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전혀 애틋하지 않은 이름 아버지 - 1 -

촉한 작성일 14.11.29 14:26:00
댓글 3조회 5,391추천 11

 

몇 번 글을 쓰고 지우고 올릴까 말까 고민을 많이 하다가 올리게 됩니다.

 

먼저 글을 읽으시기 전에 욕설로 인한 불쾌감이 드실 수 있습니다. 체험한 바를 그대로 옮겨적고자 함이니 도저히 안되시겠거든 백스페이스를 눌러주시면 진심으로 감사드리겠습니다.

 

일부러 반말체로 적겠습니다.(욕설 때문에 필터링에 걸릴수도...;;)

 

올리기 전에 한 마디 사담을 드리자면 공포게시판에 올리는 이유가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이자만 아무

 

리 귀신이 무서워도 귀신보다 무서운 건 사람이고 또한 비슷한 상황에 있을지 모르는 어린 친구들이 참는 것

 

이 능사만은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싶어서이기도 합니다.

 

그로 인해 집안이 파탄날 뻔한 위기도 겪었으니까요

 

몇 번 나눠서 쓸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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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에게 아버지라는 말의 단어는 어떤식으로 가슴에 와닿을까?


좋은 이미지 애틋한 이미지 또는 나쁜 이미지 부모 어느쪽이던지 아니면 양쪽 모두 안계신 분들도 있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고 산 분들도 많이 계실 것이고 폭행과 욕설 멸시를 받고 꾹 참고 꿋꿋하게 살아오신 분들도 드러나지만 않았지 많으리라...아마도


어려서부터 한 품어왔던 생각

 

국민학교 시절부터 부모가 장난감을 사줬다거나 집에 컴퓨터(당시는 고급품)을 들였다던가 하는 이야기보다

 

나는 "화목한 가정"이 제일 부러웠다.


흔히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하지 않던가

 

부모님과 손잡고 하다못해 근처 공원을 간다던지 서울랜드를 갔다던지 자연농원(에버랜드의 옛 명칭) 하다못

 

해 집 앞의 공원이라도 도시락이라도 싸서 가족여행을 나간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있어 그 어떤 것보다 가장

 

부러운 이야기였던 것 같다.

 

회상해보면 우리집은 부모님의 말다툼이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을 찾기가 더 쉬울 정도였기 때문이다.

 

 

부부싸움의 원인이 별 것 아닌 사소한 이유 배우자의 외도 또는 기타등등 여러가지 사유가 있겠지만

 

적어도 내 눈에 보이는 싸움의 발단 혹은 원인은 아버지가 많이 제공을 하고 계셨다.

 

어머니 몰래 한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귀가 얇아 남의 말만 믿고 한 투자가 나가리가 되어버렸다던지 그걸 또 숨기려고 거짓말에 거짓말만 반복

 

당연한 말이지만 거짓말이라는 부모는 거짓말이라는 자식을 낳고 거짓말이라는 자식은 또 거짓이라는 손자를 낳아주기 마련이다.

 

절대 거짓이라는 부모 아래 진실이라는 자식이 태어날 순 없는 노릇

 

차라리 좀 욕먹을 걸 각오하고 같이 손바닥으로 막았으면 막아졌을 구멍이 나중에 밝혀지면 손 쓰기가 까마득한 수준이였기 때문이였다.

 

그로 인한 결말은 당연히 부부싸움 실제 흉기까지 들고 대치하신 적도 있었다. 최악의 결과가 나오지 않은 건 오히려 지금 생각해도 참 다행이면서도 신기한 일이였다.

 

거의 부부싸움 종료의 아버지의 레파토리는 둘 중 하나였다.

 

에이 시X X같은 거 또는 에이 시X~!! 의 욕설만 내뱉고는 옷 챙겨입고 어딜 가시는지 집을 나가시곤 한참 후에나 들어오시곤 했다.

 

덩치로나 말싸움으로나 가정에서 아버지는 어머니를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사람과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할 때 필요한 논리가 아버지는 전혀 없는 사람 같았다.

 

설사 폭력을 휘두른다고 해도 어머니가 가만히 맞고 계실 분은 아니였고 설사 두 분이 리얼철권을 찍으셨다고 해도 90% 이상의 확률로 승자는 어머니였으리라

 

당연히 부부사이는 점점 갈등만 깊어져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뀔 때쯤엔 이미 봉합하기도 어려운 수준으로 대외적으로 보기엔 그냥 부부사이지만 그냥 같이 살고 밥만 같이 먹는 수준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였을까?

 

한참 무더위 시작을 알릴 초여름 중2 때 내게 늦둥이 여동생이 태어났다.

 

내리사랑이라고 했던가 사실 그 전에도 좋은 아버지라고 평하긴 무리가 있었지만

 

그 시기부터 나에 대한 구박 멸시 욕설이라는 씨앗은 본격적인 싹을 내기 시작한 시기였다.

 

사소한 잘못에도 난 아버지에게 병X같은 새끼 +@의 욕을 먹어야만 했다.

 

동생에게 보내는 눈빛과 나에게 욕설을 할 때의 눈빛은 같은 아버지가 두 자식에게 대하는 태도가 어찌 이리 다를 수 있을까 생각될 정도였다.

(동생이 아기라는 점은 감안한다고 해도...)

 

잘못해서 부모에게 혼나거나 설교를 듣거나 욕을 먹은 경험 체벌을 당한 경험이야 누구에게나 있으리라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의 욕설과 멸시의 눈빛은 확실히 날짜가 하루하루 바뀔 수록 그 정도가 더해지고만 있었다.

 

참 자식교육에 훌륭한 아버지였던 것이 얼마나 욕설을 해댔으면

 

한참 집안이 시끄러울 정도로 옹알이 하던 시기의 내 동생 뭘 발음해도 엄마 아빠 오빠 배고파 정도의 단답형 발음밖에 안되던 시절에도 날 보고 나름(?) 또렷한 발음으로 날 가리키며 X같은 새끼라고 했을 정도였다.

 

반복학습은 훌륭하다는 것의 일종의 증거로 삼아도 되는 걸까? 이거(...)

 

언제 한 번 아침식사 이전에 무슨 일이였던가는 기억이 희미하지만 난 또 아버지에게 욕을 먹고 있었다. 언제나 욕설공격의 원톱은 X같은 새끼 로 시작이였다.

 

몇 번 지켜보신 모양이였지만 그 때 어머니는 집안을 한 번 뒤집어 엎으시려했다.

 

너 아주 병X같은 새끼 아냐?! 보자보자 하니까 지 자식한테 뭔 그리 한이 많아서 욕질이냐 병X같은 새끼 저거 아주 또X이 아냐!? 나중에 늙어서 지 자식한테 죽도 못 얻어먹을 영감탱이 같으니!!”

 

식으로 아주 속사포로 욕을 먹었다.

 

솔직하게 심정을 토로하자면 내 속이 시원했을 정도였다.

 

아버지는 그 때 난 한참 멸시어린 시선으로 쏘아보다 옷을 챙겨입고 또 밖으로 나갔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할 생각은 커녕 회피하는 건 아버지의 특기였다.

 

그렇다고 문제가 알아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였으니

 

그 이후 그 버릇이 나았다면 조금이라도 괜찮아졌으면 난 이 글을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확실히 어머니가 계실 때 욕설은 많이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어머니에게 오히려 속사포로 역관광 당하기 싫었으면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대신 그 등가교환으로 어머니가 없으실 때의 욕설은 더더욱 진화하고 있었다.

 

욕설은 나에 대한 비하를 넘어서 너는 ㅁㅁ(동생이름) 똥꼬나 핥으면 돼 넌 ㅁㅁ이 똥이나 빨아먹으라는 등의 말은 마음속에 모멸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하고도 넘치는 말이였다.

 

한참 ADSL의 다음 단계인 VDSL을 광고하고 TV만 틀면 잭필드 3종셋 39,900원을 광고하던 시기

 

나에게도 3종 셋이 주어졌다고 해야 하나? X같은 새끼라는 원톱으로는 부족하셨던 걸지

 

그 뒤에는 X이같은 새끼 - 뒤져버려또는 뒤져 없어져 버려 의 욕설까지 쓰리톱으로 기본옵션 장착이 되었다는 차이만 생겼을 뿐이였다.

 

멸시어린 눈빛이 더욱 진화했다는 건 덤이였을 뿐...

 

물론 저 욕설들은 기본옵션일 뿐 옵션이 끝난 후엔 어떤 욕설이 나왔는지는 세종대왕께서 백성들을 위해 만들어주신 한글을 더럽히는 짓이라고 생각되기에...쓰지 않기로 한다.

(아니 지금도 충분히 더럽히고 있는 것 같지만)

 

중학시절 참 기억에 남는 일화 중 하나가 다음날이 컴퓨터 활용능력 2급의 자격증 시험이 있는 날이라 내 방에서 문제집을 풀고 있던 때였다.

 

의외로 집중하고 있었던 모양이였다. 아버지가 들어오셨는데 갑자기 머리 뒤로 피식하는 듯한 말이 들려왔다.

 

"니까짓게 무슨 공부를 한다고..."

 

아버지 탓하려는 것 아니였지만 난 그 다음날 컴퓨터 활용능력 필기 시험에서 불합격했던 건 기억난다.

 

그 시험이 뭐 별거겠냐만 준비를 나름 착실히 했고 내 모의적으로 풀어본 시험지도 못해도 80점 이상의 점수는 찍었었는데 분명히 아는 문제였고 쉬운 문제였는데도 일단 결과는 많이 틀려있었다.

 

그 시기부터 가족끼리 하는 아침식사도 엔간해선 배가 지금 고프지 않다는 핑계로 빠지고 나중에 혼자 먹었던 것 같다. 정신적으로도 차라리 혼자 먹는 것이 편했고 밥 먹는 덴 뭐도 안건드린다고 하지만 식사시간 때 어떻게든 나에 대한 결점과 흉을 잡아 뭐라고 하는 아버지와 식사는 하는 건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조건이였다.

 

단순히 욕설만 진화를 한 건 아니였다.

 

나는 그냥 아버지에 있어선 공인 스트레스 풀이 대상 + 마당쇠 = 나 라는 존재였던 것 같다.

 

심부름도 어지간히 시킨다고 욕설을 먹은 이후론 어머니만 없다 싶으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든 심부름 머신이였다.

 

심부름의 이유는 거의 90% 이상이 군것질이였다.

 

, 빵 과자류 음료류 기타 등등

 

심부름을 갔다와서 길어야 5분이나 지났을까 빵을 사와라 빵을 사오고 잠시 후엔 또 콜라를 사와라 그렇게 심부름 갔다와서 쉴까 하면 또 내 이름을 부르는 듣기싫은 목소리는 100% 또 심부름을 요구하는 목소리였다.

 

하루에 최소 10 ~ 회 이상의 심부름을 왔다갔다 했다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나라도 못 믿을 것 같은 이상한 이야기지만 그것이 나에겐 현실이였다.

 

심부름을 저렇게 시키고 군것질을 해대는데 살이 안 찐다는 게 오히려 삐쩍 마른 체구라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제대로 먹는대로 살이 찌는 체질이였다면 북쪽의 모 삼부자 못지않게 살이 올랐을텐데

 

선천적일지 후천적일지는 몰라도 장도 좋은 편이 아니라 뭘 먹으면 화장실 왔다갔다 하면서 뭘 그리 식탐이 있으셨던 것일까? 아버지의 어린시절이야 굳이 예상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전쟁 이후 이 나라가 그야말로 배고픔 + 굶주림의 세월이였으니 그것에 대한 집착이셨던 걸까?

 

술만 빼면 몸에 나쁘다는 건 골라서 좋아하는 성질 담배는 줄담배가 기본 커피는 어찌나 좋아하는지 커피는 그 커피믹스로 2 ~ 3개가 기본이였다.

 

반대로 몸에 좋다는 음식들은 입에 대려 하지도 않았다.

 

순전 좋아하는 것 아니면 밥을 안 먹으려 하는 반찬투정을 부리는 아이와 다를 게 없었다.

 

별명이 김커피였다는 전 프로야구팀 두산 베어스 김진욱 감독도 아버지 수준은 아니였으리라

 

그나마 아버지가 지방에서 일해서 일주일에 한 번 금요일 혹은 토요일에 와서 쉬고 월요일에 나간다는 것이

 

다행이였지 매일 이 생활이였으면 그 스트레스의 결말이 어떻게 되었을까??

 

 

발음도 정확하지 않았는데 알아먹을 수가 없어 네 뭐라고요? 라고 한 마디만 물어도 귀까지 처먹었어? X같은 새끼라는 욕설이 날아왔다.

 

어느 주말이였다.

 

퇴근해서 오셨는데 떡 심부름을 시키셨다 배가 고프시다고 참고로 떡집은 집에서 평균 15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떡집에 가보니 아버지가 먹고 싶으신 떡을 막 기계에서 뽑고 있는 참 잠시 기다렸다가 따끈따끈한 떡을 사다드렸는데 욕을 먹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당연한 의문을 품을지 모른다. “아니 떡 사다달라고 해서 떡 사다드렸고 따끈한 떡 뽑아다가 드렸는데 왜 욕을 먹을 상황이냐?” 라고 물어볼지 모른다.

 

정답을 공개한다면 심부름도 제대로 빨리빨리 못하는 병X같은 새끼라는 게 이유였다.

 

 

뭐가 끊어지는 소리였을까?

 

그 순간 그 뜨끈뜨끈한 떡을 들어 상판에 던져버리려다가 참았던 듯하다.

 

이제는 상황까지 진화(?)하기 시작했다. 진화하니 무슨 포켓몬이나 디지몬도 아니고 ㅠㅠ

내 잘못이 아님에도 욕을 먹는 몇 몇 상황들이 생겼다.

 

 

커피 심부름을 했다.

 

수전증이 있으셨는데 분명 컵을 드리고 나서 아버지가 그걸 엎은 상황

 

욕은 당연히(?) 내가 먹었다. 그거 하나 똑바로 못 주냐는 것이였다.

 

위에서 상황 설명했듯이 컵을 드리고 난 손을 뗀지 한참이 지났는데...

 

슬슬 인내심에도 한계점에 부딪치던 시절 적어도 어머니와 동생 얼굴을 봐서라도 참던 시기였다.

 

만약 내가 편부가정이라 아버지와 단 둘이 사는 사람이였으면 모르긴 몰라도 가출을 했어도 오버 안보태고 100번은 넘게 했을 것이였다. 아니면 계급장 떼고 폐륜이라는 이름의 계급장을 새로 달고 사람의 껍데기만 가진 야수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설사 그거 하나 때문이라도 나는 어머니와 여동생의 존재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막말이지만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계급장 저 한강에 집어던져버리고 힘으로만 했어도 아버지를 누르는 건 일도 아니였을 터였다.

 

내 심장엔 누군가가 날 뜯어말리는 사람이라도 집을 지어 살고 있는지 마음에서는 필사적으로 자제를 요청했고 난 그 요청을 항상 받아들이곤 했다.

 

그 시점만 생각해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두번 했었을까?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릴 생각을 한 적도 횟수를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차라리 미X놈인척 길거리에서 "임금님귀는 당나귀귀!!"식으로 속 시원하게 소리라도 치고 싶었다.

 

그걸로 아버지 본인이 본인의 짜증이나 스트레스를 풀렸을지는 모르겠지만 그에 대한 등가교환의 법칙으로 그

 

시점에서 있었는지도 의심스러운 아버지에 대한 + 감정들은 뜨거운 태양빛 아래에 남극의 얼음이 녹듯 사그러들고만 있었고 자연히 아버지를 보는 시선은 차가워지고만 있는 것도 사실이였다.

 

그리고 현재 사는 아파트로 이사오기 이전 아버지에 대한 모든 감정을 증오로 환전해도 이상하지 않은 사건은 나의 주제넘은 실수로 인해 발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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