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괴담] 빡빡산의 귀신

금산스님 작성일 19.10.11 09:5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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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중학교 때 일이니 90년대 후반이겠군요.

당시 저는 의정부 가능동에 살았습니다.

 


평안운수라는 버스회사 뒤쪽에 살았는데,

외삼촌댁도 그 근처여서 주말이면 초등학생이던 사촌동생과 어울려 놀았습니다.

 


외삼촌댁에는 조그만 산이 있었는데 사실 산이라기보단

돌, 모래, 잡풀들 그리고 나무 몇 그루로 된 조그만 언덕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곳을 "빡빡산"이라고 부르며

메뚜기, 잠자리도 잡고, 모래썰매도 타며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일종의 자연 놀이터인 셈이었죠.

 


빡빡산을 기준으로 오른쪽엔 외삼촌댁이 있는 주거지역이 있었고,

왼편은 숲이 우거진 산이었습니다.

 


그리고 숲이 우거진 산과 빡빡산 사이에는

동네 주민들이 가꿔놓은 텃밭들이 크게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사슴벌레 잡으러 갈 때면,

텃밭을 5분 정도 가로질러 숲까지 걸어가곤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그렇죠.

무언가에 푹 빠져있다가도 금세 다른 곳으로 관심이 넘어가잖아요.

 


당시 팽이치기가 한참 유행하기 시작하여

한동안 빡빡산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놀러 나가려는데

어머니께서 저녁은 외삼촌댁에서 먹을 거니까 놀다가 그리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점점 날이 어두워지자,

저는 친구들과 다음날을 기약하며 외삼촌댁에 갔습니다.

 


어머니와 외숙모께서는 식사 준비 중이셨습니다.

아버지와 외삼촌이 퇴근해 집에 오실 때까지

밖에서 놀다 와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사촌동생과 밖으로 나섰습니다.

 


동생이 스케이트보드를 샀다길래

언덕에서 타보자는 생각에 오랜만에 빡빡산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찾은 빡빡산은

더 이상 제가 알던 그곳이 아니었습니다.

 


도로를 내기위해 언덕을 허물어

아스팔트로 덮인 오르막길이 되어있었습니다.

 


언덕 중간까지 아스팔트가 깔려있었고 언덕 위에서 보니

길 나머지는 숲이 우거진 산을 왼쪽으로 감싸듯 비포장으로 이어져있었습니다.

 


저는 놀이터가 사라진 것보다,

스케이트보드를 더 재밌게 탈 수 있겠다는 생각에 들떠있었습니다.

 


아스팔트길까지 올라간 저희는 보드 위에 앉아서

내리막을 내려가는 시시한 놀이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곧 날도 어둑해지고 생각보다 아픈 엉덩이에

동생과 두어 번만 더 타고 집에 가자는 얘기를 하며 다시 언덕길을 올라갔습니다.

 


우리가 서있는 곳을 기준으로 앞은 정돈된 포장도로가

뒤는 몇 걸음 앞도 보이지 않는 비포장도로가 펼쳐져 있었죠.

 


사건은 여기서 일어났습니다.

포장도로로 스케이트보드 타고 내려가는 중간에 앞을 보니,

하얀색 옷을 입은 누군가가 우리가 올라왔던 언덕길을 올라오는 게 보였습니다.

 


우리는 그 누군가를 스쳐 지나갔고

내리막 막바지에 멈춰 섰습니다.

 


사촌동생은 또 타자며 언덕으로 다시 뛰어 올라갔고,

저도 보드를 들고 동생을 따라갔습니다.

 


올라가면서 중간에 스쳐 지나간 사람이 보였습니다.

하얀색 블라우스에 하얀색 긴 치마가 땅에 닿을 듯 말 듯..

 


고개를 푹 숙여 늘어뜨린 긴 머리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아줌마나 할머니가 아닌 누나의 느낌이 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얀 옷은 저물어가는 해 때문인지 푸르스름한 빛이 나는 것처럼 새하얬습니다.

그 누나는 터벅터벅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전 그 누나를 지나 언덕에서 사촌동생과 다시 보드에 앉았습니다.

 


[저 누나 뭐지?]

[몰라. 형, 얼른 출발하자.]

 


우리는 또 그 하얀 누나를 스쳐 지나갔고,

내리막 끝에서 동생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타자고 졸랐습니다.

 


언덕길을 다시 올라가는 중에 다시 옆을 지나갔지만,

그 누나는 아까처럼 고개를 숙이고 언덕길을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사촌동생도 뭔가 부자연스러움을 느꼈는지,

[형, 진짜 이거만 타고 얼른 집에 가자..]라고 하더군요.

 


다시금 언덕길을 내려가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덕 오르막길 끝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숲으로 갈 이유가 없을 텐데..

 


쭈뼛쭈뼛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아,

언덕 중간에서 보드를 멈추고 언덕 오르막길을 올려다봤습니다.

 


그런데 언덕길에 하얀 옷을 입은 누나는 없었습니다.

우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왼쪽을 돌아보았습니다.

 


텃밭 너머 수풀 사이 중간 나무에,

그 누나가 두 손을 나무에 기댄 채

고개만 오른쪽으로 돌려 우리를 보고 있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텃밭의 거리가 멀어 이목구비가 잘 보이지 않았는데도 시선이 느껴졌으니까요.

 


우리는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다,

제가 먼저 도망갔습니다.

 


언덕 내리막길을 내려와 한숨을 돌릴 때쯤

사촌동생이 같이 가자며 눈물범벅으로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조금 진정이 되자 내리막길 도랑에 빠진 스케이트보드를 찾으러

다시 올라갔지만 그곳에는 이미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출처: VK's Epita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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