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기-2

사랑방거지 작성일 16.11.20 03: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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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장소는 다행히도 출근 동선과 겹치는 곳 이었다. 월급쟁이 생활 이십년에 겨우 집 한채 마련했다. '그래도 다행이지. 겨울에 내 집이 있다는 것은.' 

담배를 피워 물었지만 입김인지 담배 연기인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하늘은 어두웠고 아주 가까이 내려앉아 있었다. 오늘 약속을 위해 차는 회사에 주차된 상태였고 남들 처럼 그도 지하철을 타기 위해 종종 거려야 했다. 사람들 사이를 느릿느릿 걷는게 마치 자신이 퇴직한 은퇴자 같은 느낌 들었고 순간 지하철 출입구를 향해 빨리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그 지하로 내려가는 출입구로 사람들이 마치 빨려 들듯이 사라지고 있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른다. 어렸을때 비가 아주 많이 온날이었다. 그날의 일기예보를 기억하지도 일부러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그가 태어나서 자연으로 부터 느낀 최초의 공포감이 생긴 날이었다. 아버지는 가난했고 가족들은 방두칸짜리 월세방에 살았고 미닫이로 된 현관문을열면 바로 작은 골목길에 면한 집이었다. 주인은 이층에 살았는데 주인 할머니의 잔소리가 아주 심했다. 그 골목길은 해가 잘 들지 않았기 때문에 골목길을 에워싼듯한 담벼락에 이끼들이 자라고 있었고, 골목길 가운데 시멘트로 만든 두꺼운 사각형 맨홀 뚜껑이 악취가 풍겨 올라오는 하수구를 어슬프게 막고 있었다. 비는 밤새도록 내렸다. 식구들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이상한 느낌에 잠에서 깰수 밖에는 없었는데 마치 이불에 쉬를 한듯한 찝찝함때문이었고 일어나고 보니 방문은 열려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현관문을 열고 골목길을 내다보고 계셨는데 그 골목길은 이미 빗물로 강을 이루고 있었다.  골목길에는 그 어슬프고 냄새나는 하수구로 어마어마한 빗물이 굉음을 내면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사라지고 있었다. 잠결에 본 그 모습은 충분히 두려워할 만한 것이었고 그가 엄마를 불렀을 때 돌아보는 부모님의 눈빛에서도 마찬가지의 공포를 발견할수 있었다. 엄마는 곧바로 그에게 다가와서 그를 품에 안고 다시 잠들게 했지만 그 기억은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그는 지금도 물을 아주 많이 두려워하고 특히나 장마철의 한강을 보면 현기증을 느낄 때도 많았다. 요즘 들어 자꾸만 옛날 기억들이 두서없이 떠올라서 곤란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냥 그러려니 하려고 해도 그 생각들이 자꾸만 꼬리에 고리를 물듯이 다른 생각들로 옮겨 가는 것이 문제였는데 그러다 보면 시간이 너무나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입밖에 내는 순간 꼰대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인데 억제하려고 해도 쉽게 되질 않았다.

가장 쉬운예로 '우리때는'으로 시작되는 멘트였다. 학창 시절이 그랬고 군대 생활이 그랬으며 직장 생활이 그랬는데 어느 하나도 지금과는 맞지 않는 경험들이었고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그러다 보니 이야기는 그저 옛날 이야기가 되고 마는 것이고 듣는 사람과의 공감은 점점 요원한 일이 되고 말았다.

아주 오래전 눈에 보일 정도의 큰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져 버린것 처럼 어지간한 사건은 역사 축에도 들지 못하는 개인적인 일이 되어 버리는 것이고 그런 개인적인 경험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은 이미 개인이 경험한 일을 반추할 만큼 충분한 시간을 주지도 않았다. 지하철은 무척이나 붐볐고 따뜻했다. 여러 사람이 내는 온기와 히터에서 나오는 열기는 사람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겨울인 덕분에 온갖 샴푸냄새와 향수 냄새, 화장품 냄새가 뒤섞여 더욱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지하철은 자동차 보다 정확하게 그를 약속장소에 데려다 주었다.

강남역 사거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찾을수 있는 작은 커피숍이었는데 외관은 자그마 했지만 내부는 보기보다 상당히 넓었고 심지어 내부에 이층이 있어서 이층으로 올라서기전에는 이층에 사람이 잇는지 전혀 알수가 없는 그런 구조였다. 커피숍이 들어서 있는 건물은 오피스 빌딩인것 같은데 지은지 오래된 터라 주차장도 없고 외관도 오래된 하얀 타일로 장식된 건물 이었다.

임중령은 일층 출입구쪽에 앉아 잇다가 그가 들어서자 일어나 맞아 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조기자님. "

"아, 네." 첫 만남에서 자신이 누군지 알아주는 것은 기쁜 일임에 틀림없지만 또한 익숙해지지 않는 어색함인 것은 분명하다. 그는 정치부에서 잔뼈가 굵은 기자였기 때문에 주로 유명인들의 주변에서 맴도는 경우가 많아서 첫 만남에서 그가 아는 척 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 이쪽으로 오시죠.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층으로 오르자 구석 쪽 자리에 세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앉아있는것이 보였다.

"그럼 첫 인사들 하시죠. 이쪽은 고려일보의 조현수부장입니다. 그리고 이 쪽은..."

"우리에 대해서는 천천히 알아가는 것으로 하죠."

다섯명중의 짙게 탄 얼굴에 제일 덩치가 좋고 가슴에는 선글라스를 매단 사내가 말을 걸어왔다.

"그럼 일단 서로 바쁜 시간이기 때문에 먼저 해야할 말 부터 하기로 하죠."

인사는 중단 되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입을 다문채 임중령과 나를 주시하기 시작했고 분위기는 순식간에 무겁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시겠지만 군인들 입니다. 군인이 기자를 그것도 정치부 기자를 찾는 경우는 잘 없고 또 친하지도 않지요. 접점이 없기 때문 입니다. 아마 옛날 그러니까 군정시절에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는 고개를 끄덕 거릴 뿐이었다. 그 다음에 나올 말이 무엇인지 예상을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설마하는 마음이 강한것도 사실 이었다.

"그러다 보니 조기자님께서도 왜 라고 하는 의문이 드셨을 것이고 또 어느 정도는 그것이 풍문만은 아닐것이라는 생각은 하셨을 것 입니다."

"그러면 정말..."

"네, 그렇습니다. 계엄령이 떨어질 예정 입니다."

그는 그들 하나하나를 눈으로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머니 속의 녹음기도 돌기 시작했다. 

"언제 입니까?"

"중요한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그러면요?"

"우리가 왜 이시간에 이곳에 마주 앉아 있느냐 하는 것이죠."

그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기밀이었다. 그 기밀을 왜 기자에게 말을 하는 것 일까?

그는 허리를 똑바로 세우고 팔짱을 꼈다. 조금은 완강하고 이제 나는 아무 말도 않겠다는 제스츄어 였다. 그러므로 상대방에게 말을 하게끔 하는 압박이 되길 바랐다.

"천천히 말씀드리기로 하죠. 충분히 들으신 다음에 말씀을 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임중령도 다른 사람도 그도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씩하고 호흡을 가다듭기 시작했다.

"계엄령은 이번 주 토요일밤 공공시를 기해 내려질 예정 입니다. 계엄령을 내리는 사람은 물론 대통령이고 군 수뇌부도 이미 그에 동의 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어리석게도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군대의 힘을 빌어서 해결하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군부에서 반대가 있었지만 몇몇 강성 찬성자들이 전면에 나섰습니다. 서울 경기의 보병부대와 기계화 사단, 그리고 공수부대가 동원될 예정 입니다." 임중령은 이야기를 중단하고 다시 심호흡을 하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도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듣고 있는 현수도 마찬가지였다.

"잘 아시겠지만 계엄령은 이 사회를 지탱하는 모든 시스템이 일시 정지되는 작용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계엄령은 실패하게 될 것 입니다. 국회는 해산하지 않을 것이며 그 속에서 계엄령은 해지 될 것이기 때문 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마도... 아, 정말 힘드네요. 여기서 부터 중요한 이야기 입니다."

그런 흐름은 계엄령이란 말이 나왔을 때 부터 많은 매체에서 계엄령의 지속에 대해 그것이 결코 정치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였고 일반적인 이야기였다.

"문제는 그렇게 되고 난 다음 계엄령에 동의한 군 수뇌부는 대부분 옷을 벗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정치적으로 대통령 자신이 끝장 나는 것과는 별개로 말 이죠. 일종의 순장이라고 할까요."

현수는 팔짱을 풀고 커피를 들이켰다. 다음에 나올 말은 뻔 했다. 이들은 계엄령이 아니라 쿠테타를 말 하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자신이 불러들인것이 호랑이라는 것을 몰랐을 것인가?

구한말에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위하여 주변 세력들을 이용하려고 한것과 마찬가지인 꼴 이었다.

아니다. 어쩌면 대통령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정말 그렇게 해서 자신만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몽니를 부리려고 하는 걸까?

몽니라고 하지만 그 피해는 모두 국민들이 떠안게 될 것인데, 이번에 피는 또 얼마나 흐르게 될것인가? 현수는 담배를 찾아 피워 물었다. 그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는 아직 듣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나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니 그것을 기사화 한다고 해서 어떤 반향이 생길것 같지도 않았다.

그저 미 친 놈이 되지나 않으면 다행이고 데스크에 걸려서 기사화되지도 않을 거이었다.

"군 수뇌부는 당연하게 쿠테타를 생각하고 있고 의견은 취합 되었습니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단 말 입니까?"

현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목소리를 좀 낮춰 주십시오. 이것은 아직 공론화 될수도 알려져서도 안되는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왜 이 이야기를 꺼내는지도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임중령의 말 소리는 더욱 신중해지고 가라앉고 있었다. 현수는 현기증이 일었다. 

"아시겠지만 우리에게는 삼일이라는 시간만이 남아 있습니다. 준비해야 할것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것은 활로를 여는 것 입니다. 우리는 쿠테타를 할 것 입니다. 군 수뇌부가 하는 쿠테타와는 성질이 다릅니다. 우리는 국민들에게 컨펌을 받기를 원 합니다."

현수는 현기증이 일다 못해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 할수가 없었다.

"국민들에게 컨펌을 받다니요? 어떤 국민들이 쿠테타를 컨펌 한다는 말 입니까? 그러면 국민들의 명령이라도 다르겠다는 말 입니까?"

다시 또 현수의 목소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임중령은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입을 닫고 있었고 분위기는 점점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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