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군대실화] 육군203특공여단

검선 작성일 13.06.15 22: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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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 날짜가 언제 다 가버리나...하고 하루하루를 심드렁히 보내던 군대말년시절, 

내가 복무하던 부대로 작대기 하나 달랑달고 군복에 다리미줄도 안잡힌 신병들이 전입해 들어왔다. 


나는 어울리지 않지만 행정병이었다. 

부대에 신병들이 들어오면 내가 제일먼저 하는짓은 

우리 중대로 어떤녀석이 들어오는지부터 파악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는 "너희들 특공대에 들어왔으니, 이제 죽었다:"라고 겁주며 

앉아서 이죽거리는게 두번째 였다. 


그런데, 일렬로 서있는 신병들 사이에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는 외모의 인물이 눈에 잡혔다. 

엉거주춤한 자세, 왜소한 체구, 작은머리에 비해 무지 큰 모자를 눌러쓰고 있고, 

까무잡잡한 얼굴에 눈알이 사물에 촛점을 못맞추는듯 자꾸만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커다랗게 튀어나온 앞니에, 다리는 흔히말하는 O자형으로 굽은 오다리였다. 

게다가 팔은 길어서 차렷자세 한가지 조차도 제대로된 폼이 안나오는 엉성한 모습이었다. 


八자로 그어진 두 눈썹은 지나치게 짙었고 그 표정, 

그 모습은 한순간만 본다고 해도 바보를 봤다는 느낌이 팍- 들만한 그런 녀석이었다. 


가끔 안경을 쓴 신병이나 몸이 약하다는 신병이 들어오면 한숨이 절로 나왔었다. 

그래도 그런 경우는 처음엔 못마땅 하다가도 좀 있으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적응시키는게 순리였다. 


하지만 이녀석은 좀 너무했다. 

나는 속으로 도리질을 하고는, 이내 곧 일렬로 서서 겁을 잔뜩 집어먹고 있는 신병들에게 물었다. 

내가 있는 중대에서 한식구가될 신병의 이름을 이미 인사과에서 알아논 상황이었다. 


"○ ○ ○ 이가 누구야?" 



그랬더니, 이 바보녀석이 손을 드는것이었다. 

튀어나온 이빨에 겁을 잔뜩 집어먹은 얼굴에, 

다 쓰러질듯이 처진 얼굴로 팔을 천천히 드는것이었다. 순간 좀....기가 막히고 말았다. 


"관등성명도 안튀어 나오냐?" 


" 이 뼈 엉! ○ ○ ○!" 

그 녀석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정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건 일반인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TV에서나 들어봄직한 개그맨들의 연습에 의해 숙련된 그런 바보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정말 들으면, 그 순간 깜짝 놀라버릴 만큼 바보스러운 억양과 말투였다. 



혹자는 날보고 그래도 사람을 너무 차별하는것이 아니냐고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걸 알아야 한다. 


'멍청하지만 너무나도 성실한 사람'은 군대에게 있어서는 가장 최악의 인간이다. 


군생활을 하다보면 이러한 신병 한명이 단체생활에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거 안당해 본 사람은 모른다. 


우리 중대는 곧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미 모두들 그 녀석이 내무반에서 엉거주춤히 각잡고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골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그 모습만 봐도 앞으로의 군생활이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모습만 봐도 우습기도 했지만, 

그 녀석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바로 윗고참이던 안이병은 얼마나 속이 상했을지 안봐도 뻔하다. 

오랫동안 기다려 비로소 막내에서 벗어나는듯 싶더니 이게무슨 날벼락인가 싶었을 것이다. 

고단한 막내생활을 겪은 이등병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석은 모두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정말 할 줄 아는게 하나도 없었다. 이름도 제대로 쓸줄 몰랐다. 정말 못쓰냐고 물어보면 


" 아.. 아압니다 아!" 


하고 대답하지만 덜덜 손을 떨면서 쓰질 못했다. 

태권도를 가르치다가 하도 열이 받아서 다리나 찢어 놓으라고 했다가 

그 비명소리에 대대장이 놀라 뛰쳐 나왔다. 


늘 언제 넘어질지 모를 정도로 이상한 폼으로 팔을 휘저으며 뛰어다니고, 

한번은 뛰어가다가 나를 만나자 갑자기 멈추며 


" 뜨 껑!(특공)" 


이라고 경례를 붙이다가 자빠져서 부대원들이 파놓은 배수로에 빠지기도 했다. 

놀래서 다가가서 괜찮냐고 물어보니, 


" 괜 찬 씁니 다 아!" 


하면서 그 안에서 버둥버둥 나오질 못했다. 

별로 넓지도 않은 부대 내에서 길을 잃기도 했다. 

취사장에 심부름을 보내면 위병소로 가서 취사병의 이름을 댄 적도 있다. 


우리중대 에서는 그저 잔심부름이나 시킬 요량으로 그 녀석을 데리고 있었지만 

그 녀석은 심부름조차도 제대로 못했고, 그렇다고 결코 혼자 놔둘수도 없는 녀석이었다. 

그 녀석은 금새 요주의 인물이 되어버렸다. 어떻게 군대를 올 수 있었는지 의심스러웠다. 

그 녀석의 바로 윗고참인 일병을 눈앞에 둔 안이병은 나름대로 무지 속상했나보다. 쫄따구 들어오면 정말 잘해주고 싶었단다. 속상하겠지...하하...나는 말년병장이라 별 상관이 없었지만...(이기적이다.) 


한번은 우연히 그 녀석이 옷을 갈아입는 걸 본적이 있다. 깡마른 몸에 매우 엉성한 골격이었다. 

갈비뼈가 빨래판처럼 보였고 거기에 배가 볼록 튀어 나와있고, 거기에 배꼽이 톡- 튀어나와 있었다. 

지나가다가 그걸보고 장난기가 심한 내가 손가락을 배꼽부근으로 가져가며 


"야, 이게 배꼽이야아?!" 


했었드랬다. 보통은 그 장난에 움츠리며 헤죽- 웃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녀석은 배꼽을 퉁겨도 가만히 차렷자세를 한 채 그걸 보고 있는거다. 

얼굴을 보니 고개를 숙인채로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아무생각없이 장난을 친 나는 후회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그녀석에게 그런 장난은 치질 않았다. 


그 녀석은 얼마 후 간부회의를 통해 군 정신병원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얼마 후 군복차림의 누군가가 그녀석의 면회를 왔다. 모 부대의 상사였다. 

그 녀석의 작은아버지라고 했다. 

그 녀석은 부모님이 안계시다고 한것 같다. 

그 작은아버지 라는 분은 '예전엔 그렇지 않았는데...아마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터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들은 이야기로는 그리 왕래가 잦은 친척관계가 아니었던 같다는 말이었다. 

그 녀석이 그렇게 정신병원으로 보내어진지 일개월쯤 되었을때, 나는 제대를 얼마 안남기고 있었다. 


그리고....또 얼마 후...... 


부대원들이 조금씩 그 녀석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을즈음... 

그리고 그 녀석은 퇴원해서 다시 부대로 복귀했다. 조금 나아졌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긴 했지만, 

군 정신병원은 치료와는 별 상관이 없다는걸 아는터였다.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뜩 껑!" 


이 녀석의 경례소리는 여전했다. 그래도 오래간만 인지라 내가 어깨를 툭치며 말을 건넸다. 


"잘지냈냐? 아픈덴 없고?" 



" 네 에 그러 씁 니다아! 저 희는 정신 뼝동 이라서 말입 니 다, 아, 아 픈 데는 없 씁 니 다!" 



".......-_-;:" 


그렇게 그 녀석이 부대로 돌아온 뒤 그 녀석은 한동안 부대생활을 더했다. 

나아진게 하나도 없었다. 그런 바보스런 행동과 더불어 이번엔 가끔 구토증세까지 일으켰다. 


그 녀석은 아무리 멀리서 보아도 그 녀석임을 알수 있는 독특한 모양새가 있었다. 


한번은 멀치감치에서 보니 웬 바위옆에서 구부정한 차렷자세로 서있는거다. 

가까이 걸어가면서 눈길을 떼지 않았는데 미세하게 몸을 앞뒤로 움직이는게 느껴졌다. 

그러더니 픽- 고꾸라지는 것이었다. 


얼른 가보니 이 녀석은 선임병이 기다리라고 해서 이곳에 서 있었고, 기다리다가 졸았다고 한다...-_-;; 


그리고는 또 구토를 했다. 


며칠 후, 상급부대에 올린 그녀석에 대한 내용이 수렴되어 이 녀석의 조기 제대가 결정이 되었다. 

내가 보아도 이녀석은 군대에 더 있어선 안되는 불쌍한 놈이었다. 

졸지에 그놈은 나보다도 먼제 제대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생활했던 중대의 막사는 꽤 오래전에 지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부대 철조망 부근의 외진곳에 재래식화장실이 있었다. 꽤 큰 푸세식 화장실이었다. 

막사를 헐고 새로 지으면서 중대원들은 임시거처로 옮겨갔고, 


부대원들은 그 외진 화장실은 쓰질 않았다. 그러다보니 밤엔 백열등이 하나 있긴 있었는데, 그마저도 없어졌다. 


그리고 쓰질 않는 화장실이기에 한개 달랑 달린 전등의 백열전구도 갈아주질 않았다. 

부대원들은 낮에나 지나가다 잠깐 그 화장실을 쓸 뿐이지 밤에는 가질 않았다. 

멀기도 하거니와 밤 속에서의 화장실 내에서는 앞이 하나도 안보이는 데다가, 

불이 켜져있어도 음산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화장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군시절에 밤에 야근을 많이했다. 

늘 밤늦도록 또는 새벽까지 일을 했고, 내가 일하고 있는 곳과 그 화장실은 비교적 가까운곳에 있었다. 

소변은 아무데서나(?) 가능하지만 큰일을 치루려면 어쩔 수 없이 

더듬거리며 들어가서 그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다. 

일부러 멀리있는 화장실을 가는건 나는 귀찮았기 때문이다. 

다른 부대원들은 오싹하다며 사용하길 싫어했다. 가끔 쥐들이 밑에서 이상한 소리도 내고, 

밤에는 너무나도 고요하기 때문이다. 

밤에는 거의 나만 사용했던것 같다. 



그 날도 밤에 일을하다가 뒤가 마려워 라이터를 찰칵찰칵 불꽃만 튀기면 잠깐씩 눈에 비치는 


화장실의 구조를 보며 더듬더듬 그 곳에 들어갔다. 

발을 더듬거리다가 안전한곳에 두발을 디디고(안보이기 때문에 잘못하면 빠진다.-_-;;) 


자세를 잡고 온전히 일을 치루기 시작했다. 그리고....한 이분쯤 지났을까.....? 

저벅저벅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한사람의 발소리가 아닌듯 했다. 


그리고는, 


"들어와!" 


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나는 순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안이병이었다. 

나는 장난이 심한편이다, 깜짝놀라게 해주고 싶었다. 


이 새까만 칠흙같이 어두운 화장실에 누가 있으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화들짝 놀랄게 분명했다. 그러나.... 곧 대화가 나오기 시작했다. 


"야, ○○○!" 


" 이 뼝! ○ ○ ○ ! " 


대답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그 바보녀석 이었다. 

나는 부대에서 유일하다시피 하게 그 바보를 갈구는 사람이 

바로 안이병 이라는것을 알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안이병은 나름대로 군생활에 잘 적응하는 똑똑한 친구였다. 

자기의 할일도 나름대로 잘해내며 고참들과의 관계도 원만한 그런 친구였다. 


그런데 그런 안이병이 이 바보녀석을 데리고 이 아무도 없는 어두운 화장실로 들어온 것은 


군기를 잡기 위해서 일게 뻔했다. 사실 이런 상황은 고참들이라고 해도 못본척 하고 만다. 

그런것을 어느정도는 묵인을 해줘야 내무반 이라는것이 제대로 돌아간다는 그 순리를 고참일수록 

잘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나는 닳고 닳은 말년병장 아닌가. 이해했다... 


안이병이 말을 이었다. 


"네가 며칠있으면 제대한다는것도 알아. 그래도 지킬껀 지키는거야 알아?!" 


" 네.... 에!" 


앞이 보이지도 않는 어두운 화장실에서, 그런 목소리들만 울렸다. 

그런식으로 안이병의 이런저런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바보는 흉내도 내지못할 말투로 어벙벙히 대답을 했고, 


" 씨 졍 하게 씁 니 다!" 


라고 외치면서 나름대로의 군대용어(?)를 사용하는대답도 하고 있었다. 

이런것도 했다 차렷,열중쉬엇,차렷......열차,열차......-_-;; 


그 녀석이 어떤 모습일지 눈에 선했다. 


그 어정쩡한 모습...열중쉬엇과 차렷을 바삐 번갈으며, 발이 바닥의 흙을 끄는 소리가 바삐 들렸다. 

어둡고 냄새나는 곳에서 별짓 다한다 싶었다...-_-;; 


짧은시간이 흐르고.... 잔소리는 끝나가는것 같았다. 


"앞으로 뛰다가 자빠지지마, 알았어? 똑바로 걸어!" 


"녜! 알 게 씁니 다 아!" 


"한번만 더 고참들이 불렀는데 뛰다가 넘어지면 며칠 후 제대할때까지 괴로울 줄 알아!" 


"ㄴ ㅖ!" 


"병신..." 


"................" 


".....내가 먼저 갈테니까... 넌 조금 있다가 나와!" 


"녜, 알게 씁 니 따 아!" 


"................" 


"................" 


"...............무섭냐?" 


".....아.....아뉩 니 다아!" 


그리고 부스럭대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안이병이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몇 초쯤 지났을까? 아무소리가 안나는 적막이 흘렀다.... 


그 녀석은 미동도 않고 특유의 그 멍청한 자세로 가만히 서있는게 분명했다. 


이제 내가 나가서 약간 놀라겠지만, 어깨 한 번 툭 치며 웃어주고 가버리면 되는거였다. 


역시 눈앞엔 아무것도 안보였지만.... 


그리고, 바작- 하고 그 바보녀석이 엉거주춤 발로 바닥을 끄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그 바보녀석과 나밖에 없는 그 칠흙같은 어둠속에서 나지막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 신발...... 좃 같구만...." 



순간, 나는 몸이 경직되었다! 나는 안이병이 나가는 소린 분명히 들었다. 

그리고 이건 다른 사람의 목소리였다. 갑자기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주르르 끼쳐졌다. 

이 목소리는 누구란 말인가......! 


" 흐음........ " 


이번엔 낮은 한숨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나무문 닫는 소리가 나면서 그 녀석이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내 두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암흑같은 화장실에서 미동도 않고 떨고 있다가 발자국소리가 멀어지는걸 듣고는 조심스레 밖으로 나왔다.... 


짧은순간, 마치 이놈이 숨어있다가 나를 덮칠것만 같았다... 



며칠 후.... 


그 녀석은 제대를 했다..... 그리고 나는 한동안 그 순간의 공포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그 녀석이 가방을 메고 위병소를 통과하는 순간까지도 나는 계속 되뇌였다. 


정말, 그 모든게...'연기' 였단 말인가? 

그런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건 분명 그 녀석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집에 가던 날 그 녀석은, 모자밑의 처진 눈으로 힐끔 나를 쳐다보았다. 


그 말을 내뱉었을때도 저 바보같은 얼굴이었을까....?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요즘도 가끔 그 녀석이 생각난다. 정말...정말 그 녀석이 연기를 한걸까...? 

나는 아직도...그때 그 순간, 


" 신발......좃같구만..." 


이라고 말한 그 전혀 다른 목소리가, 바로 그 녀석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었던 

그 한마디의 말이..... 환청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보기도 한다. 

하긴....그 녀석은....분명 '멍한 눈빛' 이었지만....눈이 깊게 파인 녀석이었다... 

그속에 본래의 눈빛을 감추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거다... 

그런데 그 모습은... 그...자세는....그 말투는...도대체 뭐란 말인가.... 

아...아직도 서늘한 느낌이다... 



그리고 오래토록 남아있을, 나만의 '미스테리'이다. 

그리고 글을 쓰는 지금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그 녀석이 뒤에서 쳐다보고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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