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너머 어딘가 #7. 두근두근내인생

백두사이다 작성일 17.09.20 12: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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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두근두근내인생

 

 

 

 

- 오늘 뭐해?

카톡이 왔다.

읽었다.

"1"이 사라지고 잠깐 고민을 했다.

어떻게 말해야 내가 기분이 안좋고, 너의 연락을 그다지 기다리지 않았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

그래서 넌 내 답변을 보면서 무척 바쁜데고 불구하고 나랑 만나줘서 고맙고 다음부턴 연락을 잘 하겠으며, 나 역시도 너를 만나고 싶다는 의사 표현이 나오는 프로세스적인 답변이 필요했다.

잠깐 생각하는 사이 1분이 지났다.

시간을 너무 끌면 고민하는 것 같으니 짧고 명료하게 답하자. 

- 선약있어. 근데 왜?

- 아니, 시간 되면 볼까해서.

- 몇시에?

- 선약있다며?

- 상황봐서 가도 되고 안가도 되는자리야.

- 그냥 다음에 봐

- 아니, 오늘봐, 오늘.

- 괜찮아? 

- 어

- 그래. 어디서 볼까?

- 지난 번에 봤던 곳

- 모텔? 만나자 마자 너무 빠르지 않아?

- 아니, 누가 모텔이래. 서울대입구지.

- 난 또. 은근히 붙같은 면이 있네, 했네.

- 그럼 말 나온 김에 모텔서 볼까? 방 예약해놓을테니.

- 정말?

- 어. 어때?

- 혼자 들어가긴 좀 그렇지 않냐?

- 혼자 가나 둘이 가나 똑같지, 뭘. 지난 번에 아침엔 온다해놓고.

- 아냐, 그 때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아침에 일어나니까 못 가겠더라고. 창피해서.

- 넌 정말 종 잡을 수가 없다.

- 나 손가락 아파

- 알았어, 그럼 서울대입구에서 보자. 몇시?

- 10시.

- 나 그럼 시간이 좀 뜨는데.

- 나 볼 일이 있어서 그래.

- 알았어, 그럼 이따봐.

숫자 1은 사라졌다.

‘알았어’라는 대답은 없다.

읽은 것으로 약속이 생긴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다시 처음부터 그녀와 대화한 카톡을 읽었다.

처음과 끝의 분위기가 다르다.

그녀는 알까?

뭔지 모를 서운한 마음이 카톡 몇 번에 사그라들은 것을.

이 카톡을 보면 누가봐도 호구라고 하겠지. 

자존심도 없는.

상관없다.

곧 그녀를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으니. 

 

수업을 시작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요즘 이슈가 되는 사회문제를 설명했다.

걔 중 몇몇 아이는 인터넷과 뉴스를 통해 알게 된 내용을 부연설명하기도 또 학교 얘기를 하기도 했다. 

‘청소년의 성’

오늘의 논의 주제는 성이였다.

남학생 여학생이 함께 듣는 수업이기에 내용과 전달 방식에 상당히 주의 깊게 진행했다.

자칫 잘못하다간 그 동안 쌓은 이미지를 한 순간에 날릴 수 있으니 말이다. 

학원 내 성폭력 외에도 임신, 낙태, 데이트성폭력은 청소년만이 겪는 문제는 아니었다.

더욱이 이건 최근의 문제가 아니라 수십년 전부터 논의되었던 사회적 문제였다.

단, 해결되지 못했고 해결 하지도 않고 방관하는 문제였다.

학생들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기에 이 모든 성에 관한 교육은 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과 

선진국에서처럼 성에 대한 개방적 인식을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야 된다는 입장으로 사설은 쓰여져 있었다.

학생들은 그 사설을 읽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여러 차례 아이들에게 의견을 물었지만 쉬이 답하진 않았다.

도리어 내게 질문을 해왔을 땐 나 역시도 답변하기가 참 애매했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성을 논한다라는 게 쉽지 않기도 하고, 또 집에서 배운다는게 좀 어색하기도 했다.

이미 내 머릿 속에서의 성은 출산을 위한 성스런 과정이 아니라 본능적 쾌락에 대한 행위로 인식되었기에 그랬던 듯 하다.

불과 3시간 후에 난 그 성을 즐기고 있을테니.

평소와 달리 책 내용 위주로 수업을 끝마쳤다.

농담도 예시도 들지 않았고 오로지 책에 있는 내용 그대로만 설명했다.

수업은 재미도 없었고 감동은 커녕 지루하기만 했다.

아이들도 역시나 처음 수업 시작 때의 반짝이던 눈빛은 흐릿멍텅해진 채 집으로 돌아갔다.

지식적으로나 감성적으로 아무것도 전해주지 못한 수업을 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문득 학창시절 한 선생님이 말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랑은 스포츠야, 하고 싶을 때 하며 즐기는거지. 그게 미국이고 그게 선진국이야.’

그렇게 오픈 된 사랑이 선진국의 척도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나쁘지는 않다란 생각은 든다.

숨기는 건 늘 나쁜 것이니까.

나는 숨겼다. 

다들 그러하니까. 

 

9시가 다 되어 서울대입구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게임방을 갈까, 만화방을 갈까 고민하다 눈 앞에 보이는 커피숍에 들어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자는 생각에. 

창 밖의 사람들은 늘 그렇듯 각자의 길을 걸었다. 

평소보다 장사가 잘 되었는지 손님에게 뭐라뭐라 하고 일찍 문을 닫는 노점상 분식집 사장님부터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6205버스 옆구리에 붙어 열심히 뛰어가는 아저씨, 학교가 끝났는지 학원이 끝났는지 피로해 젖은 고등학생까지 그 찰나의 순간 참 많은 인생이 길가를 걷고 있었다. 

진동벨이 울리고 커피를 받으러 간 순간 책 하나에 눈에 꽂혔다. 

‘두근두근내인생’

참 좋아했었는데, 그 때의 나도 그때의 그 친구도.

내 방 어딘가에 있을 그 책을 이곳에서 마주하니 커피만큼 쓴 후회가 밀려왔다.

기억 너머에서 올라오려던 추억을 꾹꾹 누르고 책장을 열었다. 

문장 하나하나 상황 하나하나가 눈에 그려졌다.

17살의 부모.

나라면?

윤리적인 답과 현실적인 답이 무겁게 다가왔다.

쉬자, 쉬려고 왔잖아.

이내 책을 덮고 미완의 숙제를 저 너머로 넘긴 채 눈을 감았다.  

- 어디야?

- 서울대입구 커피숍

- 나 도착했어.

- 벌써?

- 응, 일이 빨리 끝나서

- 그럼 지금 어디야?

- 너 뒤.

그녀는 정말 내 뒤에 있었다.

오 책도 읽나봐 하는 놀란 표정을 하며 말이다.

환하게 웃는 그녀를 보자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고 싶었다. 

어디가?

안되겠어.

뭐가.

빨리 하고 싶어.

진짜? 그래도 이건 좀.

어때? 너가 말했잖아. 로망 생각해보라며.

아니 그래도.

눈 앞에 있는 모텔로 그녀를 이끌었다.

- 잠깐 쉬.

자고 갈꺼예요.

- 오백삼

주인인지 실장인지 답변이 끝나기도 전에 키를 들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키스를 했다.

그녀는 마다하지 않았다.

분명 엘리베이터에 CCTV가 달려있었겠지만 그 순간 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영화에서처럼.

우리가 처음 사랑을 나눴을 때 처럼.

내인생이 갑자기 두근두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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