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그날의 미화 中

은기에 작성일 19.05.31 15:3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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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에도 그 아저씨를 볼 수 있었다. 그는 하루 만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예전의 그 불쾌했던 모습 그대로 말이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제 보았던 그 광경은 무엇이며 삽시간에 변한 아저씨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다시 한번 창수 형님에게 여러 가지로 캐물어봤지만 자리를 회피할 뿐 시원한 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럼 내게 남은 것은 아저씨에게 직접 듣는것 뿐인데.. 아주 짧은 만남으로 보건대 아저씨는 절대 내게 마음을 열 것 같지 않았다. 

해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선택지는 단 하나였다. 바로 방송사에 제보하는 것. [매일 탈바꿈 하는 남자.] 로 제보한다면 이슈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게 컨택이 되던지 안되던지간에 다른 누군가가 이 광경을 본다면 나와 같은 심정일 것이리라. 

어김없이 반복되는 패턴 속. 난 몰래 아저씨를 따라가본다. 스윽. 슥. 바닥을 청소하기라도 하는 듯한 그의 왼쪽 바짓단이 전부 닳아 있다. 무리도 아니지 매번 저런 식으로 걸으니.. 

미행은 어렵지 않았다. 매번 마주치기도 했고 그의 두 눈은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쉽게 식별하지 못했다. 설사 한다고 쳐도 난 한낱 미화원이기 때문에 그의 의심을 사진 않았다. 언제쯤 그 발작이 시작되려나.. 초조한 마음으로 아저씨의 뒤를 따르는 것도 잠시.

“그만하지 그래.”

돌연 걸음을 멈춘 아저씨가 나를 보고 있다. 백색의 투명한 막 같은 것이 덮여 있는 눈동자는 나를 향해 있지만 거기에 담겨 있는 혼은 빠져나간 상태 같았다. 

“....”
“자네가 아무리 그래도 난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전 그런게 아닙니다.”

내 말에 아저씨는 고개를 몇 번 흔들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자네 아버지가 아프구만.”
“..예?”
“다리를 심하게 절어.”

족집게처럼 집어내는 아저씨의 말에 난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우연히 때려 맞췄다고 하기엔 너무나 정확했기 때문이다. 

“데려와. 그리고 날 귀찮게 하지마.”

그 말을 남기고서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는 아저씨. 난 그 자리에 남아 그가 한 말을 다시 곱씹었다. 데려오다니? 누굴? 설마 아버지를?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건가? 

쿠당탕. 익숙한 소음 소리. 재빨리 소리가 난 곳으로 뛰어가 스마트폰을 들었다. 곧 발작이 한참 진행중인 아저씨를 화면 내에 담기 시작한다. 이건 내 소중한 제보 자료가 될 것이다. 하나라도 놓쳐서는 안된다. 

“커억.. 컥. 컥!”

몇 분간의 격통 속에서 아저씨는 사지를 격하게 비틀어댔다. 이번에는 조금 심한 발작이다. 설마 이대로 죽는건 아닐까 하고 착각이 일 정도로.. 컥. 커억! 그렇게 몇 분의 발작이 더 이어지고 나서야 아저씨는 다시 일어나고는 흘깃 나를 보고서는 다른 곳으로 걸어가버렸다. 

점차 멀어져가는 아저씨를 보며 입수한 동영상을 확인하기 위해 어플을 실행시켰다. 

“뭐야..”

하지만 그 안에 담긴건 초라해 보이는 바닥만 있을 뿐이었다. 애초에 카메라에는 아무것도 담아내지 못했었다. 아니, 아저씨를 어딘가에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

어제의 일이 확신이 생겼다. 아저씨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가 말한 것에 조금은 신빙성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오늘 휴가를 낸 후 아버지를 당장 모시러 갔다. 아버지는 오랜만에 본 나를 반가워했지만 내심 섭섭해하셨다. 더군다나 나가야 하는 시각이 이른 새벽이라니. 아버지는 여러모로 불평을 토해냈다. 

“이런 날 움직이려면 다리가 저려서 못 나가.”
“아버지 조금만 가면 돼. 좀만 가자. 응?”

겨우 아버지를 달래며 문제의 장소로 도달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곤 아저씨를 찾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아버지와 같이 움직일 수 없기에 적당한 벤치에 앉아 있으라고 한 뒤, 아저씨가 있을 법한 곳을 모조리 돌아다녔다. 

“어? 인한아. 왜 왔어?”

그렇게 얼마 가지 않아 상훈 형님과 마주치게 되었는데 휴가를 간 나 대신 대타로 지역을 맡은 것 같았다. 

“형님 혹시 그 근방에서 이상한 아저씨 못 봤어요?”

적당한 인사치레와 함께 상훈 형님에게 묻자 형님은 ‘어.’ 라고 답하며 손가락으로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저리로 쭉 가더라. 야. 말도마라 사람 몸에서 어쩜 그렇게 냄새가 날 수 있는건지 원..”

인상을 찡그리며 다시 작업을 시작하는 형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서 아저씨가 있는 곳으로 부리나케 뛰어갔다. 곧 얼마 가지 않아 여전히 바닥을 질질 끌고 다니며 담배를 피고 있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허억.. 헉.”

거친 숨을 몰아쉬며 폐와 심장을 진정시키고 있을 때였다. 

“됐어.”

그렇게 말한 아저씨는 미련 없이 다른 곳으로 걸어가버렸다. 그 짧은 말에 묘한 확신이 생기는 것은 왜일까. 다시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가보니 놀랍게도 멀쩡하게 서있는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아버지! 이제 괜찮아?”

내 말에 아버지는 얼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하셨다.

“어? 오늘은 다리가 괜찮다. 이거 왜 이러지? 내가 몇 년만에 이렇게 걸어보는건지 모르겠다. 인한아 종종 이렇게 새벽 산책도 하고 그래야겠다.”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는 아버지를 보며 나까지 흐뭇해졌다. 그 아저씨는 아무래도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

다음날. 아저씨에게 조그만한 성의를 표하기 위해 조금 일찍 거리로 나왔다. 아저씨가 좋아하는 담배를 몇 보루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음~ 음음~”

찬란한 일출이 두 눈을 따갑게 만들며 온 몸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준다. 오늘따라 이 느낌이 너무 좋아 미소가 절로 번진다. 

스윽. 슥. 스으윽.

곧 익숙한 소음 소리가 들려왔다. 서둘러 작업을 마친 뒤 아저씨가 나타날 법한 장소로 가보니 멍한 얼굴로 여기저기 배회하고 있는 아저씨를 볼 수 있었다. 

“선생님. 여기 별거 아니지만 태우세요.”

그에게 나는 악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를 내밀었다. 

“....”

말 없이 담배를 받아든 그는 나를 힐끔 보고는 들릴듯 말듯한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가만.. 이제 보니 아저씨의 안색이 많이 밝아져 있다. 눈동자 색 역시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는 듯 해보였다. 

“오늘은 보기가 좋으시네요.”

그렇게 맘에도 없는 빈말을 하며 돌아서려는데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고맙지.”

그렇게 말하는 연유를 알 수 없었지만 난 그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고서 미화를 시작했다. 적당히 미화를 마친 뒤 작업소로 돌아가니 창수 형님이 나를 반겨주었다. 따스한 믹스 커피를 나눠마시며 아버지와 아저씨에 대해 지나가듯이 말하니 창수 형님은 심각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너.. 그 아저씨한테 다시는 접근하지 마라.”
“예?”
“세상에 공짜는 없어. 인한아. 형 말 듣고 다시는 가지마. 아니다. 아예 작업 장소를 바꿔라.”
“그게 무슨 말이세요?”

내 말에 창수 형님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나도 설명할 수 없어. 하지만 이것만 알아둬. 그 양반과 섞이지 마.”

그렇게 말하는 창수 형님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거기에서 더 반항할 수 없었기에 ‘알겠습니다.’ 라고 말했지만 그 아저씨는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의 다리가 멀쩡해지는데 일조하지 않았는가. 모르긴 몰라도 그 아저씨에겐 뭔가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

다음 날. 배정된 장소가 바뀌는 바람에 아저씨를 보지 못하게 되었다. 기존 출근지와는 완전히 반대편인 곳이라 가기에도 뭐하고 막상 가자니 귀찮아서 여러면으로 미루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될 무렵. 

그 날도 작업소에서 비품을 정리하고 있을 때 우연히 듣게 되었다. 여기 미화반장님과 친하게 지내는 형님의 대화를 말이다. 

“요새 그 00동에서 미화원이 자꾸 바뀐다면서요?”
“너도 그 소문 들었어?”
“예. 요새 그 얘기 때문에 아무도 그곳에서 미화를 안하려고 하잖아요. 대체 뭔일이래요?”
“이건 너만 알고 있어.. 들리는 소문으로는 말야. 그 노숙자 아저씨한테 잘못 걸리면 생기를 다 빨린대.”
“에이. 무슨! 지금이 어느 시댄데.”

생기? 노숙자 아저씨?

“얌마. 진짜야. 엊그제도 내가 아는 동생도 거기서 몇 주 청소하더니 몸져 누웠다니까? 걱정되서 병문안 가보니까 애가 글쎄 얼굴이 반쪽이 되었어.”
“진짜에요?”
“그렇다니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는데 무슨 소원을 빌었다나 뭐라나.”

소원을 빌었다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난 둘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 

“반장님 그말 사실이에요?”

내 말에 반장은 난처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거짓말을 못하는 반장이 가끔식 보이는 긍정의 표시다. 소원을 비는 사람의 생기가 빠진다.. 문득 집에 계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그 날 다리가 멀쩡해져서 아이처럼 기뻐하던 아버지가 말이다. 

서둘러 차에 올라 집으로 향했다. 조마조마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쯤 아버지는 상태가 좋지 않은 상태일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럼 되돌릴 방법이 있는건가? 다시 그 아저씨에게 다가가 원래대로 되돌려 달라고애원해야 하는건가? 

부우웅-

다행히 새벽 무렵이어서 앞길을 막는 차들이 없다. 초조해지는 마음을 애써 달래며 악셀을 더 강하게 밟는다. 제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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