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귀신보다 더 무서운 당신의 이야기

ramifan1 작성일 12.09.18 0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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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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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보다 더 무서운 당신의 이야기



누렇게 삭은 런닝차림으로 거실에 퍼질러 앉아 멍한 표정으로 티비를 보던 사내는 불현듯 생각났다는 듯이 부엌을 향해 버럭 소리를 내지른다
‘이 여편내야, 술 내놓으라니까!!’
거실 한 켠에 펴놓은 상에서 숙제인지 뭔지 뭔가를 끄적거리던 초등학교 2,3학년쯤으로 보이는 아들이 갑작스러운 고함소리에 화들짝 놀라지만 이내 진정한듯 희죽거리며 아비에게 비아냥거린다
‘엄마 일 나가셨잔아요’
‘아 그러네 참.’ 
사내도 머쓱하니 아들을 쳐다보다 입을 쩍쩍 다시며 묻는다.
‘뭐하냐?
‘숙제해요’
‘다 했냐?’
‘다 해가요’
‘그럼 술 좀 가져와라’

저 저 꼬맹이 새끼, 감히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한숨 푸욱 쉬면서 대답도 안하고 부엌으로 터벅터벅 가는 모습 좀 보소. 끌끌끌 혀를 차던 사내는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마누라인가? 하고 바라본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고등학생인 첫째 아들이다. 어허 이놈 보소 대충 인사는 하는 둥 마는 둥 현관앞에 가방만 투욱 던져놓고 다시 나가려한다. 다녀왔으면 ‘아버지, 학교 다녀왔습니다. 식사는 하셨는지요? 라면이라도 끓여 드릴까요?’ 라고 부자지간의 정겨운 대화를 펼처나가도 모자랄판에 오자마자 처나가려구?
‘어디 가냐 또?’
‘알바가요’
‘뭐? 알바?’
사내는 정색을 하며 따진다
‘그래, 니 애비가 집에서 놀고 있으니까 아~ 나라도 돈벌어야겠다. 뭐 그런거냐? 아빠가 그렇게 한심해 보이는거야?’
이런 대화는 한두번이 아닌가보다. 큰아이는 지겹다는듯이 퉁명스럽게 대답하는데 아! 저 건방진 모습 좀 보라
‘그런게 아니잔아요 아빠. 당장 오늘 내일 전기며 수도며 다 끊기게 생겼는데 엄마 혼자 벌어서 감당이 안되니까 이러잔아요’
‘어디 아빠한테 말대꾸야!’’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대충 무시하며 나가려던 아들이 고개만 까닥 돌리고 다시 시비를 건다.
‘아, 아빠. 집에서 담배 피시는거 뭐라 안하겠는데 라이타 좀 아무대나 두지 마세요. 규식이가 자꾸 불장난 해요.’
‘니가 지금 아빠한테 명령하는거냐? 엉!’
사내가 또 버럭하지만 큰애는 이미 나가고 없다. 혼자 씩씩 거리던 사내는 부엌을 향해 고함을 쳐야만 화가 풀리려나보다.
‘아, 술가져오라니까!’


사실 사내도 안다. 도박으로 재산 다 날리고 술때문에 직장도 잃고 집에서 빈둥거리는 가장의 모습에 가족들이 얼마나 답답하고 미치고 팔짝 뛰겠는가? 아내가 친정에 울며불며 사정해서 장인어른이 빚을 져가며 겨우겨우 구해준 돈으로 간신히 보증금을 마련해 이 다 무너져가는 아파트로 월세살이 오던 날, 바로 그날밤 아내의 한숨과 눈물을 이세상 어느 남편이 감히 잊을 수 있으랴? 

하지만 사내는 적잔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 이 아빠가 그래 도박으로 돈 날리고직장도 잃고 맨날 술만 마시고 그러다보니 엄마는 식당일에 파출부에 큰애는 짱깨배달에 온가족이 고생하는건 미안한데… 아 근데 나도 억울하다니까! 이게 내 잘못이 아니라니까!

그때 그 녀석이 분명히 밑장빼기를 한것이 틀림없는데 아내도 두 아들녀석도 아무도 자신의 그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한다. 사장 그 쉽쉐키도 마찬가지다. 남자가! 한 가장이! 속임수 도박 때문에 재산을 다 날려먹고 열을 좀 받으면 술을 좀 과하게 마실 수도 있는건데. 그러다 보면 지각도 할 수 있는거고 계약도 날려먹을 수 있고 그런건데! 그걸 왜! 왜, 이해를 못해주고 짜르냔 말이다!

자! 내가 이렇게 억울한 사연이 있는데도… 그런데도 한이고 뭐고 다 내려놓고 가족을 위해서라면 공사판이이든 새우잡이든 뛰겠다고… 나름 인서울 4년제 대학나온 이 내가! 그렇게 결심하고 일자리 알아보고 있구만.. 왜 이 빌어먹을 식구들은 이 내 마음과 희생을 아무도 알아주지 못하냔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사내는 화딱지가 나서 그만 흥이 깨지고 만다. 정신없이 흔들어대던 오른손을 멈추고 슬그머니 팬티를 올려 입으며 ‘빌어먹을’ 한마디 내뱉을 뿐이다. 
‘아빠 다 끝났어? 나 눈뜬다?’ 
‘잠깐 규식아. 모니터 좀 끄고’



해가 반쯤 저물었을 무렵 핸드폰으로 전화가 온다. 동창인듯 한데 통화내용은 대충 아래와 같다.

여보세요-야 나다-어 오랜만이다 왠일이냐?-아 철수하고 한잔하고 집에가는데 버스에서 잘못 내렸는데 하필 니네 동내다 그래서 전화했지-하 띨띨한 새끼-한잔 할까?-좋지 우리집으로 와라. 나하고 둘째밖에 없다-아 애 옆에두고 술마시긴 좀 그렇다-그럼 내가 나갈께-애 혼자 두고? 관둬라 담에 마시자-아냐 임마 괜찬아-새끼 술 좋아하는거 하고는… 그럼 내 혼자 마시고 있을 테니 규식이 엄마 오면 애 맡기고 그때 나와라-알았다 임마

하지만 사내는 생각한다. 이넘의 여편내는 밤 늦게나 들어오는데… 핸드폰이라도 있으면 빨리 들어오라고 연락을 하겠건만 그깟 한두푼 좀 아낀다고 있던 핸드폰까지 없앤 여자 아니던가…
그때까지 친구를 기다리게 할 수는 없는터…둘째에게는 티비보고 있으라 하고 허겁지겁 집을 나선다. 사내는 아파트앞 놀이터옆에 주차해 두었던 고물차에 올라타 담배를 물고 나서야 라이터를 두고 나온 것이 생각난다.


아파트에서 차로 10여분거리 큰길 소방서앞에 차를 대놓고 친구와 함께 맞은편 포장마차에 앉아 한잔 두잔 기울이다 보니 어느덧 여섯병을 마셨더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사내는 자신이 보잘것없는 녀석이 아니란 것을 잘 설명하고 싶어진다.
‘야, 개똥이 기억나냐?’
‘개똥이? 기억나지’
‘그 새끼 지금 저기 호구건설 부사장됬다더라’
‘하 개똥이가?’
‘그래 임마. 근데 그 개똥이 그 새끼 나한테 꺼뻑 죽잔아’
‘그랬지’
‘그랬지라니? 지금도 나한테 막 겨 임마. 내가 ‘야 나와’ 하면 넵 하고 달려온다니까’
사내가 이렇게 그 대기업 부사장이자 돈많고 능력있는 개똥이가 사실 옛날옛날 학생시절 자기 쫄따구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을 무렵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한다.
‘여보세요?’
‘아방궁6969 차주시죠?’
‘네 그런데요’
‘소방서 앞에 차를 대놓으시면 어떻해요? 지금 출동을 못하고 있어요! 얼렁 빼주세요!’
‘아 내가 지금 뭐 하는 중이라… 좀 이따 갈게요’
‘이보세요! 지금 불끄러 가야 한다니까요!!’
상대방이 버럭 화를 내자 사내도 갑자기 열이 확 오른다
‘야 이사람아! 내가 지금 술마셧는데. 차 빼다 사고나면 음주운전인데. 그럼 니가 책임질거야? 엉! 술깨면 어련히 빼줄 테니까 쫌 기다려!’
이렇게 소리치고 전화를 끊어버렸는데 곧바로 전화가 또 온다. 번호를 보니 아파트 관리실이다. 


집에 불이 났단다.


발을 동동구르며 욕을 바가지로 퍼붓는 소방대원들을 뒤로 한 채 사내는 허겁지겁 집으로 차를 몰고 간다. 허나 술이 과했던가? 잠깐 머리가 핑 도는 사이에 어디선가 나타난 짱깨 오토바이를 들이받고 마는구나. 꽈직! 하는 소리와 함께 배달부도 오토바이도 그렇게 안전방지턱 넘듯 타넘고 사내는 집으로 집으로 달릴 뿐이다. 
‘아 쒸벌. 그렇게 갑자기 튀어나오면 어떻해!’ 
혼자 중얼거려 보지만 그래도 미안한 마음은 있는지 룸미러를 흘깃흘깃 보는데 뒤는 사고현장에 몰려든 사람들과 어디선가 달려오던 소방차들과 구급차들이 뒤엉켜 아수라장이다. 그래 미안타. 내 뺑소니한거 벌은 나중에 받을게, 일단 규식이가 안다쳤는지 확인하는게 더 급하다.


사내는 급한 마음에 아파트 진입로에 대충 차를 세워두고 헐레벌떡 자기 동 앞으로 뛰어간다. 불이 난지 꽤 되었는지 벌써 경찰차도 와 있고 구경나온 사람도 꽤 모여있다. 활활 뻘겋게 타오르는 화염과 시커먼 연기가 자기집에서 피어오르는 모습에 잠시 넋이 나갔던 사내는 이내 옹기종기 모여든 사람들 속에 규식이가 있는지 찾아 헤맨다.

‘신고한지가 언젠데 소방차는 왜 안와!’ 
구경꾼 무리속에서 절망하는 듯한 탄식이 쏟아져 나오지만 사내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단지내 방송 시스템으로 흘러나오는 아방궁6969 차량은 신속히 이동주차하라는 내용의 방송은 용케 사내귀에 들어간다. 아차!하고 달려가니 소방대원들이 ‘또 당신이야!’ 하며 욕을 퍼붓는다. 뒤에 줄줄이 소방차를 달고 차를 동 앞으로 옮겨왔는데 불길이 더 거세진거 같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방대원들과 위로 쏘아지는 물줄기… 정신이 없었지만 규식이는 찾아야 하기에 사내는 다시 구경꾼 무리를 헤짚고 다니며 규식아 규식아 부른다.

‘꺅!’
사람들의 비명소리에 놀라 위를 쳐다보니 베란다가 무너저내리고 있다. 

아! 사내의 눈에 슬로우모션으로 보이는 이 장면을 어찌 설명하랴. 

떨어지는 잔해속에 있는 저 사람모습의… 마치 어린아이의 형체를 띈 까만 잿덩이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지금 사내 멱살을 잡고 있는 이 젊은이는 누구인가?

‘경찰 아저씨! 이사람 뺑소니범이에요. 저기 사거리서 사람치고 도망왔어요. 제 블랙박스에 다 찍혔단말에요. 얼렁 체포하세요!’

그렇지 내가 사람을 치고 도망 왔지. 짱깨 배달 나가던 아이였지.

이제 보니 차 앞에 짜장이 튀어 있구나. 피도 묻었네. 아이야, 넌 그 짧은 순간에 피도 많이 쏟았구나.

전화도 오는구나. 


지금부터는 상황이 너무 혼란스러워 누가 무슨말을 하고 무엇을 하는지 정확이 기록하기는 힘들다. 그냥 그대로 적어볼터이니 추후 시간날 때 정리를 해야 할 것이다.

....이사람 체포하라니까요!... 여보세요.... 아! 다들 좀 뒤로 물러나세요 위험합니다.... 어머 저기 떨어진거 저거 사람 아냐?... 네 제가 아버지입니다만..... 뻉소니에요! ...저집 아저씨는 여기 있는데?.... 이 사람이요?.... 중국집이요?.... 저기 사거리에서.... 배달 나갔다가 사고가 났다구요?.... 저거 규식이 아냐?.... 규식이 엄마는?.... 물러나세요!.... 뺑소니요?.....




정신이 멍해진 사내는… 난 잘못한게 아무것도 없는데...
이 세상에는 왜 자기편인 것이 하나도 없는지… 그저 화가 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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