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집 이어서 2부-1...수정

똥싸다실종 작성일 07.01.19 18: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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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려진 집 ii +++++

유일한(hi:ilhan)


죽은 자는 죽은 그대로 놔둬라.....
- 페르시아 고대 속담중에서....


비는 벌써 며칠째 지겹게 내리고 있었다.
밤에도 후덥지근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어, 사람들의 신경은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나는 학생으로서의 마지막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었다. 취업이냐 대
학원이냐라는 것에 고민하면서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병원에 있는 재원이가 마음에 걸려 책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재원이가 입원한지도 벌써 일주일이 다 되가고 있었다. 그 동안 두 번 정도
병원에 가보았지만, 재원이는 완전히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아무도 못 알아
보고, 얘기도 한마디 못하고 있었다. 가끔 딴 사람처럼 이상한 얘기를 짓껄
이긴 했지만, 의사에 말로는 무의식중에 나오는 아무런 의미없는 말이니 신
경쓰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나로써는 재원이의 섬뜩한 한마디가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지철아, 읍내에서 낫 갈아와라....'

그때의 재원이의 소름끼치는 목소리와 차가운 눈빛은 잊을 수가 없었다. 생
각날 때 마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재원이는 그 황폐한 집에서 무언
가 가혹하고 무서운 일을 당한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는 정신적으로
강인한 재원이가 이렇게 될리는 없었다. 그런데 재원이가 그날 밤 경험한
그 무서운 일이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만약 그것을 알게되면, 지금의 재원이
치료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날, 재원이에게 큰 사건이 발생했다.
이 끔찍한 사건도 그 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날도 도서관에서 시간만 낭비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계속해서 쏟아지는 비로, 흠뻑 젖은채 집에 들어섰다. 옷을 갈아입으며, 자
동 응답기에 남겨진 메시지를 확인했다.
뜻밖의 메시지였다. 재원이 어머니셨는데, 다급한 목소리로 들어오는데로 병
원으로 와 달라는 내용이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메시지였다.
재원이가 갑자기 위독해졌나....
나는 불길한 예감을 억누르며 서둘러 재원이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향했
다. 비 때문에 늦은 시간이었는데 차가 막혔다. 답답함은 더해갔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재원이의 병실로 뛰어갔다. 재원이의 병실앞에는 사람
들이 웅성웅성 모여있었다. 경찰들도 언뜻 보인 것 같았다.
나는 사람을 헤치고 병실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순간, 큰 충격을 받았다.
재원이가 누워있어야 할 침대가 덩그러니 비어있는 것이었다.
당황해하고 있는 나를 알아보시고 재원이 어머니께서 다가오셨다. 걱정과
수심으로 가득찬 얼굴을 하시고 자초지정을 설명해주셨다.

"일한아, 빨리도 와주었구나....
큰일났단다... 재원이가 사라졌어....
아무런 얘기도 없이....
오늘 아침만 해도 의식없이 이 침대에 조용히 누워있었는데, 점심 먹으러
잠깐 병실을 빈 사이에 없어진거야..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아무도 우리 재원이를 본 사람이 없대...
어떻게 된 것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몸도 온전치 못한 애가 어디로 갔는지 너무 걱정이 되서...
미안하구나... 너도 요즘 바쁠텐데...
그래도 너라면 재원이가 어디로 갔는지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우리 재원이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겠니?
좀 생각해 주겠니....."

나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재원이가 없어진 것은 너무 충격적인 일이었
고 영문을 짐작할 수 없었다. 의식도 없던 애가 갑자기 사라지다니.... 납치
당했나, 아니면 자기 발로 걸아나갔나... 갑자기 머리속이 복잡해지는 것 같
았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듯한 재원이 어머니의 질문에도 제대로 대답
할 수 없어 죄송스러웠다.
최선을 다해 알아보겠다고 하고, 병실에서 나왔다. 재원이 어머니는 복도까
지 쫓아나오셔 두 손을 꼭 붙잡고 재원이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은
없었지만, 그렇게 말할 수 없어 찾아보겠다고 말씀드렸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끼며 병원을 떠나는데, 복도 구석에서 낯익은 얼
굴이 보였다.
재원이 여자친구인 정화씨였다. 몇번 술자리를 같이 한 적이 있어 서로 알
고 있는 사이였다.많이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정화씨는 나를 보
자 걱정스런 목소리로 짐작가는 곳이 있냐고 물었다. 없다는 나의 대답에
정화씨의 힘이 빠지는 모습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정화씨는 삐삐번호를 적
어주며 재원이를 찾으로 갈 때, 꼭 자기도 데려가달라고 당부했다. 너무 강
하게 부탁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약속했다.
병원밖에는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답답함을 가슴속에 지니고 재원이의 소재에 대해 생
각해보았다. 도저히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재원이가 보내주었던 그 섬뜩했던 편지 내용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믿기지 않았던 그 일이 점점 혹시나 하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그 버
려진 집이 불가사이한 사악함을 가지고 있고, 재원이가 그 힘 때문에 정신
을 잃고 저렇게 실종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때마다 머리를 새차게
흔들었다. 집에 들어가서 닥치는 대로 재원이를 알만한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보았지만 아는 놈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가 친하지는 않지만, 재원이 의대 동기인 명준이란 사람에게 전화를
하게 되었다.

"재원이가 그렇게 사라졌죠....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어떻게 그 친구가 그렇게 되다니.......
연천에서 의료봉사할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으셨는지 모르겠네요...
그 친구 그때부터 이상한 일만 겪었죠. 이상한 소리일지 모르지만, 우리들
은 귀신을 본 것 같아요. 우습죠...
하지만 사실입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짜 무서움을
느꼈고....
아, 모두 들으셨다고요...
그럼 편하게 말씀드릴 수 있네요..
재원이가 얼이 빠져서 병원이 실려올 때, 큰 충격을 받았어요.
설마했는데... 재원이가 혼자 남는다고 했을 때 말렸어야 하는데...
친척집에 들린다고 했는데... 사실 좀 불안했어요.
하지만 이 지경까지 되리라곤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아무일 없어야 하는데...
사실 며칠전에 재원이 병실에서 이상한 일을 목격하긴 했어요.
그날밤도 잠깐 짬을 내어 재원이 병실에 들렸어요. 어머니가 잠깐 자리를
비우셨는지 아무도 없더군요. 재원이는 평화롭게 누워
있더군요. 마음이 찹잡해졌어요. 정말 똑똑한 놈이었는데..
침대로 다가가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을 번쩍 떴어요.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 반갑기 보다는 섬뜩했어요.
괜찮냐라고 말을 걸려는 순간, 재원이가 말하게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 목소리는 재원이 목소리 아닌, 완전히 딴 사람의 굵직한 목소
리였어요.
'이제 낫을 갈았으니, 피를 적셔야겠지.......
지철아, 낫 어디있냐?
어제 갈아논 낫 어디있냐말야!
숨겨봐도 소용없다니까!!!
모두 이제 죽는거야 알았어!!'
재원이는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내 멱살까지 잡고 흔들었어
요. 방금 전까지 죽은 듯이 누워있었던 사람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격렬하게 움직였어요. 간신히 날뛰는 재원이를 떨쳐버렸지만, 너무 놀라서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지경이었어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렇게 날뛰던 놈이 침대로 쓰러지자 마자, 몸을 부
르르 떨더니,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혼수상태가 되는 것이었어요.
나는 혹시나 이 자식에게 큰 일이 났을까하고, 살펴봤지만 혈압이나 심박
은 모두 정상이었어요. 이상할 정도로...
너무나 황당하고 놀란 일이어서 재원이 주치의에게 얘기할까 했지만, 믿
어줄 것 같지도 않고 일이크게 될까 걱정되서 그냥 혼자만 알고 있기로
했죠....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내 잘못 인줄도 몰라요...
무슨 일 없었으면 하는데......"

나도 재원이가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어, 그 사람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재원이는 보통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은 생각이 들었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어딘가를 헤매다가 사고라도 당하는 것이 아닌지 걱
정이 되기도 했다. 재원이를 찾기 위해서 뭔가 해야하는데, 아무것도 할 수
가 없어서 답답하기까지 했다. 재원이로부터 받았던 편지라도 가지고 있으
면 뭔가 단서같은 것이라도 찾을 것 같았지만, 전에 재원이 부모님들에게
드려서 어쩔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나도, 재원이의 행방에 대해선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경찰에 신고
를 해보았지만, 하루에만 경찰에 들어오는 실종신고가 수천건이 넘기 때문
에 그쪽으로부터 도움을 받기는 힘들다고 했다. 재원이 부모님에게 전화를
드려보았지만, 오히려 내게 재원이 소식을 물으실 뿐이었다. 축쳐진 목소리
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
때이른 장마가 시작되었는지 며칠째 비는 계속해서 내렸다.
비가 계속되자, 재원이가 더욱 걱정되었다.
어느 순간 부터 매일 아침 저녁 신문을 꼼꼼히 살피고, 뉴스를 보는 것이
일과처럼 되었다. 재원이가 관련된 기사가 나올지 몰라, 신문과 뉴스에 관심
을 기울이다 생긴 버릇이 되었다.
재원이가 사라진 지 일주일 지났을 때, 이상하게 눈길을 끄는 기사가 눈에
띠었다. 언뜻 봤으면 지나쳤을지도 모를 사회면 하단의 작은 기사였다.
경기도 연천군에 **면에 있는 '성일여관'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는데. 여관
주인이 상체와 하체가 잘린 상태의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기사였다. 흉기는
시체 옆에 피묻은 채로 발견되었는데, 평범한 낫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의문점은 사람의 힘으로는 낫으로 사람을 두동강이 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여하튼 경찰은 며칠전에 군대에서 소대장을 때리고 탈영한 거구의 탈영병을
용의자로 주목하고 있다고 한다. 그 탈영병은 정신질환을 앓은 병력도 있다
고 했다.
이 기사에서 이상하게 눈길이 가는 것은 연천에 있는 성일여관과 낫이라는
흉기였다. 재원이가 연천으로 의료조사 갔을 때 묵었던 여관이 바로 성일여
관었고, 재원이는 거기서 여자 귀신을 목격했다고 편지에 썼었다. 그리고 머
리를 떠나지 않았던 낫...... 재원이가 보고 경험했다는 그 버려진 집의 살인
들은 모두 낫으로 자행되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탈영병이 용의자라고 했지만, 재원이가 편지에 썼던 그 괴담과 연관성이 있
어 보였다. 재원이의 실종과 어떤 관계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
다. 담당 경찰에 문의해보면 좀더 자세한 자초지정을 알 수 있을지도 몰랐
지만, 통화한번 해보았던 전직 경찰 주형준씨는 의문과 함께 불에 타 죽었
기 때문에 뭔가를 알아내려면 내가 직접 가는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을 망설였다. 그동안 재원이가 겪었던 여러 가지 불가사이한 일들이
떠올랐다. 또한 내 주위에 일어났던 믿기지 않던 일들도 생각이 났다.
과연 그 모든 것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었을까라는 의문이 나를 계속해
서 괴롭혔다. 재원이가 당한 일을 보니, 나도 예외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
각도 들었다.
하룻동안 고민 끝에 단서를 찾으러 연천으로 가보기로 결정했다. 재원이를
찾아보겠다는 목적도 있었겠지만, 어쩌면 내 눈으로 뭔가 불가사이한 일들
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내가 듣고,경험한 기괴한 얘기들의 진상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우선 재원이 부모님을 찾아가, 혹시 모르니 연천쪽을 찾아보겠다고 말씀드
리고 재원이의 편지를 찾아왔다.
편지를 읽어보니,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던 많은 의문점이 생겼다.
누가 그 과수원에서 살인을 저질렀을까?
재원이는 그날밤 그 버려진 집에서 무엇을 봤길래 정신에 이상이 생긴 것인
가...
과수원 주인의 사라진 머리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지희라는 여자가 본 것은 무엇이고 왜 미쳐버렸을까...
행복했던 그 가족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어 그런 참사가 빚어졌을까...
그 주형준이란 경찰은 과수원 살인사건을 조사중에 왜 포기했으며, 의문의
자살은 무엇을 의미할까....
재원이의 이상한 발작과 증상은 무엇이고, 그 자식은 어떻게 된 것일까..
의혹에 의혹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짐을 싸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재원이 여자친구인 정화씨였다.

"일한씨,
저도 연천에 같아 가요...
재원 오빠 어머님께 들었어요. 연천으로 오빠 찾으러 간다는 것...
사실을 말하면, 나도 오빠가 연천에서 의료봉사할때 이상한 전화를 받았거
든요. 끔찍한 살인사건이 있었던 과수원에서 귀신을 봤다는 등, 목매달고
자살한 여자의 귀신과 얘기를 해봤다는 등의 끔찍한 얘기를 들었어요.
그때는 않 믿었지만, 재원이 오빠가 병원에 실려온 뒤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발 부탁이예요. 저 좀 데려가 주세요.
아무 것도 않하면서, 오빠 소식만 기다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니까, 같이 가요.
절대로 방해는 않될께요...
안 데리고 가시면, 나 혼자라도 갈 생각이예요..
제발... 흐흑..."

너무 절실한 부탁이라 거절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하루에 갔다올수 없을지
도 모르는 여행이라 같이 가기가 쉽지 않게 느껴졌다. 하지만 정화씨는 완
강했다. 몇차례 실랑이를 벌이다가, 같이 가기로 했다.
사실 재원이를 제일 많이 걱정하는 것은 정화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었기 때문에 매정하게 거절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그런 청을 거절할 권
리도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시외버스 터미날에서 만나기로 했다.
정화씨와 약속을 하고나서, 같이 가는 것이 잘한 것인가하는 후회는 했지만,
나보다 재원이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지도 모르니 도움이 될 것도 같았다.
준비를 하면서, 윤석이가 몸담고 있었던 대한 심령학회에 연락을 해볼까 생
각도 해보았지만, 아직 무슨 일인지도 제대로 모른 상태에서 괜히 그 쪽에
데 연락하기기는 이상할 것 같았다.
다음날도 비는 계속 내렸다.
뉴스에서는 전국 각지역에 호우주의보가 내려졌다고 했고, 많은 지역이 물
난리를 겪고 있다고 했다.
정화씨는 나보다 먼저 약속장소에 나와있었다.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터미날에는 많은 사람이 북적거렸다.
연천으로 가는 버스에 오르자, 부대로 복귀하는 군인들이 많이 보였다.
연천주변에 부대가 많아서인 것 같았다. 군인들을 보자, 살인 용의자라는 탈
영병이 생각났다. 버스에서 나는 정화씨에게 재원이가 마지막으로 보내준
편지를 주었다. 편지를 읽던 정화씨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무서워했다.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것 같아 보였다.
그래도 정화씨는 재원이 주변에 일어났던 귀머거리 꼬마애 얘기라든가 정신
병동의 엘리베이터 기술자 얘기를 들었던 적이 있는지, 이런 얘기를 되도록
믿어보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편지 내용이 너무 끔찍해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재원오빠가 이렇게 끔찍한 일에 연관되어 있었군요..
나는 대충 또 무서운 일을 찾아 다니는 것인줄 알았는데..
그래서 전화왔을 때, 당장 집어치우고 올라오라고 했는데....."

정화씨는 계속해서 후회를 했고, 나는 연천에 도착하자마자 해야 할 일을
머리속에 그려보였다. 버스는 어느새 연천시내에 도착했다.
재원이가 묵었던 마을로 가려면, 여기서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연천 터미널에는 헌병과 경찰이 눈에 많이 띠었다. 머리가 짧은 젊은이나
군인들은 모두 검문하고 있었다. 역시 살인사건의용의자를 찾는 것 같았다.
마을로 들어가는 버스안에서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황당한 생각을 하고 있
는 것 같았다. 경찰이 그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탈영병으로 지목하고 있는데,
나 혼자만 그 살인사건에 뭔가 재원이와 연관된 것이 있을 것 같아 여기까
지 온 셈이 되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연천까지 찾아온 내 행동에 문제
가 있지만, 뭔가 알 수 없게 끌리는 것이 느껴졌다. 불길한 예감과 함께...
정화씨는 계속 볼안에 떨고 있었다.
이윽고 버스는 그 마을에 도착했다.
한동안 멈추었던 비는 우리의 도착을 경고하듯이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재원이 편지처럼 음산한 분위기가 풍기는 마을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제일 처음 느낀 것은 마을 사람들의 경계의 눈빛들이었다.
며칠전에 있었던, 그 끔찍했던 살인사건 때문인지 불친절하고 낯선사람을
경계하는 것 같았다.
우선 짐을 풀 곳을 찾으려 하는데, 갑자기 헌병과 경찰들이 긴급하게 우르
르 몰려가는 것이 보였다. 뭔가 다급한 사건이 일어난 것처럼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인가 따라가게 되었다.
버스에서 내린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비가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많
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있었다. 정화씨와 나는 호기심을 가지고 거기
로 향했다.
경찰차와 엠블런스가 보였다. 경찰이 흰 천으로 쌓인 들 것을 옮기는 것이
보였다. 천으로 가려져 있다해도, 그것은 한눈에 사람 시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섬뜩한 것은 머리부분이 벌겋게 피가 배여져 있는 것이
다. 그것을 구경하고 있던 마을 사람들은 모두 겁에 질려 있는 얼글을 하고
있었다.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인가하고 옆에 있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보았다.
그 아주머니는 나의 물음에 나와 정화씨를 살펴보더니, 강한 적대감과 경계
심을 가지면서, 대답을 회피했다.
갑작스런 반응에 당황했지만, 어짜피 묵을 곳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어서 거
짓말을 보태서 분위기를 바꾸었다.

"아주머니, 뭔가 오해하신 것 같네요..
저희들은 대학생인데요, 이 마을 고유의 방언과 전설을 들으러 온 국문과
학생이예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민박이라도 할 곳을 찾다가,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오게된 거예요...
그런데 정말 무슨 일이 난 것이죠?"

의심스런 눈초리를 우리를 살펴보던 그 아주머니는, 그래도 수다떨 상대를
보고 참지는 못했는지 충격적인 얘기를 시작했다.

"공부하러온 학생들이구만...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되었수?...
빨리 이 마을을 떠나요. 요즘 얼마나 무서운 일들이 나는데..
며칠전에도 여관주인 최씨가 토막나서 죽었고, 오늘도 정미소 김씨가 죽어
서 벌견되었수다.
어떤 미친놈이 우리 마을에 와서 사람을 끔찍하게 죽이고 있는거유..
무서워요....
오늘 최씨가 정미소를 안 열어, 아픈가하고 집으로 가보왔는데 글세..
목이 없는채 시체로 발견되었다지 뭐요..
옆에는 여관주인 최씨가 죽었을 때처럼 피묻은 낫이 발견되었데요.
김씨 자기 낫이라는 거야.
그 탈영병인지, 미친 놈이 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갈기갈기 ㅉ어
죽이고 있는거요...
그것도 낫으로......."

그 아주머니의 말을 들은 나는 멍해질 수 밖에 없었다.
이번 살인을 자행하고 다니는 미친놈은 탈영병이던 아니던 무시무시한 놈
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몸서리를 떨고 있는 그 아주머니에게 묶을만한 곳
을 물어보았다. 이 마을에는 여관이 두 개 있는데, 그 살인사건이 났던 성
일여관은 어제 의문의 불로 타버렸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 여관에 가서 살펴볼 것이 있었는데...
재원이 편지에 따르면, 거기에는 과수원 살인사건때 죽은 지철이라는 지희
남동생의 일기도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주형준 순경이 재원이에게 준 수
사기록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이 다 타버렸다니....
나는 다른 하나의 여관을 가르쳐주려는 그 아주머니의 말을 가로막고, 성
일여관 화재에 대해 물어봤다. 그 아주머니는 갑작스런 나의 질문에 의아
해했지만, 그래도 얘기해 주었다.

"어이구....... 그것도 너무 무서운 얘기지요..
며칠전에 그 여관에서 사람이 두동강나는 살인사건이 있었는데, 글세 어
제 거기서 불이 나고요..
거기는 귀신 나온다고 밤에는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곳인데,
저절로 불이 났다는 거요..
김순경 말로는 불이 난 이유는 도무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귀신이 불을 붙였다고 해요..
나도 이 마을을 떠나야 하는데.....
하여간 목구멍이 원수라니깐....."

점점 더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뭔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정화씨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 대충 감이 왔는지 긴장된 모습이었다.
아주머니의 안내로 우리는 이제 이 마을에 단 하나뿐인 궁전여관으로 갔
다. 그 여관은 이름만 궁전이지 완전히 다 무너져가는 허름한 옛날 집이었
다. 벽도 나무로 되있어서바람만 세게 불어도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
성일여관이 문을 닫는 바람에 손님이 갑자기 많아졌는지 방을 잡기가 힘들
었다. 다행히 저녁늦게 들어가기로 약속하고, 방 두개를 겨우 잡았다.
우선 짐을 여관에 맡기고, 길을 물어 그 문제의 버려진 집으로 향했다.
정화씨도 따라나섰다.
비는 계속 내리고, 길은 진창이 되어 시골길은 걷기 힘들었다.
비때문인지, 아니면 연속되는 살인 사건 때문인지 30여분을 걸어가는데도
인적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가끔식 순찰을 도는지 경찰과 헌병들이 눈에
띠었다.
가는 길에 정화씨에게 내 계획을 얘기했다. 사실 특별한 계획은 없었지만,
우선 모든 사건의 중심인 그 버려진 과수원 집을 살펴봐야 할 것 같았다.
정화씨도 같은 생각을 가졌지만, 그 집에 대한 무서움을 느끼는지 그리 내
켜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불편하면 여관에서 쉬라고 했지만, 그래도 따
라 나섰다.
가는 길에 정화씨는 불안을 잊으려는 듯이 재원이와의 재미있었던 일을 얘
기했다. 나도 재원이가 국민학교 시절 짝사랑하던 여자애를 쫓아다니던 얘
기를 해주면서 간만에 서로 웃었다.
기분이 좀 밝아질만 하니, 궁전여관주인이 가르쳐주던 큰 성황당이 보였다.
여관주인 말로는 그 성황당을 지나면 그 버려진 집의 황량한 모습이 보일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긴장이 되는 것을 느꼈다.
길 모퉁이를 돌으니 그 집이 보였다.
처음 받은 느낌은 글자 그대로 흉가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그냥 집이 아닌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보였다.
어쩌면 생명체나 다름없을 지도 몰랐다. 벌써 여러명의 피와 생명을 빨아
드리고 재원의 정신도 앗아간 집이니까....
정화씨가 옆에서 떠는 것이 느껴졌다.
오후 4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비때문인지 벌써 어둑어둑해진 것 같았다.
음산한 기분은 아무리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집은 누가 그랬는지 모든 문이 나무 판자에 못이 박혀 패쇄되어 있었다.
들어가기 위해서는 문을 뜻어야 할 판이었다.
집안에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르나, 그래도 한 번을 들어가봐야 될 것 같았
다. 하지만 가져온 것은 손전등뿐이서 난감했다.
어떻해든 들어갈 볼생각을 현관에 올라섰다.
정화씨는 간신히 내 뒤를 따라왔다. 현관문 앞에 서보니, 문을 막았던 사람
이 서둘렀던지 박아논 판자가 건들거렸다. 손으로 쉽게 떨어졌다.
마치 이 곳을 통해 누군가가 여러번 드나든 것처럼....
판자를 쉽게 때어내고, 허리를 구부리고 그 안으로 한발을 내밀었다.
쾌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안은 창문을 다 막아서인지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깜깜했다.
소름이 쫙 끼쳤다. 누군가가 저 어둠저편에서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후레쉬를 켜서 집안을 살펴보았다.
살육의 현장을 연상시키는 거무죽죽한 핏자국이 사방에 말라비틀어져 있었
다. 여기서 이 안에서 낫에 찔려 과수원 주인 한병식씨, 아들 한지철 그리
고 사윗감이었던 안 중위가 죽었고, 유일한 생존자이자 목격자인 지희라는
여자는 미쳤고 결국엔 목 매달아 자살했다. 그리고 그 살인사건의 조사를
담당하다 포기한 경찰 주형준은 이 저주받은 집을 불사르려다 타죽었고,
이 사건에 얽혀들어간 재원이는 정신을 잃은채 사라지고....
엄청난 비극과 사건이 배어들어있는 집이였다.
집안을 둘러보자 재원이가 편지에 썼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서로를 살육하는 장면들과 섬뜩한 귀신들...
정화씨도 재원이의 편지가 생각나는지 '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걸음 옮길때마다 삐그덕 소리가 기분나쁜 적막을 깼다.
이상하게도 이 집에 들어오니 바깥에 내리는 빗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천천히 후레쉬를 사방으로 비치면서 집안으로 점점 들어갔다.
사실 내가 여기 무엇을 찾으러 왔는지는 아직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
도 여기에 오면 무언가 재원이나 불가사이한 사건에 대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안은 사람의 흔적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벽에 바래진 채 남아있는 피자국들이 얼마나 끔찍한 살육이 여기서
자행되었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갑자기 재원이의 편지속에 과수원 주인 한
병식씨의 머리가 없어진채로 발견되지 않았다는 대목이 생각났다.
그 생각이 나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여기 어디엔가 그 머리가 썩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후레쉬로 부엌쪽으로 비춰보는데, 지나가는 불빛사이로
뭔가가 눈에 띠었다. 언뜻 보여서 잘 알아차릴 수 없었다.
자세히 보기위해 후레쉬를 다시 그곳으로 비춰봤다.
나는 그것을 보고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사람의 얼굴이 탁자위에 올려져 있는 것이었다.
처음엔 너무 놀라 잘 못본것인가 했는데, 자세히 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그 없어졌다는 과수원주인의 머리같았다.
반쯤 감은 눈에 혀를 빼물고 마치 졸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단지 다른 것은 목밑에 피가 튀어 있었고, 얼굴만 덩그러니 탁자 위에 놓
여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움찔거리며 눈을 땔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으윽'하는 소리가 났다.
갑자기 반쯤 감았던 눈을 번쩍 뜨며 나를 섬뜩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것이
었다. 내 속까지 꽤뚫는 것 같았다.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도, 뭔가에 잡힌 것처럼 눈을 땔 수
없었다.
다음 순간 눈을 뜬 그 머리는 갑자기 내게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치는데, 누가 내 팔을 잡았다.
화들짝 놀라 정신을 못 차리는데...

"일한씨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정화씨였다. 나는 마법에 걸렸다 깨난 사람처럼 정신을 차렸다.

"정화씨... 저것 안보여요?
저기 테이블 위에 있는거요.."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아무것도 없는데....."

정화씨의 얘기를 듣고,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고 다시 탁자위를 살펴보았다.
제기랄! 어떻게 된 것인지 언제 그랬다는 듯이 탁자위는 아무것도 없었다.
분명히 내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아니면 나도 너무 긴장해서 헛것을 본 것이지도 모르지만..
걱정해하는 정화씨에게 그냥 잘못 봤다고 둘러대고, 아직도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부엌으로 향했어요. 그 머리의 졸린듯한 표정이 머리속을 떠나
지 않았어요. 아마 재원이도 이런 것을 본 것 아닐까...
내가 본 것이 헛것이었는지 정말 몰랐다.
정화씨는 나의 이상한 행동에 당황했는지 나갔으면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내 생각은 이왕 여기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뭔가를 발견하고 나가고 싶었
다. 더구나 이상한 것이 눈에 보인 이상, 분명히 무언가가 이 집에 있는 것
같았다. 점점 재원이가 보았다는 그 끔찍한 장면들이 내게도 보이는 것 같
았다. 바닥에 말라붙은 검붉은 핏자국들은 난무했던 피와 낫, 그리고 그 살
육을 즐겼던 살인귀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나와 정화씨는 혹시 무슨 흔적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까하고 천천히 부엌쪽
으로 향했다. 한발씩 움직일때마다 무언가가 나타날 것 같았다.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후레쉬 불빛에 비춰지지 않은 어둠속에서 누군가
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나쁜 느낌이었다. 우리의 일거수 일
투족을 환히 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찝찝한 기분과 두려움을 억누르며, 한걸음 한걸음 움직였다.
놀랍게도 정화씨는 생각한 것보다 무서움을 안타는 것 같았다.
무서워하는 것 같았지만, 오히려 나보다도 침착했다.
그런데 갑자기, 정화씨가 뭔가를 발견했는지 소리를 쳤다.
나는 놀라 정화씨가 가르키는 쪽으로 후레쉬를 비쳤다.
피가 뭍은 마루바닥 사이로 뭔가가 세겨져 있은 것이었다.
좀더 후레쉬를 가까이 비춰 뭐라고 쓰여져 있나 읽어보려 했다.
내용을 이해하는 순간 나와 정화씨는 가슴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서 나갈 수가 없어...
저것들이....나를..쳐다보고 있어...
내게로 온다....
안돼.......
재원......>

재원이가 남긴 흔적이었다.
정화씨는 그 글자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는지, 말을 하지 못했다.
재원이가 마지막으로 이 집에 들어왔을 때, 남긴 것 같았다.
그리고 발견되었을때는 얼이 빠진채로 발견되었지만....
무엇으로 새겼는지는 모르겠지만, 글자 글자 사이에 피가 묻어있는 것을
보니, 손톱이나 피를 흘리면서 급하게 새긴 것 같았다.
섬뜩한 내용이었다.
재원이는 여기서 확실히 무언가를 보고, 무슨 일을 당한 것이다.
다른 흔적이 있을까 하고 여기저기 살펴보았지만, 더 이상 눈에 띠는 것은
없었다. 계속 살피면서 부엌으로 향했다.
재원이의 편지에 따르면, 살인사건이 발생되었을 때 지희라는 여자는 혼자
얼이 빠진채 부엌에서 멍하니 선 채로 발견되었다고 했다.
부엌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여자만 살아남았던 것이다. 그 여자는
그 참혹했단 밤의 모든 것을 목격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고 죽
었다.
이상하게도 부엌에도 핏자국이 사방에 튀어있었다. 여기서 시체는 발견되
지 않았는데, 더 끔찍한 일이 있었는지 피가 튀어있었다.
나는 정화씨를 데리고, 그 지희라는 여자가 발견당시 서있었다는 구석으로
가 보았다. 그 여자는 발견당시 두려움에 질린 표정으로 뭔가 무서운 것을
본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나는 여기 오다가 생각해봤는데, 그 여자가 그때 그 날밤에 있었던 일 때
문에 움직이지 못하고 여기 서있었던 것이 아니라, 발견 직전 그 자리에서
무언가를 보고 충격을 받고 움직이지 못했을 수도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
다. 다시 말해 그 날 집에 있었던 사람들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보고 정
신이 나갔을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지희라는 여자가 서 있던 자리는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서 있을
때 피가 흘러내렸는지 가지런히 놓여있는 발자국을 남겨놓고 피가 말라붙
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때는 정말 글자그대로 바닥이 피바다였을 것 같았
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하나의 의문도 생겼다. 피자국사이로 발자국이 났
다면 거기 서있는 후에 피가 흘렀다는 것이었다.
이 안에서 일어났던 일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뭉개구름처럼 피어나는 의문과 함께 나는 지희라는 여자가 서있던 곳에 섰
다. 지희라는 여자는 이 구석에 서서 무엇을 본 것일까...
잠시 모든 정황증거를 무시하고 내 나름대로 그때 상황을 생각해 보았다.
마루에서 누군가에 의해 살인이 시작되었다.
약혼자인 안중위가 죽고, 동생 지철이가 죽고, 아버지가 목이 잘려 죽어나
갈 때, 지희라는 여자는 무서워 이 부엌으로 도망쳐 왔을 것이다.
무서움에 떨며 뭔가를 어떻게 해야하는가 생각했을 것이다.
그때 뭔가를 봤을 것이다.
충격적인 그 무엇인 것을....
천천히 후레쉬와 함께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화씨는 재원이의 흔적을 찾는데 여념이 없었다.
지희라는 여자의 키를 고려해 잠시 몸을 구부려봤다.
무엇이 보였을까....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꼭 집안의 무엇이라는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래서 자세히 반대편을 살펴보았다.
판자로 가려진 창문이 하나 있었다.
나는 황급히 그 창문으로 가서 판자를 뜯어냈다.
판자를 뜯어내니 작은 창문이 하나 보였다. 창문사이로 빛이 들어왔다.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 창문밖을 살피는 순간 나는 뭔가 머리를 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지만, 자세히 보니 내가 본
것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창문너머로는 과수원이 보였다. 산등성의 비탈에 있는 과수원이라 작은 창
밖으로는 병풍처럼 펼쳐졌다.
저멀리 나무들 사이로 언덕위에 작은 둔덕이 하나 보였다. 무슨 성황당같
고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파헤쳐졌는지 그 둔덕은 지저분하게 붉은 흙이
보였다.
자세히 살펴본 후, 그 둔덕이 무엇인가 충격과 함께 알게 되었다.
무덤이었다.
무덤이 파헤쳐져 있는 것이다.
재원이 편지대로라면, 지희라는 여자의 어머니, 즉 이 과수원 주인의 부인
은 몇 년전에 죽었다고 했다. 그럼 그 무덤은 이 근처 어디있을 것이 분명
했다. 아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그 무덤 같았다.
지희라는 여자는 여기서서 자기 엄마의 무덤이 파헤쳐진 것을 봤을 것이
다. 또 의문이 떠올랐다.
누가, 언제, 무슨 목적으로 무덤을 파헤쳐 것일까?
또 지희라는 여자는 그 파헤쳐진 무덤을 보고 그렇게 큰 충격을 받았을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정화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한씨, 여기 보세요!
이거 혹시...."

정화씨가 가르킨 곳은 부엌 바닥이었다.후레쉬 불빛에는 보이지 않다가
창문을 뜯어낸 후 빛이 들어와 발견된 것이다.
바로 뼈들이었다.
누가 태웠는지 재들사이에 하얀 뼈들이 보였다.
너무 이상했다. 살인 사건이 난 후 경찰들이 다 조사한 후 폐쇄한 집일텐
데 어떻게 뼈가 발견된 것일까...
그 후에 무엇인가 들어와 사람을 태워 뼈만 남긴 것인가...
정화씨는 혹시 재원이가 그렇게 된것인가 놀라고 걱정하는 모습이 역력했
다. 나도 설마하고 그 뼈를 살펴보았지만, 재원이의 뼈라기엔 너무 작아 보
였다. 의학상식이 없이 이것이 어떤 연령 사람의 뼈인지, 어느 부위 뼈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정화씨를 안심시키기 위해 마치 아는 것처럼 설명했
다.

"정화씨 걱정마세요..
이 뼈들은 재원이 것일 리가 없어요.
너무 작고, 대충 보니 적어도 한달 정도는 되 보이는데요...
이제 이 기분나쁜 집을 나가죠..
과수원도 둘러봐야 되고, 여기 더 있단 무슨 일을 당할 것 같아서요.."

나는 정화씨를 진정시키고 뒷문을 뜯어내고 과수원으로 나왔다. 그 버려진
집의 뒷문을 나서자 마자, 가슴이 답답한 것이 탁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많은 시간을 안에서 보냈는지 어느새 바깥은 어둑어둑해졌다.
그 안에 있는 동안 기라고 ㅃ앗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그 집이 아직도 무시무시하게 서 있었다.
꼭 지옥에서 나온 기분이었다. 하지만 불길하게도 그 집에 다시 돌아가야
할 것같은 예감같은 것이 느껴졌다.
비는 아직도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질척이는 길을 밟으며 부엌에서 보이던 그 무덤으로 향했다.
과수원은 그 동안 돌보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나무들
이 다 죽어서 음산한 기분까지 느껴졌다.
정화씨는 집안에서 발견된 뼈들이 아직도 마음에 걸리는지 찜찜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언덕까지는 금방이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역시 과수원 주인의 아내 묘였다.
집과 가깝게 무덤을 둔 것을 보니, 과수원 주인의 아내 사랑의 깊음을 느
낄 수 있었다. 시간날때마다 무덤에 와보고, 잘 돌보려고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잘 꾸며논 그 묘가 사정없이 파헤쳐진 것이다.
두려움을 억누르고, 무덤 가까이 다가갔다.
무덤이 파헤쳐진지는 꽤 오래된 것 같았다.
파헤쳐진 무덤안을 보는 순간, 머리속이 멍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석관뚜껑이 열려져 있고 무덤안은 텅비어 있던것이었다.
썩은 시체를 생각하고 다가갔는데 비어 있었던 것이었다.
파헤쳐진 흙에 벌써 듬성듬성 풀이 난 것으로 봐, 꽤 오래전에 파헤쳐진
것 같았다.
그럼 이 안에 시체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도무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알아내면 알아낼수록 점점 복잡해지고 있었
다. 경찰이 살인 사건이 났을 때, 이 무덤이 파헤쳐 진 것에 대해서는 조사
않했을 리가 없는데...
어두워져서 후레쉬 불빛이 필요했다. 후레쉬를 켜고 무덤 주위를 살펴보았
지만 특별한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정화씨도 파헤쳐진 무덤을 보고 몸서리를 치면서, 지금은 빨리 여기를 내
려가고 다음날 밝아지면 다시 오자고 했다.
산촌이어서 그런지, 날이 흐려서 그런지 순식간에 사방은 어두워졌다.
어두워지니 나도 겁이 나기 시작했다.
서둘러 내려가려는데, 후레쉬 불빛에 언덕 저편에 무언가가 언뜻 보였다.
자세히는 못봤지만, 괜히 마음에 걸렸다.
그것만 살펴보고 가자고 정화씨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쪽으로 향했다.
무덤에서 50여미터 쪽에 있었다.
다가가보니 돌을 쌓아놓은 돌무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것을 보니 음침하고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성황당같이 생겼는데, 과수원 한복판에 이런 것이 있는 것이 이상했다.
주위를 살펴보니 나뭇가지에 울굿불굿한 천도 걸려있고 기분나쁘게 생긴
부적같은 것도 보였다. 사람의 손이 한참 안 갔는지 지저분해 보였다.
고대 종교에서나 볼 수 있는 무슨 의식을 치뤘던 제단처럼도 보였다.
그러고 보니, 쌓아놓은 돌이 물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후레쉬를 비춰서 살펴보니, 돌들이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피 같았다.
영문을 몰랐지만, 등골이 오싹해졌다.
정화씨는 사방이 깜깜해지고, 분위기 역시 심상치 않자 빨리 내려가고 싶
은 눈치였다.
내 상식으로는 이것이 뭐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 오늘은 이정도로 그만
하고 내려가는 것이 낳을 것 같았다.
이제 주위는 완전히 어둠에 쌓였다.
어디서 뭔가가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 였다.
그 버려진 집도 저편에 우리를 과수원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처
럼 서있었다.
불길한 기분을 지우며 우리는 과수원을 내려왔다.
서둘러 내려오는데, 갑자기 정화씨가 '아야!' 하면서 넘어졌다.
나뭇가지에 걸려 넘어진 것 같았다.
나는 괜찮냐고 물어보면서 후레쉬를 비춰보았다.
그런데 정화씨가 걸려 넘어진 것은 나뭇가지가 아니었다.
피투성이의 사람의 팔이었다.....

...정화씨는 자기가 걸린 것이 피투성이 사람손인 것을 알고 비명을 질렀다.
날카로운 비명소리는 산을 메아리 쳤고, 나는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흔들리
는 후레쉬 불빛에 비친 그 손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나는 막 도망가려는 정화씨를 진정시키고, 그 손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후레쉬 불빛에 창백해 보이는 것을 보니, 산 사람의 손 같지 않았다.
팔꿈치부터 떨어져 나간 사람 손이었다.
천천히 손 주위를 비쳐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손의 주인은 5미터 떨어진 저편에 엎어진 채로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엎어져 있는 모습이, 한눈에 봐도 시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화씨는 팔이 잘려나간 시체를 보고 거의 기절할 것처럼 놀랐
다. 나는 시체보다 정화씨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더욱 섬뜩했다.
정화씨를 꼭 붙잡고 그 시체쪽으로 다가갔다.
언뜻 봐도 거구의 시체였다.
비가 내려 풀잎에 떨어지는 '후드득'하는 소리는 마치 누군가가 풀잎을 해
치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 같아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시체쪽으로 다가가게 되었다.
그 팔이 잘린 시체를 가까이에서 보니, 머리가 짧고 군복같은 것을 입고
있는 것을 군인같았다. 다른 손 옆에는 피묻은 낫이 떨어져 있었다.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쳐지나 가는 것이 있었다.
이번 연쇄 낫 살인사건의 용의자라는 그 탈영병....
그 생각이 나자, 역시 이 사람은 범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을 죽인 사람이 진짜 살인귀라는 생각이 뒤따랐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쫙끼치며 무서움이 느껴졌다.
시체가 여기서 발견된 것을 보니 그 살인귀가 이 근처를 배회한다는 것이
었다. 나는 덜덜 떨면서, 뒷걸음질쳤다. 정화씨도 거의 무서워서 울면서 시
체로 부터 멀어지려고 했다. 빗소리는 어둠속에서 무언가가 우리들에게 접
근하는 소리 같았다. 그 순간 사방이 번쩍하면서 귀가 떨어질 것 같은 천
둥소리와 함께 사방이 밝아졌다. 번개였다.
그 짧은 순간, 나는 무서워서 미치는 줄 알았다.
사방이 환해지는 순간 우리 앞에 여러명의 사람들이 서있는 것이 보였다.
모두 쾡한 눈으로 우리를 빤히 보고 있었고, 한 손에는 피묻은 낫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피투성이였고, 국민학생 또래의 꼬마애와 군복을 입고
있는 장교, 그리고 중년의 남자도 있었다. 그 중에는 흰 옷에 머리를 풀어
해친 여자도 보였다.
그들은 바로 그 과수원에서 죽음을 당했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극도의 공포심을 느껴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짧은 순간동안 나는 모든 것을 봤고, 죽음과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어두워지는 순간 그들이 낫을 들고 우리를 덮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을 보는 순간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온 몸에 비에 젖고 진
흙투성이가 된 것도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정화씨의 손을 잡고, 우산을 팽
개치고, 거기서 벗어나려고 필사적으로 뛰기 시작했어요. 정화씨는 나의 돌
연한 행동에 움찔하면서, 열심히 따라왔다. 나는 정화씨의 손을 잡고 미친
듯이 과수원을 내려왔다. 비가 떨어지는 후드득 소리는 마치 뒤에서 그들
이 낫을 들고 쫓아오는 것 같았다. 몇번을 넘어지고 과수원을 벗어났지만,
그 버려진 집이 우리 앞에 버티고 있었다.
나는 그 집을 보고, 무서움을 느꼈다. 정화씨가 힘들어하는 것은 신경쓰지
않고 무조건 뛰기만 했다.
내 머리속을 채우고 있는 생각은 오직 여기서 빨리 벗어나야 된다는 것이
었다. 어느새 우리는 그 과수원 집을 벗어나 길을 달리고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숨이 차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멈췄다. 정화씨는 너무 고통스러운
것 같았다. 숨이 넘어갈듯한 목소리로 나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일한씨, 허헉... 도대체.. 헉
무슨.. 일인데.. 허헉 갑자기... 도망치듯이.. 달린거예요?
허헉... 놀라고.. 헉헉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요!."

나는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 정화씨에게 그들의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지
못했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정화씨는 영문을 모르는 표정을 하면서 오히
려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럼 그들은 내눈에만 비쳤단 말인가?
나도 미쳐가는 것인가?
비를 맞으면서, 만감이 교체했다. 정화씨가 다시 말을 걸때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정화씨에게 괜찮다고 얼버무리며, 우선
경찰서로 가자고 했다. 우리가 발견한 시체에 대해 신고를 해야 할 것 같
았다. 우산을 거기 내팽기치고 왔기 때문에, 비를 다 맞으면서 파출소까지
찾아갔다. 시골의 작은 파출소인데도 이번 살인 사건때문인지 경찰과 헌병
들로 붐볐다. 온몸이 젖고 진흙투성이의 우리가 경찰서 문을 여는 순간, 모
두들 하는 일을 멈추고 우리를 돌아보았다. 나는 용기를 내어 옆에서 우리
를 보고 있는 경찰에게 시체를 발견했다는 것을 얘기했다.
과수원에서 발견했다는 말에, 모두들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알지 말
아야 할 것을 알게된 것 같은 표정들을 지었다. 그 어색한 적막을 이번 수
사의 책임자같은 사람이 깼다.

"모두들 뭐하고 있는 거야?
빨리 움직여! 저 안내 좀 해 주시죠."

그곳으로 돌아가긴 싫었지만, 책임자의 강압적인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나도 경찰과 헌병들과 그곳으로 다시 출발했다. 추위와 두려움에 떨고 있
는 정화씨는 여관으로 돌아가 몸좀 말리라고 했지만, 혼자 돌아가기 무섭
다며 파출소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같은 차에 탄 그 책임자는 자기를 김반장이라고 소개했다. 원래 이 마을
출신인데, 진급해서 지금은 연천시에서 강력계 반장을 하고 있다고 했다.
작달막하고 고생에 찌든 듯한 40대였는데, 경찰이어서 그런지 눈빛만은 날
카롭고 평범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자기 소개를 마친 뒤 대뜸 우리에 대
해서 물었다.
어쩌면 당연한 질문일지도 몰랐지만, 나는 그 질문을 받고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여기 온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막막했다. 낮에 동네
아주머니에게 했던 거짓말은 김반장에게는 통할 것 같지 않았다.

"저... 얼마전 여기로 의료조사왔던 친구가 사라졌거든요.
그래서 그 친구를 찾아보려고요..."

내가 생각해도 좀 엉뚱한 대답이었다. 그러나 김반장은 놀라지도 않고 좀
더 자세히 얘기해 달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대략적인 얘기를 했다.
재원이란 친구가 여기서 과수원에 있었던 살인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뭔가
조사하다 정신이 나간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며칠전 병원에서 사라져서 혹
시나 하고 여기로 찾으러 왔다고 했다. 물론 재원이의 편지에 묘사되었던
귀신이나 내가 목격했던 그 끔찍했던 모습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과수원 살인사건에 대해 말을 꺼내자 그 김반장의 표정이 굳
어졌다.

"그런 일이 또 있었군..... 이상해...."

뭔가 알고 있는 듯한 혼잣말을 지껄인 후, 이내 전형적인 경찰의 모습으로
돌아와 내게 그 시체의 발견경위에 대해 물어보았다.
막 설명을 하려는데, 어느새 그 버려진 집에 도착했다. 걸어가면서 얘기하
자며, 그 반장은 우산을 피고 앞장섰다. 속속들이 경찰과 군 관계자들이 도
착했다. 헤트라이트 불빛은 받은 그 집은 정말 무시무시하게 보였다.
나는 떨리는 것을 참으며, 김반장을 내가 시체를 본 것으로 안내했다.
시체옆에 우산을 버리고 왔기 때문에 한눈에 그 자리를 찾았다.
시체는 우리가 발견한 그대로 있었다. 잘려진 팔도 비를 맞으며 제자리에
있었다. 장교하나와 김반장이 비닐장갑을 낀채로 그 시체를 뒤집어봤다.
생각했던대로 그 시체는 탈영병이 맞았다. 후레쉬 불빛에 비쳐진 뒤집힌
시체는 죽은지 얼마 안되는지 아직도 혈색이 도는 것 같았다.
죽을 때 심한 고통이 있었는지, 얼굴을 일그러질대로 일그러졌고 눈은 뭔
가 무서운 것을 본 것처럼 크게 떠져 있었다. 경찰들은 조심스럽게 옆에
버려진 낫을 수거했다.
그런데 헌병 책임자로 보이는 장교와 김반장이 언쟁하는 듯한 모습이 보였
다. 그 둘은 점점 언성을 높이더니, 급기야는 김반장이 "당신 마음대로 해!
나는 책임 지지 않겠어!"라고 소리쳤다.
그러더니 김반장은 조사도 끝나지 않았는데도 차로 돌아갔다.
그 장교는 김반장이 자리를 떠나자, 헌병들을 지휘해서 일사분란하게 자리
를 정리했다. 시체와 팔, 그리고 낫을 조심스럽게 운반하여 따라온 엠블란
스로 옮겼다. 김반장을 따라온 경찰들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 뒤를
따랐다. 멍하니 서있는 나에게 한 경찰이 다가오더니 수고했다며 타고왔던
차에 타라고 했다. 서로 가서 목격자 진술만 하면 다 끝나니 조금만 더 수
고를 부탁한다고 했다.
김반장이 타고 있던 차로 다가가는데, 그 장교가 차안에 김반장을 향해 느
믈거리는 표정을 하며 말했다.

"김반장님, 화 푸세요...
아까 말한 것처럼 시체는 읍내병원에서 부검하지요. 의사는 우리 부대 군
의관으로 하고, 피묻은 낫을 서울로 보내서 검사하죠..
그리고 내일중에 보고서를 보낼테니 동의해 주세요.
언론에는 군 통제하에 알리는 것으로 하시죠.
그럼.... "

대충 들어보니, 수사 주도권 다툼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차에 타니 김반장은 씩씩거리며 그 장교에 대해 욕하고 있
었다.

"나쁜 놈들, 아예 소설을 쓰고 있군! 소설을!
뭐, 미쳐서 사람을 둘이나 베어버리고, 자기 팔을 잘라 자살한 것이라고!
그리고 수사는 그렇게 종결하고, 언론에도 그렇게 알리자고!
나는 앉아서 박수만 치라고....
나쁜 놈들....."

김반장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니, 군대측에서 탈영과 살인의 의미를 축소하
기 위해, 그 탈영병은 정신병자였고 결국엔 자살한 것으로 마감하려 한 것
같았다. 김반장의 불편한 심기때문인지 차안에 탄 사람들은 조용히 있었다.
씩씩거리던 김반장은 돌연히 내게 질문을 던졌다.

"일한씨라고 했죠?
그래서, 그 친구의 단서는 찾았나요?
이 마을에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낯선 사람들은 모두 확인해봤는
데, 일한씨 친구같은 사람은 없었는데....
그건 그렇고 그 친구 힘은 쎄요?"

갑작스런 김반장의 이상한 질문이 마음에 걸렸지만, 솔직이 대답했다.

"그 친구 의대생이라 힘이 그렇게 쌘 것 같지는 않은데요..
운동도 별로 안 좋아하고...
그런데 그건 왜?"
"아니, 아무것도 아니고...
그래 차도 끊겼는데, 묵을 곳은 찾았소?"

김반장은 나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말을 딴 쪽으로 돌렸다.
차는 파출소에 도착했다.
정화씨는 오늘 하루가 너무 힘겨웠는지, 소파에 쪼그리고 자고 있었다.
나는 김반장에게 부탁해서 담요를 정화씨에게 덮어주었다.
책상에 앉아, 나는 시체를 목격한 것에 대해간단히 진술했다. 물론 그 버
려진 집안으로 들어간 일은 빼고, 단지 재원이를 찾아 과수원 근처를 헤매
다가 그 시체를 발견했다고 했다. 김반장은 내 얘기를 듣는등 마는등 하더
니, 이제 가보라고 했다. 나는 정화씨를 어렵게 깨워 여관으로 나섰다. 김
반장은 나가는 나를 보고 의미있는 한마디 했다.

"일한씨, 조심해요...
이런 시골에서는 서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요......
그리고 그 재원이란 친구를 우리가 발견하면 꼭 연락해 주겠소..."

그리고는 파출소안에 사람들을 모아 무슨 회의를 시작하려 했다.
나는 가만히 서서 김반장의 말의 의미를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그 말에 담
긴 뜻은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찝찝함과 함께 파출소문을 나서는 내뒤로
김반장의 풀죽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러분들 모두다 수고했어요.
이제 다 끝난 것 같으니, 짐 챙겨서 떠날 준비하세요.
나는 여기서 며칠 있다 갈테니, 먼저들 시로 출발해요.
서장님에겐 이 사건 뒷처리한다고 내가 보고할테니......."

비는 아직 내리고 있었다. 경찰에게 빌린 우산을 쓰고 우리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여관으로 향했다. 정화씨는 도대체 오늘 우리가 보고 겪은 것이 무
엇이냐고 내게 물었다. 솔직이 나도 대답할 수 없었다.
재원이를 찾아 여기에 왔지만, 재원이에 대한 단서라곤 그 집에 새겨놓은
글밖에 못찾았고, 이상한 사건에 휘말리고 있는 것 같았다. 정화씨가 너무
지친 것 같아, 내일 첫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라고 했다.
정화씨는 좀 갈등하는 것 같더니, 생각해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여관에 들어가 맡긴 짐을 찾고, 부탁한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우리를 대하는 여관 주인의 태도가 좀 이상했다. 낮의 친절함과달
리 우리를 경계하는 눈치였다. 마치 우리가 달갑지 않은 불청객처럼 대했
다. 흘끔흘끔 우리를 보는 눈치가 기분나쁠 정도였다.
우리는 애써 개의치 않고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정화씨에게 혹시 모
르니 문단속 잘하고 자라고 했다. 푹자고 내일 보자고 하고, 내방으로 들어
왔다. 방에 들어오자 마자, 지저분한 화장실에서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면
서, 오늘 있었던 많은 일들을 생각해 보았다. 마치 암흑속에서 조각조각들
을 찾아 맞추는 것 같았다. 뭔가가 연관이 있을 것 같아 보이면서도, 도무
지 알 수 없는 것 같았다.
샤워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웠다. 얇은 벽을 통해 들어오는 빗소리가 귀를
거슬렸다. 몸은 몹시 피곤했다. 하지만 잠이 잘 않았다. 잠을 애써 이루려
는데, 아까 그 집에서 본 졸린 눈의 사람 머리와 과수원에서 본 낫을 들고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갑자기 소름이 쫙 끼치면서, 그 사람들이 여관 방안에 나타날 것 같았다.
부끄럽지만 무서움이 느껴졌다.
그 두려움을 쫓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쾅쾅'하고 문 두들기는 소리에 잠이 깼다. 밤새도록 그 사람들에 대한 악
몽에 시달렸는지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았다.
잠시 잠을 깨고 문을 열었다.
어쩔 줄 몰라하는 정화씨였다. 정화씨는 다급하게 누군가가 우리를 찾아왔
다는 것이다. 아직도 잠결에 있었던 나는 그 얘기에 확 잠이 깼다.
누가 우리를 찾아오다니....
좀 이상했다. 이 마을에 아는 사람이란 어제 만난 김반장뿐인데...
아침부터 우리를 찾아온 사람이 있는 것이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정화씨 말로는 아침에 여관주인이 어떤 사람이 우리를 찾는다고 했다는 것
이다. 나는 잠시 시간을 달라고 하고, 나갈 채비를 했다.
준비를 하면서 생각해봤지만 머리속이 혼란스러워지기만 했다.
방안을 나서니, 정화씨가 안절부절하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뭔가 두려움에 떠는 것 같았다. 얼굴을 보니 피로가 가득해 보였다. 나는
혹시나 하고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잇었냐고 물었다.

"...사실 어제 한숨 못잤어요.
믿으실 줄 모르지만, 어제밤에 재원이 오빠를 봤어요.
꿈인지는 모르겠지만, 재원이 오빠의 모습을 봤어요.
그런데, 평소의 모습이 아니라 피 투성이가 된 모습이었어요.
광기어린 눈빛하고 살기어린 표정, 오빠같지가 않고 너무 무서웠어요..
그 모습을 보고 잠을 못 이루었어요...
너무 무서웠어요..."

정화씨는 정말로 무서운 것을 본 사람처럼 얘기했다.
나 역시 섬뜩함을 느끼고 있는데, 여관주인이 밑에서 우리를 부르는 소리
를 들었다. 아침부터 찜찜한 기분을 느끼며 우리를 찾아왔다는 사람을 만
나러 내려갔다.
주인은 우리가 늦게 내려온 것에 대해 짜증스러운 표정과 함께 여전히 불
쾌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주인 옆에는 작은 키의 여자아이가 서있었다.
아이인데도 불구하고, 언뜻보기에 이상하게도 여관주인이 어려워하는 것처
럼 보였다.
그 아이는 우리를 보자마자, 귀에 거슬릴정도의 높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친구를 찾아왔죠. 그 의대생.
우리 엄마가 당신들 보고 싶대요.
따라와요."

냉랭한 목소리로 말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장섰다.
가까이서 보니 그 아이처럼 보인 여자는 아이가 아닌 것 같았다. 어른 같
기도하고 애같기도 하고 잘 구분이 안가 보였다. 어투도 좀 이상하고, 보통
사람같지는 않아 보였다.
우리는 어리둥절한 상태로 그 여자뒤를 따라갔다.
비는 지겹게도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가는 길에 우연히 마주치는 마울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경계하는 것 같았다. 뭔가 우리에 대한 나쁜 소문이
벌써 마을 사람들 사이에 퍼진 것 같았다.
그 여자는 우리를 한적한 곳으로 데려갔다.
한참을 따라가다가 보니, 평범하게 보이지 않는 집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집장식이 울굿불굿한 것을 보니 무슨 무당집같았다.

"들어가요."

그 여자는 다시한번 냉랭한 목소리로 우리를 방안으로 안내했다.
우리가 들어간 방은 생각보다 컸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붉고 푸른 귀
신의 나무 조각들었다. 보살이나 부처의 상도 보였다.
생각했던 것처럼 무당집이었다.

"여기와서 앉아."

저 방끝 그늘속에서 굵직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무슨 마법에 홀린 것처럼 그 목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서 앉았다.
가까이서 보니,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볼 수가 있었다.
나이는 종잡을 수 없지만, 짙은 화장뒤의 숨겨진 주름살로 보아 5,60대로
보였다. 하지만 그 눈매는 범상치 않았고,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풍겨내고
있는 무당이었다.

"어허.. 남자는 귀(鬼)에 쌓여있고, 여자는 살(殺)을 보고있어...
너희들, 친구를 찾아왔지.
변해버린 친구.
그 친구는 과수원에서 변해버렸지...."

그 무당 할머니는 다짜고짜 이해할 수 없는 애기를 시작했다. 나는 조심스
럽게 물어봤다.

"저... 무슨 일로 저희를 부르셨죠?"

그 무당 할머니는 휴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좀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
를 시작했다.

"벌써 마을엔 너희 얘기가 쫙 퍼져있어.
귀신을 데리고 이 마을에 왔다고..
사실 모든 일이 내 책임이야..
그런데 두려워서 아무 것도 못하고 이 지경으로 만들었지.
내 얘기를 잘 들어. 아마 친구를 찾는데 도움이 될꺼야.
그때 병식이 부탁을 들어주지 말았어여 하는데.
과수원 주인 병식이는 어렸을 때 부터, 이 집에 놀러오곤 했어.
남들은 다 무서워하고 꺼려하던 무당을 스스럼없이 대하고
내 말상대가 곧잘 되주었지.
결혼 후에도 부인과 함께 가끔씩 인사하러왔지.
지희, 지철이가 태어나고 자라고...
참 행복하고, 보기좋았지.
그런데,병식이 안사람이 시름시름 앓다고 죽었어.
그때 병식이 참 슬퍼했지.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어.
그래도 자식들 때문에 정상으로 돌아왔어.
병식이는 제어미 쏙 빼닮은 지희에게 온갖 정성을 다했지.
항상 자랑하고 다녔지.
자기 딸이 마을 최고의 신부감이라고.
그러더니 그 사랑스런 딸이 안중위라는 군인과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지.
그때 병식이가 나를 찾아와서 고민을 털어놓았지.
지희가 시집가서 행복해지는 것은 좋은데, 너무 허탈하고 외롭다는 거야.
그러더니 덜컥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주문을 해달라는 거야.
나는 무슨소리냐고 화를 냈지.
그런데 병식이는 용케 기억하고 있었어. 병식이가 중학생일 때, 내어미
무당이 죽었지. 죽어가면서 내게 남긴 주문이 있는데 죽은 사람을 살려
내는거야.
너희들은 믿지 않겠지.
과학을 신보다 중요시 하는 놈들이니까.
그 주문은 너무 위험하고 비밀스러우니 일생에 단 한 번만 쓰고, 죽기
직전에 내 딸에게 넘겨주라며 어미가 남겼어.
어미말로는 이 주문을 걸며, 죽은 사람이 밤마다 무덤에서 나와 주문을
건 사람앞에 나타난다는 거야. 대신 절대로 다른 사람이 보면 안되고,
당사자 이외에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야 성공하다고 했지.
그 주문을 받고, 어미가 죽었을 때 나도 처음으로 슬픔을 느꼈지.
그때 병식이가 옆에 있어주었지. 아마 그때 내가 무의식중에 그 주문
얘기를 했을꺼야.
병식이는 그 얘기를 기억하고 있던 것이고, 나를 졸라대기 시작했어.
나는 완강히 거절했어.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주문은 분명히 마가 낀다며. 그래서 평생 한 번
밖에 쓸 수 없다는 거라며.
하지만 병식이는 막무가내였어. 그때부터 매일 나를 찾아와 울고 애워하
고 부탁했지.
그때 딱부러지게 거절했어야 하는데.
다 내 업보고, 내 실수지.
하도 애원하니까 내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했어.
그리고 나도 그 주문을 죽기 전에 한 번 써보고 싶었거든.
결국 병식이에게 넘어갔지.
그날부터 병식이에게 그 주문의 절차를 하나하나 가르쳐주었지.
나는 이제 다리를 못써 내가 직접 주문을 걸수가 없었지.
병식이는 안사람을 되살릴 수 있다는 것에 빠져들어, 딸애 결혼준비에도
신경 않쓰고 여기에만 매달렸지.
이런 큰 주문에 몰두하게 되면, 당사자의 기가 빨려 들어가 위험하게 되
는데, 병식이가 그런 것 같았어.
점점 성격도 비밀스러워지고 포악해지는 것 같았어.
나도 변해가는 병식이의 모습을 보니 슬슬 겁이나기 시작했어.
하지만 이미 막기는 너무 늦었었지.
주문을 건다는 그믐달 밤, 나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병식이의 결과를
기다렸지.
그런데, 그날밤 악귀의 기가 갑자기 느껴졌어.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그 과수원의 몰살에 대한 얘기를 들었지.
나는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어.
그때 후회해봤자 소용없었어.
그런데, 그 살육이 평범하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어.
내 주문이 엉뚱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그 후에도 그 집에 얽힌 여러 가지 혼귀얘기를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지.
그거 알아? 무당은 아무리 신통력이 있어도, 누군가가 부탁해야
굿이나 주문을 걸어 잡귀를 쫓을 수 있어.
남의 부탁 없이 자기 뜻대로는 신통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
우리 무당의 숙명이야.
그런데 아무도 그 집의 악귀를 쫓아달라고 부탁한 사람이 없었어.
다리를 못쓰게 되어, 이 방밖으로 나가보지 못한지가 벌써 10년째니,
그 집에 가볼 수도 없었지. 아무도 무당을 도와주려 하지 않거든.
자기가 무당이 필요하기 전까지는...
여하튼 그래서 그 집에 어떤 악귀가 있고,
왜 온가족이 죽었는지 알 수가 없었지.
그 집에 관한 무서운 얘기가 돌고, 미쳐버린 지희가 자살하고,
서울에서 온 의대생이 그 집에 들어갔다 미쳤다는 얘기도 들었지.
그리고 주순경이 그 집을 태우려다가 자기가 불타죽었다는 얘기도.
그 집에 분명히 무시무시한 악귀가 서려있어.
그런데 알 수가 없지.
너희들이 믿을 지는 모르지만, 내 얘기는 끝났어.
내가 너희들은 부른 이유는 그 집에서 미쳐나간 너희 친구를 찾기 위해
서는 너희들도 너희 이야기를 내게 해줘.
너희들이 그 집에서 본 것, 친구가 그 집에서 겪은 일들.
나도 그 집에 대해서 책임이 있거든."

나는 그 할머니 무당의 얘기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죽은 사람을 살
려낸다는 등, 악귀가 서려있다는 등, 자기에게 얘기하면 재원이를 찾아준다
는 듯이 얘기나 하고, 그냥 통속적인 무당 사기꾼의 얘기 같았다.
하지만, 옆에 정화씨는 그 무당의 말을 거의 믿는 것처럼 진지하게 무당의
얘기를 듣더니, 우리 얘기를 들려주었다.
재원의 편지 얘기서부터, 우리가 그 집과 과수원에서 본 것들을 상세하게
얘기했다. 가만히 그 얘기를 듣고 있던 나는 속는셈치고 얘기해보자라는
생각으로 내가 그 집과 과수원에서 본 귀신의 모습도 얘기해 주었다.
하긴 이런 얘기를 믿을 사람은 그 무당할머니 밖에 없어 보였다.
우리의 얘기가 끝마쳐지자, 그 무당 할머니 얼굴은 흙빛이 되었다.
처음의 당당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병식이가 건 주문은 확실히 잘못되었어.
그 무서운 것을 살려내다니.
너희들, 친구 찾는 것 포기하고 빨리 이 마을 떠나!
내 죄고 업보이다.
저승에 가서 어미 얼굴을 어떻게 볼꼬.
아아......"

무당 할머니의 말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떠나라고 하기에 나는 지루
함을 못이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정화씨는 정반대였다.
재원이를 걱정하는 것 때문인지 너무 진지했고, 무당 할머니에게 애원을
하는 것이었다.

"할머니, 아까 그러셨죠.
부탁하는 사람이 없어 그 집의 악귀를 못ㅉ는다고.
그럼 이러면 어때요?
내가 할머니께 그 집의 악귀를 쫓아달라고 부탁하는거예요.
그리고 재원이 오빠도 찾아달라고...
할머니도 뭔가 하고 싶다고 했잖아요?"

정화씨는 필사적으로 부탁을 계속했다. 재원이를 걱정하는 정화씨의 마음
은 이해할 수 있겠지만, 쓸데없는데 신경쓰고 부탁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
었다. 그 무당은 처음에는 거절했다. 이제는 자기힘으로도 어쩔 수 없다며.
하지만 정화씨의 집요한 부탁과 애원으로 결국에는 한 번 해보겠다고 승낙
했다. 대신 자기가 몸이 불편하니까 오늘 하루종일 우리에게 준비를 도와
달라고 했다. 나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고 일어나려 했지만, 정화씨가 선
뜻 승낙해버렸다. 정화씨는 자기는 여기서 일할테니, 나보고는 하기 싫으면
딴데가서 재원이를 찾아보라고 했다. 난처했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러기는
싫고. 울며 겨자먹기로 나도 남아서 의식의 준비를 도와주기로 했다.
한 번 결심을 하자 그 무당 할머니는 전혀 딴 사람을 변했다.
찹쌀과 보통쌀을 물에 깨끗이 씻어 장작불을 피어 밥을 짓으라는 등, 수탉
의 피를 구해오라는 등, 준비를 위해 별의별 일을 다했다. 무당 할머니는
방에 틀여박혀 주문인지 지방인지 뭔가를 계속해서 쓰고 있었다. 내가 장
작을 패고 있을 때, 정화씨와 여기사는 여자는 밥과 음식을 준비했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어두워지자 그 무당 할머니가 일을 중단시켰다.

"자들 수고했어.
거의 준비 다 되었으니, 내일 아침에 와서 마무리를 짓도록.
의식은 내일 밤이야.
잘되면 그 악귀도 저승으로 끌려가고, 너희 친구도 찾게 될꺼야.
잘 못되면, 이승을 떠날 수도 있지."

불길한 말을 들으며, 우리는 그 집을 떠났다. 하루가 정말 정신없이 지나갔
다. 분명히 사기같은데, 왠지 모르게 나도 이런 일에 빠져들고 있는 느낌이
었다. 처음에는 분명히 이런 의식에 콧웃음을 쳤는데, 오히려 내가 준비를
돕다는 이상했다. 정화씨는 이 의식에 뭔가 기대하는 눈치였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데..
여관으로 돌아오다가 우연히 김반장을 만났다.

"아직들 안갔군...
비가 많이와서 저수지가 넘치면 다리가 끊겨 이 마을에서 떠날 수 없게된
다고.... 빨리 떠나는 것이 좋을걸..
이 정도로 비가 오면 내일이면 저수지가 넘칠 것 같은데..
나는 여기서 그 핑계로 한참 쉴 생각이요.
자, 나는 동네 친구들과 술한잔 약속있어서...
내 말 명심해요.."

그 말을 듣고 하늘을 쳐다보니, 정말 구멍이 뚫어진 것처럼 쏟아붓고 있었
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떠날 수가 없었다. 정화씨의 기세로 봐선 홍수아
닌, 불이 나도 재원를 찾기전에는 절대로 떠날 것 같지가 않았다.
하루가 피곤했는지, 방으로 들어오자 마자 쓰러져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역시 정화씨가 나를 깨었다.
비는 아직도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어제 기억을 더듬으며, 그 무당집으로
향했다. 날씨 탓인지 괜히 아침부터 불길한 예감이 느껴졌다.
무당집은 아직도 아무도 안 일어났는지 조용했다.
우리는 마당에서 '할머니! 할머니!'라고 불러보았어요. 몇번을 불러봐도, 아
무런 대답이 없자 갑자기 겁이 나기 시작했어요. 나는 용기를 내어 방문을
열었죠.
문을 열자마자 무슨 비린내가 나는 것 같았어요. 그나마 있던 춧불도 꺼지
고, 바깥도 어두운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우리는 어둠속에서 '무당님, 저희예요' 부르며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면서
방안쭉으로 들어갔다. 어둠속에 언뜻 보니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묵상하
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우리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묵상에만 잠겨 있는
것 같았다. 너무 어두워 잘 안보여, 나는 벽을 더듬다가 찾아낸 스위치를
켰다. 환해지는 것과 동시에 정화씨의 날카로운 비명이 내 귓전을 때렸다.
그쪽으로 돌아보는 순간 나는 머리통을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
다. 무당 할머니와 그 여자가 피투성이가 되어 처참하게 죽어있었다.
무당 할머니는 앉아 있는채로 정수리에 낫이 손잡이까지 푹 박혀있었다.
눈은 죽기 전의 공포로 가득차있었고, 무당 시중들던 그 여자는 무당 옆에
난도질당한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있었다.
둘의 끔찍한 모습을 보고, 우리는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다.
정화씨의 비명은 계속되었고, 그 비명소리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나는 정
화씨의 손을 낚아채고 바깥으로 나왔다.
살인마는 탈영병이 아니었고, 아직도 이 마을에 남아서 살인 자행하고 있
다는 것이 생각났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바들바들 떨며,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정화씨를 달랬다.
구역질을 참으며 경찰서로 향하려는데, 마을 방송에서 또 한 번 충격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아 예, 주민 여러분. 저 이장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우려한던 저수지 범람으로 인해 읍내로 나가는 다리가
끊겼고, 전화선도 유실되었습니다.
외부로 나가는 통로가 완전히 차단되고, 연락 수단도 없어졌습니다.
아무도 이 마을을 벗어나거나, 들어올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민 여러분 걱정하지 마시고 기다리십시오.
곧 정부에서 도움을 줄 것입니다.
살인범인 탈영병도 죽었는데, 설마 무슨 일이야 나겠어요?......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방송은 내 몸을 얼어붇게 만들었다.
이 마을에서 살인귀와 함께 갇히다니...
사형선고를 들은 기분이었다.
정화씨도 시체들을 본데다 이런 방송마저 들으니, 충격을 받은 것 같았
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할 일은 우선 파출서를 찾아가는 수 밖에 없
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고, 아침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파출소로 가
는 길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시체를 목격한 것과 그 방송때문인지 ㄱ가
숲에서 무언가가 퍽하고 튀어나와 우리를 갈기갈기 ㅉ어버릴 것 같기도
했다.
우리는 거의 뛰다 시피해서 어제 그 파출서로 뛰어들어갔다.
그러나 이게 원일인가...
그저깨만해도 헌병과 경찰들로 가득찼던 파출소에 아무도 없는 것이었
다. 나는 당황하고 겁이 나서, 누구 없냐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몇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어 너무 황당하고 절망적이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 경찰 한명없다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당황하고 있는데, 부시럭 소리가 나면서 책상 뒷
편에서 누군가가 일어나는 것이었다.
자고 있었는지 눈도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부시시한 모습으로 일어난
사람은 바로 그 김반장이라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어제 과음을 했는
지 술 냄새를 확 풍기며 아직도 술이 덜 깬 모습으로 무슨 일이냐고 물
었다. 나는 웬지 모를 한심함도 느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급하게 말했다.

"사람이 죽었어요! 사람이!
무당집에 두명이 죽어있어요! 무당은 머리에 낫이 꼿혀있었어요!!!"

김반장은 처음에 내 말이 무슨 얘기인지 잘 못 알아듯는 듯 했다. 단지
과음 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운지 의자에 아무렇게나 앉더니 주전
자에 있는 물을 들이키더니 다시 어떤 일이냐고 물었다.
다시 차근 차근우리가 무당집에서 발견한 끔찍했던 시체에 대해 얘기
해주자, 그제서야 김반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세면대에 가서
물을 머리에 끼언고 옷을 고쳐 입고 아까와는 좀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
다. 그러더니 어디엔가 전화를 걸려고 노력하다가 전화가 먹통인 것을
알고 욕지거리와 함께 전화를 내던져버렸다. 술에 취해 골아떨어져 전화
선이 유실되고 다리가 끊겨 고립된 상황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식식거리는 김반장에게 홍수얘기를 해주었다. 역시 모르고 있었더니 김
반장은 매우 놀랐다. 나는 다른 경찰은 다들 어디에들 있냐고 물었다.
내 질문에 김반장은 히스테릭컬한 웃음과 함께 미쳐 생각하지 못한 얘
기를 들려주었다.

"..하하.. 다른 경찰이라..
이봐요 젊은이, 이렇게 작은 마을에는 원래 경찰이 거의 없소.
사실 이 마을에 경찰은 단 두명뿐이요. 아니, 나까지 합해 셋이 되야
정상이지만, 서순경은 읍내에 나갔으니 두명뿐이지.
여기는 파출소가 아니예요. 그저 작은 마을에 지서일뿐이죠.
그놈의 낫 살인사건 때문에 잠시 북적거렸지만, 지금은 다들 떠났고,
아무도 나가거나 들어갈 수없는 이 마을에는 150여명의 주민과 두명
의 별볼일 없는 경찰, 당신 두명, 그리고 피에 굶주린 미치광이 살인
마가 있는거요. 아, 그놈 때문에 마을 사람 수가 점점 줄어들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김반장님이 뭔가 어떻게 해야 되지 않나요?"

정화씨는 그 얘기를 듣고도 별로 놀리지 않는 듯 꾸물럭거리는 김반장
을 다그쳤다. 김반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도 부
정적인 얘기를 계속했다.

"그래야죠. 아가씨..
하지만 난들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은 뻔하지 않소.
전화도 안되니 아무런 수사 협조나 도움도 받을 수 없고, 하나 남은 이
순경은 집에서 자고 있을텐데 여기서 걸어서 한 20분 거리라 불러오기
도 수월하지도 않고.. 차도 들어갈 수 없는 곳에 살고 있고..
그리고 이 마을은 사실 내 구역도 아닌데...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안내하슈. 가 봐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겠지 뭐.."

말은 그렇게 해도 김반장은 처음의 탁하고 쾡한 눈빛이 아닌, 날카롭게
빛나는 형사의 눈으로 돌아왔다. 말도 시니컬하게 하고, 모습도 작고 꾀
죄죄하게 보여도 어딘지 모르게 믿음이 가는사람이었다. 김반장을 데리
고 그 무당의 집으로 나서려 하는데, 갑자기 문이 부서져라 열리더니,
겁에 질리고 당황한 얼굴의 경찰이 뛰어들어오는 것이었다.

"반...장..님!!!
큰 일..이 났어..요!! 사과골 최씨 부부가...낫에 찔려.. 헉헉..
죽어있는 것이 발견되었대요 ....헉헉
살인이예요...."

우리는 처음에 우리 귀를 의심했다. 또 살인이라니....
무당집 살인얘기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아닌 다른 살인에 대
한 얘기였다.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이 느꼈졌다.
하지만 김반장은 침착하게 사태를 파악하려고, 겁에 질리고 숨이 차서
어쩔 줄 몰라하는 그 젊은 순경을 다그쳤다.

"이봐! 이순경!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거야?
흥분하지 말고 차근차근 사건에 대해 말해봐!
천천히!!"
"죄송합니다. 김반장님.
제가 너무 당황했습니다.
사실 저도 집에서 자고 있는데, 갑자기 정미소 김영감이 문을 두들기
는 거예요. 김영감 말로는 아침에 일이 있어 최씨네 갔는데 인기척은
없고 방문밖으로 피 같은 것이 흘러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는 거예요.
피를 보니 너무 무서워 가까이 있는 우리집에 와 나를 깨웠습니다.
나는 귀찮아서 그냥 무시하고 잠을 계속자려고 하는데, 김영감의 겁에
질린 모습이 마음에 걸렸고, 김영감역시 너무 보채서 못 이기는 척 하
고 최씨네로 향했죠. 그때 마을 방송을 통해 우리 동네가 고립되었다
는 것을 알았고..
최씨네는 김영감 말대로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어요. 방문앞에는 말그
대로 시뻘건 핏물같은 것이 흘러있었습니다. 저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
지만, 그냥 문을 열었어요.
문을 여는 순간, 나는 지옥에 들어온 기분이었습니다.
작은 방 사방에 피가튀어 있었고, 최씨와 부인이 처참하게 피투성이
가 되어 죽어있었어요. 구역질이 나오는 것을 참으며 대충 보니 부인
은 누워있는 상태로 목이 따져 있는 것을 보니 자다가 변을 당한 것
같았고, 최씨는 벽에 기대앉은 채로 목과 어깨가 심하게 난도질 당한
것을 보니 자다가 부인이 죽은 순간 깨어 범인을 보고 죽은 것 같았
어요. 최씨의 눈은 마치 무슨 악마를 본 것처럼 공포로 가득차있었어
요.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치다가 방바닥에 피투성이가 된 낫이 하나
떨어져 있는 것도 발견했습니다. 방안은 마치 악마가 낫을 들고 휩 쓸
고 간 것 같아 보였어요.
저는 내가 경찰이라는 것도 잊고 김영감과 함께 그 끔찍한 곳에서 뒤
도 안돌아보고 도망쳤습니다. 김영감은 자기 집으로 갔고, 저는 여기
로 왔습니다.
어떻게 해야하죠? 다리는 끊겼다는데..."

이순경의 말은 우리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또다른 살인이라니...
이제 그 살인마는 닥치는대로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것이다.
나와 정화씨는 그 얘기를 듣고 우리가 아침에 목격했던 무당 모녀의 시
체를 떠올렸다.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것 같았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멍하고 있는데, 김반장이 그 분위기를 깼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침착한 목소리로 이순경에게 앞으로 할 일을 지시
했다.

"이순경, 어차피 이번 사건은 우리 몫이야.
다리가 복구되고, 읍내에서 지원이 들어오려면 넉넉잡아 한 이틀에서
사흘은 걸릴꺼야. 그때까지 손 놓고 그 놈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볼수
만은 없잖아! 그러니 뭔가는 해야지...
이순경은 당장 이장댁에 가서 오늘 발견된 살인사건에 대해 얘기하고,
가능한 빨리 마울사람들을 한 곳에 모이게 하라고 해. 전화가 불통되었
으니, 모여놓고 이번 사건에 대해 경고를 해줘야겠어.
그리고 장정 두세명정도 비닐 하우스에 쓰는 큰 비닐 가지고 무당집으
로 보내줘. 그리고 고기간 하는 박씨에게 시체들이 들어갈 수 있는 냉
동고가 있나 물어봐. 이 날씨에 시체를 그냥 놨두면 얼마 안가 흉칙하
게 썩어버릴테니... 그 일이 다 끝나면, 최씨 집에 가서 다른 사람들이
현장을 훼손하지 않게 지키고 있어. 내가 무당집을 조사해 본 뒤 서둘
러 최씨집 살인 현장으로 달려갈테니...
그리고 주의할 건 마을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되 무작정 겁을 집어먹지
않게 주의하도록. 괜한 소동 일어나면 통제가 힘들어지니까..
아, 그리고 마을 사람들 모일 때, 집에 쓰는 낫을 들고 모이라고 해.
그 살인마는 이상하게 낫에 집착하는 것 같으니...
없어진 낫을 보면 뭔가 단서가 잡힐지도 모르니까...
또, 지서에 있는 무기고를 열어 옛날 총이라도 좋으니 있는데로 꺼내
가져와. 나는 권총 한자루 가지고 있으니, 자네나 무장하고 남은 것이
있으면, 최씨 집으로 가져와.
쓸모가 있을테니...
이순경 명심해!
이번 사건을 해결하고, 마을 사람들을 보호해야 할 사람은 우리 둘밖에
없다는 것을...
그럼 수고하게..."

김반장은 마치 미리 생각하고 있던 것처럼 일사천리로 이순경에게 명령
하고 멍해 있는 우리를 독촉해 무당집으로 향했다.
빗줄기는 아침보다는 약해졌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내리고 있었다.
김반장의 고물차에 타 무당집으로 향하면서, 나는 그 무당이 우리를 불
러 해 주었던 괴기한 얘기와 우리가 준비했던 의식에 대해 간략하게 얘
기해 주었다. 솔직이 김반장이 우리의 황당한 얘기를 않믿을까 걱정했는
데, 김반장은 진지한 표정을 하고 몇가지 질문까지 하면서 우리의 얘기
를 들었다. 과수원 얘기를 꺼내자 김반장의 표정은 웬지 모르게 심각해
졌다. 뭔가 생각이 가는 쪽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걸어서는 한참인 거리지만, 비포장 시골길인데도 불구하고 차로는 금방
이었다. 김반장은 무당집 어귀에 도착하자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우리는 뛰다시피 김반장의 뒤를 따랐다. 잰 걸음으로 무당집으로 향하는
김반장의 뒷모습은 노련한 사냥개를 연상시켰다. 피냄새를 맡은...
무당집은 우리가 떠날때와 변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잔인하게 살해된 시체들이 널부러져 있는 그 방에는 죽어
도 들어가기 싫었다. 다른 것보다도 겁에 질려 있는 그 눈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김반장은 거침없이 그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순간 김반장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반장 역
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곧 반장은 재빠르게 참혹한 현장을
조사했다. 나는 정화씨와 함께 그 방으로 들어가지 마당에서 기다렸다.
정화씨는 떨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겨 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사라진 재원이를 찾으로 왔다가 끔찍한 살인사건에 휘말린 것이다. 더구
나 언제 우리가 그 희생양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직까지 재원이에 대한 단서가 하나도 없는 것을 봐서, 이 마을에서 재
원이의 그 무언가를 찾으려 한 것은 헛수고 같았다. 대신 엉뚱한 일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김반장의 목소리가 생각에 잠겨있는 나를 방해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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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너무 길어서 다음편으로 옴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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