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라라 종그랑의 슬픈 사랑

자뭅 작성일 14.10.20 13:5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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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설화>  라라 종그랑의 슬픈 사랑



먼 옛날 자바 섬에 자리한 프람바난에는 펭깅 왕국과 프람바난 왕국이 있었다.
지혜로운 왕 다르마자야가 통치한 펭깅 왕국은 땅이 매우 기름져서 번영을 누렸다. 
다르마자야 왕은 나라의 앞날을 잘 설계했다. 
그의 계획의 하나는 왕국을 물려받을 왕세자 조코 반둥이 신성한 힘을 지닌 현명한 왕이 될 수 있도록 가르치는것이었다.

한편 프람바난 왕국은 힘은 세지만 지혜롭지는 못한 왕 보코가 다스렸다. 
보코왕은 키가 크고 거대한 몸통은 털투성이인 데다가 얼굴은 험상궂었다. 

그에게는라라 종그랑이라는 딸이 있었는데 아버지와 달리 아주 아름다운 처녀였다. 왕은외동딸 라라 종그랑을 매우 사랑했고, 그에게 딸은 이 세상을 의미했다. 그래서 왕은 라라 종그랑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했다. 
용모는 험상궂은 왕이지만 라라 종그랑에게는 아주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아버지였다. 그리고 보코 왕에게는 충성스러운 재상 구폴로가 있었다.
프람바난 왕국과 펭깅 왕국은 아주 오랫동안 적이었다. 두 왕국은 결코 사이좋게 지낼 수 없었다.





보코 왕의 엄청난 힘과 두 나라의 험악한 관계를 걱정한 다르마자야 왕은 나라의 앞날을 위해 왕세자 조코 반둥이 하루빨리 신성한 힘을 갖게 만들 궁리를 했다. 
그는 왕세자에게 본도워소 정글로 가서 그곳을 지배하는 우두머리 악령을 찾아서 굴복시키라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 조코 반둥은 아버지의 축복을 받으며 본도워소 정글로 향했다. 정글에 도착한 그는 우두머리 악령을 만나기 위해 명상을 하며 마음과 혼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되풀이해서 외쳤다. “
본도워소 정글의 우두머리 악령은 나와라. 나는 너를 만나야만 한다!” 마침내 셋째 날 밤에 기다리던 악령이 나타났다. 
우두머리 악령이 말했다. “젊은이, 무엇을 원하는가?” 조코 반둥은 용감하게 대답했다.

“나는 너와 싸우러 왔다. 내가 진다면 나는 기꺼이 죽어서 너의 영원한 종이 될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긴다면 너는 내가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해야 한다.”
악령은 매우 화가 나서 즉시 도전을 받아들였다. 둘은 있는 힘을 다해 싸웠다.



그러나 한참을 싸웠지만 싸움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조코 반둥은 지쳐서거의 모든 힘을 잃었다. 그는 악령을 이길 다른 방도를 찾기 시작했다. 조코 반둥은 생각했다. ‘그렇다! 놈은 유령이므로 해가 뜨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수탉의 아침 울음소리를 흉내 내서“꼬끼오 꼬꾜!”하고 외쳤다.


악령은 아침이 온 줄 알고 당황하여 집중력을 잃어버렸다. 그 순간 조코 반둥이 쉽사리 공격했고, 악령은 무릎을 꿇었다. 그래서 악령은 그의 부하가 되었고, 조코 반둥은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조코 반둥은 자신의 신성한 힘으로 폭군 밑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돕고 많은 마을을 잔인한 약탈자들의 손아귀에서 구해냈다. 
본도워소 정글의 우두머리 악령과 그의 부하들은 언제 어디서나 조코 반둥을 도왔다. 
사람들은 조코 반둥을 반둥본도워소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그는 싫어하지 않았다.





인근 왕국들의 왕으로부터 칭송을 받는 다르마자야 왕을 시기한 프람바난 왕국의 보코 왕은 재상 구폴로와 함께 펭깅 왕국을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 
그는 청년들을 소집하여 병사로 훈련을 시켰고, 세금을 거둬들여 비용으로 썼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보코 왕은 자신이 직접 병사들을 이끌고 펭깅 왕국을 공격했다. 
프람바난 왕국의 병력은 막강했지만 다르마자야 왕은 조금의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반둥 본도워소가 즉시 부하들을 이끌고 프람바난 왕국의 병사들과 맞섰다.

 펭깅 왕국은 프람바난 왕국만큼 많은 병사를 갖지 못했지만, 반둥 본도워소가 본도워소 정글의 악령과 그의 부하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에 그 힘은 몇 배로 커졌다. 
치열한 싸움이었지만 오래가지 않아서 프람바난 왕국의 병사들이 밀리기 시작했다. 보코 왕은 반둥 본도워소의 엄청난 힘에 놀랐다. 
자기 병사들이 패하고 있다는 것을 안 그는 심복 구폴로를 불러 명령했다.


“구폴로 재상, 병사들을 철수시켜라. 내가 직접 반둥 본도워소를 상대하겠다.


나를 위해 내 딸 라라 종그랑을 돌봐주길 바란다.”구폴로는“예, 폐하”라고 대답하고 명령을 따랐다.

프람바난 왕국의 병사들은 후퇴했다. 곧 보코 왕이 싸움터에 나타났다. 
그의 거대하고 추한 모습을 처음 본 반둥 본도워소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기가 죽진 않았고 자신이 이길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두 사람 모두 초자연적인 힘을 가졌기때문에 보코 왕과 반둥 본도워소의 싸움은 무시무시했다. 
해가 기울기 시작했지만 싸움의 승패가 가려질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해가 지자 반둥 본도워소는 우두머리 악령을 부르기 위해 정신을 집중시켰다. 
악령의 도움으로 그는 보코왕을 쉽게 이길 수 있었다. 마침내 보코 왕은 땅에 쓰러져 죽었다. 
펭깅 왕국의 병사들은 승리를 축하하며 반둥 본도워소를 소리 높여 칭송했다.



프람바난 왕국의 재상 구폴로와 살아남은 병사들은 왕의 죽음을 보고 곧 도망하여 제 나라로 돌아왔다. 
구폴로는 라라 종그랑에게 그녀 아버지의 죽음을 알려주고 바로 반둥 본도워소가 그녀의 사랑하는 아버지를 죽였다고 말했다. 공주는애처롭게 울었다. 그녀는 이 세상에 하나뿐인 자신의 사람이었던 아버지를 잃어서 너무나 슬펐다. 절망한 그녀는 제 몸을 단도로 찌르려고 했지만 구폴로가 가까스로 제지했다. 
구폴로는 말했다. “공주, 왕은 내게 당신을 보호하라고 명령하셨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해서 당신의 슬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라라 종그랑은 대답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나요?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반둥 본도워소가 와서 이 나라를 차지할 것입니다. 나는 전리품으로 취급되는 게 싫습니다.”

구폴로는 말했다. “나를 믿으시오, 공주. 내가 몸과 마음을 다해 당신을 돌볼 것이오.”

이윽고 반둥 본도워소가 프람바난 왕국의 왕이 되었다. 아름다운 라라 종그랑과의 만남은 그에게 더없는 놀라움이었다. 보코 왕처럼 못생긴 사람에게 비단결 같은 피부를 지닌 예쁜 딸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반둥본도워소는 그녀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고 그녀는 언제나 그의 가슴속에서 떠나지않았다.반둥 본도워소는 큰 전쟁을 치르고 혼란 속에 빠져 있는 프람바난 왕국을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그는 왕국을 지혜롭게 다스렸고 사람들도 그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반둥 본도워소는 용기를 내서 라라 종그랑에게 청혼했다. 공주는 그가 프람바난 왕국을 훌륭하게 다스린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또한 그가 자기 아버지를죽인 사람이라는 사실은 잊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응답을 미루고, 자신의 거절이 그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할 수 있는 묘책을 궁리했다. 라라 종그랑은 재상 구폴로를 불러 왕의 청혼에 대해 논의했다.


그녀는 흐느끼며 물었다. “숙부, 나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두렵습니다.
내가 그의 청혼을 받아들여야 하나요? 내 아버지를 죽인 사람의 아내가 되어야하나요? 이 왕국의 옥좌를 빼앗은 사람의 왕비가 되어야 하나요?”


얼마 뒤 그들은 청혼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하나의 요구를 들어줄 것을 왕에게 제의함으로써 곤경을 면할 길을 찾았다. 요구는 하나의 우물과 천 개의 사원을하룻밤에 지어달라는 것이었다. 
라라 종그랑과 구폴로는 왕이 하룻밤에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을 것이며 따라서 왕의 청혼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반둥 본도워소는 곤혹스러웠다. 그는 라라 종그랑이 자신의 초자연적인 힘을 시험하려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에 대한 사랑 때문에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는 불현듯 자기를 기꺼이 도와줄 본도워소 정글의 우두머리 악령을 머리에 떠올렸다.

한편 재상 구폴로는 왕이 자신들의 요구를 이행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모든 가능성에 대비한 책략을 꾸몄다. 
그는 왕궁 밖에 사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심복을 보내서 신호가 떨어지면 일제히 행동하라고 지시했다.
예정한 날이 되자 반둥 본도워소는 공주가 직접 볼 수 있도록 궁전에서 멀지 않은 곳에 평평하고 널찍한 땅을 골랐다.

해가 지자 반둥 본도워소는 명상하기 시작했다. 
우두머리 악령과 그의 부하들이떼를 지어 몰려와 일을 시작했다. 
한 무리는 우물을 파고 다른 무리는 사원을 세웠다. 밤이 깊어가면서 훌륭한 사원들이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냈고, 한밤중이 되자 수백 개의 사원이 가지런히 세워졌다. 
마침 보름달의 달빛이 그들을 도와주었다. 
궁전에서 작업 광경을 바라보던 라라 종그랑은 사원이 하나하나 세워질 때마다 가슴을 졸였다. 그러나 그녀와 달리 구폴로는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자신 이천 개의 사원을 지으려는 반둥 본도워소의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할 수 있다고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는 완성된 사원의 수를 세고 있던 자신의 호위병에게 물었다. 
“사원이 몇 개나 세워졌느냐?”호위병이 대답했다. “9백 25개입니다, 각하.”

그때 구폴로와 궁전 밖의 사람들 사이에서 연락 임무를 맡고 있던 또 다른 호위병이 전령을 보내서, 궁전 밖 마을 사람들은 도울 준비를 모두 끝내고 명령만 기다리고 있다고 그에게 보고했다.

여명이 다가오자 구폴로는 호위병에게 다시 물었다. “사원이 몇 개나 세워졌느냐?”
호위병이대답했다.“ 9백99개입니다, 각하.”
구폴로가혼잣말을했다.“ 마지막한개가남았구나.”


라라 종그랑은 절망했다. 마지막 사원이 곧 세워질 터이고 반둥 본도워소가 하나의 우물과 천 개의 사원을 짓는 데 성공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말했다. “내일 아침이면 왕이 와서 약속을 지키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내 아버지를 죽인 사람과는 결혼하기 싫다. 차라리 죽는 게 더 낫다.”그리고 단도를 높이 쳐들어 자신의 가슴을 찔렀다. 구폴로가 달려와 그녀의 목숨을 거의 앗아갈 뻔한 단도를 잡아채고 말했다. 
“공주, 왜 그렇게 절망하는가? 왕은 아직 제 일을 끝맺지 못했다. 진정하라. 이제 마지막 사원이 완성되지 못하도록 우리의 계획을 실천에 옮길 것이다.”


구폴로는명령했다.“ 호위병, 이제때가되었다. 신호를보내라.”

호위병은 활을 들고 시위를 당겨 불화살을 쏘았다. 불화살은 허공으로 날아올랐고, 그것은 궁전 밖에서도 분명히 보였다.

천 개의 사원이 조화롭게 보이도록 구획한 터에 마지막 사원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반둥 본도워소는 새벽이 오기 전에 한 개의 우물과 천 개의 사원이 완성될것이라고 확신했다. 
자신이 곧 공주를 만나 그녀가 요구한 한 개의 우물과 천 개의 사원을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숭배하고 사랑하는 공주와 결혼할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러나 궁전에서 쏘아올린 불화살을 그가 보았을 때 이미 그의 행복한 상상은 백일몽으로 끝났다. 
불화살이 허공을 가르고 난뒤 벼를 절구에 넣고 공이로 힘차게 찧는 소리가 사방에 가득 찼다. 
대체 궁전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누군가 끌어 모은 게 분명해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맡은 일을 하고 있었다.
여자들은 벼를 절구에 찧었는데 끊임없이 이어지는 요란한 소리가 동틀 녘의 정적을 삼켜버렸다.
또 동쪽 궁전에 모인 남자들은 모두 횃불을 만들어 치켜들었는데 그 빛이 하도 밝아서 마치 해가 솟은 것 같았다. 이내 여기저기서 수탉이 울기 시작했다.




마지막 사원을 거의 다 지어가던 유령들은 당황했다. 날이 샜다고 생각한 그들은 혼비백산하여 하던 일을 팽개치고 숲으로 달아났다. 우두머리 악령은 반둥 본도워소에게 와서 일을 끝마치지 못하게 된 것을 사과하고 돌아갔다.

반둥 본도워소는 슬펐다. 궁전 밖의 사정을 알아보라고 보낸 호위병이 돌아와서보고 들은 모든 것을 보고했다. 

반둥 본도워소는 공주의 요구가 자신의 초자연적인 힘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청혼을 거절하기 위한 구실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그의 진정한 사과도 그녀에 대한 진실한 사랑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의 가슴속 원한은 지울 수가 없었다.

반둥 본도워소는 어찌할 줄을 모르고 말없이 앉아 있었다. 이제 그의 꿈은 사라져버렸다.

날이 밝았다. 라라 종그랑과 구폴로는 사원 옆에서 반둥 본도워소를 만났다. 

공주는 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말했다. “폐하, 비록 하나의 사원은 완성되지 않았지만 한 개의 우물과 천 개의 사원을 지어달라는 저의 요구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청혼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 너무 깊어 저는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당신을 실망시키는게 두려워 이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해내지 못하기를 바라면서하나의 우물과 천 개의 사원을 하룻밤에 지어달라고 요구했던 것입니다. 당신이 일을 끝맺지 못하게 방해한 것도 사과드립니다. 폐하, 저는 당신과 결혼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석상이 되어 완성되지 못한 마지막 사원을 대신할 수 있게 부디 허락해주십시오. 제게는 그것이 당신과 함께 사는 것보다 더 낫습니다.”


반둥 본도워소가 공주의 말을 듣고 입을 열려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바란 대로석상이 되어버렸다. 순식간의 일이라서 왕은 공주를 막지 못했다. 반둥 본도워소는 석상이 된 공주를 궁전으로 데려가 평생 동안 왕비로 삼았다.


힌두교 세 주신의 하나인 시바 신의 개입으로 인해 라라 종그랑의 석상은 우상이 되어 현재 프람바난 사원의 북쪽 신전에 안치되어 있다. 

근래에 라라 종그랑의 명성이 널리 퍼져 그녀의 작은 신전에는 참배자들이 줄을 잇지만 사원들이 세워진 연유에 대해서는 그들 대부분이 알지 못한다.


_번역 송대원(자유번역가)












 라라 종그랑의 슬픈 사랑
 술리스티요와티 리스Sulistyowati Lis 인도네시아 시인
만 7,000개가 넘는 인도네시아 군도의 보석 같은 섬들은 이리안주의 메라우케에서 북수마트라주의 아체에 이르기까지 줄지어 늘어서 있다. 
3개 주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는 300에 가까운 민족과 250개가 넘는 방언을 품고 있다. 
2억 2,000만 명에 달하는 국민으로 아시아에서 중국과 인도 다음의 인구 대국이며 많은 세계 종교와 토착 신앙이 뿌리를 내린 믿음의 나라이다.

이처럼 잡다한 구성의 사회에서는 이해의 부족과 서로 다른 경제적 이해에 따른 충돌이 있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는 세 가지 커다란 문제를 안고 있다.
먼저‘과거의 문제’로서 종족과 언어 그리고 민족적 배경 및 종교에 따른 문화적 이질성이다. 
다음은‘현재의 문제’로서 공공질서와 정치적 안정을 수립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미래의 문제’로서 국가적 목표인 공정하고 번영하며 진보적이고 현대적인 발전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모든 구성원을 하나로 묶을수 있는 적확한 이데올로기를 만들거나 찾아내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공식 문장인 가루다 판카실라Garuda Pancasila에는 고대 자바어로 비네카 퉁갈 이카라고 씌어 있는데‘산산이 조각나 있지만 하나다’라는의미로서 흔히‘다양성 속의 조화’로 번역된다. 
이 국가적 모토는 세계에서 가장 잡다한 것으로 간주되는 인도네시아 사회를 결합시키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다양성과 통일성을 함께 갖고 있다. 이 둘은 떼어놓을 수 없다. 
다양성만을 놓고 본다면 어째서 또 어떻게 그런 사회가 지금까지 하나로살아남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이 인도네시아를 혼돈 사회로 표현할수밖에 없을 것이고, 통일성만을 놓고 본다면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추상적인 사회로 말해질 것이다.



이제 라라 종그랑의 전설을 통해 인도네시아의 문화적 전통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라라 종그랑 전설은 인도 문화가 유입되기 전 인도네시아 문화의 실제 모습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두 나라의 교역은 인도 문화가 인도네시아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가져왔는데
사실상 인도네시아의 원래 문화를 파괴하기는커녕 더 튼튼하게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인도네시아에는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는 세 가지 기반이 있다. 


첫 번째는 농경지(관개하거나 또는 빗물에만 의존하는 경작지)이며, 다음이사회 구조 단위로서의 마을이고, 마지막이 믿음으로서의 애니미즘과 강한 전통에 지배되는 사회적 태도와 협동의 가치 그리고 한 집단 내의 사이좋은 관계를 유지시키는 의사결정이다.
일찍이 농경체제는 높은 수준의 협동을 고무했다. 또 기술체계, 특히 복잡한관개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했다. 
따라서 사람들은 서로 잘 협력해야 했고 또 그러기 위해서는 사이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마을은 결속된 이웃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사회였고, 때로는 고립된 사회로 여겨지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함께 사이좋게 사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했다. 
그들의 공동생활을 평화롭게 이끈 모든 것의 중심에는 오늘날에도 찾아볼 수 있는 도덕적 가치들이 있다. 
예를 들어 협동을 강조한 고통 로룡gotong royong, 사려 깊음과 동정을 강조한 테파 셀리라tepa selira, 닮음을 강조한 파다padha가 그것들이다. 마을들은 자율적인 조직으로 만들어져 발전했다. 
많은 일에 관한 의사결정이 무샤와라 운툭 무파카트musyawarah untukmufakat라고 하는 절차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무샤와라는 언제 어디서나 자기의견을 말하고 또 존중받을 수 있는 권리를 모든 이에게 부여한 하나의 관습이다. 보통 의사결정은 긴 토의 과정을 거친 다음 절충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나의 의견이 완전히 받아들여지거나 무시되지 않는다. 자신의 뜻이 어느 정도수용되기 때문에 모든 이가 자부심을 느낀다. 이러한 의사결정에서 지도자에게는 권위 있는 통제자의 역할뿐만 아니라 큰 가족의‘아버지’구실도 요구된다. 
그는 그 누구도 자신이 패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모두가 승리감을 느끼도록 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마을은 또한 종교적인 공동체이다. 보통조상을 신으로 간주하여 숭배하는데, 조상의 관습을 보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아주 많은 영혼에 둘러싸이고 문화와 의례에 지배되는 우주적 관계로 생각되었다. 
자연의 모든 것은 이따금 꽃과 음식을 바치거나 또는 명상 등을 통해 달래주어야 하는 초자연적인 힘의 결과로 간주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사이좋은 삶을 위해 서로 힘껏 도왔다. 그 시대에 사회를 위한 행동은 최고의 가치를 지닌 미덕이었다. 강제가 없는 자발적인 협동은 오늘날 도시에서는 사라지기 시작했지만 농촌 마을에서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있는 인도네시아의 문화적 전통의 하나이다.


라라 종그랑의 전설에는 흥미로운 사랑의 이야기들도 담겨 있다. 먼저 공주와 그녀 아버지 사이의 사랑인데, 보코는 지혜롭지 못한 왕으로 알려지고 용모도 흉측했지만 딸 라라 종그랑의 눈에는 아주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보였다. 그녀는 자신을 진실로 사랑하는 아버지의 보살핌 아래서 더없이행복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 아버지를 죽인 반둥 본도워소의 사랑 고백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는 아버지를 죽인 자와 살기보다는 차라리 석상이 되기를 원했다. 
다음은 라라 종그랑에 대한 반둥 본도워서의 사랑인데, 그는 공주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하나의 우물과 천 개의 사원을 지어달라는 그녀의 요구를 의구심 없이 기꺼이 들어주었다. 또 석상으로 변한 공주를 궁전에 데려가 평생 동안 자신의 왕비로 삼았다.



인도네시아에 대한 이슬람교의영향은 12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 새로운 종교는 구자라트에 발을 디딘 페르시아 상인들에 의해 유입되었다. 
15세기 말과 16세기에 걸쳐 동쪽으로 뻗어나가 여러 사회계층을 장악하면서 인도네시아의 주요한 종교로자리잡았다. 그러나 이슬람교의 발전 과정에서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지는않았다. 농촌에서는 대체로 지역 문화에 조화되었고, 이로 인해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인도네시아?이슬람적인 특성이 나타났다.

인도네시아에 대한 서구의 개입은 16세기 말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네덜란드 배들의 상륙과 함께 시작되었다. 350여 년에 걸친 서구문명과의 접촉은새로운 문화층의 형성을 가져왔지만 사회를 급격하게 변화시키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서구문화와의 활발한 접촉이 없는 고립된 지역에서 살았다. 서구인들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해, 달리 말하면 기독교의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지역 문화에 적응해야만 했다. 
여하튼 그들의 노력은 새로운 가치관이 도입되는 통로 구실을 했으며 서구문화의 광범한영향이 1945년 8월 17일의 인도네시아 독립의 한 배경을 형성했다.




라라 종그랑의 전설은 강력했던 두 왕국인 프람바난과 펭깅에 관한 이야기이다. 
두 왕국은 오랜 숙적으로 사이가 좋았던 적이 없었다. 펭깅 왕국은 국민과 이웃 나라들을 위해 평화를 추구하는 현명한 왕이 다스린 반면, 프람바난왕국은 무력으로 영토를 넓히는 데 몰두한 왕이 통치했다. 
자신이 더 강하다고 생각한 프람바난 왕국은 펭깅 왕국을 침략했지만 패하고 말았다. 
프람바난왕국의 왕은 싸움터에서 죽고, 펭깅 왕국의 왕세자가 프람바난 왕국의 왕이되어 지혜롭게 다스렸다. 
이 두 왕국의 충돌은 잡다한 구성의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분쟁을 상징한다.




독일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는 각기 언어 덕분에 하나의 나라가 되었고,오스트레일리아와 인도, 실론, 싱가포르는 땅 덕분에 그리고 한국과 일본은민족 덕분에 하나의 나라가 되었다. 인도네시아는 고유의 특성 덕분에 하나의나라가 될 수 있었다. 수많은 섬과 언어, 다양한 종족과 종교에도 불구하고 한나라가 되었다. 그래서 사회적 분쟁이 일어날 위험은 매우 크다.
 서보르네오와 중앙보르네오, 몰루카제도, 포소, 아체, 파푸아 그리고 이제는 인도네시아의 일부가 아닌 동티모르 등 인도네시아 곳곳에서 분쟁이 일어났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많은 분쟁이 종족과 종교와 정치적 이해의 다름과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식민지 시대와 독립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분쟁을 살펴보면 두 가지 형태, 즉 수직적 분쟁과 수평적 분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수직적 분쟁은 보통 기관과 시민 사이에서 개별적으로 또는 집단적으로 일어난다. 
또한 국가가 외진지역에서 발발한 분쟁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일어나기도 하는데, 이는 거시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의도적으로 분쟁을 일으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평적 분쟁은 인도네시아의 많은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데, 통상 인종집단이나 종교의 뿌리 깊은 자기본위에 기인한다. 문화와 종족, 민족, 종교에 따른 가치의 차이에서 비롯하는 수평적 분쟁이 수직적 분쟁보다 훨씬 더 흔하다.

인도네시아공화국의 근본 원칙인 판카실라(산스크리트어로 판카Panca는 다섯을, 실라Sila는 원칙을 의미한다)는 이 나라의 통합 문화에서 태어나 뿌리를 내렸다. 그것은 모든 이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층을 반영한다. 
판카실라는 떼어낼 수 없게 서로 연결된 다섯 가지 원칙으로 이루어져있다. 
첫째, 유일신에 대한 믿음.
둘째, 올바르고 품위 있는 인간성. 
셋째, 인도네시아의 통일성. 
넷째, 국민 대표자들의 신중한 토의를 거친 지혜로운 합의에 의해 인도되는 민주주의. 
다섯째, 인도네시아 모든 국민을 위한 사회 정의.
인도네시아 전통문화의 유산에 기초한 판카실라는 이 나라가 안고 있는 중요한 문제들에 답할 수 있는 동질성을 인도네시아 사회에 부여한다. 그것은 모든 사회 집단이 자신의 믿음과 종교를 간직하고 함께 살아가면서 공동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청사진을 제공한다. 그러나 판카실라 자체가 미래를 규정하지는 않는다. 

도네시아 사회가 힘을 합쳐 그들의 미래를 결정하고 건설할 수 있도록 이끌 뿐이다. 
이것은 판카실라가 인도네시아의 통일성과 복합성을 역동적으로 유지시켜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립에 뒤이어 판카실라가 만들어지고 나서 지금까지 인도네시아에서는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것은 아직 모든 국민이 판카실라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판카실라의 사회화는 인도네시아 사회의 절대적인 과제이다.
분쟁은 가치의 차이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그것의 해결책은 지역의 지혜로부터 나와야 한다. 
지역의 지혜는 지역사회에서 발전하는 문화 자체의 폭과깊이로서 사회의 유대를 강화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집단들이 서로 닮은 점을 찾아냄으로써 얻어질 수 있다. 
성공적인 화해와 분쟁의 예방은 기관들과 정부가 지역의 지혜를 지지하고고무하며 도울 때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이제 인도네시아 사회와 정부는 분쟁 예방책을 깊이 생각하고 또 찾아야만한다. 사회 평화는 인도네시아가 자신의 특성인 차이와 다양성을 번영하는 공정한 현대 사회를 건설하는 데 상승효과를 지닌 자극제로 이용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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