 갑자기 뚝 바람이 멎었어요.
너무도 조용해 슬며시 돌아섰죠. 바람이 놀랍
게도 회오리치면서 약초장수의 코로 빨려들어
가고 있는 거였어요. 아주 순식간이었죠.
내가 다시 돌아서서 문을 열려는 순간, 시체
가 벌떡 일어났어요. 손 일병이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죠. 바지에다 오줌을 지렸는지 바닥
이 축축했어요. 시체가 어둠 속으로 스르르 사
라져 버렸죠.
겁이 났지만 플래쉬로 구석구석을 비춰 보
았어요. 아무것도 없어서 무심코 허공을 비춰
보았어요. 갑자기 뭔가 뚝 하고 떨어졌어요.
소대장이 엉겹결에 야전삽을 휘둘렀어요. 그
런데 삽의 목부분이‘퍽’하는 소리와 함께 부
러졌죠.
악령은 소대장을 솔개가 병아리를 채가듯이
순식간에 낚아채더니 허공으로 날아올랐어요.
플래쉬로 비춰 보았죠. 악령과 소대장이 한몸
이 되어 허공에 떠 있었어요. 소대장의 공포에
질린 얼굴이 보였죠.
악령이 두 손으로 소대장의 얼굴을 쥐었어
요. 우리는 최면에 걸린 것처럼 멍하니 보고만
있었어요. 갑자기‘우두둑!’하는 소리와 함께
소대장의 목이 거꾸로 돌아갔죠. 소대장의 눈
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어요. 그리곤 슬로 비
디오처럼 아주 천천히 허공에서 떨어져 내렸
어요. 바로 우리 앞으로.
우리는 숨도 쉬지 못한 채 등에 지켜보고 있
다가‘쿵!’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어요. 엄청
난 공포가 급습해 왔죠. 머리가 어질어질했어
요. 달아나야겠다는 생각 이외에는 아무 생각
도 없었죠.
본능적으로 문에 매달렸어요. 있는 힘을 다
해서 밀어 보았지만 꿈쩍도 안 했어요. 그때였
어요. 내 옆에 서 있던 손 일병이 뒤로 쑥 끌려
갔어요. 우리가 미처 손쓸 틈도 없이.
손 일병이 살려 달라고 허공에서 절규를 했
어요. 하지만 우리는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어
요. 손 일병의 목도 마치 장난감 로보트처럼
간단하게 뒤로 돌아갔죠. 뼈마디가 부스러지
는 끔찍한 소리가 귓청을 긁었어요.
우리들은 공포로 제정신을 잃어갔어요. 선
임하사가 갑자기 허공으로 뛰어올랐어요. 벽
윗부분에 매달려 있는 환기창으로 탈출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거죠. 그는 환기창에
매달리더니 순식간에 머리를 환기창 밖으로
집어 넣으려는 거였어요. 하지마 환기창 구멍
이 너무 작아 머리만 가까스로 빠져 나갔죠.
머리만 빠져 나가면 몸도 빠져 나간다고 하
던데 그렇지도 않나 봐요. 선임하사는 빠져 나
가기 위해 몸부림을 쳤지만 목만 낀 채 바둥거
렸죠. 마치 목 잘린 시체를 보는 것 같았어요.
벽에 박혀 있는.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어요. 악령이 선임하
사의 다리를 잡고는 허공에서 돌려 버렸어요.
비명소리와 함께 피가 튀었죠. 잠시 위에 선임
하사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어요. 목이 너덜
거렸죠.
이제 창고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정 상병과
저뿐이었죠. 정 상병이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곡괭이로 철문을 내리치기 시작했죠. 저는 부
적 때문에 문이 열리지 않는게 아닐까 해서 부
적을 떼려고 손을 가져갔어요.
부적은 판박이처럼 문에 쫙 달라붙어서 손
에 잡히지 않았죠. 저는 간신히 손톱으로 부적
을 떼어냈어요. 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갑자
기 철문을 내리치던 정 상병이 확 돌아섰어요.
그리곤 입가에 침을 흘리면서 소리쳤죠.‘ 덤벼
라, 이 괴물아!’하고요.
그러더니 갑자기 기름통을 기울여 곡괭이
자루에 붓는 거였어요. 라이터로 불을 켜자 곡
괭이에 불이 불었어요. 정 상병이 곡괭이 끝을
잡고 휘둘러 댔죠. 불 붙은 곡괭이가 죽은 시
체들을 비췄어요. 한번씩 휘두를 때마다 시꺼
먼 그림자가 아른거리는데 마치 지옥에 온 것
같았죠.
악령이 다시 공격을 해 왔어요. 순식간에 접
근을 했죠. 정 상병이 있는 힘껏 다가오는 시
꺼먼 그림자를 향해 곡괭이를 휘둘렀죠.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곡괭이가 악령의 가슴팍에
박혔어요.
그런데도 악령은 꿈쩍 않고 정 상병을 허공
으로 끌고 갔어요. 곡괭이에 붙은 불로 인해서
지글지글 썩은 살이 타들어 갔어요. 정 상병이
살기 위해 바둥거리며 괴성을 질러댔어요.
우연히 정 상병의 공포에 질린 눈과 마주 쳤
어요. 제가 질끈 눈을 감는 순간, ‘우두둑!’하
고 목뼈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 왔어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어요. 그러다가 뭐
에 걸려 넘어질 뻔했어요. 바로 소대장의 시체
였어요. 일어서려는데, 바닥에 흩뿌려져 있는
닭피와 함께 죽은 닭이 눈에 들어왔어요. 문
득, 악령이 지금까지 바닥을 한번도 밟지 않았
다는 생각이 들었죠.
맞아, 닭피 때문이야. 닭피는 땅의 악령을,
복숭아 나뭇가지를 태운 연기는 하늘의 악령
을 제압하기 위한 것이었어! 그렇다면 방법을
하나뿐이야!
나는 생각과 동시에 죽은 닭을 잡기 위해 벼
락같이 몸을 날렸어요. 닭을 잡으려는 순간,
바로 앞에 뭔가가‘쿵!’하고 떨어졌어요. 정
상병이었어요. 목이 돌아가 기괴한 자세로 나
를 바라보는 정 상병의 시선을 외면하고 닭을
잡았어요.
닭을 들고 일어나며 대검으로 닭의 겨드랑
이를 길게 그었어요. 예상대로 피가 튀었죠.
나는 닭을 뒤로 감추고 있다가 악령이 공격해
오기를 기다렸어요.
악령은 가까이 왔다가 멀어져 가고, 멀어져
갔다가 다시 가까이 오기를 반복했어요. 나의
경계심을 느슨하게 한 뒤에 공격하려는 것 같
았어요. 나는 악령의 가슴에 박혀 있는 곡괭이
에서 타오르는 불빛을 보고 악령의 위치를 알
수 있었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플래쉬 불빛이 서치
라이트처럼 두서없이 바닥을 어지러이 비추고
있었어요. 나는 눈을 부릅뜨고 악령이 공격해
오기를 기다렸어요. 악령은 뭔가 심상치 않은 분
위기를 느꼈는지 쉽게 공격해 오지 않았어요.
악령의 가슴에 박혀 있던 곡괭이가 가슴이
너덜너덜해지자 제 풀에 풀썩 바닥으로 떨어
졌어요. 한순간에 악령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죠. 저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플래쉬를
잡고 싶은 충동을 느꼈어요. 그렇지만 한 손에
는 부적을, 다른 한 손에는 죽은 닭은 들고 있
었기에 그럴 수 없었죠.
놈은 나를 볼 수 있는데 나는 놈을 볼 수 없
다고 생각하니 정말이지 미칠 것 같았어요.
‘침착하자! 침착하자!’고 속으로 수없이 내뱉
으면서 어둠 속을 노려보았어요.
한순간에 놈이 와락 달려드는 것을 느꼈어
요.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들고 있던 닭을 놈
을 향해 휘둘렀어요. 닭피가 놈의 몸에 묻었는
지 깜깜한 어둠 속이었지만 놈이 주춤거리는
걸 느낄 수 있었죠.
저는 부적을 든 왼손을 지체없이 어둠 속으
로 불쑥 뻗었어요. 놀랍게도 부적이 앞으로 쭉
나아가더니 어딘가에 철썩 달라붙었어요. 이
어서‘쿵!’하는 소리가 들려 왔죠.
바닥에 떨어져 있는 플래쉬를 들고 재빨리
비추어 보았어요. 부적은 놈의 코와 입을 막고
있고 놈은 시체처럼 뻗어 있었죠. 절로 한숨이
나왔어요. 저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털썩 주저
앉았어요.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숨만 헐떡이고 있었
죠. 그러다가 문득, 놈이 다시 일어설지도 모
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악령이 몸을 숨기지
못하게끔 놈을 일단 소각시켜 버려야겠다고
판단했어요.
플래쉬를 이리저리 비춰 보니 기름통이 보
이더군요. 나는 후들거리는 몸을 일으켜서 기
름통을 들고와 놈의 전신에 부었어요. 불을 붙
이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라이터를 찾아보
았어요. 어디로 갔는지 없더군요.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보니 아직도 바닥에
떨어져 타고 있는 불붙은 곡괭이가 보였어요.
나는 곡괭이를 들고와 놈의 가슴팍에다 힘껏
꽂았죠. 그러자 시체에서 불길이 치솟았죠.
일렁거리는 불길은 창고 안을 훤히 비추었
어요. 창고 안의 처참한 광경이 한눈에 들어왔
죠.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휴가 기분에
들떠 있던 젊은이들이 흉측한 시체로 변해 있
는 것을 보니 참으로 허탈하더군요. 병사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 오는 것만 같았어요.
나는 타고 있는 약초장수의 시체를 보며 겉
잡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삽을 쥐었어요. ‘으아악!’하는 괴성을
지르며 불에 훨훨 타오르는 시체를 향해 달려
들었어요.
삽을 힘껏 내리치려는 순간이었는데‘트드
득!’하는 기분 나쁜 괴성이 들려 왔어요. 저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죠. 한순간, 타오르고 있
던 시체가 산산조각이 나서 사방으로 튀었어
요. 마치 크레모아가 터지듯이. 기겁을 해서 바
닥에 몸을 눕혔죠.
시체가 날아간 자리에서 거센 회오리가 불
어왔어요. 회오리 바람은 점점 속도가 빨라지
더니 나를 향해 다가왔죠. ‘위이잉’하는 마치
구천을 떠도는 악령의 원한 맺힌 울음소리와
함게 서서히 다가왔죠. 호흡하기도 곤란할 정
도로 강한 바람이었어요. 저는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몸을 바닥에 최대한 대로
낮췄죠.
귓가에서 고통에 가득 찬, 피눈물을 흘리는
듯한 회오리 바람 소리가 들려 왔어요. 그 소
리에 고막이 터질 것만 같았죠. 마치‘왜 나를
막는 거야? 네 놈 때문에 모든 게 수포로 돌아
가 버렸잖아!’하고 나를 질책하는 것 같았죠.
나는 귀를 꽉 막았어요. 얼마나 시간이 흘렀
을까? 바람이 잠잠해진 것 같아서 몸을 일으
켰죠. 회오리 바람은 나를 지나서 철문 앞으로
다가갔어요. 갑자기 철문이‘드르륵!’하고 기
분나쁜 소리와 함께 열렸죠.
회오리 바람은 열려진 문으로 나갔어요. 창
고 앞에서 다시 거센 바람을 일으키더니 서서
히 허공으로 떠올랐죠. 그리곤 어디론가 사라
져 버렸어요.
놈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
니 갑자기 피로가 몰려 왔어요. 나는 그 자리
에서 쓰러져 의식을 잃었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창고 안은 불바다로 변해 있었어요. 빨리
탈출해햐 한다는 위기감이 들었죠.
나는 몸을 일으켜서 열려진 문 밖으로 나왔
어요. 상쾌한 공기가 폐부 깊숙히 스며들었죠.
귓가에 부대의 비상 사이렌이 울리는 소리가 들
려 왔죠. 군화발 소리가 어지러이 들려 왔어요.
몹시도 목이 말랐던 터라 수돗가로 휘청거
리며 가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잡았어요. 나는
그들의 손을 뿌리치고 가다가 다시 의식을 잃
고 쓰러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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