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망했으면 좋겠다...

Kirth 작성일 16.06.24 23: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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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좀 어렵다...
한 4개월 전부터는 급여도 위태위태 하고...

이직하고 딱 2년 정도 되었는데..
처음 왔을 때부터 감이 좀 이상하긴했다

담당 팀장이라는 새퀴는 직원들하고 원수처럼 지내고 있었고
직원들은 지들 맘대로 였다
회사가 작아서 사장, 사외이사 말고는 팀장이 짱인 회사인데
관리자라는 새퀴는 회사 일에 관심조차 없었다

잘 아시는 좀 높으신 분 추천으로 입사한 회사라
난 굉장히 의욕적이었다
입사하고 처음 맡은 일이 중국업체와 한국업체들 간의
중계일이었다

정말 거짓말 안하고 정신나가서 일했다
추천입사 시켜주신 분과 그걸 믿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입사시켜주신 이사님과 대표님께
내가 가진 능력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6개월간 정말 새벽까지 일했다
주말도 다 반납했다

말이 팀장이었지 팀원 하나없는 팀이었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다

한국 거래처에서 갑자기 폐업하고 도망가기 전까진
허무했다
중국 업체에서 잘 이해해줘서 회사에 손해는 적었다

정신차려보니 전임 팀장이 퇴사한다고 한다
전임 팀장이 진행하던 프로젝트에 사람이 없어서
그 바쁜 와중에 내가 이력서 다보고 면접까지 보고
팀원까지 늘려줬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다
왜 자기 프로젝트 팀원 늘이는 것도 그 사람은 안했던걸까

고스란히 그 사람이 하던 모든 일이 나에게 넘어왔다
창립멤버라던 그 사람이 나에게 넘겨준건
똥이 되어버린 프로젝트 2개와
이미 쓰레기같은 마인드를 가진 팀원 2명이었다

생긴지 2년이 넘어가는 회사에 인사카드도 없었다
기가 막혔다
우선 회사를 수습하는게 최우선 이었다

팀원 하나를 짤랐다
도저히 회사에 도움도 되지 않을 뿐더러
자기 아빠 빽 믿고 정신나간 짓을 너무 저질렀다
이 타이밍에 대표님은 회사에 관심이 없어진거 같다

이사님께 말씀드리고 회사 재편에 들어갔다
공석인 자리에 신입사원도 뽑았다
엄청 공을 많이 들여서 가장 마음에 드는 친구를 뽑았다

새 프로젝트가 시작되기전 내 지갑 털어서
직원들 좋은 밥도 사먹이고 단체로 영화도 보여주고
회사에 책상배치도 다 바꾸었다
딱딱하던 회사 분위기도 싹 바꿨다

그렇게 새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너무 바빴다
대표님 신경을 안 쓰는 동안 사외 이사랑 둘이서
회사를 꾸려가는기 너무 힘들었다
사외 이사는 사외 이사일 뿐 회사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시간이 없었다

어느 덧 정신을 차려보니
같은 업계사람들 사이에서 대표님보다
내가 더 유명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때였다
전임 팀장 밑에서 개판치던 팀원이 사고를 쳤다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믿었다
팀장님 바뀌고 회사에서 일하기 너무 좋아졌다는 말을 믿었다
프로젝트에 대형사고가 터졌다
수습할 수가 없었다...
클라이언트가 난리가 났다
받았던 계약금에 위약금까지 물아줘야할 판이었다

회사에 손해가 엄청났다
그게 작년 가을의 일이었다
그 팀원은 그 책임을 지고 회사에서 해고당했다

그 여파로 올 초부터 직원들에게 급여가 밀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다치고
직원들 급여가 밀리기 시작하자 마음이 급해졌다
나름 가진 재주를 부려서
닥치는대로 강의 알바도 하고
국가지원사업에 멘토로 참여도 하면서
버는 족족 회사에 가져다 넣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도 멍청했다
그 때쯤 중국에서 스카웃제의가 왔었는데
내가 빠지면 핏덩어리 같은 직원들 돈도 제대로 못받고
쫓겨날까 싶어 거절했다

이사랑 둘이서 진짜 회사 살려보겠다고 별이 별 짓을 다해봤다
이제 간신히 회사가 다시 일어날 기미가 보인다
그런대 나도 한계가 와버렸다
몸도 많이 망가졌고 의욕도 떨어졌다
하루종일 외근에 시달리다
퇴근 시간이 지나 사무실에 들어갔다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에 이사랑 둘이서
앞으로 회사 운영 어떻게 해야될지 한참 이야기도 했다
이야기 들어보니 앞으로 몇 달간 또 고생길이 훤하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사무실에 들어갔는데
직원들은 퇴근 준비를 하고 있다
불금이니까...

좀 서운했다
난 내 월급 반납해가며 직원들 월급에 밀어넣고
매일 새벽까지 회사 살려보겠다고 별 짓을 다하고 다니는데
난 일하러 들어간 사무실에서
퇴근하는 직원들한테 서운했다

같이 남아서 뭔가 해주는걸 바란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도와줄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고생한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서운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저녁으로 컵라면 하나 끓여먹고 자리에 앉았는데
어머니께서 전화가 왔다

내일 생일인데 왜 아직 퇴근도 못하고 있냐고...

난 그제서야 내일이 내 생일인걸 알았다

난 회사가 그냥 망했으면 좋겠다
그 동안 고생한게 아까워서 내 손으로 퇴사는 못하겠다

그냥... 회사가 망했으면 좋겠다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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