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ch] 한밤중의 연회

금산스님 작성일 15.05.12 12:3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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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느 조촐하고 아담한 여관에서 묵었다.

꽤 벽지에 있는 곳이라 찾아오는 사람도 적고, 조용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스탭들도 배려와 준비성이 좋고, 뜰도 아름다울 뿐더러 방도 깨끗했다.

나무랄 것 하나 없는 훌륭한 여관이다.

 


산 속에 있기 때문에 밤 늦게까지 놀 수 있는 곳도 없어,

날이 바뀔 무렵이 되자 여관 안은 무척 적막했다.

 


일찍 잠자리에 든 나는,

새벽 2시 넘어 웬지 모르게 눈을 떴다.

 


다시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아, 문득 적막한 여관 안을 탐험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문을 열자 복도는 불이 꺼져 어두웠고 비상구를 가리키는 초록색 등만이 한적한 복도를 비출 뿐이다.

 


여관치고는 부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에너지 절약 때문인가?] 하고 시덥지 않은 생각을 하며 나는 담력시험 하듯 탐험에 나서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 앞에서 사람이 움직인 것 같아,

나는 그 곳을 바라봤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 아래,

다른 방 문 앞에서 뭔가를 하고 있는 여관 직원 아저씨가 보였다.

철컥철컥하고, 작게 금속음이 들려온다.

 


설마 도둑질을 하러 방에 들어가려는 것인가 싶은 생각에,

나는 숨어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하지만 그는 문을 열려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문에 작은 자물쇠를 걸어 잠그고 있었다.

 


웬지 보면 안 되는 것을 봐 버린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기고 가만히 서 있었다.

 


열쇠를 다 잠근 것인지, 아저씨가 내 쪽으로 걸어온다.

이 앞에 있는 건 내 방이다.

 


저 사람은 나를 방 안에 가둘 작정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온몸이 굳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위험한 것 같으니

절대 발견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숨을 참았다.

 


하지만 내 옆을 지나가는 순간,

아저씨는 너무나도 쉽게 나를 알아채고 말았다.

 


아저씨는 몹시 당황한 얼굴로 손목시계를 보더니

[어쩔 수 없네.. 같이 좀 와주세요!] 라며 나를 억지로 끌고 어딘가에 데려가려 했다.

놀라 도망치려했지만, 곧 다른 직원 몇 사람이 다가와 나를 둘러쌌다.

 


그중 한 사람이 토치를 손에 든 채

[무사히 돌아가고 싶으면 절대 소리를 지르지 마셔야 합니다!] 라고 말했기에,

어쩔 수 없이 나는 잠잠히 끌려갈 수 밖에 없었다.

 


도착한 곳은 연회장이었다.

불이 모두 꺼진 어두운 여관임에도, 그곳만은 모든 불이 전부 켜져 있었다.

 


여관 직원들과 현지 주민 같은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지역 특산 요리 같은 게 잔뜩 놓여 있어서

언제라도 연회가 시작될 수 있게 준비가 끝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대충 빈 자리에 내가 앉게되자,

40대쯤 된 아줌마가 내게 다가왔다.

 

 

[운이 나빴네요. 진정하고 있으면 괜찮을테니, 조금만 힘내요.]

곧이어 무서운 표정을 한 아저씨가 내 옆에 앉더니, 강한 어조로 말했다.

 


[연회가 시작되면 그저 즐겁게 먹고 마시기만 하게. 뭐, 이미 즐거울 터이지만..

 도중에 새로 손님이 오더라도, 그 사람을 신경쓰면 안 되네. 신경이 쓰이면 차라리 보지 마.

 다만 만약 보게 되더라도 부자연스럽게 행동해서는 안 되네. 결코 즐거운 분위기를 깨서는 안 돼.

 한 해에 단 한 번, 반드시 맞아야 하는 상대이니 절대로 무례를 범해서는 안 되는거야.]

이윽고 연회가 시작되었다.

 


아줌마들은 나를 배려하려는 듯 요리도 권하고, 맥주도 따라주었다.

하지만 나는 요리를 젓가락으로 깨작대는 게 고작이었다.

 


다들 표면적으로는 즐거워하고 있는 듯 했지만,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게 분명하게 느껴졌다.

 


괜히 잠에서 깨서 이게 뭔 일인가 하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와중,

갑자기 방 안 온도가 뚝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와 함께 어두운 복도 저 편에서

저벅.. 저벅..하고 발소리가 천천히 가까워온다.

 


다른 사람들은 깨닫지 못한 척 하는 것인지,

지금까지 이상으로 즐거운 듯 떠들고 요리를 먹고 있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면 안 된다는 생각에,

나는 맛있는 요리를 열심히 먹는 척을 했다.

 


곧 발소리가 바뀌었다.

나무로 된 복도에서, 다다미가 깔린 연회장으로 올라온 것이다.

요리만 바라보고 있는 내 시야 한구석에, 2개의 다리가 지나가는 게 언뜻 보였다.

 


검다.. 아니, 그보다는 '어둡다'는 표현이 어울릴 이상한 존재감의 다리였다.

아이나 여자 다리처럼 가늘지만, 굉장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것은 가로로 길게 놓은 테이블을 빙 둘러 걸어,

내 대각선 정면 쪽에 가서 방석 위에 앉았다.

 


나는 접시 위의 요리를 어떻게든 먹으며,

비명을 지를 것 같은 걸 어떻게든 참을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갑자기 답답하고 차가운 공기가 사라졌다.

나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주변에는 방금 전까지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던 사람들이, 안도의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이제 끝났어.] 라고 옆에 있던 아줌마가 말을 건네자, 그제야 내 몸에서 힘이 풀렸다.

 


그 후, 무서운 체험을 공유한 사람끼리의 진정한 연회가 시작되었다.

방금 전까지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던 요리를 맛있게 먹으며, 서로 술을 나눴다.

이상한 체험을 공유했기 때문인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과 이상한 연대감이 들었다.

 


방에 걸려 있던 자물쇠는 날이 밝기 전에 모두 회수한 듯 했고,

아마 숙박객 중에도 자신들이 밤 동안 갇혀 있던 걸 알아차린 이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아침이 밝았고,

나는 방으로 돌아와 못다 잔 잠을 잤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이었다.

방 밖으로 나와보니 아무 일 없는 평범한 보통 여관으로 돌아와 있었다.

 


규정 시간보다 조금 늦게 체크아웃했지만,

여관 사람들은 [너는 이제 우리 동료야. 언제라도 좋으니 다시 찾아와.] 라며 다들 나와 배웅해 줬다.

 


다들 내가 떠나는 것이 아쉬운 듯 진심으로 배웅해 줬고,

나 역시 그들과 헤어지는 게 안타까웠다.

 


이미 그들은 내 친구가 되어 있었다.

그 사건 탓에, 강한 정이 생겨났던 것이다.

 


다만 그렇더라도,

내가 그 여관에 갈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출처 : VK's Epita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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