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ch] 비오는 날의 방문자

금산스님 작성일 19.05.03 11:3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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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할아버지에게 들은 무섭지는 않지만 기이한 이야기다.

시기는 6월 말에서 7월 초쯤

아직 나와 형이 태어나기 전 일이라고 한다.

 


장마가 온 터라,

그날은 아침부터 억수같이 비가 쏟아졌다고 한다.

 


농사일도 못 나갈 지경이라,

할아버지는 대낮부터 화로 옆에 앉아 술을 홀짝이고 있었단다.

따로 뭘 할 것도 없고 담배나 태울 뿐..

 


점심은 진작에 먹었지만 저녁까지는 아직 시간도 꽤 남은 터였다.

자연히 술이 당길 수밖에 없지만, 술병에 남은 게 별로 없었더란다.

 


사둔 술도 없기에 이걸 다 마시면 사러 나가야 할 터였다.

하지만 이 쏟아지는 빗속으로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할아버지는 시간을 안주 삼아 천천히 한 잔씩 기울였다고 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술기운이 슬슬 돌아 잠시 누울까 싶던 무렵,

갑자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쾅쾅쾅!]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 날 누가 찾아왔나 싶었다.

 


[누구야?]라고 물었다.

그러자 문 두드리는 소리는 뚝 그치고, 빗소리만 들리더란다.

문을 열고 누가 들어오는 기척도 없었다.

 


뭔가 싶어 당황해하고 있자,

잠시 있다가 또 [쾅쾅쾅!]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나가기도 귀찮아서, 안쪽 방에 있을 할머니를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잘 들리지가 않는지 대답이 없었다.

 


[이봐, 할멈.] 하고 불러봐도 대답이 없다.

그 사이에도 문 두드리는 소리는 이어지고 있었다.

 


이대로는 잠도 못 자겠다 싶어,

할아버지는 떨떠름한 기분으로 현관에 나섰다.

 


약간 비틀거리면서도 현관까지 나온 할아버지는,

샌들을 신고 [쾅쾅쾅!] 소리가 나는 문에 손을 댔다.

 


[그렇게 세게 두드리면 문 다 부서지겠다.] 하고

문 너머 상대를 질책하며, 단숨에 문을 열었다.

 


[..어?]

문밖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바로 전까지 그렇게 문을 두드려댔는데,

정작 열어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런 바보 같은 일이 있을 리 없다 생각한 할아버지는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주위를 둘러봤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다만 처마 밑에는 무언가가 있었다는 듯,

문 앞이 흠뻑 젖어 있었다.

 


별다른 일도 없었기에 할아버지는 문을 닫고 화로 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천천히 누웠다.

 


그러자 또 [쾅쾅쾅!] 하고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다시 현관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역시 아무도 없다.

이번에는 바깥까지 나가 살폈지만 마찬가지다.

다만 처마 밑에 있는 젖은 흔적이 아까보다 더 커진 듯했다.

 


할아버지는 그것을 잠시 바라보며 생각하다,

현관 앞에 있는 우산을 처마 끝에 살짝 기대어 세워두었다.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다시금 할아버지는 화로 곁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또 [쾅쾅쾅!] 하고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

 


[거기 우산 있으니까 마음대로 가져가라고!]

할아버지는 큰소리로 외쳤다고 한다.

그러자 문 두드리는 소리는 뚝 그쳤다.

 


할아버지는 귀찮다 싶으면서도,

다시 한번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열고 밖을 보았다.

처마 끝에 기대어 뒀던 우산이 사라져 있었다.

 


할아버지가 앓는 소리를 내며 화로 곁으로 돌아오자,

할머니가 나와있었다.

 


[어디 있던 게야?] 하고 묻자,

[방안에 있었는데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아무래도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할아버지 목소리가,

할머니에게는 하나도 안 들렸던 모양이다.

 


[누가 왔었어요?] 하는 할머니의 물음에,

할아버지는 대답했다.

 


[뭐가 왔나 봐. 하도 문을 두드리길래 우산을 줘버렸지 뭐요.]

할머니는 멍하니 있다가, [새 우산을 사야겠구먼.] 하고 한 마디 했다고 한다.

 


며칠 뒤, 장마가 그치고 맑은 날이 며칠 이어졌다.

산에 일을 나갔던 할아버지는 생각지도 못한 물건을 발견했다.

큰 나뭇가지에, 우산이 펼쳐진 채로 걸려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누가 우산을 저런 데다 놨나 하고 그냥 지나갔지만,

계속 걸어가는데 보이는 나무마다 우산이 달려 있는 게 아닌가.

 


이상하다 싶어 우산을 내려보니,

비가 쏟아지던 날 기대어 뒀던 우리 집 우산이었다고 한다.

 


어쩌면 가져갔던 놈이 갚으러 온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할아버지는

우산을 다시 나무 위에 올려뒀다.

 


[이놈아, 너한테 준거야! 가져도 되니까 다시 가져가!]

큰소리로 외치고 다시 가던 길을 갔다고 한다.

그러자 그 후로는 나무 위에 우산이 보이지 않더란다.

 


나는 [뭐 다른 답례 같은 건 없었어?] 하고 물어봤지만,

할아버지는 잠시 생각하고는 [그런 거 없지 뭐냐.]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뭐, 돌려주러 돌아온 건 가상하구나.] 하고, 쓴웃음을 보이셨다.

 


출처: VK's Epita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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