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레

깨꾸닥 작성일 13.05.29 22: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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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글은 아니지만


요즘에 드는 생각은.. 귀신이 쫓아오거나 살인마가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사람이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게 가장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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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나를 '걸레'라 불렀다...

내가 A를 알게 된 건 고등학교 3학년, 19살때였다

아무것도 내세울것 없는 어린 나에게,

대학생인 그는 거대한 존재였음을 지금도 부인하진 못한다.

난 그를 바라보는 행복으로 매주 교회를 찾았으며,

그가 나에게 말을 걸어온 어느 일요일 오후엔

미칠듯이 행복했던, 그런 조그마한 여자아이였다.

어느날 그가 나의 입술을 원했다.

그리고 나의 몸을 더듬었다. 난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어느날 다시 그가 나에게 속삭였다.

남자는 원래 그러는 거야... 그리고 

그의 방에서 난 나의 순결을 그에게 바쳤다.

난 그게 사랑이라고 믿었다. 아니, 설사 그것을 믿지 않았다 한들,

내가 어떻게 그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었겠는가...

그날 이후, 그가 나를 그의 방으로 부르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의 침대에서 난 그의 거친 숨이 끝날때까지

멍하게 천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은 첫경험때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 내볼을 적셨다.

몇달쯤 지난후부터 그가 날 원하는 횟수가 갈수록 줄어 들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날 더 이상 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방으로 찾아갔던 어느 밤,

그는 소중한 유리병을 만지는 표정으로 다른 여자의 손을 맞잡고 있었다.

나에겐 한번도 지어 보인적 없는 그런 미소, 그제서야 난 깨달았다.

난 단지 그에게 '쉬운' 존재 였음을...

그를 완전히 포기하기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싸늘한 표정으로 그가 던진 '미안하다' 라는 말이 없었다면

난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나버리고 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몇년이 지나 그가 그토록 어른스러워 보였던 그의 나이가 되었을 때,

그래서 그가 얼마나 어린 남자였는가를 깨달았을 때,

그때서야 난 그를 용서 할 수 있었다.


졸업 직후, 어느 조그마한 회사에 취직을 했다.

그리고 그의 상처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을 무렵

비슷한 또래의 한남자 B를 소개 받았고 우린 사귀기 시작했다.

그는 날 사랑한다고 했다.

그래서 원하는 것이라고 날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그에게서 예전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았던 난

매번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한편으론 같이 자게 될 경우 그가 알게 될,

내가 '처녀'가 아니라는 사실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그는 날 사랑해. 믿으려 힘겹게 노력했다.

그가 군대를가던 날, 술에 취한 목소리로 그가 남아달라 부탁했다.

그를 보낸다는 슬픔에, 난 그날 그에게... 몸을 허락하고 말았다

. 그러면서 그의 사랑을 믿었다.

혈흔이 보이지 않음을 확인한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담배만을 계속 피워댔다.

다음날 아침 우린 말없이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입영하는 날까지 그에게선 연락이 없었다.

퇴소식때도, 첫 휴가때도, 수많은 나의 편지에

단 한통만의 답장이 왔을뿐이다.

넌 왜 나를 속였는가... 그때서야 알았다.

내 거부의 몸짓이 그에겐 순결의 상징이었음을.

난 본의 아니게 그를 속이고 있었다는 것을...

아무말 하지 못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남자의'사랑'은 여자의 순결 앞에서 

그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나 역시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B와 함께 어울리던 그의 친구 C가 있었다.

그를 군대에 보낸 후, 외로운 나의 마을을 달래주겠다던

B의 친구와 잦은 만남을 가졌다.

B에게서 멀어지면서 난 점점 더 그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C가 날 사랑한다 고백했다.

난 못들은 척하며 그를 피했다.

어느날 그가 집 앞으로 날 찾아왔다.

그를 설득하기 위해 난 B와 잔적이 있음을 고백해야 했다.

아무말 못하고 그는 날 멍하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말없이 돌아 섰다.

며칠후 그가 다시 술에 휘해 날 찾았다.

모든걸 이해할 수 있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그리고 외면하고 돌아서는 날 여관으로 끌고 갔다.

반항하는 나에게 그가 말했다.

다 용서하겠다고, B와도 잤으면서 왜 자기와는 안되느냐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

그리고 그와의 관계가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에게 몸을 맡겼다. 그는 매번 난폭하게 날 안았다.

그러면서 B를 욕했고, 나에게 화냈으며 스스로 슬퍼했다.

그런 그를 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내가 임신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가 영원히 나의 곁에서 날 지켜줄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를 지우고 돌아오는날. 하늘은 유난히도 맑았다

비는 가슴에만 내리고 있었다.

그날 밤, 사그러진 나의 아기를 생각하며 밤새 울었다.

낙태 사실을 그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날 떠났다.

그는 이유를 묻지 않았으며 나 역시 핑계를 대지 않았다.

그를 보내며 이제 다시는 남자를 사귀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회사에서 날 따뜻하게 바라보는 한 남자 D를 발견했다.

매일 아침 내 책상위엔 커피 한잔이 놓여 있었고,

아주 수줍은 몸짓으로 점점 더 그는 나에게 다가왔다.

이미 회사내에 그가 날 짝사랑하고 있다는 소문이돌고 있음을 그제서야 알았다.

그를 애써 외면했다.

더 이상 남자에게 마음을 주지 않으리란 결심은 그에 대한 냉대로 표현되었다.

그럴수록 그는 절실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회사 전체의 회식날. D는 출장 중이어서 참가하지 못하는 술자리였다.

못하는 술을 바람둥이로 소문난 자재부 부장이 자꾸 권했다.

주위의 남자들은 재밌어 하며 킬킬 거리고 웃었다.

몇잔 마시다가 자리를 일어서려 할때, 옆에 있던 우리과 과장이 날 꾸짖었다.

무슨 여자가 분위기 하나 못맞추냐고,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었지만 어색해진 

술 자리의 분위기를 위해 그냥 앉아야만했다.

그리고 재차 권해지는 술잔. 원래 술이 약한 난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취중에도 누군가가 나의 어깨를 쓰다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뿌리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누군가가 나를 들어 차에 태웠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낯설은 침대에서 정신을 차렸을때 내 옆에는 그 부장이 누워 있었다.

난 옷을 입을 생각도 못한채 멍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능글맞은 웃음을 한번 지어보인 후 

수표 몇장을 베게밑에다 끼운후 그는 방을 나갔다. 

한참을 그가 나간 문을 바라보다 호텔을 나섰다.

화도 나지 않았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쓰러지듯 잠이 들었고 다음날 부터 난 출근하지 않았다.


사직서를 내러 회사에 들르던 날, D가 날 붙잡았다.

퇴근후에 얘기 좀 하자고 부탁하는 그를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술잔을 거푸 비워대는 그를 보며 

이미 그가 부장과의 일에 대해 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마음에 대한 마지막 배려로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려 가만히 있었다.

드디어 그가 물었다. 김부장과 어디로 사라졌었냐고..

난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내가 생각해도 놀랄만큼 당당한 목소리였다.

그의 폭음이 계속 되었다.

발음도 제대로 나지 않는 목소리로 그가 다시 물었다.

대체 남자 경험이 얼마나 많아서 그렇게 당당한 거냐고.

사실대로 또 말해주었다.

부장까지 네명의 남자와 잤다고, 

횟수로는 셀 수도 없다고,

임신한 적도 있었다고....

그렇게 몇병인가를 더 마시다가 그가 드디어 테이블에 쓰러졌다.

그리고 잠꼬대를 하듯 중얼거렸다.

넌 걸레야 걸레...

쓰러진 그를 놔두고 술집을 나섰다.

그가 한 '걸레'라는 말이 귓가를 계속 울렸다.

난 여태껏 내가 원해 남자와 잔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남자들은 늘 나의 몸을 요구했고, 강제로 빼았았으며

자신들의 욕망을 채운후 날 버렸다.

19살 어렸을때부터 25살이 된지금까지

그들이 나에게 남긴건 늘 상처뿐이었다.

난 그들이 원할 때 끝까지 거부하지 못한 죄밖에 없다.

그런데 이제와서 그들은 그런 날 '걸레' 라 부른다.

밤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며 혼자 웃으며 외쳤다.

난 걸레야...

하지만 남자들은 알까.

나 같은 걸레들은 이젠 울다 지쳐 눈물조차 흘리지 못한다는 것을..

이제 가슴 깊은 곳엔, 흘린 눈물이 굳어 

소금덩어리로 변해 있다는 것을 과연 너희들은 알까.

걸레도 걸레이고 싶지 않았다는 것을..

과연 너희 남자들은 알기나 할까..

딱 오늘 까지만 울겠다고. 앞으론 절대 울지 않으리라 마음 먹으며

난 마지막 눈물을 뿌렸다. 그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게 집에 가는 길은 달빛에 반사된 눈물 방울방울로 새파랗게,

슬프도록 새파랗게 빛나고있었다.

세상은 많은 수의 '걸레'라 불리는 여자들과

그보다 더 많은 수의 그런 여자를 만드는 남자들로 이루어져 있는게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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