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가지 인생 - 44

갑과을 작성일 17.05.06 01: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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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1. 로키

 

조금 과격한 생각일 지도 모르겠지만, 달을 가리켜도 손가락만 보는 이 머저리에게 달을 보게 만들려면

 

답답이를 살려놔도 네 목을 자를 손이 존재한다면, 그 손을 잘라버리면 되는거 아닌가?”

 

달을 가리키는 손마저 잘라버리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어쨌거나, 내 전략은 조금은 성공적이었는지, 답답이의 제거에 몰두해있었던 도로시가 내 말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무슨 말이지?”

좀 더 높은 곳을 바라보잔 말이지. 너는 휠맨의 총책이 됨으로써, ‘우리를 엿 먹일 생각에 가슴이 뛰겠지만, 엿을 먹인다손 치더라도 네 녀석을 고깝게 보는 사람들은 여전히 남아 있잖아? 그런 사람들은 당장은 대안이 없어 너를 총책의 자리에 앉혀놓겠지만, 굳이 답답이가 아니더라도 너를 대신할 존재를 계속해서 찾게 마련일거다. 그렇지?”

그럴 때마다 그런 놈들을 치워버리면 그만이야.”

언제까지 그럴 참이지? 관 뚜껑에 못 박힐 때 까지?”

그건......”

전임자 치울 때 니 차례가 오지 않을 거란 허튼 생각은 하지 않았을 테고, 그 생각대로 너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전임자가 될 테지.”

그래서 나보고 어쩌란 거야?”

뭐긴 뭐야.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버리잔 거지.”

..... 지금. 뭐야? 그러니까, 지금.”

지부장 치우고, 니 말 잘 듣는 애를 그 자리에 앉히자는 거지.”

“........”

 

나를 보는 도로시의 얼굴이 아주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추리하는 것은 그닥 어렵지 않았다. 아마 녀석은 나의 이런 파격적인 제안을 듣고......

 

이거......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을 작살낸다더니 이거 껍질 벗겨놓으니까 완전히 미@친놈이잖아?”

이 마당에 뭔들 못하겠냐.”

그래, 좋아....... 좋다고, 니 말대로 하자고 쳐보자. 그러면, 요원들이 가만이 앉아서, ‘아이고 우리 지부장님이 돌아가셨네? 그럼 이 도로시님에게 순순히 지부를 넘겨드려야겠다.’라고 할 거 같아? 일 저지르고,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는 거야?”

그래서 내가 너한테 온 거 아니냐. 이 석두년아.”

니가? 와서 뭘 어쩐다고?”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나만큼이나 네 녀석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도 없지. 임무수행능력도 탁월하고, 몰인정함에서 오는 객관성, 그리고 크로스라는 네임 벨류까지. 만약 지부장이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면, 지부에서 실권을 가질만한 사람이 누구겠냐? 바로 나 아니겠어? 그런 내가 너를 지지한다고 천명해봐라. 과연 누가 너를 함부로 건드릴 수 있을 것 같냐?”

“......로키 너, 보기보다 제법 권력욕이 있는 놈이었구나?”

권력에 대한 추구라기 보단, 답답이와의 약속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지, 녀석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때 까지, 나는 녀석을 최대한 돕기로 약속을 한거다.”

그 대가로, 지부를 팔아넘기면서 까지 말이지...... 이거 완전히 빼도 박도 못할 호로새끼인데?”

니가 남을 멋대로 재단하고 평가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고, 그 대상이 내가 될 줄은 더더욱 몰랐지만, 팩트에 대해선 굳이 부정하지는 않겠다.”

“......”

 

도로시는 완전히 졌다는 얼굴로 어께를 으쓱했다. 지금 내게 닥치게 될 거시적인 상황과는 별개로, 녀석이 내게 할 말을 잃어버리게 된, 미시적인 상황 자체는 내게 말로하기 어려울 교묘한 승리감을 안겨다 주는 것 같았다. 물론, 그러한 감정을 녀석에게 들켜보았자 녀석을 설득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으니 티를 내지 않을 뿐이다. 어쨌거나, 만족스러운 결론이 났다. 저 머저리는 달을 보는데 성공했고, 나와 생각을 공유하게 되었다. 이로서 나는 답답이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 그로인해 치를 대가가 있겠지만, 그건 지금 당장 생각하기엔 너무 추상적으로 느껴진다. 생존에 급급한 이가 천국과 지옥을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당장의 눈앞에 닥친 생존의 문제만 신경을 쓸 뿐이지.

 

 

 

 

 

 

 

Channel 2. 아이리스

 

토라는 무슨 말인지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마지막 말을 읊조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그대로 곯아떨어져 버렸고, 저는 그녀의 손에 들린 카드키를 챙겨 방을 나왔습니다. 복도에 감돌고 있던 차가운 새벽공기가 폐부를 파고들어오는 바람에 정신이 퍼뜩 들긴 했지만, 정신에 비해 몸의 변화는 조금 느렸던 탓인지 머리는 여전히 지끈거렸고, 속도 울렁거리는 통에 몇 번이나 헛구역질을 하며 계단을 내려가야만 했었습니다. 4층에서 1층까지 그 영원과 같은 시간을 침잠해 가면서 제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빨간약을 반품하고 파란약을 먹어야 하는거 아닌가?’하는 내적 갈등이었냐고요? 하하, 아니에요. 저는 그렇게 복잡한 사람이 아니란 걸 그동안 봐와서 알지 않나요? 제 머릿속을 가득 메운 생각은 대체 얼마나 더 내려가야 이 계단이 끝나는 거야?’였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 또한 있는 것이라, 침잠도 끝이 나고 저는 비로소 마지막 계단을 밟을 수 있었죠. 혹시 지하에 도착했나 싶어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웬걸요?

 

그러고 보니까...... 이 건물에 지하가 있었던가?”

 

아무도 없는 1층 중앙현관만이 훵덩하게 저를 맞아줄 뿐이었어요. 한참 어리버리하게 주변을 둘러본 끝에, 이곳에 있는 한 달 동안 지하층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고, 가본 적도 없었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뭐지?”

 

토라가 그 순간 거짓말을 했던 걸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그 순간 토라는 정말로 진지했거든요. 마치 위험한 곳으로 아이를 보낼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마음과 같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어딘가 지하층으로 가는 곳이 숨겨져 있다는 걸텐데...... 이거 참 숙취로 비틀대는 와중에 본적도 없는 지하층으로 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니, 이만저만 곤란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이면이란 녀석에 뛰어들기로 했으면 찾아야 하는걸요. 그래서 저는 지하층과 관련되어있을 만한 곳을 모조리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 여기도 아니고.”

이것도.....”

여기도......”

“.......아 진짜.”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저는 완전히 지쳐 나가떨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 딴에는 지하와 관련되어 있을 법한 장소를 다 찾아보았지만, 그곳은 결국 그 장소 자체였을 뿐, 지하와 관련된 곳은 아니었습니다. 이면에 몸을 던지기로 했는데, 벌써 여기에서부터 막혀서야 원...... 지독한 비유의 미로 속에 빠져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는 제 자신이 한심해지려고 합니다. 이제 제게 기댈만한 건 단 하나의 모호한 문장 밖에 없었습니다.

 

땅 속으로 들어가서 보라. 마음가짐을 바로하면, 숨겨진 돌을 찾을 수 있을지니.’

 

대체...... 저게 무슨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인걸까요? 잠깐만..... 저 말을 곱씹어보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인데...... 설마 땅 속으로 들어가 보라, 거기서 마음가짐을 바로 하면, 숨겨진 돌을 찾을 수 있을 지니.’라는 문장을 잘못 말 한건 아니겠죠? <Visita Interiora Terrae, Rectificando Ivenies Occultem Lapidem -  출처 : 베르나르 베르베르 '절대적이고 상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그 거라면 예전 대학 시절, 교양과목으로 들었던 연금술 개론 첫 수업 때, 교수님께서 학생들을 앉혀놓고선 나름 멋들어지게 한답시고 말했던 괴상한 6행시였습니다. 그때 저희는 무슨 개소리지?’라는 반응이었지만, 연금술에 심취하셨던 교수님은 황산 임마! 연금술 배운다는 놈들이 황산을 몰라!’라며 오히려 역정을 냈었죠.

 

세상에, 남의 산에서 굴러다니는 조악한 돌도 우리 집의 옥돌을 가는데 요긴하게 쓰인다더니, 제 대학생활의 낭만을 산산이 박살낸 그 수업에서 이런 뜻밖의 힌트를 얻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토라가 읊조렸던 그 괴기한 문장은 그냥 술주정이 아니었어요. 지하층으로 가는 힌트였던 거죠. 황산. 그리고, 그것이 있는 곳은 바로......

 

여기다.”

 

독극물 보관 창고. 이곳이었어요. 그동안 가볼일이 없었지만...... 이젠 아니겠죠. 저는 주변에 저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본 뒤에, 조심스럽게 그 안으도 들어갔습니다. 방은 이중 문 체제로 되어있었어요. 그러니까..... 방과 복도를 나누는 첫 번째 문을 열면, 창고와 소독시설을 나누는 두 번째 문이 있었어요. ..... 이러는 거 보면, 일처리 하나는 정말 꼼꼼하게 하는 곳이라니까요. 어쨌거나, 저도 그다지 독극물과는 친하게 지낼 생각은 없었으니, 소독을 하고 방진복을 갖춰 입었습니다.

 

창고 안에는 정말 다양하고...... 많은 수의 독극물이 보관되어있었어요. 고등학교 때 자연과학을 선택해서인지 학교에서 추상적인 단어로만 들어왔던 물질들과 감격의 재회를 했다고 할까요? 천남성, 옻나무, 개나리 광대버섯 등 식물성 독초의 추출물로부터, 복어, 전갈, 화살독 개구리 등 동물성 독, 그리고 보톨리누스, 황색포도상구균 등 세균성 독등 다양한 종류의 독들이 나름의 체제대로 분류되어있었어요. 고등학교 때 생물선생님이 특히 독극물에 대해 비이성적일 정도로 관심을 가지고 계셔서 수업시간이 지루해질 때 마다 해주셨거든요.

 

그렇다면 제가 찾는 황산은..... 그래요, 제가 앞서 언급한 독극물들에서는 찾을 수 없을겁니다. 저건, 독극물을 크게 나누었을 때, ‘생물독에 포함되는 범주에 속하는 것이거든요. 제가 찾는 황산은 생물에서 유래되지 않는 무기물 독에 속하거든요. 저는 무기물 독이 있는 범주를 찾아다녀야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았다.”

 

500 - 무기화합물 - S 항목에 잠자고 있던, 황산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Channel 1. 로키

 

미@친년을 설득하느라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긴 했지만, 결국 녀석을 내 쪽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첫 번째 단계는 성공했다. 이제 그 다음 단계인 실행단계로 넘어가야 할 텐데, 첫 번째 단계와 두 번째 단계를 매끄럽게 이어주기 위해서는 한가지 전제가 필요했다. 바로 내가 도로시를 만났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한다는 것일단 아무도 모르게 지부에서 나오는건 성공했다고 자평하지만, 위의 전제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아무도 모르게 지부로 돌아가는 것이 수반되어야 한다.

 

플랫폼에서 열차로 들어가기 직전에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계는 724분을 지나고 있었다. 어디보자...... 워터 프런트에서 라스알게티 까지, 전철로 1시간 라스알게티 역에서 운터 브룩까지 20...... 그리고 업무시작은 9시 그러니까, 여유시간은 16...... 16분 동안 운터브룩의 쓰레기 산을 기어 올라가 아무도 모르게 내 방으로 들어가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솔직히 말하면 그닥 자신은 없지만, 이건 자신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닌 건 확실했다. 만에하나 타인의 눈에 띄어 의심이라도 사는 순간 말짱 꽝이 되어버리는 거니까. 아무래도 체력을 넉넉히 비축해야겠다. 한가지 다행이라고 한다면, 라스알게티 역에서 워터 프런트로 가는 열차보단, 워터 프런트에서 라스알게티 역으로 가는 열차가 좀더 한산하다는 것 정도?

 

문이 열립니다.”

“.......뭐 이래?”

 

정확한 출처가 기억나진 않지만, 내전기에 활약했던 라스알게티 출신의 군인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인생을 통틀어,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일은 10여 가지 중에 3~4가지에 지나지 않았다.’라고 아무래도 워터 프런트에서 라스알게티역에 가는 동안 체력을 비축하는 건....... 10여 가지 일 중 6~7가지 의 범주에 포함된 모양이다. 열차안은 워터 프런트로 갈 때보다 더했음 더했지 결코 덜 하다 할 수 없는 빽빽한 인간면발들이 괴로움과 고뇌로 가득한 표정으로 뒤엉켜있었다. 하아...... 어차피 지옥 갈 게 분명해 보이는 인생인데 굳이 이렇게 미리보기를 해주면 전혀 기대가 되질 않는데 말이지.

 

 

 

 

 

 

 

Channel 2. 아이리스

 

황산은 500 - 무기화합물 - S 의 찬장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그게 뭐 어쨌냐고요? 분류학적으로 보았을 때는 이상이 없었어요. 하지만, 황산을 통해 무언가를 발견하려는 제 입장에서는...... 이상이라기 보단 곤란함을 느낄 만 했죠. 왜냐고요? 찬장이 창고의 한 가운데에 있었거든요.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요? ‘한가운데라고요. 상식적으로 비밀통로의 입구라고 한다면, ‘벽에 붙어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야 뭐..... 황산을 찬장에서 꺼내거나, 제자리에서 빙글 돌린다거나 하면 벽이 움직이면서 숨어있던 비밀의 통로가 열린다거나 하겠죠. 그런데 말이죠. 500 - 무기화합물 - S 칸에는 그런 게 아무것도없어요. 이렇게 주변에 벽 이랄게 없는 곳 한가운데에 떡하니 있으면, 황산이란 걸 찾아도 그게 숨길 비밀의 통로라는 곳에 들어갈 방법이 전혀 없잖아요.

 

저는 새삼스럽게 주변을 살펴보면서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 제가 그동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그 한마디를 조심스럽게 꺼내 보았습니다.

 

씨.......발 어쩌라는 거야.”

 

일의 성패여부와 상관없이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긴 하네요.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어쩔 수 없지 뭐.’라고 중얼거리며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저는 캐비넷 주변을 좀 더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것을 발견할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혹시 캐비넷 밑에 뭔가가 있나?’싶어 바닥에 엎드리다시피 하여 아래를 살펴보았지만, 역시나 그곳도 꽝이었지요. 이제는 혹시라는 희망보단, ‘이 일을 어쩐다?’라는 절망스러운 마음만 들었어요. 그런데 모든 것을 포기하고자 하는 그런 시점에, 저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 뭐지?”

 

바닥에 엎드리다시피하는 그 무렵에, 저는 제 볼에 무언가가 스쳐지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바람이 불어왔지요. 창문이 없는 폐쇄된 창고에 바람이라니,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그리고 그건 아래에서 위로 불어왔다고요. 그 말인 즉슨....... 이 바닥 아래에 무언가 공간이 있다는 이야기일 겁니다. 그래요, 그러고보니, 눈으로 볼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엎드려보니 이 부근의 바닥재질도 뭔가 달랐다는 것도 알 수 있었어요. 겉으로 볼 때는, 이 바닥도 여느 부분과 마찬가지로 시멘트 바닥인 것처럼 보였는데, 막상 엎드려서 볼에 닿고, 손으로 더듬어보니 시멘트가 아니었어요. 이건...... 유리였다고요. 어떻게 색을 칠하고 갈아댔는지 눈으로 볼 때는 전혀 차이를 느낄 수가 없었는데, 손으로 만져보니 확실히 질감에서 차이가 있었습니다.저는 혹시나 해서 그 주변을 손으로 더 더듬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거 참...... 교묘하게 감춰 놓았네.”

 

유리는 하나가 아니라 두 개였습니다. 두 짝의 유리가 맞물려 있는, 그러니까...... 유리문이었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이제 이걸 얼어야 할 텐데, 아무리 주변을 더듬어 보아도 문고리는 보이지 않았어요. 흐음 그렇다는건, 손으로 돌려서 여는 건 아니란 소리겠죠. 그렇다면.......

 

이제 이 카드키를 사용할 때가 됐단 이야기겠지.”

 

황산, 유리문, 그리고 카드....... 퍼즐 조각은 모두 맞춰졌습니다.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황산이 담긴 시료병을 꺼내 보았습니다. 역시나, 시료병이 있던 곳에는 카드 리더기가 감춰져 있더군요. 이제 여행의 시간이 찾아온 것 같습니다.

 

 

 

 

 

 

 

Channel 1. 로키

 

내가 지부에 도착을 하고나서 건물에 걸려있는 시계를 쳐다봤을 때, 시계의 바늘은 85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도 정신없이 뛰어오다보니 입에서 허파가 튀어나올 지경이었지만, 아직 모든 과제를 마친 것은 아니었다. 이제 남은 3분여의 시간동안, 관리인 아주머니 모르게 내 방안으로 잠입해 들어가야 하거든. 그러려면....... 계단을 사용하는 방법으로는 불가능 할 것이다. 지금쯤이면 요원들이 식당을 나와 과업수행을 위해 지부 곳곳을 움직이고 있을 터이니까..... 그렇다면 다른 길을 이용해야겠지.

 

에라이...... IATP 때나 하던 짓거리를 크로스인 지금 하고 앉았네.”

 

감정이란게 돌아오니 참 새로운 경험을 해본다. 여지껏 의뢰를 해오면서 단 한 번도 의구심이나 불만과 같은 심리적인 반응을 가져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 나는 벽을 기어오르면서 투덜거리고 있다. 이것 보다 더 한 행위를 해도 전혀 의식하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이게 뭐하는 짓거리냐?’라는 생각뿐이다. 이래서 감정이란 건 참 거추장스러운 것이다. 감정은 몸을 무디게 만들고, 효율성을 떨어트린다.

 

어쨌거나 나의 노력은 결실을 맺어서, 내 방 창문으로 오기까지 아무도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제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늑한 나의 스위트룸이 기다리고 있겠.......

 

아이고, 힘들다.”

당연하지, 크로스까지 돼서 창문으로 들어오는 게 쉽겠어?”

“.......으응?”

 

이런 제기랄,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아무도 없어야 할 내 방에 불청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니, 그것도 스벤이나 토라 같은 인물이 아니라, 자그마치 지부장이었다. 아니, 이 노인장은 나를 놀려먹는데 도가 튼 모양이지? 이 양반이 여길 왜 있는 거야? 그것도 하필 지금 이 순간 바로 이곳에서 말이다.

 

“........”

뭐해? 안 들어오고?”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대로 모르는 척 문을 닫을까?’라는 생각으로 세상 진지한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지부장은 내가 고민하는 것이 마음 아팠는지, 창틀을 움켜쥔 내 손을 잡고 나를 방으로 데리고 와버렸다. 참으로 눈물날 정도로 눈치없는 양반임이 분명했다. 결국 나는 그의 손에 끌려서 내 방으로 들어왔어야 했다.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 아주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리는구먼? 뭐 왜 창문으로 넘어왔냐고 물어봤자 내가 만족할 만한 대답은 하지 않을 테니, 그냥 묻지는 않을게. 대신에 나랑 좀 어울려줘야겠다. 너 혹시 장기 둘 줄 아냐?”

어떤 말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정도는 압니다.”

그럼 한판 두자.”

 

그는 어디서 가지고 왔는지 장기판을 들고 있었다.

 

 

 

 

 

 

 

Channel 2. 아이리스

 

문이 열리고, 그 아래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어두컴컴했고, 제가 들어가자 문이 자동으로 닫히는 바람에 저는 아무런 빛이 없는 칠흑 속에 갇혀버렸습니다. 처음에는 이걸 어찌해야하나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제가 할 수 있는게 기도밖에 더 있겠습니까? 저는 손을 모아 지금 이 순간에 적절하다 싶은 기도문을 찾아 읊어보았습니다.

 

아드님께서 말씀하시니,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사람들은 어둠속에서 헤메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기도문의 암송이 끝남과 동시에 제 옆에는 초록색의 빛이 일렁이듯 피어올라 제 앞을 밝혀주었습니다. 제 눈앞에는 꽤 깊이까지 내려가는 계단이 다시 한 번 펼쳐져 있었지요. 정말 토라의 말이 맞았어요. 땅 속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끝을 가늠하기 힘든 깊은 계단은 죽음과 지하세계를 연관시키는 인간의 문화적인 심상 때문인지 계단은 제게 두려운 마음을 가져다주었지만, 토라가 했던 다음 말이 제게 힘을 주었지요. ‘마음가짐을 바로하면 숨겨진 돌을 찾을 수 있을 지니.’ 그래요,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 어둠은 결국 제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이 걸음을 멈춰선 안 됩니다. 그래도...... ‘해야 하는 것할 수 있는 것은 달라서, 저는 두려움을 그나마 덜 느끼기 위해 계속해서 기도문을 읊조리며 계단을 내려갔어야 했어요. 그렇게 한참을 내려갔을까요? 저는 드디어 계단의 끝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끝에는 두꺼운 철문과......

 

경고...... 이곳은 터미널...... 인스티튜트로, 인가받지 않은 자가 이곳을 출입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낡게 바래버려 읽기 어려운 경고문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경고문은 한 달 전 지부장님께서 제게 해주셨던 말씀과 똑같아서 다시 한 번 제게 두려운 마음을 들게 만들었지만, 저는 다시한번 심호흡을 하고, 카드를 리더기에 가져다 대었습니다. 그리고...... 문이 열리고 저는 터미널 인스티튜트의 첫 번째 구역으로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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