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가지 인생 - 63

갑과을 작성일 18.03.20 23: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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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1. 로키

 

내 말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물에 빠진 사람에게 내려진 구명 튜브로 여겨졌던 모양이었다. 술잔을 비우던 임꺽정은 다급하게 입 속으로 술을 털어놓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게 뭐셔?”

글게유. 무슨 수가 있는 것 같은디...... 존 것은 나누자구유.”

......”

 

임꺽정 뿐 만 아니라, 이봉학이라는 남자도 거들고 나섰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지금의그들에게는 이 생각을 말해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 이유라 함은 첫째로 나는 그들이 녹림당에서 어느정도의 위치를 가지고 있는지 전혀 알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녹림당에서 어느 정도 발언권이 있는 입장이라면 내 생각을 공유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지켜본 바로는, 수뇌부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거든. 발언권도 없는 자에게 그들의 이른바 혁명의 방향성을 결정지을 이야기를 해 보았자 내 기분풀이만 될 뿐 실질적인 결과로 이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뭐...... 결국 의미없는 시간낭비만 될 뿐이지 뭐. 그리고 둘째로...... 백보 양보해서 그들이 녹림당에서 어느정도 발언권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이야기를 받아들이기에는 그들의 사고가 유연하지 않아보였다는 것이다. 내가 하려는 제안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에 반하는 것이다. 민족 드립은 별로 치고 싶지 않지만...... 라스알하게인들은 명분이라는 것을 상당히 중요시 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라스알하게에의 유명한 철학자가 한 격언중에 예가 아닌 것은 보지도 말고, 예가 아닌 것은 듣지도 말며, 예가 아닌 것은 행하지 마라.’라는 것이 있다고 들었다. 여기서 라는 개념은...... 자신의 사회적인 위치에 맞는 행동양식을 말한다고 하지. 내가 하려는 제안은 아마 그 철학자가 추구하려는 것의 대척점에 위치하고 있을 것이다. 명분에 맞지 않는 행동은 거리껴하는 그들에게, 내 제안은 그닥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런 이들 앞에서 굳이 내 생각을 정당화할 이유도, 그럴 의지도 없다.

 

하지만 이런 내 속사정을 알 리가 없는 그들은 내게 계속해서 내가 품고 있는 방안을 이야기 해달라고 계속해서 채근을 했다. 이젠 그 공세에 답답이 까지 가세해서 내게 대답을 요구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 이야기해보았자 소용도 없을 이들에게, 받아들여질 리가 없는 제안을 할 필요는 없다.

 

허 참...... 그렇게 안봤는디, 스타일 참 좆같네유?”

...... 욕을 해서 기분이 풀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해.”

아니, 뭐 야그하면...... 급살이라도 당허냐? 나 같음 짜증나서라두 이야기 허겄네.”

이야기를 듣고 싶어?”

아 말해 뭐혀? 우덜이 여적꺼정 들들 볶는거 보믄 몰겄나?”

그럼...... 주우라도 데리고 와 보던가. 그 녀석이라면 내 이야기를 받아들일지는 차치해 두더라도, 내 이야기를 실행할 능력은 되는 놈이니까.”

그려? 나가 필요허다......이거쥬?”

 

등 뒤에서 들려온 익숙한 음성에 그쪽을 돌아보니, 주우가 팔짱을 낀 채로 우리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마침 잘 된 것 같군. 주우는 어디서부터 들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인기척을 내고나서 곧바로 우리가 앉은 평상에 걸터앉는걸 보니, 우리의 대화를 어느 정도는 유심히 들은 것이 분명해보였다. ...... 그쪽에서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시간을 더 끌 필요는 없는 것 같군. 나는 가게 주인에게 주우 몫의 식사를 더 내와줄 것을 부탁했다. 물론...... 비용은 녀석에게 달 작정이다.

 

, 마침 잘 됐네. 돈 좀 있냐? 개똥도 시세가 있는데, 맨입으로 해주긴 그렇거든.”

당신 스타일이야 지켜봐왔으니 잘 알겄구...... 흰소리는 안할 양반이니 앞으로 들어오는건 내가 사겄슈.”

말이 좀 통하네. 좋아, 어디까지 들었어?”

혁명이 끝나두...... 우덜이 높은 확률로 좆된다는 것 꺼정 들었슈.”

그럼 뭐 들을 말 다 들었네. 진작에 인기척 좀 하지 그랬나?”

...... 지금판국에 그게 중혀유?”

그래...... 대충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선 인식하고 있는 것 같으니 다행이군.”

 

가게주인은 김이 펄펄 끓는 돼지고기를 얇게 썬 요리를 한상 푸짐하게 내왔고, 주우는 내게 술을 따라주었다. ...... 좋아. 이렇게 까지 나오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지. 일단 들을 생각은 되어있는 것 같으니, 일단 이야기를 해보자. 나야 제안만 하는 사람이고, 받아들일지 말지는 고객님의 몫이니, 나는 그저 내가 아는 바를 이야기 하면 그 뿐이다.

 

너네 말 중에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라는게 있다면서?”

 

 

 

 

 

 

 

Channel 2. 아이리스

 

로키군은 천천히, 하지만 차분하게 자신의 말을 해나갔고, 저희는 그 방대하고도 심도깊은 생각에 압도되어 감히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그가 종종 무언가에 대해 알은체를 할 때면 IATP연수라는 것을 들먹거릴 때가 있었는데요.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깊은 내용을 가르치는건 아니라고 여겼었어요. 그들이 하는 일이 일인지라...... 그냥 수박 겉핥기식으로 진행되리라고 생각했었지요. 하지만 그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암살자라는 집단이 인간이라는 대상을 얼마나 깊게 연구했는지를 엿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인간과 다른 존재로 규정하지만, ‘인간과는 떨어져 지낼 수 없다는걸 인정하고, ‘인간과의 공생을 위해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연구를 해 왔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어요.

 

“...... 너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는 훨씬 더 판이 커지고, 그 대가로 너희가 예상했던 것 보다 더 많은 피를 흘리게 될 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너희 라스알하게인들이 존속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거다.”

“.......”

 

주우는 로키군의 말이 끝나자 그에게 넙죽 엎드렸습니다. 예상치 못한 행동이었지만, 저는 물론이고 임꺽정씨와 이봉학씨도 감히 그의 행동을 말리지는 못했어요.

 

고맙슈......”

뭘 고마워해. 이 방식을 선택하는 순간, 너희 겨레에 더 많은 피를 불러올 것이 뻔한데.”

그래도, 댁 덕분에 적어도 우덜은 생각이 좀 깨친거 같어유...... 장로들 끼고 백날 떠들어대는 것 보담...... 훨씬 더 눈앞이 선명해진 것 같으요.”

여기서 조언을 주자면...... 당신들이 그들을 움직이려면 그들이 매력적으로 여길만한 것을 제시해야 한다는거야. 나는 당신들의 고장에 온지 채 2주도 되지 않아서 이 고장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바가 없어. 하지만 대륙이 이곳을 어떻게든 대륙의 질서 속에 넣으려고 무던히 애를 쓴다는 건, 그들이 그렇게 할 만한 이유가 있다는 거겠지. 아마 그것이..... 반대로 그들을 움직이게 만들 수도 있을 거다.”

알겄슈...... 명심하겄슈.”

“......생각해보믄 말여.”

 

팔짱을 끼고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던 임꺽정씨는 침묵을 깨고 이 대화에 참전할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라믄 댁이 이번 진공작전에 꼭 참가를 해줘야 되겄구먼.”

“.......”

암만해두 댁의 일거수일투족이 그들의 감시망 속에 있을 것인디...... 댁이 진공작전에 참가를 해야, 갸덜도 우덜헌티 관심을 가질거 아녀.”

“.......”

 

임꺽정씨의 지적에 로키군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역으로 되치기를 당했다는게...... 이런걸 말하는 건가 봅니다. 그는 철저하게 관찰자적인 입장에서 자신의 생각을 피력을 했지만, 그가 주장하는 바가 현실화되기 위해선 일종의 계기가 필요하다는 걸 역설을 한 셈이 되어버렸으니까요. 아마 임꺽정씨는 그걸 지적함으로써 로키군이 빼도박도 못하게 라스알하게인들의 혁명에 발을 담그게 하려고 한 것 같지만, 저와 로키군은...... 이미 결심을 했는걸요. 이곳의 일을 돕기로 말이죠. ...... 로키군은 별로 마뜩찮아 하긴 했지만 말입니다.

 

...... 좋은 지적이야. 역시 생긴 것 보단 영리하군. 나름 회심 발언을 한 것 같긴 한데, 나는 이미 이 녀석과 함께 당신들의 혁명을 돕기로 했다. ...... 녀석은 최대한 피를 적게 흘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한다는 전제조건을 붙이긴 했지만. 어때? 네 바람과는 다르게 아무래도 피를 많이 흘리는 쪽으로 갈 수 밖에 없게 된 것 같은데......”

 

하하, 이젠 공이 제 쪽으로 넘어온 건가요? 임꺽정씨도 임꺽정씨지만, 로키군도 영리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임꺽정씨의 대답을 흘리면서 책임을 제 쪽으로 귀신같이 넘기잖아요. 맞아요. 저는 애당초 이 혁명에 동참하기로 한 이유가 이들이 흘릴 피를 최소한으로 하고 싶었던 거였지요. 그런 점에선 로키군의 제안은...... 받아들이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로키군의 계획은...... 찻잔속의 태풍이 아닌, 대륙 전체를 집어삼킬지도 모르는 거대한 파고를 만들려는 것이니까요.

 

만약 제가 그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이라면...... 저는 아마 잠시만 쉬고 다른 대안을 찾아보자고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말이죠...... 그렇게 해서 잠시 동안 시간을 벌지는 몰라도. 그가 제시한 생각 외에는 라스알하게인들 앞에 놓인 이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 지을 만한 방법은 없다는걸 인정하느라, 또 다시 시간을 허비하게 되겠지요. 그의 생각은 잔인한 만큼이나...... 확실하다는건 부정할 수가 없을거 같습니다.

 

저는 이런 제 생각을 그에 걸맞는 언어에 맞추어 로키군에게 전달을 했고, 로키군은 묘한 표정으로 너도 어쩔 수 없이 현실과의 타협을 선택하는군.’이라고 주억거렸습니다. 뼈아픈 비판이었지만..... 사실이었기에 부정은 할 수 없었습니다. 뒷맛이 찝찝했지만...... 제가 안고 가야 할 수밖에 없었지요.

 

 

 

 

 

 

 

Channel 1. 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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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쪼깐 빡세쥬? 안미끄러지게 조심덜 허구...... 여거 꽉 잡아유.”

어후 씨! 이래서 우리한테 이런걸 입혔구만!”

 

주우가 안내한 녹림당의 본거지는 그들이 무릉이라고 부르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폭포가에 위치하고 있었다. 1초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쏟아지는 폭포수는 그것이 낳은 연못에 부딪치며 자욱한 물안개를 만들어냈다. 멀리서 볼때는 나름의 감상을 쥐어짜서 그림같다.’라고 표현 할 만한 풍경이었지만...... 막상 그 그림안으로 들어가니 낭만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물안개는 삽시간에 우리 몸을 축축하게 만들었고, 쉴새없이 튀는 물은 눈을 뜨기도 어렵게 만들었다. 이래서 그가 우리를 녹림당으로 데리고 간다고 할 때, 짚으로 만든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힌 모양이었다.

 

으악! 로키군!”

내 손 꽉잡아!”

 

나름 조심해서 걷는다고 걸었겠지만, 워낙 바닥이 미끌거리는 바람에 답답이는 균형을 잃고 허우적거렸고, 나는 녀석의 손을 움켜잡다가, 나까지 휘청거릴 지경이었다. 주우는 우리 둘이 만드는 촌극이 우스웠는지 낄낄거렸다.

 

나가 길이 빡시다구 혔쥬? 여그 줄 놓치면 고대로 미아되는거/유!”

니들이 안전을 중요시 한다는건 알겠지만...... 이거 해도해도 너무한거 아니야?”

그려두 요것만 지나면 한결 나을거/유. 쩌그 보이쥬? 쩌 밑으로 들어갈 것이니께, 머리 잘 가려유. 물이라고 얕봤다가 대그빡 깨지는건 순간이여!”

 

나와 답답이는 주우가 하는 대로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서 폭포로 들어갔다. 하얀 물줄기가 순식간에 우리의 온 몸을 정신없이 두들겨패댔다. 물줄기가 묵직하게 머리를 먼저 때리더니, 우리를 포박하려는 듯이 어께를 짓눌렀다. 우리 몸을 감싼 지푸라기 우의는 몇초정도 물을 튕겨내다가...... 산산이 바스라졌다. 나만해도 이렇게 고역인데 답답이는 오죽할까...... 나는 녀석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어휴! 이젠 다 왔슈!”

 

영원과 같은 순간이 지나고, 우리는 폭포의 안쪽으로 들어 올 수 있었다. 아까의 물줄기가 무색하게도, 이곳은 물기라곤 하나도 없이 바싹 말라있었다.

 

폭포 안쪽에 이런 동굴이 있었네요? ...... 이런건 어떻게 찾아낸 거에요?”

조상의 슬기쥬.”

 

나는 쫄딱 젖은 몸을 흔들며 물기를 탈탈 털어냈다. 어찌나 물줄기가 강렬했는지, 그 짧은 순간에 손이 물에 불어 쪼글쪼글해져있었다.

 

아이고 로키군...... 완전히 쫄딱 다 젖었는데요?”

그야 이 엄청난 폭포를 뚫고 오는데 몸이 성할 리가...... ? 너는 왜 멀쩡하냐?”

...... 그게 말이죠.”

 

답답이는 겸연쩍게 웃으며 자신의 볼을 살살 긁었다.

 

한번 시험 삼아서 아우라를 몸에 둘러 보았더니...... 이렇게 되네요?”

“...... 그 시험을 나한테도 해보지 그랬냐.”

나갈 때는 그렇게 할게요. 미안해요 로키군.”

“.......”

 

뭔가 지독한 농담에 놀아난 기분을 느끼며 우리는 주우의 안내를 따라 동굴 깊숙이 들어갔다. 길은 꽤나 가팔랐고, 제멋대로 돋아난 석순과 종유석이 위태로움을 배가시켰다. 하지만 주우는 이곳을 제집 안방마냥 자유롭게 내달렸고..... 우리는 허겁지겁 그의 뒤를 쫒아갔다.

 

인사혀유. 우덜 녹림당의 장로들이요.”

안녕하세요.”

...... 말씀은 많이 들었어유. 이렇게 뵙게 되니 반갑구먼유.”

 

구불구불한 길의 끝에는 넓은 홀이 있었다. 촛불로 조명을 밝힌 그곳에서 노인 몇 명과, 그들을 호위하는 병사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요렇게 첨 만나 뵙게 되었으니, 정식으로 소개하겄슈. 여그는 아이리스라구 라스알게티서 수녀를 허시는 분이구..... 그 옆에 있는 총각은 로키라구.......”

하샤신이다. 라스알게티 지부에서 활동을 했었고.”

 

내 입에서 나온 하샤신이라는 말에 장로들은 알 듯 말 듯 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표정들을 보니...... 비록 몸은 그곳을 떠났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옛 추억들이 떠올랐다. 그래..... ‘우리는 언제, 어느 곳에 있어도. 모두가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우리는 죽음과 동일시 됐었고, 그만큼 거리껴지는 존재였다. 누구도 우리와 엮이고 싶지 않았고, ‘우리를 적으로 돌리는 건 더더욱 피했었다. 그래...... ‘우리는 그랬었고, 그걸 스스로의 자부심으로 삼았었다. 나도......그랬었다.

 

누추한 분덜이 귀한 곳에 찾아왔구먼...... 반갑슈. 곽재우라 혀요. 이번 삼민 혁명의 참모를 허고 있슈.”

 

붉은 옷을 입은 남자는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답답이는 노인의 손을 꼭 움켜쥐며 예의를 표시하는데 급급했지만...... 나는 우리에게 악수를 청하는 그의 눈빛에 장난기가 형형이 어려있는 걸 발견했다. 우리에게 하는 말투도 말투지만, 결정적으로 내게 악수를 할 때, 나와 손이 맞닿기 직전에 교묘하게 가위를 만들어 보인 것도 내 추측이 옳았다는 걸 증명했다.

 

상당히 재미없는 장난을 치는군요. 당신들 명줄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위태할 텐데, 그런 상황에서 잘도 이런 장난이 나오나 봅니다?”

개그가 재미가 웂었으면 미안허구먼...... 총각 얼굴이 제법 심각혀 뵈길래 기분 좀 풀어 줄라구 그렸슈. 그리고 한 가지 첨언을 하자믄....... 나넌 유머 없으면 못사는 놈이유. 나넌 쥬드거든....... 쎄빠르딤이유.”

 

 

 

 

 

 

Channel 2. 아이리스

 

1624520

 

인사는 이만하구, 이제 본격적으로 야그를 혀보자구유.”

 

주우씨는 박수를 치면서 주의를 환기시킨 뒤에, 걸개에 걸려있던 라스알하게르타의 지도를 꺼내보였습니다. 이봉학씨에게서 라스알하게의 식민사와 그 문자에 대해 배운 퉁박으로 지도에 적힌 글자들을 읽어보면...... ..... .....세울? 아니...... 헷갈리네, 아아 이렇게 읽는군요. ......울시 지도라고 써있는 것 같았습니다.

 

일단 라스알게티 넘덜은 일을 존나게 구찮게 해놨슈. 권력이면 권력이지, 뭐헌다구 권력을 셋으로 쪼개놨다니께유. 우덜이 서울을 완전히 묵었다구 헐러믄...... 이 세 군데를 다 접수를 혀야혀유.”

 

그는 지도에 붉은 색으로 표시해 놓은 지점들을 가리켰습니다.

 

우선 젤루다가 중요헌 총독부는...... 아싸리 선봉대인 재우성이 맡아주셔유. 그라고, 삼민상단은....... 나가 상대 할게유. 마지막으로.......질로 빡신덴디.......”

“8군단 본부 말이에요?”

잉 그러쥬. 여그가 질루 만만치 않을테니 그게 문제유. 아무래두 군단 본부라 방비를 존나게 해놨을 것인디..... 요거는 우짤까유?”

아 갸덜 있잖어. 청석골 넘덜....... 갸덜 보고 맡으라 그려.”

청석골 식구덜만 나서믄 안 될거 같은디...... 거기가 질루 빡시다구 혔잖아유. 최소한 여그를 지대루 갔다가 공략을 할라믄 셋은 가야혀유. 거 뭐냐....... 율이 성네 식구들은 어뗘유? 율이 성네가 저번 빨치산 때두 피해가 질루 적었지 않소?”

음마? 우덜 식구들 보고 총알받이 시킬 일 있냐? 거기가 어디라구 우덜 식구들을 그런 사지로 내몰아? 그라고 주가도 사람이 그라믄 안되지....., 우리가 접때 행주에서 얼매나 고생이 많았냐? 너그가 구원군 늦게 보내가지구 엉? 노인에 애기들에 아낙까지...... 죄다 나서가지구 갱신히 막아낸거 아녀?”

 

율이라고 불린 인물은 주우의 제안에 펄쩍 뛰며 반대의 의사를 내비쳤고, 주우씨는 예상치 못한 반대에 꽤나 곤란해 보였습니다. 그는 다른 인물을 찾기 위해 주변을 살폈지만...... 장로들은 다들 머뭇거리기만 할 뿐, 자신이 나서보겠다고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어요.

 

흐미..... 거사날꺼정 얼마 남지도 않았는디, 왤케 다덜 면발 마냥 쫄아있넌 거여유?”

“.......”

 

부외자로서...... 이런 내부의 일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는건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인 것은 알지만....... 이렇게 대화가 답보상태에 빠져있는 걸 보니 가슴이 답답해져왔습니다. 피해를 입고 싶지 않은 것, 최대한 피를 적게 흘리기를 원하는 건 당연한 것이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은 해요......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모두가 추구해야 하는 것이 답보상태에 빠져있는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해요. ‘고름이 살 되는 건 아니듯모두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일을 회피하면 회피할수록...... 그것의 무게는 은행의 이자처럼 불어나 결국 모두가 고통 속에서 떠안아야 할 테니까요.

 

“.......”

왜 이곳에 당신들의 본부를 마련했는지도 알 것 같군. 당신들만 믿고 피를 흘리는 동료들에게 이런 모습을 들키는 날에는 고개도 못 들고 다닐 테니 말이야.”

 

로키군도 저와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앞으로 나서서 그들의 모습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했습니다. 그의 말에 장로들의 얼굴이 일그러지긴 했지만...... 반박은 못하는 모양새였어요. 주우씨에게서 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만 하더라도 라스알하게의 주민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일 거라 생각했는데...... 실망스러운 게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그리고 주우 네놈의 작전도 허술하기 이를 데가 없구만. 네 녀석의 작전대로 하자면, 우선 라스알하르게타의 성곽을 차지하는 공성전에서 승리를 하는게 우선이지 않나? 공성전에서 승리를 한 뒤에, 저 세 군데를 공략하는 거잖아.”

그쥬.......?”

그럼 공성전은 어떻게 할건데? 그냥 여기 장로들의 휘하 부대원들이 와 하고 몰려가서 성을 포위하고 공격하는건가?”

아무래두....... 그게 정석 아녀유?”

정석은 정석인데...... 괜히 성을 짓고 방어를 하겠냐? 통상적으로 공성전은 성을 차지한 이들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마련이라고. 라스알하르게타는 8군단의 본부가 있는 데다. 휘하에 3개의 사단이 있고...... 너네는 라스알하르게타를 공략함에 있어서 적어도 2, 많게는 8만 명에 가까운 병력과 상대해야 한다는 거다. 통상적으로 성을 공격하려면, 그에 2배 가까운 인원이 있어야 비로소 할 만할거다. 그럼 너희는 최악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16만의 인원이 있어야 한다고. 그런데 이곳...... 무릉이라고 했나? 이 마을의 규모를 볼 때, 그만한 인원이 있을 것 같지는 않거든. 그럼 근본적으로 공성에서부터 이기기가 힘든데 무슨 벌써부터 핵심 지역을 공략할 생각부터 하는거냐?”

“.......”

 

로키군이 몰아 부치자 주우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는 로키군의 말에 반박을 하려다가...... 결국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믄...... 댁의 생각은 워쩐디유??”

통상적으로 다수와 다수의 싸움에선 머릿수가 제일인건 사실이야. 하지만 그게 힘들다면...... 머리를 굴려야지.”

 

로키군의 제안은 그랬습니다. 소수의 인원이 라스알하르게타....... 아니 이젠 장소가 장소이니 그들의 언어로 해야겠네요. 서울로 잠입해 들어갑니다. 그 뒤에, 아까 주우씨가 작전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언급했던 세 곳의 핵심장소를 동시다발적으로 공격을 하여 혼란을 일으키자는 거 에요. 그때 혼란을 수습하느라 병력이 분산되어 있을 때, 그때 주력 병력들이 성의 외곽을 공격하는 것이지요.

 

집단의 지성은 개인의 지적 수준을 따라잡지 못한다고 하지. 그리고 군중의 신인 판은 혼란을 의미하는 패닉의 어원이 되었고....... 아무리 견고한 성곽으로 둘러놓았어도, 그 내부에서 혼란이 일어난다면, 그들은 스스로 무너질거다.”

그러믄...... 내부에서 혼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워쩌게유? 적진 한 가운디서 그 난리를 치믄......”

아마 쉽게 살아남지는 못하겠지. 그러니 정예 중에 정예를 거기로 보내야 하는 거야. 최악의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지성과 신체적인 능력을 겸비한 인물들 말이야. 그들이 시간을 끌어주면 끌어줄수록, 밖에서 밀고 들어올 수 있는 확률은 더욱 더 커지겠지.”

“.......”

 

주우는 장로들을 둘러봤습니다. 장로들도...... 로키군의 생각에는 어느 정도 동의를 하는 눈치였어요. 그편이 자신들의 휘하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피해가 적게 갈 거란 생각이겠지요. 로키군도 그런 분위기를 읽었는지, 자신의 말에 부연을 했습니다.

 

라스알하게 사람들은 보편종교를 믿지는 않지. 아마 나름의 종교가 있을거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그걸 심리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유언비어가 좋을 것 같아. 뭐 절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과 결부시킨 뒤에,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식으로 말이야. 예를 들자면 이런게 좋겠군. 멕베스라고 희곡이 있는데...... 멕베스라는 인물이 마녀들을 통해 악마들로부터 신탁을 얻지. ‘멕베스 너는 버남의 숲이 던시네인을 넘지 않는 한 결코 지지 않는다.’라고 말이야. 숲이 발이 달리지 않는 한 움직일 리가 없으니 자신은 무패 할 것이라고 자만을 했지만, 멕베스의 목을 자르러 오는 군세가 자신의 몸에 나뭇가지를 꽃고 움직여, 마치 숲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고 하더군. 그 모습에 겁이 질린 자들이 스스로 와해되어버렸고 멕베스는 최후를 맞게 되지.”

“....... 상당히 시적인디유? 일개 희곡인데 그게 먹힐까유?”

혼란은 거기에서 부터 시작되는 거야. 사람들은 자신의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에 직면할 때, 공포심을 느끼게 마련이거든. 그리고 그게 예언되어 있는 일이라면....... 그 효과는 더 말 할 필요가 없는 거고.”

..... 여기서 껴들어두 될까 싶긴 헌디. 생각은 괜잖은 거 같어. ...... 예를 들믄 이런 건 어떠겄소? 청계천 물들이 붉게 물들지 않는다믄 서울은 무너지지 않는다. 또 이런것두 괜잖겄네. 황룡사의 불상이 땀을 흘리지 않는다믄 서울은 무너지지 않는다 라든가.”

땀보다는 피눈물이 낫지.”

...... 그편이 더 재수없어 뵈긴 하네잉.”

 

 

 

 

 

 

 

 

Channel 1. 로키

 

좋아유 뭐..... 그렇게 혀 봅시다. 지금이 진공 한 주 전이니께 서울로 몇 명 보내가지구 애덜헌티 그런 노래를 가르쳐 보자구유. 실지로 그런 일이 벌어지믄 갸덜도 제법 놀랄게 분명허니께......”

 

주우는 조금 마뜩잖았지만 대다수의 의견이 내 의견에 수렴하는 것 같으니 자신도 그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녀석이 흔쾌히 받아들이지는 않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찝찝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다. 결정권을 가진 이와 의견충돌이 발생할 때는 종당엔 그 이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게 좋다는 마스터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만약 그가 100% 만족하지 못하고 단지 여론에 밀려 그걸 수용하게 될 경우에는...... 그 혹은 그녀는 높은 확률로

 

대신에 조건이 있슈.”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말은 해봐라. 나도 이 녀석과 약속 한 것이 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최선을 다해보도록 하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의견에 반기를 든 이에게 보복성 조치를 취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지. 단지 찜찜한 기분이 아닌, 이런 가르침을 확실히 회상할 수 있었다면, 나는 아마 일단 말은 해봐라.’라는 멍청한 발언은 하지 않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말은 내 입밖을 떠나 그들의 귀에 들어가 버렸고, 나는 내 손으로 말의 족쇄에 발을 채워버리는 짓을 하고 말았다. 주우는 내 대답에 득의연한 얼굴로 자신의 조건을 제시했다.

 

내부의 혼란을 일으키는건....... 댁이 나서줘야겄소.”

“.......뭐 임마?”

아까츰에 댁이 댁의 입으로 말 허지 않았슈...... 아마 그런걸 적진 한가운데서 하믄 살아남기가 힘들거라구. 그래서 정예중에 정예를 보내야 할거라구. 우덜은 빨치산 활동을...... 많이 혔다구 혀도, 결국은...... 민병대유. 댁 말대루 우덜이 8만명의 살인 기계를 이겨낼 도리는 없는거/유...... 우덜도 그건 인정할게유. 그라믄...... 결국 정예중의 정예가 없다는건디...... 댁은 아까 스스로를...... 하샤신이라구 허지 않았슈? 우덜두 하샤신이 어떤 넘덜인지는 잘 알지. 사람 죽이는걸 업으로 삼는 프로 중에 프로 아녀? 그런 분이 우덜을 돕는다구 혔으니...... 우덜로서는 이만한 좋은 인재가 어디있갔슈?”

......”

 

결국 내가 내뱉은 말들은 그대로 부메랑이 되어 나를 향해 날아온 셈이다. 나는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장로들의 기색을 살폈지만, 미농지가 형님대접을 할 정도로 귀가 얇은 이 노인장들은 주우의 말을 듣고는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 정말 마음 같아서는 약속이고 나발이고 다 뒤집어엎고 그들을 죄다 골로 보내버리고 싶었다. 다만...... 그놈의 약속이 내 손을 꽁꽁 묶어두는 게 문제였다.

 

잘 생각해 보는게 좋을걸? 나를 믿을 수 있겠나? 내가 만약 당신들을 배신하고, 이 작전을 그대로 밀고하면 어쩔 생각이지?”

글씨유...... 지가 볼때넌 댁은 그렇게 허질 못할걸유?”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개소리를 지껄이는지 모르겠군.”

글씨......? 개소린지 아닌지는 끝까지 들어봐야 아는거 아닌감유? 나가 알기로 댁언...... 울 아부지헌티 받아야할 물건이 있는 걸루 알구있는디......”

“......”

만약에 댁이 딴집 살림 차려버리믄...... 그건 파기되는거쥬. 영영 말이유.”

“......씨1발 놈이.”

 

입에서는 거친 말이 튀어나왔지만...... 그건 그 말을 입에 담은 나 스스로도 동굴을 구르는 돌 소리만큼이나 공허하게 느껴졌다. 주우는 내 말을 듣더니 만족스러운 듯 껄껄 웃어젖혔다. 그래...... 그럴 것이다. 그는 내 입에서 나온 욕을 항복의 의미로 받아 들였을 테니까. 실제로도...... 그런 의미로 말한 셈이기도 하고.

 

왜 주우를 아는 이들이 그를 가리켜 주가놈이라고 비아냥 거렸는지...... 그 이유를 이젠 절절이 실감할 수 있었다. 녀석은 비열하다 싶을 정도로 머리가 좋았다.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을 단 몇 마디의 말과, 그걸 뒷받침할 명철한 상황판단을 가지고 순식간에 뒤집어 버릴 정도로 말이다. 그의 편에 선다면 이런 그의 말에 카타르시스를 느껴왔을 테지만, 그의 반대편에 선 이라면....... 이런 그의 달변을...... 이브를 꼬여낸 뱀의 혓바닥처럼 가증스럽게 느껴왔을 것이다.

 

좋아...... 내가 뱉은 말이 있으니. 그렇게 하도록 하지. 그럼 내 쪽에서도 조건이 있다. 기왕 할거면 나도 개죽음 당할 생각은 없으니, 너희에게 받아낼 건 확실히 받아내야겠거든.”

 

 

 

 

 

 

 

Channel 2. 아이리스

 

로키군이 주우씨에게 제안한 내용은 크게 두 가지 였습니다. 첫 번째는...... 물자에 대한 것이었어요.

 

일단 작전을 운용하려면 몇가지 장비가 필요하다.”

그려유. 뭐 말해보셔유. 뭐가 필요헌디유?”

저질 휘발유 몇통과, 그와 동일한 양의 벤젠이 필요해. 거기에 스티로폴 조각과, 공병들이다. , 거기에 붉은 물감도 조금 필요할 것 같군.”

“......그게 다여유?”

일단 장비로는 그래.”

 

로키군의 말을 들은 주우씨의 표정이 꽤나 묘해졌습니다. 남의 생각을 읽는 재주는 없지만, 로키군이 말한 것들을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게 그의 생각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싸구려 잡동사니로 뭘 하려는 거지?’가 아닐까요? 내부에서 혼란을 일으키겠다고 호언장담을 한 사람이, 그런 잡동사니들을 요구한다는 게 듣는 저로서도 이해가 되질 않았거든요. 저라면 그에게 대체 그런 잡동사니로 뭘 하려고 그러냐?라고 물어볼 테지만, 주우씨는 더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알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 더 필요한거는 없슈?”

장비는 그걸로 됐고, 사람이 좀 필요하다. 나 혼자서는 그 모든 일을 다 하기 어려우니. 나를 도와줄 사람을 몇 명 붙여줬으면 좋겠군.”

정예중에 정예루 다가 말이쥬?”

그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둘이면 충분하다.”

음마..... 셋이서 한 도시를 뒤짚어 엎겄다라...... 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어갔는지 당최 알 도리가 없네유. 으디보자...... 어디 어느 식구가 한 번 나서볼려유? 나 같음 궁금해서라두 사람 좀 보낼거 같은디.”

“......”

 

주우씨는 장로들을 둘러보았지만, 장로들은 아무런 대꾸가 없었습니다. 로키군의 생각을 들을 때만 하더라도 괜찮은 생각인 것 같다고 하던 이들이...... 직접 사람을 보내려고 하니 망설이고 있는 꼴이라니, 정말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쯤 되면 주우라는 사람에 대해 회의감이 들 정도입니다. 대체 이 사람은 무슨 이유로 대장의 자리를 맡고 있는 걸까요? 이렇게 그의 말이라곤 듣지도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대장을 맡게 되었는지가 의문입니다. 그냥 저 장로들이라는 겁쟁이들은...... 실패를 염두하고 있는게 아닐까요? 만약 자신들의 거사가 실패로 돌아가게 되면, 그 책임을 떠넘길 사람을 찾았고, 그게 바로 주우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떻게 생각을 하건말건 주우씨는 개의치 않았고, 몇 차례 공허한 말을 던진 후에 로키군과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워째유.....? 이거 나서겠다는 사람들이 없네.”

“.......”

, 그라믄...... 그간 댁덜하구 살 부대끼고 살던 청석골 식구들은 워쪄유? 그 양반 들이믄 옛 정이 있어서라두 댁덜을 돕것다구 나설거 같은디.”

그래 뭐...... 크게 기대는 안 되지만, 딱 그 기대만큼의 일만 시키면 되니까. 상관은 없어. 어차피 중요한건 내가 다 할 생각이다.”

아따 사람이 참...... 욕심이 많네잉. 그려두 협력혀봐유.”

내 식의 협력은 그래. 가지고 있는 능력만큼만 해주면 된다.”

로키군...... 그럼 저도 갈게요.”

“.......”

 

로키군은 저를 똑바로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역시나 평소대로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와 함께 해온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 무표정한 얼굴 가죽 아래, 휘몰아치고 있을 생각들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았어요. 일단 저에 대한 원망이 있겠죠. 제가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면 아마 그는 받아야할 물건을 어떻게든 받아낼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리고 한편으론......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을 거에요. 모두가 그를 위해 나서지 않았지만, 제가 그와 함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니까요. 그렇죠 로키군?

 

어차피 너는 나랑 한 세트야...... 설마 내가 적지 한가운데에서 피똥 싸게 고생할 동안 여기서 편하게 기도나 하면서 날 기다릴 생각이었냐?”

아니...... 이럴 때는 감동받았다. 고맙다라고 말하는 게 맞는 거 아니에요?”

그래 알았어. 고맙다.”

......진짜.”

역시 부부 금슬이 좋네유.”

이게 금슬이 좋은걸로 보여요?”

암말두 안하구 있는 것 보담 훨씬 낫쥬. 그릇 깨지는 집구석이 고요한 집구석 보단 나은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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