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그날의 손님 下

은기에 작성일 19.07.04 18:3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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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수형과 서둘러 이동한다. 얼마가지 않아 남자가 사라진 골목길에 멈춘 난 뭔가에 가로막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

온 몸을 옥죄어 오는 듯한 꺼림칙한 이 기분. 이건 비단 나만이 느끼는 것이 아닐 것이다. 왜 그렇게 느꼈냐하면 바로 옆 창수 형도 나처럼 굳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솨아아- 어두운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걸목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요상하게 그지 없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뭔가가 있는 듯한 이 기분. 

“형. 돌아가요.”

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창수 형은 그렇지 않은 듯 했다. 저벅. 저벅. 천천히 발을 떼기 시작하는 형을 보며 난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망설여졌다. 이대로 같이 창수 형과 같이 이동하는게 맞는건지 아니면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는게 맞는건지 고민하고 있을 때. 

“형!”

돌연 창수 형의 몸놀림이 빨라졌다. 곧 어둠속으로 삼켜진 형을 보며 난 도저히 따라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여기서 뭐하나.”

곧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 헛바람을 들이키며 옆을 바라보니 무덤덤한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는 남자가 서있었다. 

“저..”

남자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까. 적당한 말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릴 때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 같이 온 그 청년은 어딨어.”
“예?”

그걸 어떻게 안거지? 혹시 따라오면서 뒤를 본건가? 아니면 우리의 미행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나?

“귀 먹었어? 같이 온 청년 어딨냐고.”
“..저기요.”

마지막으로 창수 형이 사라진 곳을 가리키자 남자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가라.”

남자는 그 말과 함께 창수형이 사라진 곳으로 걸어가버렸다. 곧 어둠속으로 사라진 남자를 보며 난 어떠한 것도 물을 수가 없었다. 아니, 따라갈 용기조차 나질 않았다. 

**

정전은 무사히 일단락 되었다. 그 골목길에서 돌아오니 사장님이 난처한 얼굴로 서있다가 나를 보고는 매우 기뻐하는 얼굴로 다가왔다. 

“인한아. 어디갔었어. 걱정했잖아.”

환하게 미소를 짓는 사장님을 보자 그게 가식이란걸 알 수 있었다. 여지껏 일을 하면서 사장님이 웃은걸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 강제적으로 올린 입꼬리. 파르르 떨리는 저 살을 보면 단순한 연기에 지나지 않는..

“오늘은 손님들 다 갔어. 아마 더 오지 않을거 같으니 이만 들어가봐라. 내일 보자.”

사장님도 내심 걱정 했었나보다. 최근들어 동네에 연쇄살인마 효과로 상권들의 밤매출이 줄어들고 있었으니까. 거기다 밤에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이 거의 그만두는 사태가 발생하게 됐다고 한다. 그 중 소수는 여전히 나와 같은 입장이긴 했지만. 

사장님들 입장에서는 애가타고 속이 쓰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마 다른 쪽으로 이들의 원한을 사고 있지는 않을까. 연쇄살인마라는 작자는?

“내일 뵐게요.”

번쩍이는 고급 세단차를 몰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사장을 보며 서둘러 돌아가려는데 뭔가 인기척이 느껴졌다.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창수 형과 그 남자가 걸어오고 있는게 보였다. 

“어? 창수형.”

걱정되는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가 창수 형에게 다가가니 어딘가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서있는게 한눈에 보아도 정상인 상태가 아니었다. 

“이 형.. 왜 이래요?”

내 말에 남자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대신 창수 형을 이끌고 가던 길을 계속 가기 시작했다. 방금전만해도 생기발랄한 창수형은 어디에도 없었다. 뭔가가 분명 잘못된게 틀림 없었다. 아까와 같은 실수를 조금은 만회하고자 내면 속에 있는 용기를 끄집어 내었다.

“잠시만요. 지금 뭐하시는거에요?”

서둘러 남자의 앞길을 막았다. 남자는 귀찮다는 듯 내게 손짓했다.

“이게 어찌된 거냐고요. 해명을 좀 해주세요.”
“내가 한게 아닌데 어떻게 해명을 해?”
“그럼 누가 한건데요?”

내 말에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말해도 넌 몰라.”
“무슨 소리에요. 경찰 불러요?”

그 말에 남자는 혀를 차며 하는 수 없다는 듯 대꾸했다.

“따라와라.”

곧 이동하기 시작하는 남자와 창수 형. 그 보폭이 크고 빨라서 따라가는데 조금 애먹었지만 무리 없이 그들을 따라갈 수 있었다. 그렇게 10분에서 20분. 체감적으로 30분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낄 무렵 인가가 드물어 보이는 빌라단지 내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

한 밤중이라 그런지 빌라단지는 매우 조용한 상태였다. 헌데 뭔가 이상했다.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일반적으로 빌라단지 내에 비치된 쓰레기수거함이라던가 주차장. 또 밤에 거리를 비춰주는 그 흔한 가로등이 하나 없었다. 

“여기 사람 사는데 맞아요?”
“아니.”

그 말이 다였다. 남자는 곧 가까운 빌라로 움직였다. 조심히 그를 따라 이동하니 이층 부근에 활짝 열려진 문을 볼 수 있었다. 

“....”

그 열려진 공간에 흘러나오고 있는 미세한 기운이 느껴졌다. 순간 골목길에서 느꼈었던 그것과 유사한게 아닐까 하고 뒷걸음질쳤지만 곧 느껴지는 따스함에 안도할 수 있었다. 조심히 집안에 발을 들이니 아무 가구도 장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빈집에 남자와 창수 형이 보였다.

환한 촛불들의 사이로 창수 형은 거실 가운데에 누운 상태였는데 그 안색이 매우 창백해보였다. 남자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서는 창수 형의 앞에 앉았다. 곧 고개를 돌린 남자는 내게 물었다.

“너. 이거 다 볼 수 있겠어?”
“그게 무슨 소리에요?”
“이걸 다 보고도 감당할 수 있겠냔 말이야. 이제부터 난 이 놈한테 의식을 할거야.”

의식이라니? 창수 형이 어디가 아픈가?

“이해가 하나도 되지 않는데요. 아니, 애초에 아저씨는 누구고 창수 형은 왜 저런 꼴이에요? 그거나 좀 설명해주세요.”
“설명하면 길어져. 그럼 시간 끌리고 이 놈은 위험해진다. 다 끝난 후에 설명해줄테니까 잠자코 있어라.”

곧 의식을 시작하는 남자를 보며 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말로 중얼거리기 시작한 남자의 몸에서 은은한 빛이 나기 시작했다. 꿈인가 싶어 몇 번이고 눈을 깜빡이고 눈가를 비볐지만 그 빛은 여전했다. 

처음 이 집에 들어올 때도 그랬지만 따스하고 뭔가가 어루만져주는 듯한 이 기운에 마음이 놓였다. 험상궃은 얼굴과는 다르게 남자가 갖고 있고 내뿜고 있는 저 기운은 분명 사람들을 돕는 무언가가 있는게 분명해 보였다. 

“크르르르.”

그렇게 얼마가지 않아 커다란 짐승의 낮은 울음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다시 한 번 그 짐승의 소리가 들렸다.

“캬아아악!”

폐부에 가득 들어차고 귀를 얼얼하게 만드는 그 소리. 그건 창수 형의 몸에서 빠져나온 어둡고 강대한 ‘무언가’ 였다. 모습을 갖고 있진 않았지만 허공에서 꾸물거리며 연신 움직여대는 그것을 보니 소름이 끼쳤다. 

“꺄아아악!”

‘무언가’는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가 워낙에 커서 양귀를 막을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이 듣는 다면 영락없이 여자가 내는 비명소리라고 생각할테지만.. 가만? 그럼 지금껏 내가 들었던 비명소리들은 전부?

“후우..”

무거운 숨을 내쉬며 땀이 범벅이 된 남자는 창수 형에게 다가가 이리저리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곧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남자는 나를 보고서는 말했다.

“앉아.”
“..네.”
“방금 네가 본 건 ‘악’ 이다.”
“악이요?”

남자는 긍정을 표했다.

“사람들 모두가 갖고 있는 거지. 그 악이 커지고 광폭화됨으로서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해를 입힐수가 있다. 최근들어 이 동네에 그런 현상이 잦아져 조사하러 왔다.”
“그게 무슨.. 혹시 그것과 연쇄살인도 관계가 있다는 건가요?”
“그래. 경찰 측에서는 동일범이 저지른 연쇄살인이라고 했지만 실은 범인들이 모두 제각각이다. 그 중에서는 이 광폭화에 전염이 된 사람들이 저지른 돌발살인이라고 할 수 있다. 평소 불만이 많고 부정적인 사람들이라면 거기에 휩쓸리기가 쉽다.”

그 말에 순간 그 골목길에서 느꼈던 음침한 기운이 떠올랐다. 하지만 남자의 말이 사실이라고 단정짓기엔 무리가 있었다.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나? 하지만 이 세상엔 말로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무수히 많다.”
“그럼 왜 저번에 괜찮냐고 물어보신거에요?”
“광폭화에 휩쓸리는 사람들 대다수의 초기증상이 이명을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처음 네 놈을 보는 순간 알았지. 마음 속에 응어리가 아주 많은 놈이라는 것을 말야. 그건 곧 광폭화에 시달릴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 계속 그 피시방에..?”

내 말에 남자는 약간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있지만 나도 사람이라 스트레스를 풀고 싶어서 그랬다. 거기에 네가 우연히 있던거고.”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는거죠? 저나 다른 사람들은요?”
“간단해. 마음의 안식을 찾으면 되는거야.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도록 해라.”
“그런.. 사람들은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아간단 말이에요.”
“네 말대로다. 다만 이번 건은 문제의 그 골목길 때문이었어. 거기에 잠식되어 있는 뭔가가 악의 기운을 크게 깨우며 광폭화를 시키는 것 같다. 아까 그 골목길을 정화시켰으니 괜찮아질거야.”

그렇게 말하며 일어서는 남자를 보니 이제껏 내 눈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남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싸우고 있는 한줄기 빛과 같은 사람이었다. 

“고맙습니다.”

내 말에 남자는 말 없이 집을 나가버렸다. 순간 해가 뜨기 시작했다. 남자가 행했던 의식이 그렇게도 길었었나? 거실을 통해 들어오는 따스한 햇빛을 가만히 보니 창수 형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으..”

인상을 찡그리며 몸을 일으킨 창수 형은 곧 나를 보고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인한아. 왜 여깄냐?”
“아 형..”

난 간밤에 있었던 일을 모두 창수 형에게 설명해주었다. 내 설명을 듣고 있던 창수 형은 ‘남자’ 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내 손을 거칠게 잡아 끈 창수 형은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형! 왜 그래요? 형?”

어제 골목길에 들어갈 때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남자의 정화가 잘못되기라도 한건가? 창수 형이 설마..? 이런저런 생각이 들자 불안감이 전신을 휘감기 시작했다.

“허억.. 헉..”

곧 인가가 많은 곳에 도착한 우리들은 적당한 벤치에 앉았다. 거칠게 숨을 고르던 창수 형이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말했다.

“어제 봤다..”
“뭘요?”
“그 남자 말야.”
“예?”
“마지막에 그 골목길에 어떻게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들어가서 눈을 떠보니까 말야. 그 남자가 나를 데리러 왔더라고 그래서 고맙다고 말하려는데 남자의 모습이..”

아직도 그 장면이 생생한지 창수 형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영락없는 악마였다니까? 날카로운 뿔에 뱀처럼 긴 혀를 날름거리며 나를 보며 웃는데.. 나 거기서 바로 기절한 거 같다.”
“무슨 소리에요. 그 남자가 형을 데리고 와서 이렇게 원래대로 돌려놓은건데.”
“아니야! 네가 속고 있는거야. 분명히 봤다니까? 그건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었어. 괴물!”

아무래도 창수 형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다. 간밤의 후유증이라고 해야하나.. 이대로는 창수 형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일단은 형을 집으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창수 형은 가는 순간까지도 남자에 대해 조심하라고 누차 당부를 했다. 

“하지만 형 제가 봤어요. 그 남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절대 그런게 아니에요.”
“인한아. 네가 몰라서 그래 정말 악마들은 사람들을 홀릴 때 고통을 주지 않아. 오히려 편안함을 줄 수도 있다고.”
“솔직히 어제일도 지금까지의 일도 모두 꿈 같아요. 그러니까 이제 잊고 살아요. 네?”
“네가 당해보지 않아서 그래.. 사람들은 모두 보고싶어하는 것만 본단 말이야.”

그렇게 말한 창수 형은 힘 없이 집으로 들어가버렸다. 마지막 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집으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

오늘도 마찬가지로 아르바이트가 계속 된다.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고서 피시방으로 향하는데 사장님이 입구 쪽에서 서있는게 보였다. 

“어? 사장님.”

내 말에 사장님은 무거운 얼굴로 답했다.

“인한아. 그 창수 어제 못봤어?”
“..창수 형이요?”
“그래.”

심각한 얼굴로 묻는 사장님에게 마지막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끝으로 본적이 없다고 둘러댔다. 물론 남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 창수 녀석이.. 글쎄. 주위 이웃들을 모조리 살해했다.”
“뭐, 뭐요?”

뭔가 잘못돌아가고 있다. 아니면 내 귀가 망가진건가? 

“아무튼 정황히 그렇다. 오늘이나 내일 경찰이 너한테 서로 오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마지막으로 봤던 사람이 너라고 하니까 그냥 솔직하게 말하고 오면 돼. 나참..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지 사람을 죽이긴 왜 죽여?”

그렇게 말하며 사라지는 사장님의 뒷모습을 보니 왠지 모를 허망함이 느껴졌다. 지난 밤 그 남자가 창수 형에게 했던 의식은 대체 뭐였단 말인가? 창수형 말대로 그 남자는 악마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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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작 [녹색도시] 잘 부탁드립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841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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