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3

사랑방거지 작성일 19.01.17 17: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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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큰 사건이 벌어지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조건들이 맞아 떨어져야 한다. 그런데 정작 그런 큰 사건은 이상하게도 아주 작은 사건이 촉발한다.가령 믿었던 친구의 배신이 진세방을 강호로 이끌게 되는데 이 강호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는 정작 본인에게는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는 점이다. 

진세방에게 아내와 친구의 사통은 큰 충격이었을 것인데 진세방의 표정에는 아무 감정도 엿보이지 않았다. 

"고맙다, 친구."

살짝 친구이자 동업자였던 염포등의 표정이 찡그려진다.

"나는 좀 미안한데 자네는 그렇게 당황하는 표정이 아니군."

"미안한 마음도 있어. 친구라면서 우린 대화가 너무 없었어.그래서 그런지 이상하게 화도 나지않고 마음이 편안해. 교교는 좀 아니지만 재산이라면 달라고 했으면 줬을거야."

"하, 정말 예상치 못한 대답이군."

"나는 이제 막 내가 무얼 원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어. 자네 나의 수결이 필요한 일은 없는가?"

흠칫. 염포등은 정말 놀라는 표정이다.그리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그런데 교교, 당신이 원하는 것은 내가 줄수가 없어. 이 항주에서는 말이지."

교교의 눈에서 눈물이 맺힌다.

"이 빌어먹을 자식!"

그녀에게 진세방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자신의 남편에게 아무런 애정을 갖지 못했다.

아니, 자신은 진세방을 무시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자신은 항주의 지배계급이었고 언제나 떠받들려 살았다. 자신에게도 꿈이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았던게 나이도 이제 스무살이 조금 넘었다. 자신은 언제나 아름다웠고 항상 많은 사람들의 시선속에 살았다.그런 시선들이 정말 좋았다.

그런데 혼인을 하면서 그런 시선들이 차단되었다. 집은 여전히 궁궐같고 화려했지만 자신의 미모는 꽃러럼 아름다웠고 돈도 많았지만 단 한가지 타인의 시선이 없었다. 그냥 송부인으로 불리워졌다.

남편이라는 작자는 그저 잠자리만 원했다. 방사를 마치면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길 때가 많았다.

감혹 이것저것 묻곤 했으나 그런것은 자신의 아버지도 충분히 해줄수 있는 일이었다. 하루하루가 답답라고 무료하고 무기력했다. 자신을 자극하는 일도 살아있다고, 느낄만한 일도, 어떤 것도 없었다.

사실 염포등의 불륜은 몇 번 정도까지만 자극을 주었다. 그도 보통 이상의 남자는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불륜이라는 자극은 엄청난 흥분을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그 자극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늘의 일도 염포등이 계획을 말했을 때 크게 놀라지도 크게 흥분하지도 않았다. 그냥 아주 가볍게 응락해 버렸다. 무슨일이 생길지 궁금하기는 했다. 또 당황한 진세방의 표정을 보고 싶기도 했다.

그렇다고 진세방이 진심으로 죽기를 바란것도 아니었다. 한편의 경극을 보러가자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진세방이 가진 모든것은 자신과 돈이었는데 둘 다 자신에게 속한것이었다.

그러므로 자신이 사라지는 것이 진세방에게는 상실감을 안기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생각했기에 일견 재미있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이다.

"나는 가장 믿었던 친구와 사랑하는 아내에게 배신을 당한 가련한 처지가 되었군. 세상에 믿을 놈 없다지만 내가 그 당사자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군.하하하"

그 말을 들은 둘의 표정이 기괴하게 들렸다. 마치 진세방이 자신들을 놀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정말 진세방의 표정은 뭔가 후련하고 시원한 표정이었는데 흘깃 서로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자신들이 느끼는 기분이 맞는지 확인하는듯 했다.

"여보게, 친구. 정말 날 죽일 생각은 아니지? 나는 자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돈이 많다네. 나로 살아간다고 해서 그 모든것을 가질수는 없을 것이고 내 수결을 위조한다고 해서 자네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어떻게 확신 할 것인가?"

염포등의 표정이 당황스러움이 떠올랐다. 진세방의 말은 옳았다. 일단 이 자리를 모면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는 진세방의 것을 가질수는 있겠지만 기껏 자신이 취할수 있는 것은 현물 정도 였다. 진세방의 현물 자산만 해도 엄청난 것이었지만 부동산이나 전장에 위탁한 자산은 또 ㅇㄹ마나 될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고보니 자신의 상황 판단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또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염포등이 지금의 재산을 일구고 항주 상계에 거들먹 거릴수 잇었던 이유가 비로소 진세방의 능력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은 그저 좋은 친구를 만나서 친구의 운과 재주에 편승한 것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다.

염포등이 얼굴을 떨구고 어깨를 들썩거리자 진세방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 이 친구야 울지말게. 자네는 착한 사람이야. 인생이란 그런거지. 가끔 실수도 할 수 있는게야. 이번 것은 좀 심각하기는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는거지. 인간의 욕망이란 그런거라네."

"정말.... 용서해 주겠나?"

"우리 사이에 용서랄게 있겠나. 그나저나 친구. 날 죽게 할 생각은 아니겠지. 칼도 칼이지만 이 독은 정말 지독한 것 같군. 해약은 있는건가?"

"이런!"

염포등이 손을 자신의 가슴에 넣어서 더듬거리더니 자그마한 봉지를 꺼내어 진세방에게 건네었다.

"이게 정말 해약이란 말이지?"

진세방이 냄새를 맡아 보더니 입안에 넣고는 찻물과 함께 꿀꺽 삼켰다.

진세방이 눈을 감고 정말 해약이 맞는지 독이 해독되는 것을 느끼는 순간 둘은 그런 그를 보면서 살짝 긴장한 표정이었다. 

일각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한결 편안한 표정의 진세방이 눈을 떠 둘을 바라보았다.

"이제 자네가 날 좀 도와줘. 칼을 빼면 출혈이 심해질 텐데 깨끗한 무명천과 약고를 좀 가져다 줘야겠어. 당신이 무명천과 약고를 좀 가져오고 자네는 칼을 빼줘. 찌를때 처럼 잽싸게 빼면 될 것이야.참 무명천과 약고는 저기 벽에 있는 서랍장 윗칸에 있어. "

진세방의 말이 떨어지자 염포등은 진세방의 곁으로 다가가고 송교교는 서랍장을 열고 무명천과 약고를 찾아서 역시 그에게 다가가갔다.

무명천을 받아서 곱게 사각형으로 접은 다음 그 위에 약고를 바르고 칼을 뺄 때 바로 상처를 덮기 위해 준비를 마쳤다.

"자 이제 칼을 빼면 되"

염포등의 손이 떨렸다. 찌를때는 워낙 순식간이었지만 빼야 한다고 생각하니 떨리는 모양이었다.

마침내 칼이 배에서 빠져 나가자 음 하는 신음이 절로 났지만 재빨리 준비해둔 약포를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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