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ch] 토끼씨

금산스님 작성일 17.10.19 09:2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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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친구에게 해줬더니, 잠깐 굳었다가 엄청 비웃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내 입장에서는 꽤 기분 나쁜 이야기다.

올해 6월에 3살이 된 딸 이야기다.

 


아이들한테는 자주 있는 일이겠지?

딸에게는 상상 속의 친구가 있다.

자주 말하는 건 "팬더씨", "너구리씨", "토끼씨" 셋이다.

 


[팬더씨는 아직 아기야.] 라고 말하기도 하고,

[장난감 어지럽힌 건 내가 아니라 너구리씨야!] 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토끼씨만은 뭔가 좀 이상했다.

토끼씨에 관해서는 다른 둘과 달리 꽤 구체적인 표현을 하기 때문이었다.

 


[토끼씨는 언니니까 젓가락질을 잘해!]

[토끼씨는 지금 베란다에서 꽃을 보고 있어.]

어느날은 딸이 혼자서 피아노를 장난감 삼아 놀고 있었다.

 


자주 있는 일이라 신경 쓰지 않았지만,

문득 들어보니 더듬거리지만 제대로 된 멜로디를 치고 있었다.

 


도.. 레.. 미, 도, 레.. 미..

튤립이었다.

 


피아노를 가르쳐 준 적은 없었다.

나도, 아내도..

 


이상하다 싶어 물어보자,

[토끼씨가 알려줬어!]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쩐지 기분이 나빠져,

나는 딸에게 물어봤다.

 


[토끼씨는 어떤 아이야?]

[음, 그러니까, 귀가 길어!]

[그럼 이런 아이야?]

나는 동화책에 그려진 토끼 캐릭터를 보여줬다.

 


[아니야.]

[그럼.. 이거?]

이번에는 진짜 토끼 사진을 보여줬다.

 


[아니야.]

그 후에도 이것저것 물어봤지만,

아직 알고 있는 단어도 많지 않아 더 이상의 대답은 들을 수가 없었다.

 


딸 스스로도 생각하는게 잘 전해지지 않아

답답해보였기에 그날은 그만두기로 했다.

 


딱 하나 알 수 있었던 건,

흰색이 아니라 검은색 토끼라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딸이 흥분해서 내게 달려왔다.

 


[이거! 이거!]

한 권의 잡지를 손에 든채 외치고 있었다.

 


[왜 그러니?]

딸은 잡지의 사진을 가리켰다.

 


[이게 토끼씨야!]

[어..? 이게 토끼씨야?]

[응!]

 


딸은 얼굴 가득 미소를 띄우며 끄덕였다.

그 사진은 방긋 웃고 있는 바니걸 사진이었다.

 


출처: VK's Epita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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