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그날의 괴담 下

은기에 작성일 19.05.26 08: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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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학교 분위기는 뭐https://youtu.be/Omc9UHQgqzo가 달라도 달랐다. 정말 소문의 괴담이 실화가 아닐까 할 정도로 등골이 오싹해졌다. 아마 상훈이가 혼자서 학교에 가지 못한 이유 이 더러운 느낌 때문은 아니었을까. 


학교의 정문은 생각보다 쉽게 열렸다. 단순히 문고리쇠만 위로 올리면 되는거여서 큰 난관에 부딪히진 않았다. 

터덜. 터덜. 밤공기를 타고 퍼지는 우리들의 발소리가 유난히 크다.

“야. 몇시야?”
“11시.”

아직 1시간의 여유가 있는 셈이다. 우린 느릿하게 운동장 쪽으로 걸어가며 다음 행동을 정하기로 했다. 앞으로 1시간 여유가 있으니.. 

“야 우리 진실 게임 할까?”

잘 걷고 있던 창수가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우린 말 없이 녀석을 바라보았다. 창수는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우리들에게 다가와 어깨동무를 하며 웃었다.

“상훈이 전에 그 애랑은 잘되가냐?”

그 말에 상훈이는 정색 하며 창수를 밀쳤다.

“그 얘기가 왜 나와?”
“어? 잘 안됐어?”
“....”

상훈이는 맥 빠진 얼굴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그 애라니?’

상훈이에겐 들리지 않게 최대한 조심스레 창수에게 물었다. 창수는 대답 대신 새끼 손가락을 내보이며 상훈이를 가리켰다. 상훈이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나? 하긴.. 티를 내지 않는 놈이라.

그렇게 무료한 시간을 죽여가고 있을 때 상훈이가 돌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뭔가 떠오른 듯 멍청한 얼굴로 입을 벌리고 있는 놈을 보며 나와 창수는 고개를 갸웃거려야만 했다. 곧 우리에게 다가온 상훈이는 다급한 얼굴로 말했다.

“그 생각을 못했다! 분명 학교 입구들이 다 막혀 있을거란 말이야. 교실로 들어가려면 지금부터라도 통로를 찾아둬야 해.”
“어..?”
“선생님들이 퇴근하면서 문을 다 잠갔을거라고.”

창수는 어이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아 정말. 그 정도는 네가 체크했어야지. 평소 준비성 철저한건 어디다 팔아먹었대.”

그 말에 할 말이 없는 듯 상훈이는 ‘미안하다.’ 라고 말하며 본관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놈을 보며 남겨진 우리들도 남겨진 선택지는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는 천천히 상훈이를 따랐다. 

운동장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사열대를 지나 학교를 상징하는 조형물들을 지나고 잘 가꾸어진 풀과 이름 모를 묘목들을 지나니 본관에 멈춰 있는 상훈이가 보였다. 

“이거 비밀번호 모르냐?”

상훈이는 숫자형 자물쇠와 사투중이었다. 4개루 이루어진 랜덤한 숫자. 그 패턴을 지금 단기간에 깨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니, 이건 미련한 짓이다. 

“그냥 가자. 내일 오면 되잖아. 비밀번호는 네가 알아서 알아오고.”

낑낑대는 상훈이에게 창수가 말했지만 놈은 듣는척도 안했다. 아쉬운 것이다. 여기까지 많은 기대를 안고 왔을 것이다. 이 날을 위해 많은 공부를 했다고 하니까. 

묵묵히 자물쇠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상훈이를 보며 우린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을 상훈이를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벅.. 저벅. 저벅.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유심히 귀를 기울이며 정신을 집중하자 학교 내부에서 들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상훈이 역시 그 소리를 들었는지 손에 쥐고 있던 자물쇠를 놓고는 우리들을 보며 턱짓을 했다. 

현관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피신한 우리들은 작게 속삭였다.

“야. 이것도 그 미신에 일종이냐?”
“아니야. 이런건 없었어.”
“그럼 뭐야.”

그렇게 작은 실랑이를 하고 있을 때, 중앙 복도 쪽으로 환한 불빛이 보였다. 곧 느릿하게 다가오는 걸음을 보아하니 수위 아저씨가 분명해 보였다. 아저씨를 불빛을 이리저리 비춰보더니 살짝 벌려져 있는 문틈으로 손을 빼내 자물쇠를 간단히 풀고서는 밖으로 나왔다. 다시 자물쇠를 잠군 아저씨는 문의 상태를 대강 훑어 보고는 운동장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퇴근하시나?”
“그런가본데.”

아저씨의 모습이 어둠 속에 완전히 먹혀지는 것을 확인한 우리들은 조심스레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상훈이는 자물쇠를 조심스레 집어 들고서는 골몰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분명 이 하나만 바꿨을텐데.. 애매하단 말야.”

그렇게 말하는 상훈이를 보던 창수가 던지듯이 말했다.

“그냥 하나씩 위아래로 돌리면서 맞춰. 뭘 고민하냐.”
“..어?”

그 방법은 미처 생각지 못했는지 상훈이가 세상 의외라는 얼굴로 창수를 보며 감탄했다.

“역시 생각이 짧은 놈은..”
“뒤진다. 진짜.”

상훈이는 웃으며 고맙다고 말했고 곧 이리저리 돌려보던 상훈이는 자물쇠를 풀어내는데 성공했다. 그에 맞춰 시간 역시 11시 57분경이었다. 

“3분 남았어.”

내 말을 시작으로 우린 중앙 현관 쪽에 있는 커다란 거울 쪽으로 뛰어갔다. 다행히 바로 지척에 있어서 늦지 않을 수 있었지만 12시가 되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현상에 우리들은 작은 실망을 했다. 창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가자.’ 라고 말했지만 상훈이는 그 실망감이 매우 컸는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상훈아.”

내 말에도 놈은 들은체 만체했다. 

“그렇게까지 실망할건 없잖아. 어린애도 아니고. 가자.”

하며 놈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데 뭔가 이상한 감각이 들었다. 

“?”

차가운.. 그리고 매우 딱딱한 돌덩이를 만지고 있는 듯한 느낌. 하지만 분명 이건 상훈이가 맞는데.. 순간 소름이 돋아났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내면에 잠재된 뭔가가 당장 이곳에서 벗어나라고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 병신 같은 몸은 뭔가에 얽매이기도라도 하듯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그어어...”

괴상한 소리를 내며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상훈이. 아니, 상훈이라고 부를 수 없는 귀신이 눈에 보였다. 얼굴에 자리잡고 있어야 할 눈코입이 모두 없는 그 귀신은 곧 내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으, 으아.. 으아아아!”

상훈이의 말은 사실이었다. 정말 학교내에 귀신은 존재했다. 서둘러 현관문을 벗어나 정문 쪽으로 달려나가려는 찰나에 창수가 내 앞길을 막았다. 

“어디가?”

하이톤의 목소리로 묻는 창수. 아니, 또 다른 귀신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그 귀신에 얼굴에는 눈코입이 모두 두 개씩이었는데 네 개의 눈동자를 굴리며 나를 쏘아보고 있는 귀신을 도저히 쳐다볼 수가 없었다. 

“흐아.. 흐아아! 시팔. 시파알!”

다리가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급격히 방향을 틀어대는 바람에 바닥에 몸을 구르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순간 온 몸을 강타하는 통증이 감각을 지배하는 듯 했지만 그보다 절박한 상황에 놓인 내 뇌는 서둘러 다리를 움직이게 해주었다. 

“으아아아악!”

할 수 있는 것은 전속력으로 이곳에서 벗어나는 것 뿐이었다. 

“같이가. 같이가아~”

하지만 귀신들의 속도도 무시하지 못했다. 바로 뒤에서 속삭이는 듯 들려오는 귀신들의 목소리가 날 더욱 미치게했다. 왠지 이대로 붙잡히면 영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한발자국. 다음 발자국을 빠르게 뗄 떼에도 귀신들의 소리가 더욱 커져갔다. 

같이가. 같이가. 같이가. 같이가. 같이가. 같이가. 같이가. 같이가. 같이가. 같이가. 같이가. 같이가. 같이가. 같이가. 같이.. 

고막을 긁는듯한 소리에 난 맨 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간신히 마지막 숨을 내쉬며 학교 정문을 빠져나왔을 때 바로 앞에 느껴지는 인기척에 다시 한 번 놀라야했다. 

“허억. 헉!”

헛바람을 들이키며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니 창수와 인한이었다. 

“인한아!”

두 녀석은 약속이라도 한듯 내게 다가와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너 정말 괜찮아? 아무일 없었어?”
“봤지. 귀신 봤지?”

정신없이 물어대는 녀석들에게 난 어떤 말을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아까전만해도 태연하게 같이 가던 놈들이 어째서..

“무.. 무슨 소리야. 니들? 어?”
“미안하다. 미안해.. 나 너무 겁나서 거기까진 못가겠더라.”
“그러니까. 그냥 가자고 했잖아. 네가 괜히 고집 부려갖고..”

두 녀석의 말을 이해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우선은 방망이질 하는 심장과 호흡을 가다듬으며 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상훈아. 네 말 사실이더라.. 그 거울 앞에 귀신들 정말 있었어.”

내 말에 상훈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무슨 소리야? 거울 앞에 귀신들?”
“아까 같이 갔잖아. 근데 니들 언제 도망갔냐? 수위 아저씨 뒤를 따라간거야?”

내 말에 창수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뭔 소리야. 너 혼자 확인하고 오겠다고 해서 들어간거잖아. 우리보고 기다리라며.”
“..어?”
“우리까지 따라오면 방해된다고 여기서 기다리라고 해서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구만..”

그렇게 말하는 두 녀석을 보니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평소 장난기가 많던 창수 녀석이 저런 얼굴로 내게 말하는 것을 보면..

“잘 들어.”

환한 가로등 불빛을 위안삼아 학교내에서 있었던 일들을 두 녀석에게 설명해주었다. 상훈이는 예상대로 귀신이 있다며 아주 흥미로워했고 창수는 그렇지 않았다.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어. 단순히 인한이가 겁에 질려서 헛것을 본걸수도 있잖아.”
“하지만 내 눈으로 똑똑히 봤어. 맨 얼굴의 귀신과 눈코입이 두 개씩 있는 귀신 말이야. 그리고 저기까지 도망쳐 오는데 계속 쫓아오더라니까.”

내 말에 창수는 돌연 웃음을 흘리며 내게 말했다.

“같이가. 이렇게?”

그 말을 듣는 순간 다시 온 몸이 저릿해졌다. 눈 앞에 서있는 창수가 내가 알던 창수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순간 커다랗게 웃기 시작하는 창수를 보며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젠장.. 젠장!”

아직 악몽은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여기서 난 벗어날 수 있을까. 서둘러 다리를 놀리며 도로 쪽으로 이동하니 전에 이용했던 택시가 서있는게 보였다. 더 망설일 것 없이 전속력으로 택시에 탑승하는데 성공한 난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아저씨. 빨리요. 빨리 00동으로 가주세요.”

내 말에 아저씨는 움직이지 않았다. 곧 어깨를 들썩거리기 시작한 아저씨는 낮게 웃기 시작했다. 이럴순 없다. 이럴수는.. 

***

“..생? 인한 학생?”

귀로 들려오는 소음에 눈이 떠진다. 곧 전신에 가해지는 어마어마한 충격에 절로 신음이 새어나왔다. 

“으으.. 으.”

내 신음소리에 누군가가 다급히 움직이는게 들린다. 곧 여러 사람들이 다가와 내게 말을 걸었다. 

“학생 지금 교통사고나서 병원으로 이송된거에요. 정신이 들어요? 알아들을 수 있어요?”

그 말에 난 간신히 고개만 까딱였다. 

“말할 수 있어요?”
“....”
“그럼 고개를 이렇게 하면 아파요?”

곧 가해지는 격통에 신음소리를 내야 했다. 아마 내 몸을 촉진하고 있는 사람은 의사일 것이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왜 내가 여기에 있는거지? 분명히 난 두 녀석과 그 학교에 있었던게 아니었나? 

“치..”
“네?”
“친구..들.”

내 말에 의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답해줬다.

“창수 학생과 상훈 학생은 지금 혼수상태에요. 그 택시 기사분도 그렇고요. 현재 학생만 깨어난 상태에요.”
“..네?”

그럼 지금껏 내가 겪었던 일들은 다 뭐란 말인가. 인한이와 창수는? 그 택시 아저씨마저 모두 어떻게 된거란 말인가. 

“지금은 우선 여러 가지 검사를 할거에요.”

그 말과 동시에 몸이 움직여지는게 느껴졌다. 천장의 불빛들을 보며 살짝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닫혀지는 문틈 사이로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상훈이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으로 상훈이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비통한 얼굴로 서있는게 보였다. 

지금까지 난 대체 어디에 있었던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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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작 [녹색도시] 잘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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