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금] 나의 20대 때 공포 체험 1편

fora 작성일 10.01.14 01:5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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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대 때 공포 체험

 

 

거짓이 없는 100% 저의 체험담입니다.

 

 

날날이 전도사가 되기까지..

 

 

믿거나 말거나 나는 한 때 교회 전도사였다. 무늬만 전도사. 지금은 물론 아니다. 지금은 신을 믿지 않는다.


아무튼 당시는 겉으론 교회 전도사였지만. 속은 뻔한..

 

이쁜 여자들 좋아하고.. 막연하나마 종교에 대해서 잘 몰랐지만 그 때까진 신을 믿었고. 뭐 그렇게 믿는다 하면서도 믿음이 좋은 그런 열심은 전혀 없는, 소위 날날이 전도사..


내 어머니는 교회 목사셨다. 처음엔 기도원을 하셨다.

아버지 사업이 실패하면서 교회 집사, 권사 그렇게 하시다가...가정 형편이 워낙 좋지 못한 지경까지 이르러
중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교까지 시골 축사를 개조한 단칸방 살이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어렸을 때 고생 더 한 건 뭐 자랑도 아니고 이 이야기완 아무런 상관도 없는 거니 빼고..)


그나마 아버지는 당시까지는 부동산 거래가 여전히 활기였던지라 이 사람 저 사람 몇 사람 소개해 주고
몇 푼 거래비로 챙기거나, 젊은 시절 담배인삼공사 기사로 있으셨기에 인삼 관련 일들 같은
이것저것 일들로 소개비도 받고 생계를 유지했던 것 같다. 아버진 여전히 사업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계셨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그 때도 난 철이 없던지라..오락실 게임 좋아하고..그러다. 신문도 돌리고..
부자들처럼 살고 싶어서 옷 사입고, 롤라장서 기웃거리고...성인 영화 몰래 들어가고..그냥 그런 건달이었다.


어머니는 종종 밖에서 일을 하셨다. 보험 일도 하시고 식당 일도 하시고..여기저기 교회로...기도원으로..새벽에
기도하시고..그러다가 어느 날 추운 겨울에 순대 몇 개 드신 것이 좀 심하게 탈이 나 병원에 입원하셨다.

 

그런데 그게 좀 크게 탈이 났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 때 쯤..
학교에 있는데 선생님이 말씀 하셨다. 중환자실에 계시다고..

 

정말 엄청 울었다..지금 생각해 보면 친구들한테 창피할 정도로..
아마 그 때는 어머니가 그렇게 고생만 하시다가 철없는 막내 남겨두고 걱정만 하시다 돌아가시나보다 싶었다.

 

지금도 정확히 병명은 기억이 안나지만 병원에 찾아 갔었는데 눈이 한 쪽이 돌아가서 사팔뜨기 비슷하게 돌아가고,
몸도 잘 못 가누셨다. 당시 아버지는 내가 걱정할까봐 나중에야 말씀하셨지만, 아버지 말씀으로는 꽤나 오래 입원해야 할지도 모르고, 또 약간의 장애를 입을지도 모른다고 하셨던 것 같다.


당시 상황을 떠올려 보면 돈도 없고 지식도 없는 우리같은 사람들의 희망이 어떤 강한 신념처럼 작용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는 내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꽤 신앙심이 깊으셨는데..병원에서 거의 매일 기도하셨던 것 같다.
그러다 사실상 병원에서 기적이라고 할 만큼 완치가 됬다.

 

 

 

고3 때쯤이 되어 어느덧 내가 효도하는 길은 어머니 뜻에 따라 목사가 되는게 아닌가 싶었다.
왠지 목사님 목사님 이런 소리를 들으니 폼도 나는 거 같았다.

 

당시까지는 목사라는 성직에 대해서 지금처럼 그리 인식이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고등학교 막 졸업한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 같았던 내 눈으로 그 세계를 볼 때,
뭐가 뭔지는 잘 몰라도 솔직히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올 정도로 그리 하고 싶었던 일은 아니었다.


한 편으론 어머니가 그걸 그리 원하시니 여기도 내가 모를 뭔가 길이 있고, 내가 깨닫지 못한 어떤 중대한 그 무엇이 있을지도 모른다 싶기도 하는 그런 호기심도 있었다.


신학을 들어갔다. 자연스럽게 공부를 해도 잘 들어오지도 않고, 마음은 영화나 게임, 여자, 음악 이런 거를 더 좋아하고,
점점 더 현실과 마음이 따로 노니 마음으로는 효도하고 싶지만 이게 잘 안되고 혼자서 그렇게 방황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렇게 20대를 학교 몇 번 휴학하고 다른 일도 하고 여기저기 떠돌다가 결국 널널이 전도사가 되었다.

 

나는 그렇게 대충 대충 살았는데 그 와중에도 어머니는 내가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로 더 신앙심이 깊게 활동하셨고,
결국 당신의 신념대로 기도원을 내시고,  결국엔 늦은 나이에도 신학까지 하시고 결국 목사님이 되셨다.

 

 

 

내가 어머니를 답답하게 생각했던 이유는..모태신앙이라는 점도 많이 작용했을지 모른다. 교회의 많은 것들을 봐왔으니까..


기도원이라는게 아주 커다란 기도원도 있지만, 산골 사찰처럼 아주 작은 곳도 있다.
그런데 거기서도 참 많은 것을 봤다.

 

 

기도원에 찾아와 무료숙싱을 원하는 불쌍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부흥집회해서 소위 은혜라는 것을 주고 삶의 힘을 북 돋우는 분들도 계셨고, 당시는 그걸 또 많이 찾은 분위기였다.

 

나처럼 거의 많은 것들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좀 사업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 번은 내가 20대 초반쯤 한 40대 중반의 전도사라고 하는 한 남자가 찾아와서  설교도 하고 당시 안수기도 뭐 이런거 까지 했던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내가 워낙 집에도 관심이 없고, 오락실이다 영화다 만화방이다 이런거에 빠져있던 터라 나중에 어머니께 들은 이야기지만..아무튼 그 때 그 사람이 말 재간이 좋았던지..꽤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상당수 아주머니들, 집사님 권사님들이 홀딱 반해서 당시 시무하던 교회를 빠져나와  이 사람을 주축으로 교회를 하나 개척하기에 이른 모양이었다. 결국 이렇게 어머니가 옴팡 뒤집어 쓰고 욕을 먹은 적도 있다.

 

내가 볼 때 가끔은 답답할 정도로 착하게 사셨던 어머니가. 평생 그렇게 욕먹으라고 살아온게 아닌데,


그냥 자신처럼 어려운 사람들, 아픈 사람들 기적이 일어나거나, 좋은 일이 생기면 신이라는 그 분에게 헌신하고... 불쌍한 사람들, 가난한 내 이웃들에게 희망 주는 삶 이런 걸 바라셨는데.. 그래서 소위 기도원을 만들고 이런 걸 꿈 꾸셨는데... 하루 아침에 자기네 교인 빼돌리는 그런 이상한 기도원으로 화살이 몰린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부터는 어려서부터 가난하게 살아왔던지라, 똑똑하고 공부 잘하진 못했지만, 자존심이 강했던 나는 그런 걸 또 사람 아무나 믿고 함부로 들이는 어머니의 순진함에 마음에도 없는 싫은 소리 많이하고..뭐든 반대를 많이 했다. 그러면서도 효도는 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니 한 번인가 집도 나가고 속도 많이 섞혔었다.


그래 이렇게까지 길게 내 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체험했던 설명하기 힘든 신비적인 사건을 말하려는 것인데,
이 글을 읽을 분들에게 내가 소위 날날이 전도사 생활을 했었다는 걸 밝히지 않으면, 요즘 지능적 안티다 어떻다 말들이 많아서 그냥 아픈 기억까지 들춰보는 거니까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해해 주시길 바랄 뿐..

 

나이가 40대이 들어서면 누가 뭐라고 해도 그냥 저 분은 나를 이렇게 바라보는구나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어쨌든 20대 후반까지 난 여전히 날날이 전도사였다.지금 생각해 보면 캥거루족형 날날이 전도사.


기도원 하면서 이런 저런 사건들이 많았던지라.. 밖에 휘황찬란한 커다란 대형교회들에서 시무하고, 몇 몇 곳에서 오라고는 하는데 마음에 있지도 않은 신앙심으로 누구를 전도하고 가르친다는게 내 양심에 찔렸는지, 그래도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을 하면 잘 안되고, 어머니도 반대가 심하시니 그냥 어머니 일 도와드리며 곁에 있는 캥거루족 날날이 전도사..

 

그렇게 20대 후반까지 마음으론 종교를 비판하고, 나 자신은 개발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이중적으로 방황하는 영혼으로 딜레마에 빠져 살았다는 재미없는 뒷배경 이야기를 먼저 밝히는 것이다.

 

 

 

기도원으로 찾아온 사람들


어느 여름이었다.. 아침 9시쯤인가? 게을러서 잘 일어나지도 않은 나.., 새벽 기도 따윈 믿음이 없으니 절대 안하는 나 그러면서도 신학생이랍시고 학교는 다녔다. 어머니의 고혈로..

 

그런 나에게 아침 9시에 기도원으로 누군가가 찾아와 문을 두두리니 피곤했다. 바로 그 전날인가? 내가 제일 싫어하던 부흥집회가 바로 그 전날 밤까지 있었기에 아침 9시에 누군가가 문을 두둘기는건 정말 피곤한 일이었다.

 

문을 열어보니 어떤 까무잡잡한 나보다 더 시골 아주머니께서 여기가 무슨 무슨 기도원 아니냐? 소문 듣고 왔다. 빨리 나오셔서 우리 딸 좀 데려가 달라고 부탁을 한다.

 

뭔지는 몰랐지만 굉장히 급해 하셔서 그 분을 따라갔다. 순박해 보이는 사람들에겐 그렇게 불친절한 성격은 아니었던지라, 무슨 일일까 호기심 반 쫒아 나선 것이다.


참고로 여기도 시골이다. 지금도 여기에 살고 있다.

 

큰 길 삼가까지 한 100여미터인가 걸어 갔는데, 저 앞에 어떤 30대 중반 여자가 이리로 갈까 저리로 갈까 굉장히 긴장한 모습이었다.

 

아참..그 전에 바로 어떤 당시 함께 오신 50대 정도의 남자 분께서 나에게로 걸어오시면서,


 

상황 대충 설명해 주고..

 

 "전도사님이세요? 모르는 척 하면서 다가가서 말 걸고 같이 잡읍시다. 이런다.."


상황이 급하게 돌아가는지라, 아마 이 분이 어디 교회 집사님 정도 되나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직도 그 분이 정확히 누구였는지는 모른다. 다만 함께 두 모녀를 모시고 온 분이라는 것만 기억할 뿐..

 

 

가슴이 콩닥거렸다. 처음 해 보는 일인지라..

속으로 이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거야? 뭐야 이거 싶었지만, 전도사 체면에라도 젊은 놈 보고 연세 드신 분이 잡으라니 안 잡을 수도 없고..., 두 사람이 조금 떨어져서 둘이 모르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그 앞으로 태연히 걸어갔다.

 

 

 

 

멀리서 봐도 정신적으로 상당히 아픈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은 본능적으로 그 상황을 굉장히 빨리 잘 아는 것 같다.


 

멀리서 아무렇지도 않게 이 동네 청년이 자기 볼 일 보러고 걸어가는 것 마냥 지나가려 했는데도,


한 20여미터 정도 가까이 큰 길쪽으로 다가 갔을 때 쯤...

 

 

바닥에서 손바닥 만한 큰 돌을 집어서 내게 던지는 것이었다.

 


당시 시내까지 30분마다 버스가 다녔고, 콘크리트 대형 차량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삼가였기에,

종종 길에 흙이나 공사장 돌들이 많았는데,  그 돌을 용케 하나 보더니 나에게 던지고 마구마구 욕을 내뱉었다.

내가 마치 자기를 어떻게 해꼬지 할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해가 뜬 오전임에도 머리부터 소름이 쫘악 돋았다.

이런저런 생각할 틈도 없이 뛰어 달려들어 그 남자분과 제압할 수 밖에 없었다.

 

 

잡고 들어가는데 여자임에도 힘이 꽤 쎄다..

 

 

연실 바닥에 침을 뱉으면 말을 하는데..무슨 말인지 다 못 알아 듣는 말들도 많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잊지 못할 말이 기억난다.

 

 

이 정신이 이상한 여자가 나와 그 분..

 

두 사람에게 잡혀 가면서도 연실 길에 침을 뱉고 깔깔깔깔 웃으며

 

뭐라뭐라 중얼거리다가 이런 말을 하며 비웃었다.

 

 

 

 

"ㅂㅅㅅㄲ...... 젊은 놈이 장로가 됬어 하하하하하하~~~~"

 

 

 

무슨 의미인지는 정확히 몰라도...나를 보고 한 말이었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다음에....


댓글 없으면 재미없다 올리지 마라로 이해하고 그냥 여기서 끝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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