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본 연구소 - 26. 남극 이야기 3

갑과을 작성일 22.07.25 02: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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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입니다.

남극 과학기지 이야기를 끝으로

한동안 잠수함이 입수하듯이 사라졌는데

드디어 짬이 나서 다시 키보드 앞에 섰습니다.

 

이번 이야기를 끝으로

남극이야기를 마치는 것을

목표로 삼아보겠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이 게시글은 “3프로 tv”의 코너

“최준영 박사의 지구본 연구소”를

토대로 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

 

  1. 이번에 할 이야기는

 

결국 남극이야기에서

여러분들이 가장 관심을 가질 것은

 

“남극 탐험” 일 겁니다.

 

 

어차피 워낙 많은 사람들이

많은 게시글에서 다뤄봤기 때문에

제가 여기에 숟가락 얹어봐야

새로울 게 없는

 

이른바 레드오션 같은 분야긴 합니다.

 

남극하면

남극점

남극점 하면

아문센과 스콧

거의 공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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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탐험의 공식

 

 

하지만 레드오션도 잘 뒤져보면

여러분들께서

“오옷! 이런게 있었어?!?”

할 구석이 있게 마련이겠죠?

 

 

이야기의 시작은 여기서부터 해보려고 합니다.

 

“아문센이 대단하긴 하지만

그 사람 이전에는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을까?”

 

 

 

2. 뉴턴이 가라사대

 

모태솔로 업계의

최대 아웃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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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솔로의 희망

 

뉴턴은 프린키피아라는 명저를 만들고 난 뒤

강의를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내가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의 어께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자신이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 이전에 있던 많은 과학자들이 지식을 누적해 왔기 때문이다.

라는 걸 의미합니다.

 

 

아문센의 남극점 정복이라는 위업도

자신 이전에 극지를 탐험한 수많은 탐험가들이

쌓아온 지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이번에는

아문센 이전에

북극과 남극을 바라보고

그곳을 향해 배를 띄우고

역경과 고난을 통해서

마침내 실패했지만

결코 헛되지 않았던

 

그들의 도전을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3. 남극 탐험 초창기

 

“인류 역사를 통틀어

처음으로 남극에 간 사람은?” 이라는 질문을 한다면

 

아마 대답은 둘로 갈릴거에요.

 

왜냐면 “남극”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남극 대륙을 남극이라고 할지

남극 주변의 바다까지를 남극으로 할지

 

남극과는 정 반대편 한국이라는 곳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로선 많이 헷갈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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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만 남극인가, 바다까지 남극인가

 

 

그렇다면 둘 다 다뤄보면 될 것 같습니다.

넓은 의미에서의 남극

즉, 남극대륙 + 남극 주변 바다를 통틀어서

정의를 내려보면

 

인류 최초로 “남극”에 간 사람은

영국의 “제임스 쿡”선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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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쿡

 

이 사람 이야기는 많이들 알고 계실거에요.

배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비면서

새로운 섬

새로운 바다

그리고 덤으로 괴혈병 치료까지 발견한

탐험가 중의 탐험가죠.

 

1번도 가기 힘든 항해를

자그마치 3번이나 갔던 인물이니만큼

 

“어디가 됐든 일단 가본다.”라는 마음으로

배를 이리저리 움직이다보니

남극 근처 바다까지 닿았다고 해요.

 

“어? 이상하다. 남쪽으로 가면 따뜻해져야 하는데

따뜻해지다가 갑자기 추워지냐?”

“선장님.”

“왜? 뭐? 왜?”

“저기 섬 같은 것이 보이는데요?”

 

남쪽으로 남쪽으로 흘러갔던 그의 배는

남극해에 있는

사우스 조지아 섬의

프린스 올라프 해안에 닿게 되었습니다.

인류 최초로 “남극권”에 도착한 상황, 하지만

 

“남쪽으로 갔더니 섬 같은 게 보이네.”

“오케이, 그럼 이제 다음 장소로 ㄱㄱㄱ”

 

그냥 인류 최초로 남극 근처에 있는

섬을 찍어봤다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좁은 의미에서의 남극

“남극 대륙” 자체만 놓고 본다면

 

인류 최초로 “남극 대륙”에 간 사람은

“베링제 하우젠”(벨링스 하우젠)이라는 러시아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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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링스 하우젠

 

이름만 놓고 보면

뭔가 독일인 냄새나는 이름이라고 생각할 텐데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서

“외국 사람”하면

일단 “미국인”을 떠올립니다.

왜냐면 우리나라가 (심적으로) 가장 많이

교류하는 나라가 미국이니까요.

 

러시아 같은 경우는

“외국인”하면

일단 “독일인”을 떠올렸다고 해요.

그만큼 러시아와 독일은

대대로 교류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러시아 귀족이 독일에 결혼 와서 살기도 하고

반대로 독일 귀족이 러시아에 결혼 와서 살기도 하고 그랬대요.

웃긴건, 독일 사람이 러시아에 살면서

러시아어를 쓰는 게 아니라

당시 외교 언어였던 “프랑스어”를 쓴다는 것이

함정이겠지만요.

 

 

어쨌건, 베링제 하우젠은

독일계 러시아 사람으로

 

1803년에 세계일주 항해에 참가해서

처음으로 “남극 대륙”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때 그가 타고 간 배 이름이

“미르미르 호”와

“보스토크 호”였습니다.

 

그 두 척을 끌고

남극을 발견한 그는

남극 한 바퀴를 쭉 돌아보면서

 

“남쪽으로 내려갔더니

엄청나게 거대한 섬이 있다 오바.”

“얼마나 큰가 오바?”

“어.....음.....둘러 보고 느낀 건데 섬이라기보단

대륙인 거 같다 오바.”

라고 보고했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이때 끌고 갔던

“보스토크호”의 보스토크는

꽤나 많은 분야에서 쓰입니다.

 

일단 러시아의 남극기지인

『보스토크 남극 기지』

여기서 이름을 따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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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토크 남극기지

 

가가린이 탔던 최초의 유인우주선

『보스토크 호』도 여기서 이름을 땄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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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린의 보스토크호

 

『블라디 보스토크』의 보스토크도

바로 같은 단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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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 보스토크

 

여기서 보스토크는

한국어로 “동쪽”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해요.

 

 

 

4. 베링제 하우젠 이후

 

베링제 하우젠에 의해 남극이라는 곳이

발견된 이후,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시작해

지구 한바퀴를 돌아 남미까지 가도록 만든

DNA 수준의 욕망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어? 새로운 땅이네?”

“탐험 마려운데?”

 

하지만 그 욕망을 충족하기엔

남극의 환경은 허들이 너무 높았고

인류의 기술은 수준이 너무 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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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남극의 여름(북반구의 겨울)에

얼음 해안을 뚫고 남극 대륙 위로

올라가 주변을 살펴보는 식으로

서서히 접근을 시작했어요.

 

아오 감질나게 왜 그래?

한번에 팍! 어떻게 안되냐?

아 우리 조상님들 진짜 답답하네.

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얼음 바다라는게 지금도 그렇지만

상당히 위험한 바다였습니다.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이 있듯이

수면 위에 올라와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빙산의 다가 아니지요.

눈에 보이는게 10%라면,

수면아래 가라앉아있는게 90%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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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렇게

 

지금처럼 철갑선으로 다녀도 위험할 판에

목조선으로 별 생각 없이 다니다가

거대한 빙산에 밑바닥이 쓸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뱃바닥에서 솟구치는

0도에 가까운 남극 바닷물을 퍼내느라

있는 고생 없는 고생 해야 할 판이니까요.

 

 

빙산만 위험한 것이 아닙니다.

바닷물을 얼려버릴 정도의 가혹한 추위도 한 몫 하지요.

며칠 씩 몰아치는 폭풍우를

간신히 간신히 존버했다가

 

“야 폭풍우 그쳤다 나와보자!”

“어?”

“왜?”

“우리 ㅈ됐는데?”

 

배 주변 바다들이 꽁꽁 얼어버려서

옴짝달싹도 못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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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갇히면 배는 끝장난다

 

실제로 남극의 여름에 잠깐 둘러보러 왔다가

얼음에 갖혀버리는 통에

비 자발적인 겨울탐사까지 해버린 사례도 있었습니다.

 

벨기에 탐사대의 경우에는

남극 여름 탐사를 떠나서

먼 발치에서 남극 한번 둘러보고 돌아올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계획대로 먼 발치에서 보려고 하다보니

이게 너무 감질나버렸단 말이지요.

 

그래서 “야, 이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까이 가보자 하다가

 

하필 그날 남극에 폭풍이 몰아쳤고

“으아아 존버하자 존버!”하며

며칠 개긴 끝에, 폭풍우는 지나갔지만

주변 바다가 꽁꽁 얼어버리는 대참사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선택을 해야 했느냐......

 

“별 수 있냐? 얼음 녹을 때 까지 기다려야지.”

“아직 여름이니까, 조금만 더 버티면 될거야.”

라고 생각했는데 그 얼음이 생각보다 녹지 않았고

속수무책으로 여름이 끝나고 겨울이 와버렸습니다.

 

결국 비자발적인 월동탐사까지 한 끝에

그다음 해 여름이 되어서야 간신히 얼음이 녹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날 수 있었다고 해요.

 

바닥인 줄 알고 샀는데,

지하실까지 가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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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도를 약 100여년 가까이 한 끝에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인류는

남극의 구체적인 사이즈는 얼마나 되는지

어디가 그나마 안정적인 상륙 포인트인지 하는

지식을 축적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5. 잠깐 이야기를 틀어

 

북극 이야기를 잠깐 해보겠습니다.

남극과 북극은 어차피 극지라는 카테고리에

한 세트로 묶이기도 하고,

 

북극이 먼저 정복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쌓인 지식과 경험이

남극 탐험에서도 고스란이 반영이 되었기 때문에

남극 탐험에 북극 탐험이 곁다리로 낄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5-1. 위대한 패배자 프리디쇼프 난센

 

남극과 북극을 통틀어 극지라고 하는데

극지 탐험의 역사에서

맨 처음 등장하는 유명인이라고 한다면

프리드쇼프 난센이라는 인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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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은 세 보이지만 착한 사람

 

이름보면 북유럽권이라는걸 추측할 수 있을텐데요.

여담으로 스웨덴 계통 이름은 ~손으로 끝난다면

~센으로 끝나는 인물은 노르웨이 계통이라고 합니다.

 

아문『센』도 노르웨이 사람이죠.

 

이 양반이 1887년에 인류 최초로

그린란드 횡단에 도전합니다.

 

엥? 그린란드는 바이킹 사가에도 등장하는

오랜 역사를 가진 곳 아녀? 하실텐데요.

 

물론 그린란드라는 섬 자체는

발견된지 오래되었고, 사람이 정주한 역사도 길지만

대부분 해안가에만 살았지,

섬 내부로 들어갈 생각은 못 했다고 해요.

 

어쨌거나, 개썰매 + 도보로

그린란드를 11일 만에 횡단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거 보면 그린란드가 왜 세계 최대의 섬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겠죠.

 

물론, 지도상으로 보면 캐나다만하게 나와있는데

꼴랑 11일? 생각보다 별로 안큰데? 할 수 있을텐데요.

그건 제가 지구본 연구소 게시글을 올리면서

꽤나 많이 언급했던

메르카도르 라는 사람이 만든 메르카도르 도법 때문입니다.

모양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대신에

크기의 왜곡을 과감히 포기한 덕분에

극지방은 상대적으로 크기가 뻥튀기 되고

적도지방은 상대적으로 크기에서 손해를 보는

사태가 벌어진 거지요.

 

난센의 의의는

극지 탐험의 선구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단순히 “빨리 찍고 간다!”라는 식으로

수박 겉 햝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탐험을 한 인물입니다.

그린란드 탐험을 하면서

그곳에서 살고 있는 원주민, 이누이트들과

친분을 맺고, 그들이 이런 극지에서 사는

노하우들을 습득해 나갔어요.

 

당시 열강들의 인식은

“엑? 고기를 날로먹어? 개 미개하네 ㅉㅉ”

하는데 그쳤지만

 

난센은

“이런 혹독한 환경에서 어떻게 적응을 한 걸까?”라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는 이누이트들과 친구가 되면서

옷을 어떤 식으로 입는지

어떤 사냥감을 선택하는지

사냥한 뒤에 어떤 부위를 먹는지

왜 날로 먹는지

악천후가 닥치면 어떻게 대비하는지

이런 것들을 조사한 뒤에

자신의 경험과 버무려서 책으로 만들어냈습니다.

 

이런 경험과 지식이

아문센이 남극 탐험하는 데 귀중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합니다.

 

 

난센은 그린란드를 탐험했으니

이제 더 큰 목표를 정했습니다.

바로 북극점 정복이었습니다.

 

앞서 소개했던

난센의 그린란드 탐험 이야기를 듣고 짐작하셨겠지만

 

난센은 북극점을 탐험할 때도

“일단 닥치고 돌격!” 스타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세심하게 준비하고 연구를 해나갔어요.

 

난센의 연구 대상은 얼음이었습니다.

북극에는 얼음이 많으니까요.

 

난센이 북극해로 가서, 얼음에 깃발을 꽂아놓고

잘 관찰을 해본 결과

북극의 얼음은 그 자리에 스톱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움직인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이 움직임의 패턴을 연구해보니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북극의 얼음은 움직인다

움직임의 원인은 바로 해류다.

북극의 해류는

시베리아에서 출발해 북극점 근처를 찍고

유럽 쪽으로 흘러간다.

 

그렇다면 결론이 나오는 거지요.

 

유럽에서 출발해서 북극점으로 가는 건

해류를 반대로 거슬러 가는 생고생 루트다

반면 시베리아 쪽에서 출발해서

적당한 얼음에 얹혀가면

해류 따라서 갈 수 있으니 개꿀 루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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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래가면 개꿀이네?

 

다만, 주변에 얼음이 너무 커지면

배가 얼음에 끼어 박살 날 수 있으니

얼음에 끼어도 박살 나지 않을 튼튼한 배를 만들어야겠다.

 

그렇게 해서 고안한 배는

이전의 배처럼

단면이 날카로운 V자 형태가 아니라

넓게 U자 형태를 가진 배였습니다.

 

V자 배는 나름 장점이 있긴 합니다.

배가 바다 깊숙이 들어가야

바닷물을 잘 움켜쥘 수 있거든요.

이런 배들은 풍랑에도 흔들리지 않고

기동력이 좋다고 합니다.

 

 

한편 우리나라가 전통적으로 군함으로 쓰던

판옥선은, 바닥이 평평하다고 합니다.

이런 배들은 바닷물을 잘 움켜쥐지 못하기 때문에

풍랑에 사정없이 휘청거리고 떠내려가 버리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먼 바다 나가는 일에는 쓰기 어렵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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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면 구렸던 판옥선

 

......그런 구조적인 결함이 있는데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빡센 물길인 울돌목에서

13척으로 133척을 조져버린 이순신 장군은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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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핸디캡 매치

 

 

어쨌거나, 루트도 정했고

탐험할 배의 청사진도 그렸으니

이젠 배를 만들어야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배의 이름은

『프람』호, 여기서 프람은

노르웨이 말로 전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배는 놀랍게도

지금도 오슬로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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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센과 함께한 프람호

 

이 배의 형태에 대해서

최준영 박사님이 묘사하긴 했는데요.

패널로 출연한 이프로의 한 줄 평이

확실히 더 와닿을 것 같아 그걸로 대신하겠습니다.

 

이글루 뒤집어 놓은 형태의 배.

 

그렇게 생긴 형태다 보니,

얼음이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그 위에 올라탈 수 있다고 합니다.

 

 

배도 만들어졌고 출발해야겠죠?

탑승 인원 12명

식량 5년치,

연료 8년치를 준비해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1893년 6월에 출항을 했고

3개월을 여정한 끝에

 

계획대로 프람호를 향해 오는

적당한 사이즈의 얼음 위로

안착하는데 까지 성공했다고 합니다.

 

“이야 개꿀이다. 이제 얼음따라

가다가 위치만 정확히 재면 북극점 탐험 끝이겠는데?”

라고 모두가 생각했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었습니다.

얼음을 타고 간지 9개월이 지나서

그들은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걸 깨달았습니다.

 

그 사이에 별짓을 다해봤다고 해요.

슈퍼마리오가 점프 하듯이

이 얼음에서 저 얼음으로 갈아타보기도 했지만

얼음탑승 작전으로는 아무리 용을 써도

북위 84도까지 밖에 못가는거에요.

남극점은 북위 90도에 있는데.

 

“대장 어쩌죠?”

“그렇다면 플랜 B로 가야지.”

“뭔데요?”

“걸어.”

 

얼음을 통해서는 북위 84도까지 밖에 못 간다면

나머지 6도는 걸어서 가보자는 거였습니다.

 

나름 현명한 선택이었지만

이것도 난점이 있었습니다.

 

문제의 원인은

북극은 남극과 달리 바다라는 거였어요.

 

대류위에 있는 남극 얼음도

지구 중력에 따라 서서히 바다 쪽으로 움직이는 판인데

바다위에 얼음은 그 움직임이 더 역동적이겠지요.

 

즉, 나는 북쪽을 향해 20Km를 걷는다고 걸었지만

내가 발 딛고 있는 얼음이 남쪽으로 30Km 떠내려가 버리면

나는 고스란이 10Km남쪽으로 빽도해버린 셈이니까요.

 

무리하다 이렇게 됨

 

이런 점에서는 북극 탐험이 남극 탐험보다

빡센면이 있기도 해요.

 

그렇게 난센은

의미없는 자연의 런닝머신 위에서 해메다가

“하 X발 게임 ㅈ같이 하네.”를 외치며

게임을 포기하고 근처 섬에서 오두막을 짓고

1년을 버티다가 노르웨이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탐험을 떠난 지 4년 만이지요.

다행인 건 아문센 때와 마찬가지로,

이때도 탐험 과정에서

아무도 죽거나 다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무선통신도 없던 시절에

4년이나 연락이 끊겼으니

노르웨이 쪽에서는

 

“에휴, 관이나 짜자. 다 죽었겠거니.”

하는 마당에 4년 만에 짜잔 하고 나타났고

아무도 죽거나 다치지 않았기 때문에

 

난센은 허영호 대장을 넘어서는

국민적 영웅이 되었습니다.

 

비록 실패했지만

난센이 가지고 온 지식은

당시로서는 인류의 큰 수확이었습니다.

 

난센이 시베리아를 통해 북극점을 삥 둘러봤기 때문에

북극은 대륙이 아니다. 바다다

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으니까요.

 

심지어 가지고 갔던 배도

고스란이 들고 왔으니, 경제적으로도 개이득이죠.

 

 

여담으로,

국제관계에 익숙하신 분들은

난센을 탐험가라기 보다는

국제 평화 운동가로 더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여행을 다녀오고 8년 뒤 1905년에

노르웨이가 스웨덴으로부터 독립한 뒤에

이미 국민적 영웅이었던 난센은

마음만 먹었다면 대통령, 총리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공화국이 되었을 때

혼란상을 걱정하고 (이때는 군주국이 대부분 나라의 디폴트였습니다.)

그냥 명망있는 사람이 왕 되는게 더 나아하고

양보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1차 세계대전 이후에

국제 연맹의 고등 판무관이 되어서

난민들에게 여권을 발급했다고 합니다.

 

난민은 국가가 없는, 무국적자이다보니

세계 어디에서도 보호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난센이 자신의 네임벨류를 활용해

자신이 서명한 여권을 발급한 것이지요.

 

물론 국제 연맹이 발행한 것이지만

사인한 사람은 난센이었던 만큼

당시 사람들은 그 여권을 『난센 여권』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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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착한 형이라고 했지?

 

그렇게 그는

1922년에 러시아에서 적백 내전이 발생했을 때

수십만명의 사람들도 구출했고

1942년까지 45만 명의 난민에게 여권을 발급해 줬던 공로로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퍼포먼스에 인성까지 갖춘 퍼펙트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5-2. 그럼 북극점은 누가 먼저 찍었는데?

 

짱공유 게시글을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북극점을 제일 먼저 찍은 사람에 대해서는

논란이 꽤나 많습니다.

 

예전까지는 로버트 피어리라는 미국 사람이

북극점을 찍은 것으로 알려졌고, 그게 정설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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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마저 속였던 로버트 피어리

 

수십년의 연구 끝에

약 20년 전에 (그래봐야 1990년대입니다. 소름.)

결론이 났습니다.

 

로버트 피어리는 북극점에 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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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게 참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

뭐가 어렵냐고요?

인류 최초로 북극점이든 남극점이든

극지를 갔을 때

『내가 여길 도착했소』라는 걸 증명하는 게 말이죠.

 

지금처럼 스마트폰에 GPS달린 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CCTV 설치해놓고

“야 CCTV 찍혔네, 쟤 북극점 간거 맞어.”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남 북극은 그나마 양반입니다.

예를 들어 히말라야 산맥의 어느 봉우리를 정복하는데

무산소로 등정한다라고 한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산소통을 안맨 것을

어떻게 증명하냐는 거지요.

막말로 세르파랑 말 맞추고

짐에다가 적당히 산소통 숨겨놓으면

그걸 누가 알겠냔 말이지요.

 

정말 무산소로 등정해도 문제가 남는 게

“자 여기가 정상이다”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여기가 봉우리라는 보장이 없죠.

사진을 찍어도 교묘하게 배경을 악천후로 가려놓으면

“이게 꼭대기 맞어?” 할 테니까요.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모 여성 산악인이 이와 관련된 이슈로

크게 논란이 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어쨌거나

로버트 피어리는 1909년 4월에 북극점에 갔다고 주장했고

그 이전에 프레드리히 쿡이라는 사람은 1908년에 북극점에 갔다고

주장 했습니다만

 

프레드리히 쿡의 경우에는

비교적 빠르게 (1911년) 안갔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그런데 로버트 피어리, 프레드리히 쿡 둘 다 미국인입니다.

당시 미국은 신문의 전성시대였지요.

워낙 많은 신문사들이 난립하다보니,

어디 기사거리 없나하고 고민하다가

 

오지탐험 기사를 만들어보자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였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 갔다 행방불명된 리빙스턴 찾기 탐험도

북극탐험도 결국 신문사들이 후원을 했기에 가능한 거였지요.

 

어쨋거나, 프레드리히 쿡과, 로버트 피어리 모두

내가 먼저 북극점 갔다니까 하고 주장을 하는 판이라

이걸 어떻게 판정을 내리지? 하고 모두가 골머리를 썩혔습니다.

 

이때 어떤 식으로 결정을 내렸냐......

민주주의의 나라답게

아주 민주주의스러우면서도

골 때리는 방식으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다수결이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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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여기다가 한다고?

 

투표 결과

로버트 피어리쪽이 좀 더 맞는거 같아라는

여론이 형성되고

그래서 로버트 피어리가 북극점을 처음으로 간 거라고

얼렁뚱땅 결론 내려버렸습니다.

 

 

그리고 1995년,

로버트 피어리의 유품에서

미공개된 북극 탐험 일지가 발견되었고

여기에서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탐험일지를 분석해보니

피어리가 북극점 근처 40Km,

즉, 북위 89도 57분까지는 간 거 같은데

북극점에 간거는 아니다 라는 결론이 나와버렸습니다.

 

대체 왜 그런 결론이 나왔냐.

일지를 분석하다보니 이런 탄성이 나오는거에요.

 

“아니 지가 무슨 허경영이여?”

“왜?”

“북극을 걸어서 하루에 70Km를 갔다는데?”

“엌ㅋㅋㅋㅋ ㄹㅇ 축지법이여 뭐여?”

 

 

기록을 꾸준이 쓰긴 했지만

사람들이 납득이란걸 하려면

 

5월 4일 20Km 갔음

5월 5일 컨디션 구려서 15Km 갔음

5월 6일 컨디션 좋아서 35Km 갔음

 

이렇게 일정한 바운더리가 있어야 하는데

마지막날에 파이팅을 다져서

하루에 70Km 주파했고 그 결과 북극점 찍었음

이건 ㄹㅇ임 끝까지 믿을 것

이라고 써버리니 거의 무협지 수준의 일기가 되버린거지요.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연구자들의 추측의 영역이지만

로버트 피어리가 북극점을 찍은게 아니라

오히려 선봉대로 섰던 흑인, 매튜 핸슨이

지형정찰을 나서다가 자기도 모르는 새에 북극점을 찍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판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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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점의 정복자일지도 모르는 매튜 핸슨

 

그래도 로버트 피어리는 행복한 인물인게

사후에 밝혀졌으니, 본인은 자기가 간거라고 확신하고

죽음을 맞이했다는 거겠죠.

 

사실 아문센도 원래 목표는 북극점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모국인 노르웨이가 북극점에 가까우니까요.

그러다가, 노르웨이 종특인 세심한 준비를 하는 도중에

 

“야 피어리가 먼저 북극점 찍었다던데? 너 어캄 ㅋㅋ”

“하..... X바, 이렇게 된거 남극점을 간다.”가 되버린거지요.

 

근데, 아문센도 미련해서 미련이 남은것인지

북극점을 가긴 갔다고 합니다.

비행선을 타고요.

 

엥? 비행기가 아니라? 왜 비행선으로 갔대?

하실텐데요.

 

비행기로 최초로 북극점을 찍은 사람이 있었거든요.

리처드 버드라고 이 사람도 미국 사람이었습니다.

 

로버트 피어리도 미국인

프레드리히 쿡도 미국인

 

둘 다 구라친 거 걸렸어

이거 뭔가 냄새가 나는데? 싶을텐데요.

 

네 맞습니다.

리처드 버드도 북극점에 간 게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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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또 쓰네

 

 

이러다 보니

원래대로라면 아문센은

 

북극점 찍기

1등 로버트 피어리

2등 프레드리히 쿡

3등 리처드 버드

4등 아문센

이었는데

 

1,2,3등이 모두 올림픽 도핑에서 걸린 것처럼

탈락해버리면서

얼떨결에 남극점과 북극점 모두를

세계 최초로 재패한 사나이가 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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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결에 되버린 세계관 최강자

 

야..... 이때 미련없이 북극은 근처도 안간다 해버렸으면

저런 타이틀은 얻지 못했을 테지요.

 

여담으로, 리처드 버드는

북극점 탐험에서 곁들여서

미스터리 쪽에도 이름이 알려진 인물인데요.

지구 공동설이라는 괴담에서 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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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믿는 흑우 없제?

 

이 양반이 북극점 뿐 만 아니라

남극점을 비행기로 날아갔었는데요.

날아가다 보니까 남극에 거대한 구멍이 있고

거기에 푸른 식물과 동물이 보이더라 라는

거짓말 같은 주장을 했죠.

 

여기에 신빙성을 더해버린게

인공위성으로 북극점과 남극점을 찍어봤는데

둘 모두에게서 검은 구멍같은 게 보였다는 겁니다.

 

 

아이언맨도 그렇지만

미국인들은 구라빨이 패시브옵션인 모양입니다.

 

 

 

6. 이제 이야기를 남극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남극 탐험의 이야기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하나는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제가 다루지 않을 예정인

스콧 VS 아문센의 남극점 대탐험

(영국 뽕이 상당수 들어간)

 

다른 하나는 『졋잘싸』라는 세글자로

요약할 수 있는

어니스트 섀클턴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당연히 제가 다룰 것은 후자 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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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갓 제네럴 어니스트 섀클턴

 

섀클턴은 스콧과 마찬가지로 영국인입니다.

 

이 사람을 따로 다뤄야 할만큼 대단하다고?

어쨌거나 남극점 못 찍었잖아? 하시겠지만

 

사실 이 사람 언급하려고

굳이 안해도 될 남극 이야기를 한 편 더 늘렸습니다.

 

이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냐면

탐험가들의 격언중에

가장 절망적인 상황을 마주했을 대는 섀클턴에게 기도하자

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최준영 박사님은 섀클턴을 평가할 때

겉으로 볼 때는 대단히 낙천적이지만

속으로는 상당히 냉정하고, 상황 판단과 결단이 빠른 사람이다.

라고 하더군요.

 

이제 왜 그런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6-1. 남극 탐험 몸풀기

 

1901년에 섀클턴은 디스커버리 호를 타고

남극으로 탐험을 떠났다고 해요.

이때는 대장으로서 간 건 아니고,

대원으로서 갔었습니다.

 

이때 탐험대 대장이

아문센 VS 스콧의 스콧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스콧의 성향과

섀클턴의 성향이 너무 다르다보니

스콧에게 찍혀버렸습니다.

 

“하..... 저X끼는 뭐 만 하면 알 이즈 웰이래? 근거도 없이.”

“에이~ 뭐 어때요. 모두 함께 외쳐 봅시다 알 이즈 웰”

 

그래도 탐험은 어찌어찌 잘 끝났지만

스콧대장이 이후 새로운 탐험대를 꾸릴 때는

섀클턴을 쏙 빼버렸다고 해요.

얼마나 띨띨하게 보였으면 그런 굴욕을 겪나 싶네요.

 

 

그렇게 절치부심을 한 뒤 1907년에

남극점을 가는 새로운 탐험대가 꾸려지고

여기에서는 대장으로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탐험은 졌잘싸 탐험의 서막정도이긴 합니다만,

이 탐험대가 역대 남극 탐험 중에서

가장 많은 성과를 가지고 온 탐험대라고 합니다.

 

이들이 거둔 성과라고 한다면

남극 개관에서 다뤘던

(1) 남극에도 활화산이 있다고요 했던 에레보스 화산을 처음으로 등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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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거

 

(2) 남극에서 석탄조각을 가지고 옴 (남극에 식물이 있었다는 증거 = 대륙이동설 증거)

(3) 남극점 거의 근처까지 감 (남위 88도 23분)

 

 

성과 (3)을 보면 의문이 드실거에요.

“뭐야? 거의 다 왔네?”

“근데 왜 포기 함? 쫄본가?”

 

물론..... 쫄보 맞죠.

거의 눈 앞에 두고 포기했으니까.

 

섀클턴이 포기할 위치까지 왔을 때

섀클턴이 남은 식량을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봤다고 합니다.

 

“계산 떳다.”

“역시 대장이야. 그럼 어떻게 해요?”

“탐험은 포기한다.”

“눼? 왜요? 거의 다 왔잖아요.”

“우리 식량으로 갈 수는 있다.”

“그럼 가야죠.”

“대신에, 다 죽는다.”

“?!?!?”

 

정상이 눈앞인데 탐험을 포기하는 건

탐험가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선택지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라는 생각이

탐험을 가지 않는 여러분들도 드는 마당인데

남극점을 바로 눈 앞에서 보는 입장에선

오죽하겠습니까?

 

100이면 100, 내가 여기서 깃발 꽂고 죽고 말지

하겠지만, 섀클턴은 결정을 내린 이후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포기했어요.

 

이때 했던 말이

“죽은 사자보단, 살아있는 당나귀가 더 나아.”였다고 해요.

주식하는 제 입장에선 참 가슴이 와닿는 말이네요.

 

한 때, 총 50% 수익! 삼성전자 100% 수익! LG화학 140% 먹었어!

끝까지 가즈아!!! 라고 의기양양해 했었는데

그때 팔았어야 했는데 그걸 못 팔고 있다가

잠깐이지만 삼성전자가 마이너스도 나보고 하니

 

『욕심이 나지만, 난 이 정도만 먹을거야』 하는데는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

 

매수는 기술이지만 매도는 예술이다는

투자의 격언이 절절이 가슴에 와닿는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탐험을 하면서

섀클턴은 많은 시도를 해봤습니다.

설상차도 사용해 보고

개도 끌어보고

조랑말도 타보고

다 해 봤지만 개 만한게 없더라 하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때의 결론을 스콧이 받아들였다면

설상차도 가지고 가고

조랑말도 가져가는

희대의 뻘짓을 막을 수 있었을 테지만

 

“그 띨띨이가 하는 소리를 믿으라고?”했다가

개박살나 버리고 만 거지요.

 

반면에 아문센은 섀클턴의 교훈을 얻어 개썰매를 타고 갔고

남극점을 찍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던 거지요.

 

 

 

6-2. 졋잘싸 - Beginning

 

1907년에

죽은 사자보단 산 당나귀가 나아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선 이후, 3년의 시간이 지난 뒤

 

1910년에

스콧과 아문센의 남극점 대탐험이 벌어졌고

승부는 아문센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쯤 되면

아 이제 남극 정복됐네. ㅅㄱㅇ할 거 같지만

사실 에베레스트산도 엄청 정복당했잖아요.

 

누군가가 새로운 곳을 정복하면

“그럼 난 쟤보다 더 빡센 루트로 정복할 거임.”

하는 움직임이 많지 않았습니까?

 

 

섀클턴도

아문센이 남극점을 정복한 지 4년 뒤인

1914년에 남극 탐험대를 꾸리기로 했습니다.

“아문센은 찍고 오기만 했지? 난 남극점 받고 횡단까지 한다 이 말이야.” 하면서 말이죠.

 

문제는 출발하기 직전에 1차 세계대전이 빵 터져버렸습니다.

사람들이 죄다 총알받이 하러 군대에 끌려가는 와중에

이거 가도 되는거 맞아? 하며 망설이고 있을 때

 

처칠이 나섭니다.

“섀클턴씨.”

“어? 수상각하 여긴 무슨일로?”

“탐험 준비 한다면서요.”

“네..... 하긴 했는데. 전쟁 터진 와중에 가는게 맞나 싶기도 하고......”

“그냥 출발 하쇼.”

“네?”

“출발 하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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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왜 여기서 나와?

 

처칠이 이런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국민의 지지와 기대를 한 몸에 안고 갔던 스콧이

당시 듣보잡이던 후진국 노르웨이에게 패배 하고나서

국민들의 사기가 쳐질 대로 쳐져있고

전쟁까지 난 상황이니까

 

이때 “내가 스콧의 영령에 위로를 하겠소”하고

누군가가 나선다면

국민의 사기가 다시 반전하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던 겁니다.

 

이때 타고 갔던 배 이름이

인듀어런스 호, 어디서 많이 들어보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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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가 요 꼬라지가 된 이유는 잠시 후 밝혀집니다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이 타고 간 우주선 이름이

바로 이 배에서 이름을 딴 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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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 하면

주인공이 책장 뒤에서

“가지마! 가지마라고 이 나새끼야!!”하며

울부짖는 장면만 기억하실텐데요.

 

희대의 명장면

 

우주선 이름이 인듀어런스 호였어요 ㅋㅋ

이 영화가 유독 우리나라에서 히트를 쳤다는데요.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이 회한이 많아서 그런게 아닐까 싶어요.

 

저만해도 가끔 방구석에서 꽈추 긁으면서 하는 생각이

1997년으로 돌아간다면

삼성전자 풀매수 땡겼을 텐데

부모님한테

“제가 평생의 효도를 하는 거니까. 저 믿고 대치동에 아파트 사세요.”

라고 했을 텐데 라고 하거든요.

 

책장 뒤에서 울부짖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그래 나도 저랬지.”하는 공감대가 형성된게 아닐까 싶습니다.

 

 

섀클턴은 이 여행에서

현대 탐험의 롤모델을 만들었습니다.

과학적인 분석? 이것도 있겠습니다만

 

바로 스폰서 모집방식이었습니다.

 

당시에도 탐험은 돈이 많이 드는 일이라

스폰서 모집은 당연한 거였는데요.

섀클턴이 스폰서를 모집하는 방식은

당시로선 특이했습니다.

 

“저기 로스차일드씨?”

“어 섀클턴씨, 탐험준비한다면서요. 파이팅입니다.”

“마침 그 일로 방문을 했는데요.”
“말해보시죠.”

“이제까진 탐험에서 후원하시면 명성만 벌지 않습니까?”
“그랬죠?”

“만약에, 탐험을 후원해서 돈까지 번다면?”

“????? 어떻게요?”

“제가 탐험을 하면서 사진을 팍팍 찍어올 겁니다.”

“그럼 그 사진의 판권을......”

“역시 사업가라서 그런가 계산이 빠르시네요.”

 

 

섀클턴은 이런 방식으로 스폰서를 긁어모으기도 했지만

이로인해서, 섀틀턴의 탐험이 유명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얘를 들어 배가 가라앉고 있는데

그때 물을 퍼내느라 정신이 없는데

그 장면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찍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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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렇게

 

요즘 같은 상황에선

인스타 팔로워 1,000만

유튜브 조회수 1억은

가볍게 넘길 상황아니겠습니까?

 

어쨋거나 계약은 계약이니

탐험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다른 탐험대는 식량이나 도구를 챙길 때

섀클턴은

“야! 필름 챙겨!!”를 외쳤다고 해요.

 

그래서, 섀클턴의 탐험은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그 엄청난 순간들을 찍은 사진들이

고스란이 전해져서 더욱 유명한 거라고 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인증샷의 원조라고 할 수 있겠지요.

 

 

 

6-3. 졌잘싸 – 위기의 시작

 

어쨌거나 1914년에 출발을 하게 된

섀클턴 탐험대는

긴긴 항해 끝에 남극 근처의 바다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엥? 남극대륙 간거부터 시작하면 안되요?

라고 하실텐데요.

 

남극 가기도 전에 배가 얼음에 갇혀버렸거든요.

배가 얼음에 갇히는건 꽤나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건 물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인데요.

다른 물질들은 100이면 100 액체보다 고체가 부피가 작습니다.

분자가 해쳐 모여 하면서 빽빽이 모이거든요.

 

근데 유독, 물만 고체가 액체보다 부피가 더 큽니다.

이건 뭐 수소결합이 어쩌고 하는데

저는 문과니까 그냥 결론만 말씀 드리는거에요.

 

어쨌거나, 배가 얼음에 끼어있으면

얼음이 “야 더는 못가는데? 여기는 그만 얼까?”

하는게 아니라,

그냥 계속 얼음 부피를 키워가는겁니다.

그럼 결국 커지는 얼음에 배가 박살나버리는 일이 벌어지는 거지요.

 

아까 말씀드렸던 강제 존버하게 된

벨기에 탐험대가 떠오르는 상황,

 

섀클턴도 별 수 없었기 때문에 얼음이 녹을 때 까지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장장 열 달 동안말이에요.

 

그리고 열 달 후, 섀클턴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야, 안녹는다 이거.”

“벨기에 애들처럼 안되는거 같은데 어쩝니까?”

“별 수 없지. 짐 내리고 배 버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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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이세요? 선장님?

 

 

여러분들도 같은 생각을 하셨을 것 같아요.

배를 버리면 어떻게 돌아가? 하필 1차 세계대전 터져서

아무도 신경 안 쓸텐데.

 

 

다행인 건, 배에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매달아둔

구명보트가 있었거든요.

 

섀클턴은 본선은 버리고, 구명보트에 짐을 싣고

구명보트를 끌고 바다를 향해 가보자는 결론을 내린 거였습니다.

 

사실은 섀클턴도 벨기애 애들처럼 하려고 했었습니다.

남극 대륙 위에 올라가서 겨울을 보내기로요.

하지만, 벨기에 애들은 진짜 남극 근처까지 다 와서 갇혔기 때문에

얼추 얼음 위를 걸어갈 수 있었지만

 

섀클턴의 경우에는 남극에서 애매하게 멀어버린 지점에서

갇혀버린 마당이었기 때문에

 

얼음위를 걷다가 보니

엥? 이게 얼음이여 슬러시여 하는 구간이 나와버렸던 거에요.

슬러시구간을 피해 남극에 어떻게든 상륙하려 했지만

벌써 식량이 바닥나기 시작하는 상황

 

그래서 결국 남극에 상륙하는 건 포기하고

다시 빽도해서 본선으로 돌아와

본선을 버리고 구명보트를 내린 거였습니다.

 

여기서 부터 깝깝하죠?

 

어쨋거나, 섀클턴과 대원들은

구명보트를 끌고 얼음 위를 걸어갔고

항해를 할 만한 지점에 다다라

구명보트를 타고 엘리펀트 섬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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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펀트 섬

 

 

 

 

 

6-4. 졌잘싸 – 얼음은 벗어났는데

 

구명보트에 짐을 싣고 엘리펀트 섬에 도착한

섀클턴 탐험대는 엘리펀트 섬에서 짐을 풀었습니다.

섀클턴은, 땅을 밟자마자 계산기를 두드렸습니다.

 

얼음은 벗어났지만 식량이 없다.

여기엔 먹을거라곤 보이지가 않는다.

우리는 조난을 당했지만

여기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구조대가 오면 좋겠지만,

세계급 전쟁이 나는 통에 관심이 없을 것이다,

 

 

계산기를 두드리고 난 뒤에 섀클턴은

지도를 꺼내 들어 한참을 들여다봤고

“ㄹㅇ 미친짓 아냐?” 하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번에 아르헨티나 이야기에서 포클랜드 전쟁을 다루면서

언급했던 사우스 조지아 섬이 엘리펀트 섬 근처에 있었거든요.

 

섀클턴은 사우스 조지아 섬은 미국에서 포경선들 기지로 활용하는 곳이니

그곳에는 사람이 살고 있을 것이다.

그곳으로 가서 구조를 요청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거였어요.

 

 

물론 말만 듣고 보면 완벽해 보입니다.

엘리펀트 섬에서 사우스 조지아 섬까지의 거리는

1300Km정도 떨어져 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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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아닌거 같아도 서울 ~ 부산 3배 거리임

 

 

이때 섀클턴이 가지고 있던 배의 스펙은

길이 10M, 노 4개, 돛대 하나.

문자 그대로 돛단배였습니다.

 

 

루트도 빡셌습니다.

제가 남극 개관을 하면서 말씀드렸을 거에요.

남극이 지구상에서 제일 춥다보니

지구상에서 가장 빡센 고기압이 있고

그 덕분에 다른데 가서는 고기압 행세 할 녀석이

저기압으로 전락해 버렸다고

즉, 남극해는 거의 1년 내내 태풍이 몰아닥치는 곳입니다.

 

그중에서도 섀클턴이 선택한 루트는 하필

그 빡세다는 남극해에서도 가장 빡세기로 악명높은

그냥 쉽게 말해 문자 그대로 1년 내내 태풍이 몰아닥치는

드레이크 해협을 지나야 하는 거였습니다.

태풍이라고 해서 그래 바람 좀 빡세게 부는데지 싶겠지만

그건 우리가 태풍이 비교적 약해지는 육지에 있어서 그렇게 느끼는거지

바다위의 태풍은 어마무시합니다.

시속 100Km의 바람, 높이 20m의 파도를

돛단배로 뚫고 가야하는거에요.

 

누가 봐도 이건 무모하다 못해 99% 사망 각 뜨는 계획입니다.

하지만 섀클턴은 100%는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정확한 워딩은 이런거죠

 

“앉아서 죽느냐 서서 죽느냐하면 뛰어보자.”

 

그러면서 자신과 뜻을 함께 할 대원들을 모집했습니다.

의외로 이 미친 계획에 자원한 대원은 꽤나 많았다고 해요.

그래도 섀클턴은 그중에서 스펙이 제일 괜찮은 대원 다섯을 뽑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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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이렇게 빡셀 줄 몰랐음

 

 

그렇게 대원도 뽑고, 루트도 정했고

4월 22일에 섀클턴과 대원들이 출발을 했습니다.

그리고 16일간, 인간이라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남극해와의 사투를 벌이게 됩니다.

 

운명아 덤벼라 나는 간다 하면서 말이죠.

 

그냥 사투가 아닙니다.

후룸라이드 정도의 귀여운 수준이 아니라

진짜 바이킹 타는 것 같은 사투에요.

바이킹도 빡센걸 타면 거의 90도에 육박하게 서는데요.

섀클턴의 구명보트도 90도 서는건 일도 아닌 여행을 간거에요.

 

남극의 20M 파도와, 시속 100Km의 바람을 맞으면서

파도에 침낭이고 옷이고 다 젖고

그나마 안젖는건 이불속에 꼬깃꼬깃 짱박아둔 성냥 한통이 전부고

돌아가면서 잠이라도 자고 싶은데

파도와 바람을 맞서 싸워야 하니 잠을 잘 수가 없고

16일 내내 노를 저어야 하고

 

가장 무서운건 그거였을 것 같습니다.

구명보트를 타고 망망대해를 가다보면

파도가 자신들을 향해 달려올텐데요.

그 파도를 정면으로 맞부딪쳐야 하는거에요.

 

배는 파도를 옆으로 맞으면 백발 백중 옆으로 뒤집어집니다.

파도를 머리로 들이받아야 파도를 타고 넘어가는거에요.

 

이게 말이 쉽지. 꼴랑 10M 짜리 배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20M짜리 파도를 맞으러 달려가야 하는 심정은

음..... 전 놀이공원을 싫어하니까 더더욱 절절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만약 그 장면을 고프로로 찍었다면

유튜브 조회수 1억은 우습게 넘겼을 것 같네요.

 

 

사실, 이때의 사건이 인터스텔라에서

그대로 오마쥬 되었습니다.

 

주인공이 맨 처음에 갔던 행성에서

산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파도였던 바로 그것

그것이, 섀클턴이 맞서 싸워야 했던

파도를 오마쥬 한 거라고 합니다.

 

바로 요장면

 

 

파도만 치면 다행인데

이곳은 하필 남극의 바다,

바다가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곳이기에

물에 젖은 침낭은 그대로 얼어붙었고

그 무게가 너무 무거워 배가 가라앉을 위험이 있었기에

침낭을 버려야 했습니다.

같은 이유로, 처음에 가지고 왔던 노 4개 중 2개도

버려야 했습니다.

 

16일을 이래야 한다면 정말 미쳐야 정상일 텐데

놀랍게도 아무도 죽지 않고 해냈습니다.

심지어 중간에 한 명이 침낭에 쌓인채로 바다에 빠지는 일이 발생했지만

그마저도 구출해 냅니다.

 

참고로, 이때 섀클턴이 맞서 싸운 태풍은

사우스 조지아 섬에 있던 500톤 짜리 증기선이 침몰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어쨌거나 그들은 해냈습니다.

 

 

 

6-5. 졋잘싸 - 이산이 아닌개벼

 

그들은 16일간의 항해(인지 표류일지 모를) 끝에

사우스 조지아 섬에 도착하고야 말았습니다.

 

드디어 이 모든 고통이 끝났어!

기왕 온 김에 고래고기 좀 얻어먹어 보자!

야호! 이젠 해피앤딩이야 했어야 할테지만

지도를 펼쳐본 섀클턴이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야, 잘못 왔는데?”

 

잘못된 섬을 온 건 아니고

사우스 조지아 섬에 온 것은 맞습니다만

 

포경선 기지가 있는 곳,

즉, 사람이 있을 만한 곳은

사우스 조지아 섬의 북쪽이었습니다.

 

그리고 섀클턴 일행이 상륙한 곳은

사우스 조지아 섬의 남쪽이었던 거고요.

 

북쪽에서 남쪽을 가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습니다.

섬을 횡단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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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것도 몇가지 이유로 인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1) 북쪽에서 남쪽을 횡단하려면

지도상에서 보이는 걸로만

백두산급 산을 5~6개 넘어야 한다.

 

(2) 사실 이제까지 엘리펀트 섬을 횡단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서, 이 지도조차도 정확한 건 아니다

즉, 그런 산이 더 많을 수 있다.

 

이럴 때 합리적인 해결 방법은

해안을 따라 빙 돌아가는 거겠지만

그렇게 하다가는 여기있는 사람들이

다 죽을 판이었습니다.

 

섀클턴은 지도를 본 뒤에 결정을 내립니다.

 

“야 횡단하자.”

 

이쯤되면, 신과 같은 초월적인 존재가

“야 작작 개겨 임마. 난 너 죽이려고 하는 거니까. 이쯤에서 죽자 그냥.”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지만

그래도 하는 수 밖에 달리 다른 방도는 없었습니다.

 

이때 섬에 상륙한 대원은 섀클턴 포함 6명이었지만

16일의 악천후를 견디다 보니, 컨디션이 악화된 세 명은

“우리가 구조대 구해올 테니까.

어디 안전한 데 가서 미역이라도 건져 먹어.” 하고 두고,

백두산 급 산을 최소 5~6개 넘을 대원을 섀클턴 포함 세 명 추렸습니다.

 

그들이 가진 등산 장비는 전무한 상태였지만

그들은 해야 했지요.

 

그들은 그렇게 백두산급 산을 하나 올라간 뒤에

“야 이 산이 아닌개벼.”하고 내려오고

다른 산을 하나 더 올라간 뒤에

“야, 이번에도 이 산이 아닌개벼.”하고 내려오고를

몇 번을 반복한 뒤에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산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산세가 완만한 건 아니고

쭉 내려가면 포경선 기지 같아 보이는 게

보이는 산으로 오는데 성공한 거지요.

 

입지는 참 좋은 산이긴 한데

산세가 장난 아니었습니다.

그냥 90도 절벽이 내려다보이는거에요.

 

즉, 포경선 기지까지는 왔는데

거기로 가려면

줄 없이 번지점프를 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우회로? 그딴건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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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줄 없이 해야 한다.

 

그럼 이 산도 아닌개벼 하고

내려가면 되겠지만.....

이미 해는 져버렸습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다 얼어 죽을 판이었지요.

실제로 얼어 죽을 뻔 했습니다.

 

지칠대로 지쳐 주저앉은 섀클턴과 대원들이

모두가 잠깐 잠이 들어버렸거든요.

 

이때 섀클턴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

다른 대원들 뺨을 때려가며

겨우 깨울 수 있었습니다.

 

 

상황을 파악한 섀클턴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야 로프 있지? 그걸로 방석 만들어.”

 

방석 깔고 가부좌를 틀자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마주한 절벽은

절벽은 절벽이되, 빙벽이었거든요.

 

섀클턴이 절벽을 분석해보니

로프로 마대자루같은 걸 만들어서

썰매를 타고 미끄럼 타고 내려가면 어떨까? 하는

다소 미친 생각을 해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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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에서 이걸 한다고?

 

하긴, 이제까지 그가 해온 결정을

되짚어보면, 어느것 하나

제정신에서 나온 결정들은 하나도 없는 것 같긴 합니다.

 

 

그들은 이래죽나 저래죽나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로프를 엮어서 방석을 만들고

서로의 목을 뒤에서 껴안은 이른바

『운명공동체 포메이션』을 짠 뒤에

 

맨 앞에 섀클턴이 앉아서 떨리는 마음으로

미끄럼틀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90도의 수직 절벽이었으니..... 그냥 번지점프를 했다고 봐야겠죠?

 

이때의 미친 짓에 대한 후기는

섀클턴의 기록에 남아있습니다.

 

『어느 순간 환호성을 지르고 이 순간을 즐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동심으로 돌아간 셈이겠지요.

 

나중에 지나고 계산을 해보니

그 미끄럼틀 길이가 1.6Km였습니다.

 

우리가 눈썰매 타봐야. 50도도 안 되는 경사를

꼴랑 100M타고 내려갈때도 스릴감에 소리를 지르는 판인데

 

90도에 가까운 수직절벽을

1.6Km를 타고 내려갔으니 그 스릴감은 뭐.....

 

그렇게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와서 보니

예상했던 목적지까지 거의 다 왔더라 이겁니다.

 

그들은 엄숙한 기분으로 돌아가며 악수를 나눴고

그곳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습니다.

 

이때 포경선 기지에 있던 사람들이

섀클턴 일행을 발견하고 기겁을 했다고 해요.

 

“어? 뭐야? 저기서 눈덩이가 걸어오는데?”

“이게 말로만 듣던 설인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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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어데 설씨요?

 

 

사실 그럴 법 했던게

사우스 조지아 섬에 사람이 사는 곳이라곤

포경선 기지밖에 없었던 터라

 

저 산에서 사람이 올 거라곤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거든요.

심지어 그 설인이

 

“후아유?”

“아임 섀클턴”

 

이라고 영어도 한다면 더더욱 놀랐을 것 같습니다.

 

어쨋거나 설인이 아니라 사람이란걸 확인했으니

그들을 따뜻한 곳으로 안내했습니다.

 

이때 섀클턴이 제일 먼저 물어본건 이거라고 해요.

“전쟁은 끝났겠죠?”

 

안타깝게도, 이때는 전쟁은 아직도 한창 진행중이었습니다.

 

 

어쨋거나, 섀클턴의 일행은 따뜻한 곳에서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그곳에서 사람들은 경악과 경외심을 느꼈다고 해요.

 

그 험한 드레이크 해협을

얼마 전에 500톤짜리 배까지 가라앉은 폭풍이 쳤는데

꼴랑 10M짜리 보트로 뚫고 오고

백두산급 산을 5~6개 넘어서

마침내는 수직 절벽을 미끄럼틀로 내려왔으니

그럴법도 하겠죠?

 

섀클턴은 일단 환대는 됐고 배부터 구해주쇼하고는

사우스 조지아섬 반대편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3명을 구조해냈고

 

엘리펀트 섬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선원들을 구하기 위해 출발했습니다........만

 

구조가 세 번이나 실패했다고 해요.

첫 번째는 얼음에 막혀서 되돌아오고

두 번째는 배가 심하게 망가지고

세 번째는 배가 침몰할 뻔 하고

 

그 멘탈갑이던 섀클턴 조차도

이때 만큼은 초조해했다고 합니다.

 

 

 

6-6. 졋잘싸 – 이젠 진짜 해피엔딩

 

세 번의 실패 끝에 섀클턴이

칠레정부로부터 증기선을 빌려서

네 번째 시도 만에 엘리펀트 섬에 도착하는데 성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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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다! 살아있다고!

 

이때 엘리펀트 섬에 있던 대원들은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모두 생존했다고 해요.

 

이때 이들이 얼마나 섀클턴을 반겼냐면

너도나도 캠프 문을 박차고 나가려고 하다보니까

문이 막혀버렸고

 

이때 답답함을 느끼던 대원 하나가

캠프 외벽을 박살내고 나왔다고 할 정도에요.

 

 

어쨋거나 그들은 섀클턴을 끝까지 믿고 있었습니다.

다소 미친계획이었지만 말이죠.

어느 정도로 믿고 있었냐.

 

“섀클턴은 반드시 올건데

남극 바다가 문제다.

이놈의 바다X끼가 언제 변덕을 부릴지 모르니

배가 도착하면 바로 출발해야 한다.”하고

짐을 늘 싸고 있었다고 해요.

 

그 덕분인지 섀클턴의 배가 도착하고나서

불과 한 시간 만에 모든 짐을 싸고 승선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6-7. 탐험 자체는 대실패 했지만

 

초월적인 존재가

죽어라 죽어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상황에서

보란 듯이 빠큐를 날리고

모두가 살아온 점에서

 

 

섀클턴과 대원들은 영국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탐험가 사이에선 이런 말이 있다고 해요.

『목표를 향해 빠르게 도달하고 싶다면 아문센에게 빌어라.

하지만 뭔가 계획이 틀어졌다 싶으면 섀클턴 같은 지혜를 달라고 빌어라.』

 

계획이 틀어지거나 상황이 악화되면

“아 몰라 이젠 망했어. 죽자 죽어. 한강 가즈아!”를 외치기 마련인데

섀클턴은 플랜 A가 조져졌어? 그럼 플랜 B로 간다.

플랜 B가 망했어? 그럼 플랜 C로 가야지.

다소 미친 거 같아? 이게 현실적으로 모두가 살길이야.

 

계획 자체는 미친거 같지만

그게 뽑을 수 있는 대안중에서 가장 현실성이 있고

대장 자신이 솔선해서 나섰기에

대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믿고 따랐고

 

그것이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 싶습니다.

 

 

 

7. 마치며

 

이번에는 진짜 너무 오랜만에 왔습니다.

사실 시도는 많이 했어요.

마지막 게시글을 작성하고 다음날부터 손을 대기 시작했지만

아무래도 직업 특성상 하필 제일 성수기에 걸려드는 바람에

 

한 석달을 키보드를 잡았다가 놨다가를 반복한 끝에

드디어 해내고 말았네요.

 

 

이제 남극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시간이 된다면, 다음 대륙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 게시글은 유튜브 “3프로 TV”의 코너

“최준영 박사의 지구본 연구소”를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긴 글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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