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분에 대한 기억..

Tat 작성일 13.09.27 17:3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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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주 전, 군생활 했던 동네에 잠시 들렀다 왔습니다.

간부님 한 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 주고 받다가,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제 군생활 당시 중사이셨던 분이 작년 10월 쯤에 돌아가셨다고, 원인은 폐암.

그 분과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남X식 중사님, 편의상 남반장님이라 하겠습니다.

 

남반장님과의 첫 만남은 자대 전입날 저녁 점호가 끝난 후 행정반이었습니다. 남반장님은 그 날 당직사관이셨고

점호가 끝난 뒤, 각 소대 당일 전입신병들을 불러다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나이, 주특기, 여자친구, 입대전 하던 일 등등을 물어보고 어찌보면 누구나 할 수 있고, 어찌보면 병사들과 오래 지낸

사람만 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

아직 얼굴도 이름도 제대로 모를 고참들이 밖에 불침번 당직부관 당직병 으로 같이 있고 근무교대로 왔다갔다 하는

와중에 담배를 권하셔서 '괜찮습니다.'하고 거절을 하니 직접 담배를 꺼내서 입에 물려주고 불까지 붙여주십니다.

바짝 얼어서 반쯤 덜덜 떨면서 행정반 안에서 신병이 주변에 고참들 널렸는데 피자니 죽을 맛입니다.

더구나 남반장님은 약간의 사시가 있어서 눈을 맞추고 이야기 하기도 힘듭니다.

대답을 입으로 한건지 코로 한건지도 모를 시간이 지나고 자러 들어가라고 보내주십니다.

소대로 들어가니 이번엔 초저녁잠 없는 말년들과 분대장이 불러냅니다.

자대 첫 날 그렇잖아도 잠이 제대로 올리 없는데, 줄담배를 피니 죽을 맛이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 저는 비편제로 전투소대 소속 그대로 행정업무를 겸하게 되었고, 덕분에 주특기 교육이나 작업에

빠지는 일이 잦아지기 시작합니다. 소대원들과 소대 간부들, 수송관님.. 다들 반길리가 없습니다. 나름대로는 최대한

낮에는 작업+훈련 하고 개인정비시간+연등으로 행정업무를 보면서 노력해 보지만, 100번을 그렇게 하고 딱 한번만

작업에 열외되면 100번의 노력은 없던일이 되고 맙니다. 차량 정비를 아무리 잘해놓아도, OVM을 어디서 잘 꿍쳐서

완벽하게 갖춰 놓아도 사격을 만발하고 뭘 해도, 주변의 시선은 '저 새X는 맨날 막사 안에서 논다.'가 되어버립니다.

 

남반장님 역시 주특기 교관(대전차 유도 미사일)이었고, 해당 교육은 주특기 관계없이 중대원은 다 받아야 했기에

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남반장님이 제게 요구한 건 딱 하나였습니다.

'무조건 교육시간에 얼굴은 비추고 한 번 이상은 쏘고 내려가라' (이동타겟에 적외선으로 추적 연습)

당시 중대원들 평균 점수는 100점 만점에 60~70, 상위로 구분된 사수들 평균은 80~90. 제 개인 평균은 95에서 왔다갔다.

교육이 시작됩니다. 다 같이 장비 들고 올라갑니다. 짬순서로 쏘지만 저는 업무보러 내려가야하니 먼저 쏘고 갑니다.

남반장님의 갈굼이 시작됩니다.

'하루종일 여기 붙어서 연습하는 사수라는 것들이, 행정반에 앉아있는 운전병보다 못할 수가 있냐'고..

처음엔 저러면 제가 엿먹는게 되는거 아닌가.. 하는 걱정도 했으나 아니더군요. 특히 소대에서의 평가는 오히려

높아지더군요. 소대 평균 점수가 올라가 버리고, 타 소대 사수들을 우리소대에서 눌러버리는게 되니깐..

그리고 교육이 끝나면 교육훈련 보고서 쓰러 남반장님이 행정반에 오십니다.(컴퓨터가 행정반 밖에 없었음)

그럼 또 이런 저런 이야기 하면서 보고서 작성 하시고, 저는 그 보고서 보기 좋게 정돈하고 꾸미고 고치고..

그렇게 차츰차츰 친해져(?)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짬 안되던 겨울이 끝나갈 무렵. 열이 39도를 찍는 심한 감기에 걸리고 몸이 힘든 건 둘째치고

짬 안되는 게 아픔으로 인해 생겨나는 여러가지 심적 불편함과 갈굼들이 터지고, 격리실에 쿠션감은 전혀 없는

포단과 구분도 안되는 침낭에서 헤롱헤롱 거리고 있던 어느 날 밤에. 갑자기 이마가 시원해 지면서 정신이 듭니다.

그 날 당직사관이던 남반장님이 직접 물 떠다가 수건 적셔서 이마에 올려주십니다.

'많이 서럽지? 조금만 참아라'

딱 한마디에 눈에 눈물이 고입니다. 그리고 나가시면서 불침번들을 혼냅니다. 사람이 열이 올라서 저러고 있는데

제대로 안보냐고..(아니 그런 말은 안하셔도 되는데.. 한 명은 우리 소대 고참인데..;;)

 

잠시 전역, 전출 등으로 간부 편제가 비었을 때 임시로 편성해서 나갔던 훈련에 무기차 탄약차 세워놓고 앉아서

나눴던 이런저런 개인적인 이야기들.. 딸 자랑, 개인 가정사들...

별 많은 철원 밤 하늘 아래에서 친한 형님처럼 나눴던 이야기들..

 

시간이 흘러흘러 이젠 제입으로 '니들은 막사에 앉아있는 나보다 못쏘냐?'하면서 애들 놀릴 짬이 되고,

얼차려 받는 애들 앞에서 간부들과 농담 따먹기하는 짬이 되고, 전역할 날이 다가옵니다.

제 전역일은 일요일, 간부들은 출근을 하지 않으니 중대장 신고도 평일에 미리 해놓고 한산한 분위기에

애들이랑 인사하고 가려는데 위병소쪽에서 차가 한 대 올라옵니다.

우리소대 간부도 아닌데, 저 간다고 인사한다고 굳이 부대 들어온 남반장님 찹니다..

 

 

남들에게 말하지 못할 가정사에 줄담배 피우시던 분이라, 폐암으로 돌아가셨다는 말에 왜그리 눈물이 나던지..

조금만 신경쓰고 연락하고 살았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후회..

 

부디 저 위 하늘에서는 속썩이는 일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폐암따위도 걱정할 필요 없이

한 대 피우고 계시길 바래봅니다. 백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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