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100-004

NEOKIDS 작성일 16.07.04 19: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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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100-004

 

 

 

 

익어가는 음식들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른다.

 

 

30평 정도 넓이의 느낌인 부엌엔 이것저것 준비한 흔적들이 아직 남아있다. 최신형의 부엌 시스템 싱크대를 설치한데다가 깔끔하고 넓어보여서 사실 조금 어질러져도 티는 그렇게 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치우는데 힘이 좀 든다는 문제가 있다.

 

 

미끌거리는 지방, 질긴 심줄들이 특히 그렇다. 만약 어딘가에 말라붙어버리기라도 하면 싱크대들에 손상을 주지 않으면서 닦기 위해 특히 신경을 써야 한다. 이것만큼은 절대 다른 사람을 시킬 수도 없다.

 

하지만 그런 건 나중 일이고, 지금은 음식에 집중하고 싶을 뿐이다.

 

 

우리가 식사를 할 때는 크고 넓직한 테이블을 쓰지 않는다. 그것은 별로 초대하고 싶지 않은 손님들을 초대해서, 우리의 부유함을 과시할 필요가 있을 때에나 유용한 일이다. 그런 사람들이 얼핏 본다면 사이드 테이블로 옆에 조그맣게 놓는 테이블이, 정말로 우리가 식사를 하는 곳이다. 식사할 때의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감은 중요하니까.

 

 

그 테이블 위로 약간 베이지 색이 도는 하얀 색과 금박의 세공무늬가 입혀진 접시에 담긴 음식들이 놓여진다. 보기 좋고 적당하게 익혀진 고기덩이 위로, 그레이비 소스를 베이스로 해서 나만의 레시피 재료가 첨가되어 완성된 특제 소스가 얹혀진다.

 

 

이걸 만들기 위해서 세 시간 정도 공을 들인다. 단순히 고기를 구우면 나오는 육즙을 사용하는 그레이비 소스의 제조법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소량 섞어줄 데미글라스 소스를 만드는 기본 육수도 따로 만들기 위해 뼈를 큰 냄비에 넣고 잘 끓여야 하기 때문이다.

 

 

샤워를 하고 온 그이의 허기진 눈이 핏발을 세운다. 오늘도 좀 무리했는가 보다. 그이의 일은 항상 무리하는 일 뿐이다. 마치 벼랑 끝에 선 것처럼 그는 숫자와 씨름하고, 사람들을 닦달하고,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보통 월급쟁이들은 상상조차도 못할 정도의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그런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들은 그에게는 사실 이 먹는 일과 별다를 일이 없어 보인다. 그는 마치 먹기 위해 일하는 것 같고, 일하기 위해 먹는 것 같다. 그의 식사 풍경은, 마치 세상을 먹어치우기라도 하려는 듯한 장렬함, 그러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노블함과 스피디함이 살아있다.

 

 

일생에 그것 하나밖에 그에게는 쾌락이란 게 없는 사람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나는 그런 그의 고귀한 삶이 ‘우리의 삶’으로 이어진다는 것에 항상 감사한다.

 

 

“소스를 조금 더 진하게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이가 부드럽도록 조리된 고깃덩이를 썰어 우물거리면서 말한다. 그이는 항상 그럴 때에는 배운 사람답게, 혐오감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는 이런 것을 거울을 보면서 연습한다고까지 했다. 철저한 사람. 나도 그만큼 철저하다면 철저하게 살아온 인생이랄까.

 

 

그래서 우리는 모든 면에서 의기투합했다. 처음에는 음식에 대한 관점으로 연결되었지만, 서로를 알면 알게 될수록 좋았다. 뜨거운 열정만 있는 것도 아니고, 차가운 냉정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두 개가 너무 절묘하게 섞여 있었고, 그렇기에 우리의 사이가 5년을 넘어가고 있는 시점에도 권태기나 우리 같은 사람들이 흔하게 보이는 무감각함 따위들은 감히 얼씬도 하지 못하는 중이다.

 

 

또한 그런 이유로, 우리의 결합을 사업의 결합같은 관점으로 보는 자들의 입방아와 시샘도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다. 우리의 결합은 그런 천박한 관점으로는 표현될 수 없을 정도로 진한 뭉쳐짐인 것이다. 마치, 고기 위에 얹혀진 이 소스의 맛처럼.

 

 

나는 그이의 입가에 묻은 소스를 닦아주면서 말한다.

 

 

“내가 육즙맛을 즐기는 거 자기도 알잖아. 내 소스가 맛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고기 자체의 맛을 해쳐서는 안 될 만큼이란 것도.”

“음, 당신 말이 맞아. 당신의 소스뿐만 아니라 고기의 조리법도 항상 최고지.”

“차라리 포크 커틀릿으로 만들어볼까? 그럼 소스가 좀 진해도 괜찮은데.”

“아냐. 그건 안될 말이지. 어떤 바보들이 고기에 빵가루 따윌 묻혀서 기름에 튀길 생각을 해낸 건지는 몰라도, 그건 죄악이야. 고기는 고기 그대로 즐겨야 해.”

 

 

이런 점들. 그이의 이런 점들이 나는 너무나 좋다. 의견이 달라도 자신의 것을 우기지 않는다. 잘못된 것을 말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내 취향과 같은 생각들을 말해준다.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서비스를 해줄 보람이 있는 사람. 와인잔과 병을 가져온다. 1896년산 샤토 라피트. 고작 2억 7천여만 원 정도에 신의 맛을 보여주는 와인. 지하엔 와인 보관소가 있고, 와인 행거에는 항상 각자의 온도를 최상으로 맞추어 보존할 수 있는 장치들이 있어, 꼭 한 병씩은 넣어둔다.

 

 

“이야, 당신 정말........”

“보는 눈이 있어?”

“보는 눈 정도가 아니야. 이 고기의 맛에 이걸 골라오는 당신은 천재라고. 나도 이 맛을 떠올렸는데, 물론 여기에 조금 섞을 것도 남겨두었겠지?”

“당연하지.”

“굳기 전에 섞어야 할 텐데.”

 

 

그이가 날 격찬하면서 와인병을 손수 딴다. 와인의 진하고 깊은 향이 단번에 올라온다. 그는 거기에 일반 작은 양주잔 만큼의 적은 양으로 섞을 것을 섞는다. 붉은 색의 액체들이 서로 만나 일렁거리며 더욱 깊은 색으로 바뀌어간다. 나의 잔도 직접 채워 건네주는 그이. 우리는 잔을 부딪히면서 건배한다.

 

 

“아. 정말 좋군.”

“그렇지?”

“이런 맛들을 볼 수 있다니. 난 정말 선택받은 존재야.”

“물론 그 선택한 주체는......?”

“당신이지. 난 당신에게 선택받았다는 사실이 정말 행복해. 요즘은 다른 곳에서는 식사를 할 수가 없다니까. 일류 쉐프니 뭐니 하는 것들은 이름값이나 따질 줄 알았지, 당신의 진짜 이런 맛을 따라올 수가 없어.”

“비행기 태우기는.”

“좌석은 마음에 드십니까, 고객님~”

 

 

장난스럽게 코끝을 비틀어준다. 남편은 엄살을 떨면서도 여전히 접시를 비우는데 여념이 없다. 나도 천천히 고기를 썰면서 묻는다.

 

 

“일은 좀 어때?”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만큼이야. 예전보다는 조금 힘들지만, 곧 영국 정부가 바보 같은 짓을 해줄 것 같아. 그 금융의 중심지가 말이야. 때문에 그 쪽으로 돌려놓은 것들이 좀 쓸만해지고 있어. 싼값에, 그 쪽 핵심 사업들을 조금 먹어둘 수 있을 것 같아.”

“역시 그러네. 조금은 도박이었는데.”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멍청한 정치가 놈들이, 이번에는 일을 잘해줬네.”

“생산체계의 문제들은?”

“노조니 최저임금이니 시끄럽지만, 어차피 시간 지나면 노예새끼들이 별 수 있겠어. 버티고 있으면 그만이야. 정치가들한테는 먹이도 충분히 먹여 놨고.”

“그래도 잘 컨트롤해야 될 거야. 구설수란 건 귀찮으니까.”

“내 선까지는 오지 않게 다 처리되어 있으니 걱정할 건 없어. 우리 이미지에 타격받을 일이란 건 전혀 없고. 아, 이번엔 고아원에 언제 가지?”

“내일 모레쯤 갈 거야. 거의 다 떨어져 가니까.”

“그래? 그 때 나도 같이 가도록 약속을 맞추지. 전에 해놓은 홍보가 아무래도 약발이 떨어져가는 것 같단 말이야. 헬조선이니 뭐니 해대면서 안그래도 우리 같은 사람들 이미지가 개판되는데, 멍청한 것들이 거기에 기름을 붓고 있으니, 나 같이 해온 사람들은 조금만 신경 써도 되거든.”

“그래. 같이 가자. 당신이 보는 눈도 꽤 좋으니까.”

 

 

접시는 비워지고. 부엌을 같이 정리한다. 그런 내 허리에 그의 손이 감긴다. 언제나처럼, 너무 따스하고 부드럽게. 도저히, 그 안에 그렇게 강한 근육들이 꿈틀거리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안되게끔. 마룻바닥으로 뒹굴기 시작한다. 고기를 탐하면서도 먹지 못해 안달난 육식동물들처럼, 우리는 서로를 물고 뜯는다. 작은 시작은 그렇게 절정으로 달려간다. 뜨거워진 뇌세포 속이 극치감으로 제멋대로 휘저어지고 허리는 떨려온다.

 

 

 

시간과 공간의 모든 것은 신비함에 둘러싸여 있다.

우리는 항상 느끼고 있다. 그 신비함의 바탕은 돈도, 명예도, 권력도 아닌, 사랑이라고.

 

 

우리는 호흡이 정상적인 리듬으로 돌아올 때까지 한참을 꼭 껴안고 있다. 나는 틈틈이 운동으로 다져진 그의 엉덩이를 두들긴다. 치워야 할 건 치워야 하고, 정리할 건 해놔야 하니까. 그는 피곤함 같은 건 모르는 듯 벌떡 일어나 벗어던졌던 샤워가운을 다시 걸친다. 어차피 다시 벗어야 하고, 다시 샤워를 해야 하는데도, 그는 굳이 걸친다.

 

 

그는 부지런하다. 나도 부지런하다. 나는 부엌의 정리를 마저 하기 시작하고, 그는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힘쓰는 일을 하기 위해. 힘쓰는 일은 그의 몫이고, 그런 그를 내조하는 일은 나의 몫이다. 우리는 부지런하다.

 

 

얼마 안 있어, 지하에 있는 와인 저장소의 옆, 고기 저장소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는 샤워가운을 벗었을 것이다. 날 기쁘게 해주는 것을 덜렁대며, 그의 탄탄하고 멋진 근육을 마구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공사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막노동자처럼 일하고 있을 것이다. 

 

염산으로 녹여내며 발생하는 가스를 마시지 않기 위해 방독면을 쓰고 환기용 모터를 작동하고, 남은 뼈와 내장들, 머리카락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작은 머리들을 염산으로 녹여내고, 그것들을 빻아서 가루를 내고, 처리해야 할 비닐봉지에 담는 일들을 하나씩 둘씩 해야 할 일들을 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내일 저녁에 내가 맛보여 줄 요리를 위해, 또다시 고기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 고깃덩이가 눈을 뒤룩대며 공포를 먹고 있을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럴수록 고기는 맛있어진다는 거다. 아직 변성기를 거치지 못한 여린 목이 질러내는 비명이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거기에 맞춰 노래를 흥얼거리며 부엌을 마저 정리한다.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의 2막 3장에 나오는, ‘울게 하소서’.

 

 

lascia ch'io pianga mia cruda sorte,

슬픔이 넘쳐 흘러 눈물이 되어

e che sospiri la liberta

내 맘의 아픔을 다 씻게 하소서

e che sospiri e che sospiri

이 어두움을 밝혀주소서!

la liberta!

영원토록!

 

 

우리는 이토록 행복하지만, 우리는 계속 슬프지 않을 것을 갈구한다는 것. 얼마나 뿌듯한가. 그러기 위해서는 맛있는 것을 먹고, 힘을 내야 한다. 세상은 부지런한 자들의 몫이며, 부지런한 자들이 먹어야 유지되는 것이며, 부지런한 자들이 가지고 앞서 나가야 하는 곳이다. 비명은 약하니까 지르는 것이다. 우는 것도, 공포도 약한 자들의 몫일 뿐이다.

 

 

그의 작두가 지금쯤, 그 아이의 머리를 떼어내고 있겠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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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해괴한 망상의 둥지라고 썼던 것을 완전히 다시 썼습니다. 아이디어가 나온 것을 글로 옮기고 싶어 허겁지겁 달려들었지만 결과물은 아랫도리를 훌렁 깐 것처럼 거칠고 너저분해졌죠. 이번엔 아예 암시만 하겠다는 작정으로 썼습니다. 그 결과 글은 많이 짧아졌지만, 흐름은 맘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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