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레이첼에게

금산스님 작성일 13.04.14 16:15:57
댓글 5조회 4,017추천 4

웃대의 초록환타님 작품입니다.

 

/ 1171년 10월 26일
 

당신의 아름다운 금발과, 당신의 가느다란 허리와, 당신의 하이얀 피부에다 대고 말하오.
 
안녕, 레이첼. 나의 아름다운 천사.
 
당신은 나를 모를테지만, 나는 당신을 잘 알아요 나의 천사.
 
나는 당신을 멀리서 지켜만보고 있는 수줍은 사람이오. 이렇게 불쑥 편지만 보내게 되어 미안하오.
 
하지만 사랑하는 당신에 비해 나 자신이 너무도 초라해서 어쩔 수 없었소.
 
내 추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요.
 
내가 보낸 구두를 신은 당신 모습을 아주 잘 감상했소. 너무도 아름다운 당신의 발...
 
오히려 구두가 초라해보이더군.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PS : 절 찾으려 하지 마시오. 주소를 알 수 없을 거요.
 


/ 1171년 11월 10일
 


날씨가 점점 추워오고 있고, 나의 천사께서는 오늘도 여전히 아름다우시오.
 
그렇지만 얇은 옷은 자제하도록 하시오. 감기라도 걸리게 된다면 나는 견딜 수 없을 거요.
 
참. 오늘 한 녀석이 당신과 애기하는 것을 보았소.
 
순간 녀석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오. 이런, 이런 과격한 문장을 쓰다니...
 
다른 종이가 없어 수정하지 못하지만, 저를 오해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소. 저는 당신을 너무도 사랑하오.
 
그래서 이런 격한 반응이 나올 때도 있다는 걸 알아주시오.
 
아무튼 다음부터는 다른 남자와 이야기하지 말았으면 하오.
 
당신이 나의 레이첼이듯, 나도 당신만의 것이고 싶소.
 


/ 1171년 11월 24일
 


안녕, 레이첼...
 
오늘 나는 당신에게 사랑을 담은 편지를 쓰지 못할 것 같군.
 
왜 내 경고를 무시했소? 왜 나의 진심어린 충고를 무시해버린거요?
 
나는 분명 다른 남자와 가까이 하지 말아달라고 당신에게 경고했소.
 
하지만 오늘 충격적인 장면을 보고 말았소.
 
무도회 회랑에서 당신과 놈이 키스를 하는 것을 보고 말았지. 아, 나의 지고한 사랑, 순결한 천사 레이첼.
 
당신은 그래서는 안되었소. 절대로 그래서는 안되요.
 
그 아름다운 입술을 오직 나의 것이요. 나만을 위해 닫혀져 있어야 하고, 때가 되면
 
오직 나만을 위해 그 혀를 움직여야 할거요. 부디 명심하시오
 
나는 당신이 더 이상 추잡한 짓을 하는 것을 참을 수 없소.
 

 

/1171년 11월 27일
 

부끄럽지만, 당신을 생각하며 수음을 했소.
 
당신이 자는 모습을 밤 새도록 지켜보다가 나도 모르게 자위를 하고 만 것이오.
 
아 레이첼! 그 갸냘픈 다리가 헤프게 내던져진채 당신이 새근 새근 잠을 자는 모습이란!
 
내게 있어 그 어느 것보다도 사랑스럽고 또 매혹적이었소.
 
힘차게 뿜어진 내 정액은 당신에 대한 내 사랑만큼 짙고 자극적인 호르몬 냄새를 풍겼지.
 
언젠가 당신의 자궁에 힘차게 사정할 날을 기다리며 나의 부끄러운 행동을 수습했소.
 
나의 레이첼. 나의 아기를 가져줄 레이첼. 나만의, 나를 위한 레이첼.
 


/ 1171년 12월 2일
 


담비털 코트가 당신에겐 아주 잘 어울리는 것 같소.
 
당신의 검은 눈동자는 너무도 아름답소. 겨울 눈에 묻힌 나무 둥치처럼 젖은 갈색이지.
 
그 화사한 금발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오.
 
참, 레이첼. 나는 당신에게 또 실망을 했어요.
 
당신은 저번 편지를 받고는 한 동안 겁에 질렸었지. 온 방문을 걸어 잠그고 하인들이
 
들어오는 것 까지 싫어했어.
 
하지만 알아두시오. 내가 위에 적어둔 것처럼 나는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볼 수 있소.
 
명심하길 바라오. 나는 언제나 사랑하는 당신을 지켜볼 것이오.
 
부디 나를 두려워하지 마시오. 나는 순수하게 당신을 사랑하오.
 
PS : 더 이상 사람을 시켜 편지를 보낼 수 없게 되었소. 당신이 아버지께 부탁해
 
저택에 도착하는 모든 편지를 거절했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소. 하지만 걱정마시오.
 
항상 내 편지를 읽을 수 있을테니까.
 

 

/ 1171년 12월 13일
 


나는 지금 매우 화났어, 레이첼...!
 
어떻게 내가 보낸 편지를, 당신의 남자가 보낸 편지를 읽지도 않고 찢어버릴 수 있지?
 
나는 친절하게 당신 방 창문에 그 편지를 꽂아두기까지 했소! 그런데도 당신은 나의 사랑과
 
정성이 담긴 그 서신을 무참히 찢어버린 거요!
 
내가 편지 겉봉에 매단 손가락은 당신네 흑인 하인의 것이오. 그는 지금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소.
 
오직 당신이 편지를 거절했다는 사실때문에 말이오.
 
명심하시오. 나는 당신이 편지를 읽는지, 읽지 않는지. 모든 것을 알수 있소.
 
절대로 날 속이려 하지 마시오. 날 시험에 들게하지 말란 말이오. 그건 나를 매우 분노하게 하니까.
 
다시 한번 이런 일이 벌어졌다간, 누가 죽을지 알 수 없을 거요.
 
오... 나의 레이첼.
 
나의 사랑과 정성을 이런 식으로 추악하게 만들지 말아 주오.
 
난 아직도 당신을 사랑하오.
 
부디 나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며... 이만 접겠소.
 

 

/ 1171년 12월 20일
 


초췌해진 것 같더군. 하지만 당신의 마른 모습은 나를 묘하게 흥분하게 했소.
 
약간 더 마르니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가 더욱 아름다워 보였소.
 
오, 당신의 흰 뺨과 뾰족한 피부... 새침해보이는 눈초리.
 
모든게 나에겐 짜릿한 전기와 같이 심장을 관통하는 것들이라오.
 
걱정하지 마시오 레이첼. 나는 당신을 해할 생각이 전혀 없소. 나는 지고하게 당신을 사랑하오.
 
지금은 비록 이 따위 서신으로 당신에게 사랑을 고하고 있지만...
 
내게 때가 온다면 열렬하고 뜨겁게 사랑을 고백할 것이오. 그 때까지 나를 기다려주시오.
 
곧 내가 당신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요.
 
곧... 곧...
 


/ 1171년 12월 27일
 


당신이 안정을 찾은 것 같더군. 그래, 다행이오. 나의 편지를 읽을 때마다 사시나무 떨리듯 떠는
 
손이나 창백하게 질리는 얼굴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내가 참겠소.
 
당신이 아직 내 진심을 몰라주는 것 같아 서운한 감정이 크오.
 
하지만 어쩌겠소. 이런 과격하고 정식적이지 않은 방법으로라도 당신에게 사랑을 고하고 싶은
 
나의 마음을.... 외모만큼 마음도 아름다울 레이첼. 당신이 너그럽게 이해해주길 바라오.
 
언젠가 당신과 내가 나란히 서 있는 때가 올 것이오.
 
그 때가 온다면, 당신의 팔에는 나의 아이가 안겨있을 것이오.
 
우리 모두 행복한 가장이 되어 따뜻하게 웃고 있을 것이오.
 


/ 1172년 1월 5일
 


레이첼... 이건 사적인 문제이지만, 이렇게 무례하게 지적할 수 밖에 없는 나를 용서하시오.
 
장차 당신의 주인인 남편이 될 남자가 하는 말이라 생각하면 나쁜 기분이 덜 할거요.
 
레이첼, 앞으론 그런 속옷을 입지 마시오.
 
나는 그런 선정적인 속 옷을 참을 수 없소. 천사와 같이 하이얀 당신이 그런 옷이라니?
 
검은 망사의 얇은 속옷은 저 거리의 추잡한 창녀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이오!
 
당신처럼 순결하고 고귀한 여성이 그래서는 아니되오. 더구나 오늘처럼 얇은의 실크드레스에
 
그런 옷이라니! 옷태 밖으로 비추어 보이는 모습에 뒤돌아본 시정잡배녀석들이 한 둘이 아니었소!
 
마음같아서는 모조리 그 놈들의 눈알을 파내고 싶지만 내 참겠소. 당신이 그 만큼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이건 나의 경고요. 앞으로는 절대로 그런 속옷을 입어선 아니되오.
 


/ 1172년 1월 10일
 


나는 오늘 또다시 충격적인 장면을 보았소. 너무 많이 화가 난 까닭에 되려 냉정하고 침착해졌소.
 
당신과 입맞춤을 했던 젊은이 기억하오?
 
레이첼. 당신은 내가 경고를 했음에도 외간남자와 키스를 하는 우를 범했소.
 

 

지금 그 젊은이는 토막난채 내 푸주간에 매달려 있소.
 
부디 이 편지를 보고 절망하거나 너무 겁에 질리지 않기를 바라오. 부탁이오.
 
나는 당신을 사랑하오.
 
세상 모든 사람이 내게 손가락질을 하고 침을 뱉어도 상관없소. 내게 당신만 있다면.
 
PS : 귀족가의 청년이라 그런지 상태가 아주 좋소. 싱싱하고 탄력있지.
 
78년된 포도주가 있는데... 저녘식사에 마시려하오.
 
물론 메인 디쉬는 당신의 입술을 탐한 그 건방진 녀석으로 할 생각이오.
 
어디가 좋을까? 난 개인적으로 성대가 있는 앞 목살을 좋아하지만 오늘은 다른 곳을 먹기로 했소.
 
바로 당신에게 무도하게 침입한 입술과 혀를 요리해 먹을 생각이오.
 
그것으로 당신과의 키스에 대한 댓가를 톡톡히 받아낼 수 있다고 믿어요.
 


/ 1172년 1월 17일
 


저번에 먹은 젊은이의 입술과 혀는 매우 맛이 있었소.
 
부드럽고, 또 감칠맛이 났지. 당신과 함께였더라면 더욱 흥이 나지 않았을까 생각하오.
 
참, 시작부터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 미안하오.
 
당신이 편지를 보고 기절한 것을 알고 있기에, 사실 나는 매우 마음이 아프다오.
 
내가 사랑하는 레이첼. 당신이 무려 10시간 동안 의식을 잃었을 때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당신은 도저히 모를 거요. 도대체 왜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거요? 나의 정열적이고 순수한 사랑을?
 
나는 당신만을 사랑하오!
 
당신의 향기를, 당신의 눈동자를, 당신의 자취를... 당신이 가진 당신의 모든 것을 오롯히 원하고
 
갈구하고 있소.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오로히 레이첼, 당신 생각밖에는 없다오!
 
오 나의 레이첼! 제발 나를 두려워하지 말아주오! 제발.
 


/ 1172년 1월 25일
 

 

당신이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정말 걱정이오. 정말 이대로 죽어버릴 셈이오?
 
그래선 안되오. 절대로 안되요.
 
나는 당신없는 세상에서는 살아갈 수 없소! 오 레이첼, 제발... 물이라도 먹도록 해요.
 
벌써 몇 일째요? 물한모금 넘기지 않으니 생명이 위태로울 수 밖에...
 
제발 음식을 들도록해요! 당신을 이토록 사랑하는 나는 도저히 견딜수가 없소!
 


/ 1172년 2월 1일
 

당신이 나에 대해 눈치챈 것 같소... 당신이 나를 보는 눈이 심상치 않아요.
 
나는 불안하오. 많이 불안하오. 당신이 나를 인지했을 때 행복할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잘 모르겠소.
 

 


/ 1172년 2월 5일
 

당신이 결국 눈치 챈 걸까? 나의 레이첼...? 기다려왔던 순간일 텐데. 나는 무언가 불안하오. 당신의 눈빛이 심상치 않아.
 
상관없소. 우리의 사랑이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나는 우리를 바라보는 주변의 경멸들이야 두렵지 않소.
 

 

/ 1172년 2월 10일
 


그동안 내가 벌여왔던 모든 일에 대해 사과하오, 레이첼... 내가 했던 행동들은 부적격하고 무의미한 것들이었소.
 
오늘에서야 그걸 깨달았어...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결국 남자의 용감한 행동이었다는 것을!
 
이게 오늘 내가 당신을 범한 이유요. 그래, 나는 당신을 범했어!
 
내가 평소 머릿속에서 수없이 당신과 판을 벌였던 수반큼, 당신 속에다 힘차게 사정했어!
 
결국 당신도 나를 인정한거야! 왜냐하면 당신은 거부하지 않았어!
 
비록 축 늘어진채 힘없이 나의 움직임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했지만, 당신은 거부하지 않았다고!
 
당신은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고, 몸부림을 치지도 않았어! 나의 움직임에 흔들거리는 당신의
 
몸은 그만큼 아름다웠지! 당신도 결국 나를 받아들인거야.
 
다만...
 
나는 레이첼. 당신의 눈빛이 마음에 걸려. 그 체념한 듯한 눈빛...
 
아니 차라리, 불쌓하다는... 연민이 담긴듯한 그 눈빛.
 
아무튼 나는 상관하지 않아. 이제 당신은 내 것이야 레이첼.
 

 

 

 

 

 

 

 

 

 

 

 

 

 

 

 

 


< 1172년 4월 17일 >
 

 

프랑스 파리 경찰청 드보르 서장님에게,
 
마부스 가노엘 백작가 하인장 피터 올림-
 

 

서장님, 지금 마부를 통한 전갈을 서장님께로 보냅니다요. 부디 빠르게 이곳으로 와주셨으면 합니다요.
 
오시는 동안 이 전갈을 읽으시고,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셔서 범인을 잡아내는 그 혜안을 발휘해주셨으면 하고 진심으로 바랍니다요.
 
서장님.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저번 2월부터 모종의 편지게 백작가에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요. 그 편지는 일견 레이첼 아씨에게 구애를 표하는
 
귀족가 청년의 편지 같았습니다요. 쇈내야 하인장일 뿐이니 편지의 내용들을 일일이 알 수 있으랴마는,
 
제가 분명하게 말하건데 편지를 보낸 놈은 미.친놈이었습니다.
 
제 친구 바마는 손가락이 잘린 채 산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바마의 손가락만 아씨에게 전달된 편지 봉투에 매달려 있었구요.
 
그 때부터 심상치 않았습니다.
 
백작님은 백번 노하셔서 편지를 전해주는 사람들을 문초해 범인이 누구인가 잡으려 했습니다.
 
소용없었습니다요.
 
편지를 백작가에 전해주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민들이었습니다요.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들 이었죠.
 
그들은 마을가에서 왠 남자가 편지를 전해주면 돈을 주겠다는 말에 편지를 전해주는 것이었습지요.
 
백작님은 그들에게 남자의 인상착의를 말해보라 했지만, 워낙 흔한 차림새인데다가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다고 해서 끝이 났습니다. 그런 인상착의로 범인을 잡기는 하늘에 별 따기 아니겠습니까요.
 
저 앞에 시장터에만 가도 넉넉잡아 열 놈은 있을법한 차림새이니깐요.
 
여하튼간에 백작님은 앞으로 편지를 배달하는 사람들에겐 큰 벌을 내리겠다고 하셨고, 편지를 전해주라는
 
사람을 붙잡으면 포상금을 내리겠다고 하셨습지요.
 
잠시간 저택에 평화가 오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착각이었지요.
 
아가씨의 창문에 편지가 꽂혀 있었던 겁니다. 그것도 아가씨의 일거수일투족을 모조리 기록하고 있는 편지가요!
 
이제 성에는 모든 병사와 하인들이 시종일관 감시를 서게되었습니다.
 
하지만 결단코 하나도 소용없었습지요. 아무리 철벽같이 경계를 서도 어느새인가 벽난로나
 
의자, 피아노 줄 사이에 그 누런 편지봉투가 끼워져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것 참 소름이 돋을 일이지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우리 마음착한 아가씨는 다른 사람들이 내 친구 바마처럼 죽을까봐 억지로 편지를 읽으셨지요.
 
파리하게 질린 얼굴과 파들파들 떨리던 그 손가락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그리고 결국 그 미.친놈이 일을 터뜨렸습니다.
 
아가씨가 편지를 읽고 기절하시고만 것이죠. 몇다리 걸친 소문에 의하면 아가씨가 알던 사람이 아주 죽었다 그럽니다.
 
그것도 바마와 같은 하인이 아니라 귀족이 말입니다요!
 
그 미.친놈이 무슨 놈일지 몰라도 전 무서웠습니다. 아주 무서웠지요.
 
그 즈음 저택 내의 분위기는 살벌했습니다. 하인과 병사들 시녀들 모두가 서로를 의심과 불신의 눈초리로
 
바라보았고, 아가씨는 병사건 하인이건 남자만 되었다하고 눈에 보이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려하셨거든요.
 
참으로 끔찍했습니다. 등골에 소름이 돋았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 지금도 무섭습니다. 아가씨는 음식도 넘기지 않으시고 며칠을 보내시다가, 언제부터인가
 
눈빛이 이상해지졌습니다. 비명을 지르지도, 도망을 치지도 않으셨어요. 다만 눈빛이 이상해졌지요.
 
좀더 차분해지고 초연해진 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였어요.
 
아가씬 돌아가셨습니다. 자살하셨어요. 2월 11일 날 자살하셨지요. 자신의 방에서 목을 매신채 발견되셨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 편지를 보내는지 궁금하시겠지요? 끔찍합니다. 백작님께서 오늘 자살하셨어요.
 
아씨의 장례식을 홀로 준비하다가, 손목을 그은 채 발견되셨습니다. 이미 늦었어요. 돌아가셨죠.
 


... 형사님. 저는 진심으로 범인을 잡고 싶습니다.
 
제가 소년일때부터 백작님을 주인으로 모셨고, 아씨가 걸음마를 할 때부터 옆에서 지켜봐드렸죠.
 
어릴 적, 어머니인 백작영애님이 돌아가셨지만... 그 누구보다 밝고 쾌활하게 자라나셨습죠.
 
그 분이 얼마나 천사같은지 저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을겁니다.
 
숙녀가 되어서도 저와 같은 미천한 것들에게 일일이 미소를 주시고, 신경을 써주셨고-
 
이 황량한 저택을 그 발랄한 웃음으로 활기차게 만들어주셨던 고결한 여신같은 분이셨습니다. 저는 아직도 아씨를
 
생각할때면 눈물이 흐릅니다.

부탁드립니다. 이 미.친 살인마를 꼭 잡아주세요.
 


아씨의 장례식과 백작님의 장례식을 동시에 거행하기로 했습니다. 검은 정장을 한복 가져오세요.
 
참, 레이첼 아가씨의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백작님은 범인을 잡으면 갈갈이 찢어죽일거라고 큰 소리만 치셨지, 따뜻하게 아가씨를 보듬어 주진 못하셨거든요.
 
이럴 때는 어머니가 보여주는 따듯한 보호가 더 필요한 법이었을텐데... 불쌓한 아가씨.
 
그래도 백작님께서 모자란 아버지라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일절 다가오는 것을 금하며 하루종일 아가씨 옆에 붙어 계셨거든요.
 

 

PS : 서둘러 와주십시오 형사님. 죽은 아씨와 백작님의 영혼이 천국에 들지 못하고 저를 내려다보는 기분이 듭니다.
 
꼭, 꼭... 이 미.친놈을 잡아주십시오.
 

 

금산스님의 최근 게시물

무서운글터 인기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