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너머 어딘가 #1. 나란 인간

백두사이다 작성일 17.09.12 21:5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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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어딘가

 

 

#1. 나란 인간  

 

답답하다.

일이 답답한게 아니라 마음이 답답하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지만 막상 하려고 보면 할 일이 너무 많다.

혼자 할 수 없다.

같이 할 사람을 구한다해도 그 사람의 인건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원점이다.

그냥 답답함만 있다.

창문 밖으로 유유히 흐르는 강 저 너머를 바라보며.

 

학원강사였던 나는 참 욕심이 많았다.

중견학원 보조 강사로 학원밥을 먹기 시작해서 부원장의 자리에 오르기 까지 참 많은 일을 했다.

학원 강사의 평판이 수업은 기본이요, 학생들과의 친분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보조강사로 학생들의 문제집 채점만 한 게 아니라 사적으로 문제풀이를 해주었다.

그게 학부모의 입으로 전해지고, 학부모는 원장님에게 전달했다.

내심 기대했던 부분이었지만 의외로 빠른 피드백이 왔고 난 보조강사에서 주강사로 신분이 상승했다.

신분 상승에서 그치지 않고 학생들의 인원수를 높이기 위해 젋은 패기를 이용했다.

주말에도 원하는 학생이 있으면 같이 수업 외에 단과활동을 같이했다.

단편영화 제작하기부터 CF광고 만들기 등 아이들이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수업 논외의 활동을 말이다.

처음 몇몇 학생에서 시작되었던 일이 학생부에 쓸 활동이 된다는 소문에 삽시간에 100여명이 넘는 아이들이 추가 수업을 요청했다.

원장님도 덩달아 신이나서 특강을 개설하고 내 페이는 처음보다 정확히 3배가 인상되었다.

3배.

이젠 돈도 학원강사로서의 입지도 일정 위치에 도달했다.

스물 여덟에 학원 대표강사로 광고지에 얼굴이 실리고 학원 인근에서 밥을 먹을 때면 학부모나 학원생들을 꼭 마주칠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내게 한 가지 빠진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여자사람.

여자친구였다.

학원 일을 하기 전까지는 여자친구는 있었다.

변변찮은 백수인데 여자친구는 끊이지 않았다.

반대로 학원강사로서 조금씩 입지를 잡아가는 와중에 여자친구들은 하나 둘 떠나갔다.

값비싼 선물도 좋은 호텔도 그녀들의 마음을 잡아둘 수 없었다.

그리고 매번 변했다는 말로 날 떠났다.

변했다?

난 변하지 않았다.

난 변하지 않고 더 좋은 조건에서 만나기 위해 노력했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녀들은 내 노력과 시간 투자에 대한 내 입장을 고려치 않고 자신들을 방치한다는 말들만 되풀이했다.

방치라니.

잠잘 시간 쪼개가며 약속을 잡고 함께 있었는데.

뭐 이제는 대수럽지 않다.

얼마 전에 온 에너지 넘치는 선생님이 내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기에 말이다.

‘나이트’

정신산만하고 시끄러운 곳.

아줌마 아저씨가 10시를 전후에 젊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쫒겨나듯 나가는 곳

새벽 1시까지 부킹에 성공하지 못하면 나이트 주변에 위치한 국수집이나 짬봉집에서 속쓰린 위장을 달래는 그곳을 말이다.

강선생의 수업은 무척 차분했다.

교과서적이었고 정말 교과서 내용만 전달했다.

수업 외에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아 학원생들에게선 인기는 없었으나, 의외로 수업 중에 문제들이 모의고사 기출문제에서 종종 출제되어 나름 족집게로 위치를 잡고 있었다.

그런 그가 학원 선생님들과 회식을 하고 나서 남자들끼리 모이면 본색을 드러냈다.

나이트에 가면 룸을 잡고, 룸을 잡고 나서 가운데에 앉았다.

자기는 오로지 사회자로서 모시겠다는 입장으로 행동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그건 자기가 이 곳에서의 가장 과시받고자 했던 나름의 작전이었던 듯 하다.

웨이터의 똑똑 소리가 나고 문이 열리면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정면 한 가운데에 앉아있는 강선생이었고, 웨이터는 안쪽에 앉은 강선생에게 곁으로 여자분의 자리를 배정했다.

어두운 공간, 화려한 불빛, 그리고 자신감에 차 한가운데에 거드림피며 앉아있는 남자.

뭔가 재수없지만 있어보이는 자신감.

그 찰나의 순간이 여자들을 강선생 곁으로 가게 하는 듯 했다.

강선생은 나와 처음 간 나이트에서 총 7명의 여자들의 전화번호를 따고 그 자리에서 4명의 여자와 입맞추었으며, 1명의 여자와 하룻밤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달 다른 또 한 명의 여자와 밤늦게 약속을 잡았다.

“인생, 별거 없어. 그냥 즐겨.”

강선생은 늘 술자리가 끝나면 내게 말했다.

‘나도 즐기고 있었는데.’

뭔가 부정당하는 말투에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한편으론 늘 여자에 둘러싸인 그가 부러웠다.

나도 잘할 수 있는데.

그러다 그녀를 만났다.

내가 정말 잘한다는 걸 알게해 준 그녀.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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