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가지 인생 - 65

갑과을 작성일 18.04.19 00:3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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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1. 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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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알하르게타 진공작전은 성공했다. 주우와 녹림당은 라스알하르게타에 입성했고, 총독은 도주를 시도하다가 시민들에게 붙잡혔다. 공식적으로는 효수라고 하여, 머리가 잘리는 형을 받았다고 발표했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총독을 붙잡은 시민들에게 온몸이 찢겨져서 죽었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다녀왔다.”

다녀오셨어요?”

 

답답이가 피곤에 절은 얼굴로 나를 맞아주었다. 녀석은 침대에 누워있는 주설의 머리맡에 앉아, 그녀를 간호하고 있었다.

 

상태는 어떤거 같아?”

여전해요......”

 

답답이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하기사, 녀석으로서도 상당한 스트레스일 것이다. 환자를 돌보는 것도 보통일은 아니겠지만, 시대가 시대인 만큼 밖에 함부로 나가질 못하고 마냥 갇혀있는 상황이 녀석에게는 정말 고통스러운 노릇일 것이다. 녹림당이 점령한 라스알하르게타는, 그간 억눌려온 라스알게티인들과 그 부역자들에 대한 분노가 활화산처럼 터져나오고 있었다. 미처 피하지 못한 이들은 라스알하르게타 시민들에게 붙들려 린치를 당했고, 그들의 집은 불탔다. 재산이 약탈당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라스알게티인인 답답이가 거리를 걷는 것은 사실상 자살행위에 가까웠다. 그건 그간 라스알게티인들의 부역자 노릇을 해왔던 주설에게도 해당되는 내용인지라, 이들은 이 헛간에 며칠째 갇혀있는 신세였다.

 

나야..... , 태생적으로는 프로하기온인이니, 넘실거리는 분노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셈인지라, 두 녀석들에 비해서 비교적 자유롭게 내왕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이 정도면 되겠지?”

......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면 한 사흘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사흘이라......”

 

암시장에서 물건을 조달해왔다. 답답이는 내가 턱없이 적은 양의 물건을 가지고 온 것이 마음에 걸려하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이거라도 먹을 수 있는게 어디냐라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상황이니까......

 

답답이는 내가 사온 물건 중 전투식량에 손을 뻗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라스알게티 군은 참으로 신기한 걸 많이도 만들어냈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닐 팩에 쌀이 담겨있는 것에 불과하지만, 여기 위쪽에 있는 끈을 당기면...... 순식간에 고열이 발생하면서 끓어오르거든. 그렇게 약 1분을 기다리면 사람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조리가 되거든. 녀석은 그렇게 만든 밥을 삼등분 하였고, 막자사발에 그걸 담아 물을 탔다.

 

먹어요. 주설씨...... 로키군이 사왔어요.”

“.......”

팔을 잃은 건 참 안된 일이지만...... 그렇다고 주설씨의 인생이 끝난 건 아니잖아요. 이걸 먹고 조금이라도 힘을 내야......”

안 먹어유.”

“......”

생색내고 싶진 않지만, 이걸 사오느라 내가 한 고생과 비용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을 해보는 게 어때?”

누가 그걸 해달라고 혔슈?”

그렇진 않았지만...... 너는 내게 살려달라고 울고불고 난리를 쳤었지.”

 

답답이는 내 말에 말없이 힐난의 눈빛을 보냈지만, 나는 아마 녀석이 내 옆구리를 종주먹으로 때린다고 해도 그만 둘 생각이 없었다. 답답이의 말 대로다. 팔을 한쪽을 잃은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책임을 어느 정도 느끼지만, 언제까지나 비극의 여주인공 행세를 하는 꼴을 지켜봐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죽을 지경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졌으니, 최대한 살아남는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비가 내리는 날 멋모르고 지상으로 기어 나온 지렁이도, 해가 뜨면 어떻게든 자신이 나왔던 구멍으로 다시 들어가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친다. 주설은 한쪽 팔을 잃었지만...... 지렁이 보다는 상황이 더 나은 편이 아닌가. 이대로 비탄에 젖어서 자포자기를 한다는 것은...... 모처럼만에 얻은 생에 침을 뱉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땐 내가 미쳤는 갑쥬.”

아닐걸? 내가 그걸 증명해 볼까?”

그만둬요 로키군.”

인간이 왜 비극을 보는지 아나? 그 과정과 결과는 슬픔이라는 감정을 만들어낼지 몰라도, 그것이 언젠가는 끝이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삶은 그렇지가 않지......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든지, ‘오래도록 불행하게 살았습니다.’는 다 개소리야. 슬픔에 젖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감정이라는 일시적인 진폭이 생의 전반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나? 만약 그렇게 계속해서 비탄에 젖어있는 사람을 본다면 난 이런 말을 해 줄 거다. 당장 그딴 발 연기 따윈 집어 치우라고.”

 

주설은 내 말에 고개를 돌려버렸고, 그 행동이 나를 폭발시켰다. 나는 한쪽 손으로는 답답이의 손에 들려있던 사발을 낚아챘고, 다른 쪽 손으로는 주설의 턱주가리를 움켜잡았다. 녀석은 내 손아귀에서 풀려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나는 결코 한쪽 팔이 없는 사람에게 휘둘릴 정도로 허접한 편은 아니었다. 나는 손가락에 힘을 주었고, 녀석은 고통에 뻐끔뻐끔 입을 달싹였다. 나는 녀석이 입을 벌린 틈에 사발에 담긴 밥을 녀석의 입에 흘려 넣었다.

 

우웁! ! 우으읍!”

나한테 침을 뱉고 욕을 해도 좋다. 하지만 그건 니가 일단 여기 있는 쌀알 한 톨도 남김없이 다 삼키고 나서 해도 늦지 않아.”

그만해요!”

 

답답이는 더는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 가슴을 탕탕 쳤지만, 나는 그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이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대한 합리적인행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련 속 여주인공의 푸념 따윈 더는 들어줄 여유가 없어. 우린 여기에서 탈출을 해야 해.”

 

 

 

 

 

 

 

Channel 2. 아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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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키군의 강제급식에 주설씨는 발버둥을 치며 반항을 했지만, 로키군은 그것을 그만둘 생각은 전혀 없었고, 결국 그녀는 로키군의 힘에 밀려 그가 먹이는 미음을 꿀떡꿀떡 삼켜야만 했습니다. 저는...... 그 지옥도와 같은 모습을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지요.

 

파하아!”

그래, 결국 그렇게 먹을거. 다음부터는 줄 때 곱게 먹었으면 좋겠다.”

 

로키군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지만...... 그녀는 조각상 마냥 굳어버려 그 자리에 오도카니 앉아있었습니다. 그녀는 숨을 쉬는지 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미동도 없었지만...... 눈에는...... 빨갛게 열기가 들뜨기 시작했지요. 그녀의 눈에서는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

 

저는 그녀를 끌어안고 사과를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있었어요. 나무 등걸을 끌어안는 것 같은 차갑고도 어색한 기분이었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견디질 못할 것 같았습니다. 한때나마 불타오르던 창고를 보며 아름답게 타오르네.’라고 생각했던 제 자신이 너무나 미웠거든요. 지독한 부채감이 저를 짓누를 때 마다, 저는 그만큼 힘을 주어 그녀를 끌어안았어요. 하지만..... 그렇게 발버둥을 쳐대도 제 마음은 단 1g도 가벼워지질 않더군요.

 

이따위 신파극은 그만하자고. 세상이 뒤집혔고, 그것에 휘둘리다보니 뭐가 뭔지 혼란스럽겠지만, 우리가 거기에서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젠 후자를 위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고.”

주설을 찾아라! 그녀를 죽여라!”

 

로키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헛간 밖에는 성난 군중들의 구호가 우리를 향해 다가왔습니다. 로키군의 얼굴이 일순간 굳어지고, 저는 재빠르게 주설씨의 입을 틀어막았어요. 요 며칠간 그녀를 찾는 시민들의 외침에 그녀는 거의 신경쇠약 직전까지 몰렸거든요. 로키군도 눈치있게 그녀의 귀를 막았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녀는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피우거든요. 마치 나는 여기 있으니, 어서 날 찾아서 죽여 버려라!’라고 시위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저는 눈을 질끈 감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그녀가 소리를 지르지 못하도록 입을 꽉 틀어막았어요. 그녀는 발버둥을 치며 제 손바닥을 깨물었습니다. 주인을 잘못 만난 죄로, 제 손바닥은 그녀와 저의 촌극에 휘말려 출혈과 지혈을 하루에 몇 번이고 반복을 하는 신세가 되어버렸지요.

 

“......죽여라!”

“......하아. 정말 못할 짓이네요 이것도.”

그래, 이곳을 탈출하기만 하면, 그녀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될 거다.”

일단 그렇게 하려면...... 주설씨가 몸이 하루빨리 회복이 되야 할 텐데 말이죠.”

 

로키군은 우리에게 자신이 알아본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녹림당은 성에 입성한 뒤에, 8군단 휘하의 사단에게 파발을 보냈다고 해요. ‘군단 훈련이 라스알하르게타에 있으니, 혹여나 오해하지 말 것.’이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죠. 아마 그 작전이 먹힌다면, 8군단의 사단들은 일전의 공성전을 훈련 상황으로 인식하게 되겠지요. 물론...... 그건 임시 방편일 뿐, 언제까지나 지속될 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리고, 휘하 사단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라스알하르게타 자체는 평소의 모습으로 빠르게 복귀시켰다고 해요. 프로하기온까지의 열차편도 중단시키지 않았고, 라스알하게의 물자들은 여전히 대륙 종단선을 타고 왕도로 흘러들어가게 끔 말이에요.

 

그들의 시선을 피하면서 시간을 최대한 벌겠다는 작전이지만, 그건 주설씨에게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겠죠. 물건의 오고감이 통제되지 않는다면, 그건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거니까요. 로키군의 생각은, 그녀가 건강을 회복하고 나면, 암시장에서 만든 위조 신분증을 가지고 이 도시에서 탈출을 하자는 거였어요. 그러한 생각은 우리 뿐 만 아니라, 라스알하게에 상주했던 라스알게티인들, 그리고 그들의 부역자들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탈출 경로인 모양이었습니다.

 

꿀통에 꿀이 떨어지기 전에 최대한 빨아놓는게 맞다고 본다.”

틀린 말은 아닌거 같네요.”

그러니까 주설 너도 얼른......”

탕탕탕!”

“......?”

탕탕!”

“............ 뭐죠?”

.”

 

로키군은 소리가 나지 않게 살금살금 걸어가서 문틈으로 건너편을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주설씨의 입을 막고 최대한 소리를 죽였어요. 문틈을 건너보는 그의 눈이 서서히 가늘어졌다가...... 순식간에 커졌습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있었지만, 저는 그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하나의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건 바로......

 

좆됐다. 녹림당이야.”

?”

누군가가 불어버린 모양이야. , 일단 저길 열자고!”

 

로키군은 사뿐하게 우리쪽으로 뛰어들더니, 침대 밑 장판을 열어젖혔습니다. 거기엔 바깥으로 통하는 비밀 통로의 문이 있었거든요.

 

일이 복잡해졌지만, 지금 바로 탈출을 하자.”

...... 괜찮겠지요?”

그건 나도 뭐라 말을 못하겠군.”

 

로키군이 비밀 통로를 여는 동안, 저는 주설씨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녀의 입을 어찌어찌 막는데는 성공했지만...... 애석하게도 그녀의 귀를 막지는 못했어요. 그녀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소음은 여과없이 그녀의 귀를 타고 흘러들어왔고, 그녀의 치아는 더욱 더 교묘하고 끈질기게 제 손바닥을 물어뜯었어요. 저는 포기하면 끝장이라는 생각으로 기도문을 읊었습니다만.......

 

아악! 그만 좀 물어요!”

으아아아아아아아아!!”

 

더는 참지 못하고 그녀의 입에서 손을 떼는 순간, 그녀는 그 가냘픈 몸에서 나오리라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휴...... 기차를 몇 번 타보고 나서 그 의미를 절절이 깨닫게 된 메타포 하나가 있는데요. 바로 기차 화통을 삶아먹었다.’라는 것입니다. 정말 그녀의 입에서는 기차화통을 찜쪄먹을 정도로 큰 소리가 우렁차게 쏟아져나왔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우리에게 있어선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죠.

 

우지직!..... !”

 

마른나무가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뜯겨져 나가면서 녹림당 당원들이 우리의 방으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칼과 창을 우리에게 들이대며, 더는 반항하지 마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상황이 참으로..... 난감하게 됐습니다만 뭐...... 어쩌겠어요. 얌전히 손을 들고 항복하는 수밖에.

 

 

 

 

 

 

 

Channel 1. 로키

 

주설은...... 비록 라스알하게 인들에게는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 질 수는 없는 존재이겠으나

 

여기유?”

, 그란거 같네.”

 

인물은 인물인 모양이다. 그녀 하나를 잡겠다고 이 세평 남짓한 방이 터져나갈 정도로 수많은 병사들이 들이닥친걸 보니 말이다. 그들은 라스알게티 정규군의 군복을 입고 있었지만, 약장과 부대표지가 제멋대로였다. 약장은 병장급인데 부대표지는 대대장의 것이었다. 저런 엉터리 짜깁기로 의관을 갖추고 있으니...... 그들의 정체가 확실히 짐작이 갔다.

 

야 이거..... 못보던 새에 신수가 훤해졌어?”

누구.....?”

시상에...... 안직도 나가 누군지 몰겄어? 나여. 녹림당 행동대장 임꺽정이.”

 

나를 포박한 이는 다름 아닌 임꺽정이었다. 세상에 옷이 날개고, 지위가 사람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진작부터 들어왔지만, 이토록 한 인물이 극적인 변화를 겪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더벅머리에 얼굴윤곽이 드러나지 않던 더러운 털복숭이가, 수염을 깎고나니 동인인물이라고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싹 바뀌었다. 수염 때문에 얼굴이 가려져 있어서 알아보지 못했었는데, 그의 얼굴은 개미가 한 수 접고 들어갈 정도로 갸름한 편이었다. 아무리 사람이 3일 동안 못 보다가 다시 만났을 때는, 눈을 비빌 정도로 성장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정도면 반칙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는 내 반응이 꽤나 만족스러웠는지 털복숭이 시절에 종종 봐왔던 껄껄거리는 웃음을 터뜨리며 나를 꽁꽁 묶었다. 삼손은 머리터럭을 자르면 힘을 못쓴다는데, 그건 이 위인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는지, 수염을 깎아도 힘은 그대로였다. 나는 결박이 당한 채 내 주변을 살폈다. 답답이도..... 그리고 주설도 다른 이들에 의해 포박되어 꼼짝없이 붙들렸다. 하아..... 결국 주설 녀석이 비련의 여주인공 행세를 하는 데 장단을 맞춰주느라 도망칠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쌔빠지게 고생이란 고생은 다 허고 이게 뭐여...... 막판에 줄을 잘못서서 이게 뭔 꼴이냐고.”

“......”

 

그는 빈정거림과 동정심이 섞인 투로 내게 말했지만, 나는 그것에 반박은커녕 수긍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 답답이 녀석의 고집에 이리저리 휘둘린 내 잘못이다. 진작 이리될 줄 알았으면 피할 수 있을 때 피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질 않았다...... 그건 모두의 안전을 책임진 내가 내 책무를 져버린 것이다. 결국 모든 건 나의 잘못이었다.

 

주우님 오셔유.”

 

전령으로 보이는 이가 방에 들이닥치면서 주우의 등장을 알렸고, 임꺽정은 벌떡 일어나 부동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 방에 주우가 들어왔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가 들어오자마자 방의 공기가 달라졌다. 이전까지만 해도, 이 방에는 악의가 어린 장난스러운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지만, 그가 들어오자마자 장난스러운 분위기는 순식간에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로 승화되었다. 모두들 미동도 하지 않고있다가, 그가 오자마자 임꺽정이 대표로 거수경례를 올렸다. 세상에......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주가놈이라고 빈정거리던 이가 이젠 주우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기세로 손을 들어 올리다니...... 그 짧은 기간 동안 세상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내가 정신줄을 놓은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오셨슈?”

...... 야덜은 다 확보 혔슈?”

여따 널어놨구먼유.”

 

주우는 사뭇 꼿꼿한 태도로 우리를 살펴보았다. 주설은 말할 것도 없고, 답답이도 잔뜩 몸을 웅크렸다. 나로서는..... 그닥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저절로 눈이 땅으로 떨어졌다.

 

익숙헌 얼굴들이 많이 보이는구먼......”

 

그는 나를 보며 혀를 끌끌 차고, 답답이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 뒤에...... 주설에게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주설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동상아...... 참말로 고생혔다.”

 

 

 

 

 

 

 

Channel 2. 아이리스

 

저는...... 주우씨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동상이라는 말이...... 제가 생각하는 그 뜻이 맞는 건가요? 동생이 아니라, ‘낮은 온도에 장기간 노출됨에 따라 나타나는 신체적인 손상을 의미하는 거겠죠? 그렇죠? 저는 제 생각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로키군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그의 얼굴에 어린 표정도...... 제가 느끼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보였습니다. 저나 로키군이나 그의 입에서 나온 그 단어의 의미에 대해 큰 혼란을 느끼는 것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

오빠아......”

 

주설씨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혀있었습니다. 잠깐만요, 이게 지금 무슨 일이냐고요. 반 라스알게티를 기치로 건 녹림당의 리더인 주우씨가, 어떻게 친 라스알게티의 대표격인 주설씨와.......

주우씨는 우리에게 사정을 설명하는 대신, 다급하게 품에서 칼을 꺼내 주설씨의 몸에 감겨있던 결박을 뜯어냈고, 끈이 풀어지자마자 그녀를 끌어안고 꺼이꺼이 오열을 했습니다. 주설씨도 주우씨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지요.

 

고상혔다...... 고상혔어.”

 

저와 로키군은 주변을 돌아보았습니다만...... 주변의 녹림당원들의 눈가에 축축한 물기가 맺힌걸 보면, 저희 둘만 모르는 무언가 비밀이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습니다. 이쯤되면, 우리는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지구 한 바퀴를 돌아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두 사람은...... 사실 남매였던 거였습니다. 극과 극은 서로 상통한다는데...... 바로 그 오래된 명제를 이렇게 눈으로 직접 보게 된 거에요.

 

쩌그 두 분도 얼렁 풀어 드려유.”

......”

 

임꺽정씨는 우리 둘을 풀어주고는 아까츰에 놀래킬라고 장난으로 헌 것인디...... 먄혀유.’ 라고 주억거렸습니다. 저희 둘은 얼얼한 팔을 문지르며, 감동적이면서도 조금은 기묘한 감을 숨길 수 없는...... 두 사람의 해후를 지켜보았습니다.

 

많이 놀랐쥬?”

 

한참 만에 감정을 가라앉힌 주우씨는 조금은 계면쩍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사정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의 긴긴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녹림당과 삼민상단은 몸통이 같고 머리가 다른..... 쌍두사와 같은 관계였어요. 그의 아버지였던 주운은 라스알하게의 독립을 위해 2가지 전략을 병행하는 투 트랙 전략을 채택했다고 합니다. 하나는 무장 저항단체인 녹림당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금줄을 대기위한 삼민상단이었어요. 삼민상단의 경우, 돈을 벌기위해서는 총독부에 선을 댈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보니 친라스알게티 노선을 전면에 세웠어야 했던 거에요.

 

그럼...... 저번에 우리가 전해준 브로치가......”

..... 대놓구 전달하믄 의심사니께...... 그런 식으로다가 연통을 삼았었쥬.”

 

주우씨는 주설씨의 어께를 토닥거려주었습니다. 주설씨는 조금 민망한 듯 고개를 수그렸지요. 단 하루도 다 보지 못한 인연이었지만, 제가 본 주설씨는 그렇게 계면쩍어하는 거랑은 거리가 멀었는데, 조금은 새로운 모습을 본 것 같습니다.

 

지는...... 동상헌티 많은 빚을 졌어유. 울 아부지가 계획을 세우믄서 누가 삼민상단을 맡을지 야그를 혔슈. 그띠 지도 존나게 고민혔쥬. 고거를 맡는 순간 역사의 죄인이 되는 거니께...... 그때 우리 설이가 나선거/유. 지가 허겄다구...... 그 때 지는...... 차마 안뎌.’라는 말이 안 나왔어라....... 존나게 비겁헌거쥬. 동상을 팔아가지구 삼민의 영웅이 된 셈이니께유.”

 

그 말을 하는 주우씨의 눈빛은...... 회한과 자괴감으로 잔뜩 일그러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자조가 섞인 것으로 보일 뿐, ‘즐거움이라는 감정이 깔끔하게 잘려나간 것 같았어요. 로키군은 그의 말을 듣다가....... 한마디를 했습니다.

 

그래, 생각해보면 진작에 눈치를 챌 수 도 있었을지도 모르겠군. 구름의 자식이...... 비만 있는건 아니잖아?”

 

 

 

 

 

 

 

Channel 1. 로키

 

주우는 나와 답답이 그리고 주설을 자신의 아비인 주운에게 데리고 갔다. 그는 여전히 혼곤한 잠에 빠져있었다.

 

그러믄 인자...... 약속대루 계산을..... 혀야 헐틴디...... 아부지가 여전히 깨날 생각을 안하시니 문제여유.”

유품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나?”

글씨.... 저희 아부지는 저희에게 혁명에 대한 야그는 혀두...... 그거에 대한 거는 전혀 야그를 안허셨어유.”

애초에 약속을 지킬 수가 없었던 거였군.”

그건...... 먄하게 됐슈...... 일단 우덜은 혁명이 우선이었어서...... 댁헌티 솔직허게 다 야그허믄..... 협조를 않을거라구 생각혔쥬.”

 

주우는 우리에게 자신의 상황과 심정을 솔직히 이야기를 했다. 그래...... 뭐 그 정도면 충분히 자신이 할 해명은 다한 셈이다. 책망을 하고 싶어도 이미 지난 일이고, 결과적으로 잘 된 것이니 왈가왈부를 해서 무엇을 하겠는가. 문제가 있다면 지금 저렇게 산송장처럼 누워있는 저 못난 아비에게 있는 것이겠지.

 

그나저나...... 참으로 매정한 아버지로군. 딸이 병/신이 되던 말 던 자기는 잠이나 자야겠다 이건가.”

아니 고거는......”

미안하지만 주우씨. 물론 아버지가 생판 남에게 욕을 먹는 게 불편해보일지는 몰라도...... 로키군이 남을 위해 화를 낸건 이번이 처음이라...... 표현이 다소 서투를 수도 있어요. 이해를 해줬으면 좋겠어요.”

...... 알았어유. 나두 하샤신에 대한 야그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으니께...... 그 가심팍에.......”

 

주우는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고, 나와 답답이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의 질문에 대한 답을 대신했다.

 

일단...... 나는 이 노인장에게 볼일이 있으니, 그가 깨날 때 까지는 이 방을 지키고 있어야 할 것 같다.”

아니 뭐 저희 아부지가 일부러 주무시는 것두 아니구......”

우리가 너희에게 바라는 거는 다 들어준 것 같은데? 나도 이 사람에게 받을 물건이 있으니, 그걸 받기전까지는 네놈이 걱정하는 것처럼 위해를 가하거나 하지는 않을 거다. 내가 이 방을 지키고 있을테니. 일단 둘만 있게 해줬으면 좋겠군.”

 

주우는 내 말에 반박을 하려다가...... 생각을 고쳐먹었는지 알겠다고 한 뒤에, 자신의 아비에게 인사를 하고 답답이와 주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이제 이 방에는 나와......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노인 둘 만이 남았다.

 

당신의 자식들이 다 나갔고, 이젠 우리 둘 뿐이군...... 어쨌거나, 나는 당신이 욕먹어도 싸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 당신은 자식들에게 과제만 남겨주고 자신은 나몰라라 했지. 그 과제로 인해 당신의 딸이 병/신이 되던 말던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어. 나는 인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그건 알아. 자기 자식을 위해서는 허둥지둥할지라도 뭐든 하려고 드는 게 부모라는 거 말이야. 그런 점에서 당신은...... 부모로서...... 실격이야.”

“......”

 

내 나름대로 가시 돋친 말을 했다고 했지만, 그는 여전히 눈을 뜰 생각이 없었다. 하긴 생각해보니 참으로 멍청한 짓을 하고 있는 셈이다. 내 말을 듣고 있는지 심지어는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확실치 않은 이 노인에게 아무리 악담을 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차라리 라스알하르게타의 석불상과 대화를 나누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실격이라고 혔냐?”

?”

 

내 귓가에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 나는 주변을 둘러봤지만, 내 앞에서 혼곤한 잠에 빠져있는 이 노인말고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 내가 환청을 들은 걸까? 하긴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에 생사의 갈림길에서 생을 위해 줄달음질을 쳐댔고, 그 피로가 풀릴 새도 없이 암시장을 쏘다녔으니 피로가 누적 되도 한참 누적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인간에 대한 이해를 위해 했던 수많은 연구 중에서 인간이 장시간 잠을 자지 못하게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연구도 있었다. 대부분의 피험자들은 3일을 버티지 못하고 잠에 빠졌다고 하는데...... 그 강제적인 셧다운의 직전에 피험자들은 환청을 비롯한 각종 환각을 경험했고, 그로인해 엄청난 공격성을 보였다고 한......

 

이게 환청인거 같냐?”

......”

 

이쯤 되면, 확실히 환청은 아니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알기로 환청은...... 맥락 없는 소음이 귀를 울릴 뿐, 구체적인 맥락을 담은 대화의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거든...... 나는 내 앞에서 자고 있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분명 내 귓가를 울린 이 소리는 이 노인과 관련이 되어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주운을 살펴봤다. 그는 가끔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자신이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나타낼 뿐...... 그 이외에는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는 분명 나에게 말을 걸었다. 대관절......어떻게?

 

들어와라......”

“......?”

 

그의 마지막 환청과 더불어서...... 그의 침대에서 베개가 툭하고 떨어졌다. ..... 베개라...... 나보고 지금...... 잠을 자라는 건가?

 

 

......그래 뭐, 늘어지게 한숨 자고 싶었는데. 마침 잘 됐군.

 

 

 

 

 

 

Channel 2. 아이리스

 

저는 주설씨와 함께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녀는 저와 함께 무릉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어요. 그녀는 마당 한가운데에 높이 자라난 오동나무를 보며, ‘와 이건 내가 진짜 어렸을 때 우리 아버지가 심었던 거에요.’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기도 하고, 마을 어귀의 우물에서 물을 마시면서 아침마다 이곳에서 물을 길어다가 밥을 지었다며 추억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그녀와의 추억여행은 논들의 한 가운데에 흘러가는 개천에서 잠시 휴지기를 가졌습니다. 그녀는 강바닥에서 돌을 주워 물수제비를 했습니다. 팔 한쪽을 잃었지만, 그녀는 제법 능숙한 돌팔매질 솜씨를 보여주었어요. 동글동글한 돌은 수면 위를 통통 튀어 오르며 개천 반대편까지 날아갔습니다.

 

워뗘유? 팔 한 짝 없어두 이만하믄 잘 살겄쥬?”

그래요. 다행이 건강하게 잘 아문 것 같아 다행이에요. 그리고......”

 

몸이 불편해도 그런 밝은 태도라면 어딜 가도 잘 살 거라는 기원 섞인 덕담은...... 제 입으로 꾹 눌러 삼켜야만 했습니다. 어쨌거나 그녀가 그렇게 된 것에는 저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었으니까요. 그런 입장에서 그녀에게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닌...... 결국 저 자신을 위한 것에 불과한걸요.

 

주설씨는 쭉하고 기지개를 켰다가...... 균형을 잃고 버둥버둥했습니다. 저는 그녀가 쓰러지지 않도록 그녀의 어께를 부축해줬어요. 주설씨는 계면쩍었는지 제 부축을 뿌리쳤습니다.

 

요거...... 적응할라믄 꽤 걸리겄는디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니, 그렇게 오래걸리진 않을 거에요.”

그래야쥬. 우덜이 동화책속의 주인공두 아니구...... 야그 끝난다구 우리 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잖아유. 삶은 끝날 때 까지 계속 되는거니께...... 팔 한 짝 없는 것이 아수워두 얼른얼른 적응 혀야쥬.”

당신이 왜 삼민상단을 맡기로 했는지 알 것 같아요.”

.....? 그렇게 생각을 혔대유?”

당신이라면, 사람들의 미움을 받아도, 그걸로 힘들어도 결국은 툭툭 털고 일어날 거라는걸 스스로가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런거 아니겠어요?”

헤에...... 나럴 그렇게 좋게 봐주믄 고맙긴 헌디...... 쪼금 낯간지럽네유.”

 

그녀는 조금은 계면쩍어 하다가, 자신의 아버지 주운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왜 그녀의 아버지가 암살자들의 유품을 가지고 계셨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어요.

 

처음 아부지를 봤을 때넌...... 정말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것 같았쥬. 혼자서 그 많은 사람덜을 쓰러뜨리고..... 메치고......꺾어 버렸으니께. 그려두...... 얄미운 건 어쩔 수가 없었슈. 기왕 구해줄거믄...... 그때 그 주막에서 괴기 한 점이라도 주지는 말여. 그걸 나랑 오빠가 한참을 티 나게 쳐다봐두 끝내 주지를 않더라니께유.”

하하, 참 재미있는 분이었네요.”

......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내 것, ‘내 것이 아닌 것의 구분이 확실한거쥬. 지금도 알지 못하겠는 것이...... 그때 무슨 이유로 우리를 갔다가 도와줬는지...... 끝끝내 말씀을 안하시더라구유.”

그럼 라스알하게 사람들이 식민지배로 고통 받던 것도 처음에는......”

이잉...... 완전 찬바람이 춥다허게 쌩깠었쥬. 그때 그 양반은 당신이랑...... 우리 둘 말고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으니께. 그려두 덕분에 호의호식 잘혔쥬. 나가 울 아부지 닮아서 이재가 밝았어서...... 아부지가 또 돈 냄새는 기가 멕히게 잘 맡으셨쥬.”

 

그리고 그녀는 주운이 라스알하게 혁명...... 아니, 이젠 삼민 혁명이라고 해야겠군요. 거기에 투신하게 된 사연을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다보니...... 참으로 황당했어요. 세상에, 그게 아무리 귀한 대접을 받는 거라고 하지만, 거기에서 혁명이 시작될 줄이야. 아마 그 사실을 그때 그 관리가 알았더라면...... 아마 그 사람은 땅을 치고 후회를 하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가 끝나고...... 저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 마침 떠오른 역사의 애피소드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긴 뭐...... 개 때문에 권좌에서 내려온 여왕도 있는걸요.”

그려두...... 황당한 거는 황당한거쥬. ...... 난중에 역사학자들도 많이 난감하지 싶어유. 퇴역하고 고향을 찾은 프로하기온의 암살자가 조용히 잘 살고 있다가 별안간 혁명의 대오에 합류했다...... 아마 정신 지대루 박힌 사람이라면 ?’라는 질문을 안 던질 수가 없을 것인디...... 어느 누가 그거 때문이라고 짐작이나 하겄슈?”

그건 그래요.”

 

저와 주설씨는 미래의 역사학자들이 골머리를 썩힐 생각에 웃음을 지었습니다. 진실을 목도하게 된다면...... 그들은 난감함을 느낄게 분명하거든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도 하지 못하겠죠. 그래도 그들중 일부가 진실에 접근을 하게 되다면...... 그들은 이 혁명을 삼민 혁명이라고 계속 불러야 할지...... 아니면 밀주 혁명이라고 이름을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에 빠지겠지요.

 

근디...... 울 아부지가 하샤신들의 유품.....?이라고 혔나유? 그걸 가지고 계셨담서유.”

. 그래서 저희가 이 고장에 온 거에요.”

그게 대관절 뭐하는거래유? 오빠두 야그는 혔다마는 울 아부지는 그것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씀을 하신 적이 없어가지구......”

 

주설씨의 질문에 조금은 저도 난감해졌습니다. 암살자들의 주인에게 대략적인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저도 그것을 본 적은 없으니까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물건에 대해 역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이에게 설명하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인 게 사실입니다. 그래도 뭐 어쩌겠어요. 제가 아는 바에 대해서는 설명을 해보는 수 밖에...... 저는 암살자의 주인에게 들었던 기억을 더듬어 최대한 사실에 맞게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제 말을 들은 그녀는...... 제가 그녀의 말을 들었을 때 느꼈던 황당함의 크기만큼이나 비슷한 크기의 황당함을 느낀 듯 했어요.

 

...... 일단 아이리스씨가 말하는 거니께 최대한 믿어보려고 노력은 허겠다마는, 그려두 황당한건 어쩔 수가 없네유. 17세기에 마왕이라니...... 혹시 어디 가서 그런 말은 허지 않는게 좋겄슈. 아무리 좋게 봐줘두 미/친놈년으로밖에 안보일 것 같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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