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괴담] 제사상과 두부

금산스님 작성일 19.10.17 09: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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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서 가족끼리 치킨을 뜯으면서 티비를 보고 있었는데,

모 미식 프로그램에서 두부가 나왔습니다.

 


가마솥에 두부를 끓이는 것을 보며 어머니께서

저희 외갓집은 제사상에 두부를 내놓지 않는다고 하시더라고요.

 


두부구이를 제사상에 내놓는 것이

드물거나 유별난 일도 아니기 때문에

무언가 이유가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옛날, 다들 집에서 가마솥으로 밥을 하던 시절에는

두부도 집에서 해서 먹었다고 합니다.

 


과학시간에 두부를 만들어보신 분이라면 알겠지만,

두부는 재료도 많이 들어가고 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일손이 모이는 명절날, 그것도 돈 좀 있는 양반집이나 먹었다고 합니다.

 


옛날의 한 명절,

새 며느리가 부엌에서 두부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두부는 제조 공정상 끓이면서 계속 저어주어야 하기 때문에,

며느리는 가마솥에 불을 때우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나무주걱으로 갈아내서 걸러낸 콩물을 열심히 저었습니다.

 


이 며느리는 집안의 첫 손주를 낳은 며느리였습니다.

아이를 낳고 몸조리 기간 동안 쉬다가 손이 필요한 명절이라

젖먹이를 포대로 업은 상태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주방에 들어간 것입니다.

 


가마솥을 실제로 써보신 분이라면 알겠지만

이게 굉장히 깊고 큰 데다 높이가 주방 일을 하기에 굉장히 비효율적입니다.

 


불은 앉아서 때야 하고, 솥 안을 보려면 허리를 숙여야 하는 높이지요.

요즘 인테리어로 보면 인체공학에는 영 꽝입니다.

 


돈 많은 양반집이라 식구가 많으니 먹는 양은 또 오죽하겠습니까.

게다가 옛날에는 한 번 만들면 옆집에도 주고 그랬잖아요.

 


거기에 관리가 된 양반은 백성들에게 항상 은덕을 베풀어야 하니,

양반이 한 번 일을 벌이면 마을 사람들은 귀한 음식을 먹을 기회가 생기는 것입니다.

 


대대로 무관에 급제하던 집안이었기 때문에,

유서 깊은 집안의 며느리는 당연히 가마솥 가득 콩물을 끓였답니다.


 

군대에서 삽질 좀 했던 분들은 아마 아실 겁니다.

아니 삽질까지 갈 필요도 없나요.

 


고추장이나 된장을 담가보거나 취사병 일하시는 걸 보신 분들은

큰 솥에 쓰던 나무주걱이 굉장히 크다는 걸 아실 겁니다.

 


삽만큼 큰 나무주걱을 온몸으로 젓다 보면 허리가 아프기 마련입니다.

거기에 가득 콩물을 담았으니 힘들기는 또 엄청 힘들겠죠.

 


출렁거리는 콩물을 젓다가 겨우 한숨 내쉬며,

며느리는 콩물이 얼마나 끓었나 보려 몸을 좀 더 숙였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등에 업혀있던 젖먹이가 가마솥 안에 풍덩 빠졌습니다. 

펄펄 끓던 가마솥에 통으로 빠졌으니 그 고통이 오죽했을까요.

채 돌도 지나지 못한 아이는 온몸이 익어서 죽어버렸습니다.


 

집안의 첫 손주였으니 그 슬픔은 더했습니다.

갑작스러운 갓난 손주의 죽음에 즐거워야 하는 명절을 비탄과 절망 속에서 보냈고,

당시 집안 어른이셨던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나 죽고 나서는 제사상에 두부를 올리지 말거라.]

외갓집에서 4, 5대 전에 일어났던 실화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외갓집은 제사상에 두부가 올라오지 않는다고 하네요.

 


출처: VK's Epita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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