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게이트 1

씨바둥 작성일 17.07.10 21:4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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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에 나오는 실제 지명은
사정상 밝힐 수 없습니다.)
쉴 곳을 잃은 자는 방황할 수 밖에 없다.
때로는 살의를 품고........
때늦은 겨울비가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싸늘한 겨울 습기가 얼굴을 스치자, 재원이
와 함께 만났던 그 여자가 생각났다.
재원이, 자식... 아직도 죽었다는 실감이 나
지 않는다.
그 여자를 만난 날도 이렇게 스산한 날씨였다.
재원이는 내키지 않았던 내게 귀찮을 정도
로 그 여자를 만나보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그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재원이는 언제나 그랬듯이 병원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던가, 이상한 환자가 들어오게 되
면, 나를 불렀다.
그날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항상 들어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날
도 역시 병원은 차가운 느낌을 주었다. 비가
내려서인지 그 느낌은 더욱 으시시하게 느껴
졌다.
특히 철문으로 닫혀있는 정신병동에 들어갈
때는 일말의 공포까지 느껴졌다. 재원이가 정
신과 레지던트 선배에게 한참을 졸라 허락을
미리 받았다고 했지만, 워낙 패쇄적이고 엄
격한 곳이라 밤 늦은 시간에 남의 눈을 피해
찾아가야 했다. 재원이 말로는 자기와 친한
선배가 당직 일때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
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날 우리가 찾아간
것이 알려진다면 병원에서는 큰 문제가 될 정
도로 위험한 일이었다는 것이었다.
음산하고 캄캄한 정신병동 복도를 따라 한
참을 들어갔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병원 제일 구석에 있는
격리실이었다.
우리를 안내해준 선배 레지던트는 그 격리
실 문을 열기전에, 약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
로 재원이에게 얘기했다.
“조심해라! 무슨 일 있으면, 즉시 뛰어나와
서 날 부르고!
스테이션에 있을테니...”
그 말에, 생각없이 여기까지 따라온 나는
갑자기 으시시함이 느껴졌다. 격리실 안에 말
로만 듣던 미친 연쇄 살인마라도 있다는 듯한
말투였기 때문이었다.
“철커덕”
격리실 문을 여는 소리가 그렇게 크게 느껴
졌다.
재원이가 격리실안의 불을 켜자, 서너평 남
짓한 하얀 병실에 침실이 하나 덩그러니 놓여
졌고,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정신병자
들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압박복을 입고, 침대
에 묶여져 있는 것이었다. 꽤 발작이 심한 환
자처럼 보였다.
그 여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온몸
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섬뜩함이 느껴졌다.
광기와 공포가 뒤섞인 눈빛이었다.
첫 눈에 봐도 그 여자가 험한 일을 당한 것
처럼 느껴졌다.
재원이가 구석에 있는 의자를 두 개 끌고와
그여자 머리맡에 앉아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
기를 시작했다.
“지연씨, 제가 지연씨 얘기 믿어줄 신문기
자를 데리고 왔으니 그 얘기 다 해주세요...
이 분은 정말 지연씨 얘기 다 들어줄 거예요...”
재원이의 거짓말 덕분에 갑자기 기자가 된
나는, 누운 채로 고개를 돌려 날카로운 시선을
나를 바라보는 그 여자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치곤 괴기
할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하지만 앙칼지게 내
게 얘기했다.
“기자 아저씨, 내 모든 얘기 다 해줄테니,
제발 날 여기서 끄내줘요!
여기 이렇게 있다간 그 사람이 나를 죽이러
온다니까!”
나는 머뭇거리며 최대한 도움이 되어 드리
겠다고 했지만, 정신병자를 속인다는 것이 마
음이 걸렸다. 하지만 그 여자에게서 풍기는 괴
기함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무슨 얘기
인지 꼭 듣고 싶어졌다.
그렇게 해서 재원이 나는 침대에 묶여있는
미친사람일지도 모르는 그 여자에게 그 얘기
를 듣게 되었다.
그 여자는 뭔가에 쫓기는 듯한 초조함이 보
였고, 얘기 중에도 계속 주위를 돌아보는 등
불안해 보였다.
공포에 질린 모습이었다.
그 여자가 들려준 얘기는, 그 여자가 왜 그
렇게 불안하고 두려움에 떨게 되었는지 설명
아닌 설명이었다.
어떤 것이 진실일 줄은 아직 모르지만...
아니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아마 제 얘기를 믿지 않을 거예요...
여기 의사들도 아무도 믿지 않았으니까...
아직도 그 사람이 어디선가 나를 보고 있을
거예요.
꿈속에서 까지 나타나 나를 괴롭히고 있어요.
언제가 나를 데리러 오겠죠.
지옥에서...
그러니 빨리 나를 여기서 내보내 줘요! 제
발!!!
제발...
흐흑......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고속도로 톨게이
트에서 통행료 받는 일을 했었어요.
아주 단조롭고 평화로운 일이었죠...
그 일을 5년동안이나 하고 있었죠.
아시다 시피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아니에요.
다만, 매연을 들이마시며 하루 8시간씩 자
리에 앉아 돈을 받는 일이란 단조로움과의 싸
움이지요.
일이 단순할수록 스트레스도 많은 것 같았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제가 담당하는 톨게이트는 충청북도 P시로
나가는 곳이었어요.
아주 작은 곳이었죠.
통행료 받는 곳이 왕복 6개 밖에 없고, 그
나마 평상시에는 3곳을 운영해요. 추석 등의
명절때를 제외하고는요...
추석때 말이 나와서 그렇지, 그때는 정말 난
리가 나요.
바로 우리 톨게이트를 지나면 큰 공원묘지
가 있었거든요.
추석때만 되면, 하루종일 한번도 쉬지 않고
지나가는 차들에게 통행료를 받아야 해요.
이런 일을 하다보면 별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요.
돈 없다고 배째라하는 식의 운전사들, 술취
한 채로 운전하고 오다가 톨게이트에 차를 박
는 사람들, 졸고 있다 통행료를 내고 있던 앞
차를 박아 싸우는 사람들, 통행증을 잊어버렸
다며 그냥 통과시켜 달라는 사람들, 납치범들,
범죄자들, 차 막혔다고 욕하고 가는 사람들...
정말 별의별 사람들을 다 보게 되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말 없이 돈
만 내고 가죠.
어떤 날은 하루종일 한 마디도 않하고 끝날
때도 있어요.
사람들과 차는 많이 지나가지만, 마치 무인
도에 혼자 앉아 있는 기분이지요...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이 되면, 하루종일
문을 열고 일해야 하기 때문에 괴로울 때도
많아요...
눈이나 비 올때도 그렇고요...
그런데 그 사람은 바로 비오는 밤마다 나타
났어요...
날씨가 스산해지고, 비가 내리는 밤이면 항
상 우리 톨게이트를 지나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그 사람인줄 알게 되었냐고요?
처음에는 그냥 우연인줄 알았죠...
하지만 세상에는 우연은 그리 많지 않은 일
이라는 것을 알게 됐죠...
가을 어느 비오는 날이었어요.
작년에는 여름에 가뜩이나 비가 많이 와서
전국이 난리가 났었는데, 가을에도 역시 비가
많이 왔어요.
가을비 내리는 밤은 특히 톨게이트에서 일
하기에는 참 나뻐요. 낮에 비해 쌀쌀하고 손이
시려울 정도죠.
그날도 평범한 날이었죠. 다만 밤에 혼자서,
간간히 지나가는 차의 통행료를 받는다는 것
이 무료할 따름이었죠.
같이 당직인 숙자언니는 피곤하다며, 내게
톨게이트를 맡기고 톨게이트 건너편에 있는
사무실로 자러 들어갔어요.
밤에는 돈받는 톨게이트는 하나만 열거든요.
그런데 그 날따라 비가 심하게 내려서인지,
정산소안의 전등이 나갔어요. 통행료 정산기
는 말짱한데 전등만 나간 거예요...
사실 그런 일은 종종 있거든요, 그럴 때 대
비해서 손전등과 촛불은 항상 준비되어 있죠.
돈은 줘야 되니까요...
어떻게 보면 불이 나간 날은 재수 없는 날이
지요.
어두컴컴하고 한적한 곳에 혼자 앉아 밤을
지새야 하는 것이니까요. 더구나 지방의 소규
모 톨게이트는 아시다시피 인적이 가장 뜸
한 외곽이 있잖아요.
비까지 내리는 음산하고 으시시해졌어요.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등을 들으면서 빨리 아
침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죠...
밤 2시쯤 되었을까...
지나가는 차도 뜸해지고 저도 슬슬 졸려오
기 시작했어요.
비는 그칠줄 모르고 내리고 있었고, 잠깨라
고 틀어놓은 라디오에서는 DJ의 졸린 목소리
가 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잘 나오던 라디오가 지지직
거리더니 잡음만 들리는 것이었어요. 몇번 만
져봐도, 계속 잡음만 들렸어요.
비 때문인가 생각하고 고개를 들어 고속도
로쪽을 쳐다보니, 빗속을 뚫고 천천히 들어오
는 차 헤트라이트가 보이는 것이었어요.
하루에도 수백번이상 보는 헤트라이트 불빛
인데, 그때는 이상할 정도로 불길한 예감이
들었어요. 아니에요, 정확히 말하면 이유모를
무서움이 느껴진 것이죠.
어둠속에 혼자 있다는 것이 갑자기 무섭게
느껴진 것이죠...
그 불빛은 저의 두려움을 아는 것처럼 천천
히 다가왔어요.
나는 괜히 겁먹을 필요없다며, 손을 내밀어
표를 받을 준비를 했어요. 그 차는 비속에서
천천이 미끌어져와 정산소 옆에 섰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차를 운전하는 사람의
얼굴이 잘 안보이는 거예요. 원래 정산소에 앉
아있으면, 운전하는 사람의 얼굴은 다 볼수 있
거든요. 정산소는 검문 목적도 있고 해서,
그렇게 만들어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얼굴은 이상
할 정도로 어둠에 쌓여 보이지 않았어요.
그럴 수도 있겠지라는 생각에 표를 받으려
고 손을 내미는데. 갑자기 그 사람으로부터 뭐
가 썩는 듯한 기분 나쁜 냄새가 확 나는 것이
었어요.
그러고는 어두운 차안에서 불쑥 손이 나와,
표와 함께 돈을 내밀었어요. 자기가 낼 금액을
이미 아는지, 돈을 같이 내는 것 같았어요.
저는 괜히 머리 속을 스치는 불길한 생각을
지우고, 그냥 아무렇지 않게 돈과 표를 받았어요.
그런데, 그 표와 돈이 젖어있는 것이었어요.
빗물 때문에 젖었으려니 하고, 표에 묻은 물
기를 닦기 위해 책상위에 있는 휴지를 집어들
었어요. 젖은 채로 표를 정산기에 넣으면 고
장날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그 순간 그 차는 거스름돈도 받지 않
은 채 출발해 버렸어요,
너무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당황한 저
는 멀어지는 그 차의 뒷모습을 쳐다보았지만,
번호판은 물론 아무 것도 제대로 볼 수 없었어요.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그 차의 뒷모습을 보
고, 저는 한숨을 내쉬며 그 차 운전사 가짜 돈
을 내고 도망가는 구나 생각했어요. 밤이 되
면 가끔 그런 식으로 아무런 종이나 내놓고 도
망가버리는 차들이 있거든요.
그 차도 그런 차인줄 알았아요.
혹시나 하고 젖어있는 돈의 액수를 확인하기
위해, 손전등을 비춰보았어요.
처음에는 색깔이 이상해 돈이 아닌 줄 알았
어요.
시커먼게 묻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상했
어요.
그때 번쩍하고 번개가 쳤어요.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사방은 환해졌죠.
그 순간 저는 제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너무 놀라 움직일 수 없었어요.
돈과 표에 묻은 것은 빗물이 아니라,
새빨간 핏물이였던 것이었어요.
몸서리를 치며, 그 피묻은 표와 돈을 치웠어요.
그런데 다음 순간 지직거리던 라디오가 제
대로 켜지고, 정산소안의 불도 들어왔어요.
이상하고 무섭기까지 했어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시 표와 돈을
줏어들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려고 노력했어요.
그 차에 탔던 사람이 단지 코피를 흘렸다거
나, 손을 베서 피가 묻었으리라 생각하기로 했
어요. 피묻은 표와 돈을 집어들자, 왠일이지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고 등골이 오싹해졌어요.
그래서 대충 핏물을 휴지로 닦아내고, 말리
기 위해 책상 구석에 치워놨어요.
한참을 멍하니 있는데, 숙자 언니가 정산소
로 들어왔어요.
이제 자기가 교대해줄테니, 사무실에서 눈
좀 붙이라고 했어요.
그날 밤은 더 이상 정산소에 혼자 있기가 무
서워 그냥 사무실에 들어갔어요.
사무실 당직실에 누워, 그 피에 대해 이것저
것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어요.
기억나지 않은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데, 웅
성웅성하는 소리 때문에 잠이 깼어요. 눈을 떠
보니 어느 새 환한 아침이더군요.
밤새 내리던 비는 그쳐있고...
사무실에는 출근한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고요. 저는 퇴근 준비나 할
생각으로 옷을 갈아입으려고 하는데, 전화를
받고 있던 소장님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는
것이었어요. 사무실안에 있던 우리들은 소장
님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에 갑자기 조용해졌
어요.
수화기를 내려놓은 소장님은 자기에 집중하
고 있는 우리들을 돌아다보더니, 심각한 목소
리로 그 충격적인 얘기를 해주었어요.
‘여러분, 이제부터 야간 근무할 때는 각별히
조심하도록 하세요.
지금 들은 얘긴데, 어젯밤에 경상남도 L톨
게이트에서 야간 당직을 서던 직원이 살해당
했데요.
그것도 칼로 잔인하게 살해당했다군요.
뭐, 팔이 잘리고, 목이 난도질당한 채로 발
견되었데요...
아직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통행료를 노린
강도일 것 같으니 각자 조심하도록 하세요...
휴... 세상이 너무 무서워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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