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적 1부

백도씨끓는물 작성일 18.06.05 09: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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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세기를 맞이했지만딱히 변한 것은 없던 시절이었다공부만 열심히 하면 별 문제가 안 된다는 어른들의 말은 거짓말이었다열다섯 살2병에 걸렸다고 손가락질 하지만 그들은 그들만의 문제로 피곤한 삶을 보내고 있었다. 

18년 전, D중학교에는 허보라는 녀석이 정권을 잡고 있었다녀석은 어린 시절부터 또래보다 덩치가 훨씬 컸고,힘도 좋아서 학교의 통이 되었다아이들은 눈치를 살펴야만 했다가끔 허보가 기분이 언짢은 일이 생기거나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몇몇은 화풀이 대상이 되어야만 했고몇몇은 주머니를 털어서 맛있는 것을 사다가 바쳐야만 했다하루하루 녀석의 횡포에 몸과 마음이 지쳐가던 날이었다학급 반장도 녀석의 졸개가 되었고선생님도 녀석만큼은 부담스러운지 눈감아 주거나외면했다.

한 날은 진호라는 녀석이 참을 만큼 참다가허보에게 덤빈 적이 있다처음에는 선빵을 날리고 기선제압을 하는 듯 보였으나이내 허보의 두꺼운 손에 멱살을 잡혔다어찌나 악력이 강하던지움직일 수 없었다결국 두꺼비 펀치로 진호의 얼굴을 후려 패는데자비란 없었다이후 진호는 허보의 리모컨이 되어 온갖 자존심 상하는 일을 하였다진호는 허보의 기분을 기상청 직원처럼 감지했지만워낙 변덕이 심해서 하루에 한 번은 꼭 싸대기를 맞았다그런 모습을 본 학급 아이들은 허보의 눈짓과 손짓에 굽실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충청남도 이름도 모르는 지역에서 태유라는 녀석이 전학을 왔다키도 크고이목구비도 뚜렷한 것이 꽤 잘생긴 녀석이었다하지만 눈빛에는 초점이 없고 뭔가 대강대강 자기소개를 했다물론 선생님이 바빠서 반장이 데려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긴장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고주머니에 손을 넣고 터벅터벅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전학 첫날에 주머니에 손을 넣는 다는 것은 쉽지 않은 용기였다역시나 그것이 허보의 심기를 건드렸다쉬는 시간에 허보의 똘마니 중 가장 비열하다는 우석이가 태유에게 다가갔다.

전학생 새끼야저기 있는 허보가 니 좀 보잖다.”

태유는 듣는 둥마는 둥 책상에 엎드려서 졸린 눈으로 우석이를 바라봤다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우석이는 자신의 말을 무시하자화가 났는지 윽박지르며 태유의 목덜미 쪽 옷깃을 잡았다녀석은 허보의 영원한 딸랑이 아니던가허보의 비위를 맞춰주는 대신 2인자 자리를 보장 받았다그리고 2인자가 되면서 더욱 잔인해지고 더러운 짓을 서슴치 않았다반 아이들은 전학생이 불쌍했지만차마 도와줄 용기가 나지 않았다그저 이곳으로 전학 온 태유가 운이 나빴다고 생각했다반드시 녀석이 꼬장을 부릴 것을 알기에 아이들은 애써 눈을 피했다.

 와장창창

유리창이 부서지는 소리에 모두가 놀랐다태유가 전학을 오자마자 더러운 꼴을 당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들리는 것은 우석이의 비명 소리였다교실에 있는 모두가 창문 쪽을 바라봤다우석이가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었고,창문은 깨져서 파편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피를 본 우석이는 겁이 났는지 울음을 터트렸다태유는 우석이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코쟁이 새끼가 죽을라고...”

다시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엎드렸다그 광경을 본 허보가 얌전히 둘 녀석은 아니었다육중한 몸을 일으켜서 태유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정말 큰 일이 날 것 같아서 구경하고 있던 아이들 모두가 몸이 굳어버렸다그런데 허보가 태유에게 도착하기 전태유가 일어났다그리고 몸을 날려 허보의 복부를 이단 날라 차기로 가격했다. ‘이라는 소리와 함께 허보가 쓰러졌고고통을 호소했다한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급기야 눈물을 흘리는데 선생님이 들어오자마자 119를 불렀다실로 통쾌했지만태유가 선생님께 혼자지 않을까걱정이 되었다당황한 선생님이 어떻게 된 일이냐며태유에게 물었다. 

선생님제가 실수로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저 친구와 부딪혔습니다덕분에 저는 다치지 않았지만저 친구가 많이 다치지 않아야 할 텐데요죄송합니다저의 불찰입니다.”

선생님은 태유의 말을 듣고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나 보다다음부터 조심하라고 타이르는 정도로 끝났다교실에 있던 아이들은 태유의 태세전환에 경악을 했다그런데 선생님이 우석이도 자리에 없다는 걸 알아챘다태유는 얼굴색이 하나 변하지 않고 또 거짓말을 했다. 

아까 혼자서 저를 놀래 켜 주려고 장난치다가 머리로 유리창을 깨서 상처가 나서 양호실에 갔습니다큰 상처가 아닌 긁힌 정도여서 다행입니다만창문이 깨졌는데 어떻게 하죠?”

전학생의 능수능란한 거짓말에 학우들 모두가 소름이 돋았다선생님은 도대체 뭘 어떻게 까불기에 유리창을 머리로 깼냐며제발 조심 좀 하라고 했다운이 좋게도 원래 우석이 녀석은 반에서 많이 까불고 돌아다녀서 선생님도 그 정도에서 넘어갔다.

태유는 선생님이 있을 때는 눈이 반짝반짝하다가 쉬는 시간만 되면 본드를 마신 동네 형들처럼 허공을 보며 멍을 때렸다.

이윽고 점심시간이 되었다모두들 도시락을 꺼내었다하지만 태유만 도시락을 싸오지 않았다반 아이들 중 눈치 빠른 녀석들이 태유에게 다가가서 줄을 섰다.

태유야빵 사올까라면 사올까?”

태유는 자신에게 잘 보이려는 녀석들을 한참 바라봤다태유가 허보보다 강하다고 판단한 녀석들이 지지의 러브콜을 보내는 것이었다그러나 태유는 관심 없었다다만 특이한 점이 있다면자신이 매점에서 라면을 사올 테니식사를 함께 하자는 것이었다.

먼저 먹으려면 먹어기다려주면 고맙고...”

아이들은 태유의 반응에 우왕좌왕했다먼저 먹으라는 건지기다리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혹시 먼저 먹었다가 허보와 우석이 꼴이 날까봐태반이 밥을 먹지 않고 기다렸다몇 분 뒤에 태유는 먹을 것을 엄청 사들고 왔다라면 두 개에 온갖 빵들그 밖의 간식거리와 음료수르 사왔다조금 늦은 태유는 먼저 밥을 먹지왜 기다렸냐며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듯 투덜댔다녀석과 밥을 먹는데편할 수가 없었다하지만 우려와는 다르게 학우에게 매우 친절했다자신이 사온 간식거리나 음료수를 나누어 주고도시락을 못 싸온 아이들에게 사온 빵을 먹으라며 무심하게 툭 던지는 것이었다얼떨결에 반에서 아웃사이더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어쩌다보니 허보의 존재는 사라지는 듯 했다그런데 허보가 전학생에게 맞았다는 소식을 들은 각반의 일진들이 교실 앞을 기웃거렸다.

허보 때린 전학생 새끼가 누고오늘 전학 온 새끼라는데 얼굴 함 보자?”

교실에 정적이 흘렀다그러나 태유는 아랑곳하지 않고아이들과 농담 따먹기에 집중했다.

프린세스 메이커2에 dd파일 지우면 우째 되는지 아남웃는 새끼들다 변태키키키키...”

아이들이 생각한 것보다 태유는 재밌는 녀석이었고좋은 친구였다다만말이 너무 많았다쉴 새 없이 떠들어 댔다급기야 교실 밖에 있는 일진들이 자신들 말이 안 들렸냐며 들어왔다순식간에 여석 명 정도가 겁을 주는데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하지만 그러던가말든가 태유는 혼자서 떠들어댔다여석 명 중에 가장 싸움을 잘하는 성동이가 태유의 멱살을 잡았다태유는 멱살을 잡힌 채로 아이들과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보편적인 수준의 정신을 가진 놈이 아닌 것이 틀림없다성동이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지 주먹을 휘둘렀다하지만 순식간에 멱살을 잡은 손을 꺾는 태유였다성동이가 아파하며 비명을 질렀다.

끄아악.”

태유는 아무래도 상당히 희한한 녀석이었다성동이 녀석의팔을 꺾은 채로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녀석은 팔이 아픈지 주저앉으면서 놓아달라고 애원했다태유가 수다를 멈추고 성동이의 팔을 다시 다른 방향으로 꺾어 일으켜 세웠다.

야이 좀만한 새끼아상대를 봐가면서 덤벼오늘 니놈 팔모가지 다시는 못 쓰게 할려다가 참은 거여다시 내 눈에 보이면 그대는 물어뜯어 죽여 버린다?”

마치 지킬 앤 하이드를 보는 것 같았다아니면 분노 조절 장애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성동이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아침이 되었다태유는 적응이 끝난 듯 아이들과 잡담의 향연을 벌였다하지만 아이들은 다시 조용할 수밖에 없었다허보와 우석이가 씩씩거리며 나타났기 때문이다허보는 인상을 찌푸리며 성큼성큼 걸어와서 다시 태유에게 다가갔다하지만 그것이 실수였다태유는 또 도라이 기질을 발동하며 몸을 날려서 허보의 코뼈를 팔꿈치로 쳤다. ‘와드득소리가 교실을 채웠다허보는 휘청하며 주저앉고 말았다이내 수도꼭지처럼 쌍코피가 쏟아져 내렸다태유가 우석이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녀석은 겁을 먹고 도망쳤다.

허보는 연속 이틀 동안 눈물을 보였다자존심도 상하고무엇보다 피가 멈출 주를 몰라서 코를 부여잡고 화장실로 갔다시간이 꽤 지난 뒤허보는 코에 휴지를 박고 돌아왔다녀석은 씩씩거리며 자리에 앉았다그리고 만만한 녀석인 진호를 불러서 빵과 우유를 사오라고 시켰다진호가 자리에 일어나서 교실문을 여는 순간태유가 가지 말라고 했다진호는 가야 할지말아야 할지 갈등이 됐다왜냐하면 허보가 인상을 쓰며 계속 노려봤기 때문이다태유가 그것을 보자당장 허보에게 달려들었다사정없이 녀석의 볼에 싸대기를 날렸다.

이런 씹대두 새끼대가리 크기만큼 나쁜 새끼야쟤가 니 심부름꾼이여확 갈아 마셔 버릴라?”

태유는 아침부터 허보를 사정없이 때렸다그 정도가 심해서 교실에 있는 아이들이 말렸다그제야 멈춘 태유는 화가 진정이 안 되는지교실 밖으로 나가버렸다누군가에게 한 번도 맞아 본적이 없던 허보는 이틀 연속으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그날 이후로 허보는 태유의 눈치를 보며 학교를 다녔다처음에는 2인자가 되려고 했지만태유는 친구끼리 그런 게 무슨 이유가 있냐면서 서열놀이를 금지 시켰다허보는 답답했다자신이 권력을 휘두르고 힘이 있다는 것을 자랑해야 하는데그러지 못해서 짜증이 났다가끔 아이들이 자신들과 동급 취급 할 때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급기야 태유는 허보에게 머리가 크다면서 허두보라든지, ‘허대두라든지 듣기 싫은 별명으로 부르는데바보취급 당하는 것 같아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그러나 대들기라도 하면언제든 태유의 더러운 성격 때문에 늘 맞는 일이 일상 다반사였다이상하게 태유만 보면 전갈의 독에 찔린 것처럼 마비가 되는 것 같다녀석의 눈빛만 보면 무서워서 몸이 움츠려 든다사실 힘으로 보나덩치로 보나 허보가 꿀리지 않을 법한데 말이다하지만 가끔 태유의 잃을 것 없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 소름이 돋는다.

어느 때부터 허보는 동네북이 되었다반 아이들이 태유처럼 허보를 허두보라든지, ‘허대두라고 놀리고 다녔고,역시나 태유의 눈치 때문에 그걸 듣고도 가만히 있었다계속 그렇게 학교를 다니다 보니허보는 정말 바보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반 아이들이 실수만 하면 허보에게 탓을 하기도 하고 짓궂은 장난도 서슴없이 했다한때 폭군으로 불리던 녀석이었는데 단 3개월 만에 동네바보가 되었다예전에 휘두르던 권력은 진상 짓이 되어 비난을 받았다.

문제는 순식간에 동네바보가 된 아들을 본 엄마의 마음이었다학교를 주름잡던 아들이 언제부터인가 기도 못 펴고 다니는 걸 보니 마음이 쓰렸다돈이 있는데 가오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허보의 엄마는 무슨 일이 있냐며 꼬치꼬치 캐물었다결국 허보는 서러운 마음에 모든 걸 말해버렸다태유라는 녀석 때문에 학교생활이 꼬여버렸고이제는 모두가 자신을 우습게 본다며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허보의 엄마는 화가 났다.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인지 알고나 너를 때린 거야집안 어르신이 전두환 대통령을 모시던 하나회 출신인데,그딴 놈이 감히 우리 아들을 때려세상 참 많이 좋아졌네?” 

일부 못된 녀석들은 호보가 달리기가 느리단 걸 알고 뒤통수를 때리고 도망치거나허보가 아끼던 물건을 가져가 버렸다억울했다이제는 더 이상 잘못한 것이 없는데 이런 취급 받고는 살 수 없었다그런데 바로 그때분노로 가득 찬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태유였다허보는 자신에게 또 화를 내는 줄 알고 긴장했다그러나 태유는 허보를 괴롭히던 녀석들에게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야이 시펄느그들 어째 그럴 수가 있냐그렇게 비겁한 새끼냐당장 안와시펄 안 오냐고?” 

태유의 눈빛이 변하자녀석들이 냉큼 달려왔다당장 허보에게 사과하라고 쏘아대자녀석들은 미안하다고 했다태유는 그런 비겁한 것 못 본다며 한번만 더 허보를 우습게보면 가만 안 둔다고 당부를 했다허보는 태유의 그런 모습에 마음이 눈 녹듯 녹았다이상하게 태유가 그날따라 크게 보였다태유는 그러거나말거나 자신만큼은 허보를 놀려댔다둘은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무지막지하게 빠르게 흘렀다어느 덧 2018년 1월 1새해를 맞이했다서른세 살이 된 허보는 엄마와 통화를 하고 있다.

“20년간 전국곳곳을 돌며 도를 닦은 용한 보살님이 내일 우리 절에 온단다내일 너 운세 좀 보러가자.” 

워낙 사주 보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용하다는 보살이라기에 안 갈 이유가 없었다. 

다음 날서둘러 엄마를 모시고 약속 시간에 맞추어 보살님을 만나러 갔다보살은 허재의 사주와 손금관상을 차례대로 보더니 뭔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기허보씨... 자네는 원래라면 고향에서 정치를 할 팔자요전형적인 대장이 될 운명인데어쩌다 기가 막히고팔자에 마가 끼었을까이는 필시 자네가 천적을 만났다나는 거요하필이면 저팔계가 손오공을 만난 팔자라오저팔계가 손오공만 만나지 않으면 두려울 것이 없는 존재이지만손오공을 만나는 순간 밥이 되거든... 쯧쯧...” 

 

천적 2부에서 계속


PS : 제가 적은 글을 다시 손 봤습니다. https://britg.kr/novel-group/novel-posts/?novel_post_id=46392 링크를 타고 오시면 모두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끝나지 않는 지배'도 개정 중이니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자주 찾아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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