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장군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

무명객혼돈 작성일 16.08.24 13: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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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뤼순 감옥에서 사형 언도를 받은 날이 1910년 2월 14일 

그 후 1910 년 3. 26일 그의 어머니가 손수 지어 준 명주 수의를 입은 채 31살의 나이로

중국 뤼순(여순) 감옥에서 형 집행을 당합니다 (하얼삔 아니라고 거긴 이토 히로부미가 죽은데라고~) 

그는 일본의 재판 결과에 항소를 포기하고 사형을 받아들이며  국제법에 따른 대우를 요구를 하였다고 합니다.

"내가 이토오 히로부미를 사살한 것은 한국 독립 전쟁의 한 부분이다.

 개인 자격이 아니라 대한 의군 참모중장 자격으로 한 것이니 만국공법에 의해 처리하도록 하라"

<동포에게 고함>

내가 한국 독립을 회복하고 동양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3년 동안 풍찬 노숙 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이 곳에서 죽느니

 

우리 2천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에 힘쓰고

 

산업을 진흥하여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자 유한이 없겠노라.

 

<유 언>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르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 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의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 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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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안중근 의사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신 분이 그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입니다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아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제에 의해 사형 판결을 받자 항소하지 말라고 권했다는 일화가

널리 알려져 있다.

아들이 결국 처형된 뒤 중국 상하이에서 당시 임시정부 인사들에게 여러가지로 도움을 주며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로 불렸다.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B%A7%88%EB%A6%AC%EC%95%84

다음은 조마리아 여사가 아들 안중근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 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말고 대의에 죽는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편지는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것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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