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나찰녀, 아들을 위해 무릎을 꿇은 사자 '수정

자뭅 작성일 14.10.20 13: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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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의 개국 설화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다음과 같다.

인도양 가운데 있는 섬에 커다란 철로 된 성이 있었는데, 대철성 혹은 보주라불렸다. 

오늘날의 스리랑카인 그 성에는 5백의 나찰녀들이 살고 있었다. 

나찰은 사람을 잡아먹는 귀신을 뜻하며 식인귀食人鬼라고도 하는 무시무시한 악귀 중의하나이다.


 그 나찰녀들이 대철성 한쪽에 성루를 지어 그 꼭대기에 두 개의 커다란 깃발을 걸어놓고는 그 깃발로 좋은 일과 나쁜 일을 표시하며 지냈는데 사실 그 깃발은 바다를 지나는 사람들을 유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찰녀들은 바다를 통해장사를 하는 상인들이나 고기를 잡던 어부들이 멀리서 그 깃발을 보고 섬으로 들어오면 아주 친절히 안내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환대에 상인들이나 어부들이 안심하면 상인이나 어부들을 쇠감옥에 집어넣고는 하나하나 꺼내 잡아먹었다. 



왜냐하면 나찰녀들이 주로 먹는 식량이 사람의 피와 고기였기 때문이다. 

당시 오늘날의 인도에 해당하는 섬부주에는‘사자lion’라는 뜻의 싱가라는 장사꾼이 살고 있었다. 


싱가에게는 승가라라는 아들이 있었다. 승가라는 아버지가 하던 일을 이어받아 열심히 상업에 종사하며 배를 타고 무역을 하기도 하고 보석을 채취해서 내다 팔기도 하였다.


어느 날 승가라는 보석을 채취하기 위해 바다에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파도에밀려 한참을 표류하다가 우연히 어떤 섬에 닿았다. 그런데 그 섬이 바로 나찰녀들이 사는 커다란 철로 된 성이 있는 보주였던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승가라와배에 탔던 사람들은 나찰녀들이 변장한 여인들의 환영을 받고는 즐거운 마음으로그 섬에 머물렀다. 그후 승가라와 선원들은 나찰녀들과 짝을 지어 매일매일 환락의 생활을 하며 지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그들 중 일부는 아이를 낳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악몽을 꾼 승가라는 퍼뜩 잠에서 깨어 정신을 차리고는 그동안 지냈던 여인들과의 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하였다. 

승가라가 집으로 돌아갈 길을 찾아 여기저기를 돌아보던 중 성의 한쪽에 몰래 설치되어 있는 쇠감옥을 발견하였다. 

그 쇠감옥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갇혀서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있었다. 

승가라는 그 사람들에게 왜 쇠감옥에 갇혀서 그렇게 울부짖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자신들도 바다에서 장사를 하던 사람들이었는데 이 섬이나찰녀의 섬인 줄 모르고 장사를 하기 위해 그 섬으로 들어왔다가 나찰녀들의 꾐에 빠져 그들과 함께 지내다가 이렇게 쇠감옥에 갇혀서 한 명씩 한 명씩 나찰녀들의 먹이로 죽어가고 있다며 그동안의 내용을 모두 이야기해주었다. 


자신들과 지내던 그 여인들이 인간이 아닌 나찰녀이고 그들의 흉악함과 그동안 속아서 지내온 것을 알게 된 승가라는 어떻게 하면 재난을 피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감옥에 갇혀 있던 상인 한 사람이 해안에 하늘을 나는 천마가 한 마리 있는데 그 천마를 향해 모두가 한마음으로 기원하면 그 섬을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 수있다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은 승가라는 비밀리에 상인들을 모아 그간 속아 지낸것을 이야기하고는 모든 상인들과 함께 해안에 있는 천마를 향해 한마음으로 기원하였다. 그러자 어디선가 천마가 달려와 말하였다. 


“너희들은 내꼬리를꼭잡고 뒤를 돌아보지 말라. 그러면 바다를 건너 당신들의 고향인 섬부주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데려다주겠다.”이 말을 들은 상인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천마의 꼬리를 잡고 하늘을 날아 나찰녀들이 있는 섬에서 도망쳐 자신들의 고향인 섬부주로 되돌아왔다.


나찰녀들은 상인들이 모두 도망친 것을 알고는 바다를 건너 상인들을 뒤쫓아가서 상인들에게 하나하나 만나 울면서 그 섬으로 돌아갈 것을 호소하였다. 


나찰녀들과 섬에서 쾌락의 날을 보냈던 상인들은 지난날을 잊지 못하기도 하고 또한나찰녀들의 술수에 다시 빠져 그만 나찰녀들을 쫓아 그 섬으로 되돌아갔지만 승가라는 나찰녀들의 사악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돌아가지 않았다. 







한편 승가라와 짝을 이루어 지냈던 나찰녀는 나찰녀들의 왕이었는데 자신의 짝인 승가라로부터 버림받았기 때문에 나찰녀들로부터도 버림받아 섬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자나찰녀의 왕은 승가라에게 복수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나찰녀는 섬으로 가서자기 자식들을 데리고 승가라를 찾아가 승가라에게‘당신의 아이들을 데려왔다’며 유혹하였다. 그러나 승가라는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승가라를 유혹하려다 거절당한 나찰녀의 왕은 이번에는 승가라의 아버지인 싱가를 찾아갔다. 
그리고 자기는 승가라의 아내이고 자기가 데리고 온 아이들은 승가라의 자식들이라고 주장 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싱가가 그들을 자신의 집에서 살게 하였으나 그들이 싱가의 집에서 사는 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승가라가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에게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하자 다시 쫓겨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나찰녀는 이제는 국왕을 찾아가 거짓으로 그동안의 사정을 이야기하며 자신을 보살펴달라고 호소하였다. 나찰녀의 외모와 아주 능란한 말솜씨에 반한 왕은 그만 승가라를 벌주려하였다. 


이에 승가라는 왕을 만나 그동안의 사정을 자세히 이야기하였지만 나찰녀에게 반한 왕은 승가라의 말을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나찰녀의 왕을 자신의 후궁으로 삼았다. 
후궁이 된 나찰녀의 왕은 어느 날 밤 자신이 머물렀던섬으로 몰래 돌아가 그 섬에 남아 있던 5백 나찰녀들 모두를 데리고 섬부주의 왕궁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궁에 있던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먹었다. 

다음 날 왕궁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나찰녀들에게 잡아먹힌 사실을 안 신하들이 승가라를 새로운 왕으로 옹립하였다. 
왕이 된 승가라는 과거 자신이 갇혀 있었던 나찰국으로 군사를 이끌고 배를 타고 가 그곳의 나찰녀들을 모두 무찌르고 거기에 갇혀 있던 사람들을 구출했다. 
승리를 거둔 승가라는 그곳이 너무 아름다워 자기 고향인 섬부주로 돌아가기를 포기하고 그곳에 나라를 세우고 그 나라를 스리랑카라고 불렀다. 이때부터 스리랑카의 사람들은 자신들을 승가라 또는 싱갈라 등으로 불렀다.




이것이 지금 스리랑카인을 부르는 싱할라Sinhala로 변했고, 이 때문에 싱할라들은 스스로를 사자의 후예라고 믿게 되었다.
이 개국 설화는 스리랑카 혹은 남아시아 나름대로의 특이성은 있으나 한반도의 이야기와는 공통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스리랑카의 다른 개국설화는 한반도의 이야기와 매우 유사해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개국 설화는 다음과 같다.






스리랑카 개국의 시조를 정복자라는 뜻을 지난 위자야Vijaya라고 하는데 스리랑카의 시조를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옛날 남인도에 방가국이라고 하는 나라가 있었는데 그 나라의 국왕은 이웃 나라 동인도의 칼링가국 출신의 여인과 결혼하였다. 
그들은 결혼을 한 후 공주를 두고 있었는데, 그 공주는 항상 나라 안팎을 여행하기를 좋아하였다. 
어느 날 공주는 상인들의 뒤를 쫓아 이웃 마가다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상인들과 공주가 길을가는 도중 라라국에 이르렀을 때였다. 

자들이 그들 일행을 공격하였다. 많은 상인들을 죽이고 공주를 사로잡은 사자는 공주를 잘 보살펴주기 위해 맛있는 열매들과 사슴 고기 등을 가져다주었다. 나중에 사자와 공주는 결혼을 하였다. 이제공주도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것을 단념하고는 사자와 살았다. 

마 후 사자와 공주 사이에 일남 일녀의 쌍둥이가 태어났다. 
쌍둥이 중 아들은 싱하바후라 하고 딸은 싱하시바리라고 하였다. 
싱하바후는 겉의 모습은 일반 사람과 같으나 성질은짐승과 같아 무척 난폭하였다. 
그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어느덧 나이가 스물이 되었다. 



특히 싱하바후는 힘이 강하여 맨손으로도 맹수들을 때려잡을 수 있게 되었다. 
하루는 싱하바후가 자신들이 어떻게 해서 태어났는지에 관해 궁금해하면서 
“왜 저희들의 아버지는 사자이고 어머니는 사람이십니까? 어머니와 아버지는 같은 종류의 생명체가 아닌데 어떻게 결혼하여 사실 수 있었습니까”라고 물었다. 
러자 어머니는 할 수 없이 과거에 있었던 일을 소상히 이야기해주었다. 
어머니로부터 자신들의 출생의 내용을 다 들은 싱하바후는 “어머니, 인간과 사자는 겉모양도 다르고 사는 길도 다릅니다. 
그러니 우리 이곳에서 살지 말고 도망가 사람들이사는 마을로 내려가서 삽시다”하고는 사자가 사냥을 나간 사이 몰래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데리고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내려왔다. 


마을로 내려온 어머니는 싱하 바후와 싱하시바리에게“너희들은 지금까지 알고 있는 너희들의 출생에 관한 비밀을 어느 누구에게도 말해선 안 된다. 아마 사람들이 너희들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면 너희들은 그들로부터 무시당하고 그들은 또 너희들을 죽이려들지도 모른다”하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한편 자신의 아내와 자식들이 도망친 것을 알게된 사자는 자식들을 그리워하며 지내다가 아내와 자식을 잊지 못하고 마을로 내려와서는 사람과 동물들을 마구 해쳤다. 
사자의 횡포가 심해지자 마을 사람들은혼자 다니면 사자로부터 화를 당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모여 무리를 지어 북을치거나 피리를 불며 무기를 갖고 다녀야 화를 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왕은 자신의 덕이 부족하여 나라에 이렇게 상서롭지 못한 일이 생겼다고 생각하고는 사자를 직접 사로잡기 위해 병사를 동원하여 사자가 있을 만한 숲으로 갔다. 
하지만 사자가 워낙 용감하기 때문에 사자를 사로잡을 수 없었다. 오히려 병사들도 사자가 가까이 오면 무서워 도망치기에 바빴다. 이에 국왕은 사자를 잡는 사람에게 후한 상을 주겠다고 포고하였다.




한편 도망을 쳤던 사자의 아들 싱하바후도 왕의 포고를 들었다. 

그는 어머니가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버지인 그 사자를 죽이러 갔다. 
싱하바후는 자신이 사자를 잡겠노라고 왕에게 이야기하고는 사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멀리서 싱하바후가 자기를 죽이기 위해 가까이 오는 것을 본 사자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아들 앞에 순순히 무릎을 꿇었다. 

사자가 순순히 무릎을 꿇어주자 싱하바후는사자를 칼로 찔러 죽였다. 


왕은 그 사자의 아들이 가진 불가사의한 힘에 놀라서 그 젊은이에게 사연을 물었다. 하지만 그 젊은이는 처음에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다가 왕이 싱하바후를 감옥에 보내겠다고 협박하자 내용을 모두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싱하바후의 이야기를 다 들은 왕은“자식이 아버지를 살해한다는 것은 인간은 물론 동물의 도리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아버지를 살해하는 자가 부모와 자식 간이 아닐 때는 얼마나 더 포악해지겠는가? 
무릇 모든 인간들은 짐승같은 심성을 달래기 어려워 쉽게 포악해질 수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인륜의 무서움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라도 너를 벌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네가 나서서 나라의 어려운 일을 해결하였으므로 내 너에 대한 벌과 상을 상쇄하여 목숨만은 살려주마. 그러나 너를 배에 실어 멀리 다른 나라로 추방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어머니만 그 나라에 머물게 하고는 두 척의 배에 충분한 양식을 싣고 남매를 각각 다른 배에 태워 바다로 띄어 보냈다. 



그들이 탄 배는 물결이 치는 대로 흘러 싱하바후가 탄 배는 표류하다가 어느 섬에 도착하였다. 
도착해보니 그 섬에서는 아주 귀한 보석들이 많이 났다. 그래서 싱하바후는 그 섬에 머무르기로 작정하고는 그전부터 그 섬을 지배하던 야차들과 싸움을 하여 모두 물리쳤다. 
그 싸움에서 이긴싱하바후는 그 섬을 완전히 정복하여 스스로 왕이 되었다. 




싱하바후가 그 나라를 다스리자 보석을 찾아 그 섬으로 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 섬이 바로 오늘날의스리랑카이다. 
사람들은 그 이후에 사자와 같이 용감한 자의 후예가 사는 곳이라하여 그곳을 집사자국執獅子國이라 불렀고 싱하바후가 야차를 물리치고 나라를세웠기 때문에 그를 정복자라고 부른다. 
한편 다른 배를 타고 같이 떠났던 동생싱하시바리는 서쪽으로 흘러가서 페르시아에 닿아 그곳을 지배하는 신과 결혼하여 살았다고 한다.








첫 번째 설화에 대한 이야기는 차치하기로 하고 두 번째로 소개된 스리랑카의 개국 설화에서 우리는 어디선가 많이 들었던 이야기를 느낄 수 있다. 그것이 바로『삼국유사』감통편에 소개되고 있는 호원虎願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경주의 흥륜사의 사원 건립과 관련된 이야기로 전해져오고 있는데 나오는 동물이 호랑이와 사자인 것은 다르나 그 동물이 일부러 무릎을 꿇어주는 등의 내용에서는 매우 비슷하다.

스리랑카인들의 주장을 그대로 따라 스리랑카의 개국을 기원전 543년으로한다면 이 이야기는 2,500년 전의 이야기이고『삼국유사』에 소개되었다는 것을 본다면 적어도 700∼800년 이전부터 이런 이야기가 서로 오갈 수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듯 설화는 다양한 상상력을 주는 창조성에 더해 아무리 먼 거리라도 서로 찾아가 내용을 주고받는 교류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것이다.

이런 설화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설화가 지니는 상상의 내용이 우리의 현재 기본적인 생각, 즉 과거에는 교통, 통신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교류도 활발하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교류 역시 활발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이 확인은 신을 벗기싫어 절에 들어가기를 거절했던 이의 오만함을 조용히 꾸짖는 것이며 나아가 우리에게 사고의 겸손함과 유연함을 요구하며 선입관에 사로잡힌 사고를 극복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준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평화를 지향한다. 
그동안 인류 역사에서 보인 많은 전쟁은 발생 원인이 무엇이었던 간에 평화를 원하는 인간의 순수성을 거스르고 발생한 일들이다. 
만일 인간이 궁극적으로 싸움을 원했다면 설화에 나타난 평화우호사상의 확립은 불가능하고 항상 약육강식의 논리에 함몰되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는 약육강식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듯이 보이나 그 속에서도 바른 삶을 지향하는 의지가 있다. 이런 의지가 설화에 바탕을 두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여기서 인류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설화를 통해서 인간은 힘듦을 잊으려 하는 것인지도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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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결말
 [1] <마하방사> 제6장 비자야의 도래(생략)
왕은 비자야에게 나라르 맡기려 했다. 그런데 그는 성격이 너무 포악했다. 
아무리 말려도 막무가내였다. 결국 신하들이 들고일어나서 그를 죽이라고 요청했다. 
왕은 할 수 없이 비자야와 칠백 명이나 되는 그의 추종자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을 머리를 반쯤 밀어버린 다음 전부 배에 태워 추방했다. 
남자 여자 아이들을 각각 따로 다른 섬에 내리게 했다. 아이들이 내린 섬은 나가디빠, 여자들이 내린 섬은 마힐라디빠까였다. 비자야는 수빠라까라고 하는 천국에 내렸다. 그러나 거기서도 위험하다고 해서 다시 배에 태웠다. 
결국 비자야 왕자는 랑카 섬에 내렸다.



■ [참고]「위자야」가 신라 시대 전설 「호원」(虎願)의 뿌리가 된 이야기라는 해석(물론 「위자야」에서는 부자 간의 싸움이고, 「호원」에선 연인 간의 싸움이라는 차이가 있다.) - 『삼국유사』 감통편에 소개되고 있는 호원虎願의 이야기이다. 
야기는 경주의 흥륜사의 사원 건립과 관련된 이야기로 전해져 오고 있는데 나오는 동물이 호랑이와 사자인 것은 다르나 그 동물이 일부러 무릎을 꿇어주는 등의 내용에서는 매우 비슷하다.
스리랑카인들의 주장을 그대로 따라 스리랑카의 개국을 기원전 543년으로 한다면 이 이야기는 2,500년 전의 이야기이고 『삼국유사』에 소개되었다는 것을 본다면 적어도 700∼80년 이전부터 이런 이야기가 서로 오갈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주1] - 「호원」 줄거리: 신라에 중춘(仲春) 8일부터 15일까지 청춘 남녀가 흥륜사 탑을 돌며 복을 비는 습속이 있었다
. 원성왕 때 김현(金現)이란 청년이 밤 늦게 탑을 돌다가 한 처녀를 만나 사랑을 맺었다. 
김현이 처녀의 뒤를 밟아 보니 뜻밖에 호녀(虎女)임을 알게 된다.
호녀에겐 사나운 세 오라비가 있었는데, 하늘에선 한 마리를 징계차 죽이려는 참이었다. 

오라비를 대신하여 죽으려는 호녀는 김현에게 “내일 저자에 나타나 많은 사람을 해칠 터이니 낭군은 나를 잡아 그 공으로 높은 벼슬을 하십시오” 라고 말하나 김현은 사랑하는 이를 죽일 수 없다 하며 거절하자, 
천명이니 낭군 손에 죽고 싶다고 애원한다. 과연 이튿날 범이 많은 사람을 해쳐 나라에서 큰 상을 걸어 범을 잡도록 한다. 


김현이 어제의 숲에 가자, 호녀가 나와 기꺼이 칼로 목을 찔러 스스로 죽으니 곧 범으로 변한다.
그리하여 높은 벼슬에 오르게 된 김현은 호원사(虎願寺)라는 절을 세워 명복을 빌었다 한다.[주2]
위자야http://www.asiastoryroad.com/story200/k-0028.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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