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담] 꿈

바켄뢰더 작성일 19.06.11 00: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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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가 당시에 직접 기록했던 글들을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2012년 12월 26일

꿈을 꿨다.

상당히 강렬해서 일어난 후에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내가 나인데 또다른 내가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1인칭과 3인칭이 섞여 있는 듯한 좀 희안한 시점이었다.

나는 죽어서 저승에서 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배경은 어둡고 검붉은 색감이었고 내가 앉아 있는 바닥도 검은색으로 온통 어두운색이지만 어디선가 조명이 있어서 사람들이나 사물은 충분히 분간할수 있을정도로 밝은 곳이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죽은 다른 사람들도 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재판은 호명되는 사람이 앞으로 나가 염라대왕 앞에서 한명씩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평가를 받고 그자리에서 판결을 받는데 대강당같은 오픈된 곳이라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도 재판의 진행과정을 다 보고 있는 곳이었다.

누구는 판결후 다른 재판장으로 가거나 누구는 그자리에서 지옥으로 끌려가는 다이내믹한 광경을 구경하는거다.

재판을 보며 기다리는 사람들은 쫄리는 수밖에 없는 그런 분위기.

중죄인들은 자리에 서자 마자 대형스크린에 살아 생전 했던 온갖 행위들이 하이라이트로 뜨기 시작하고 그 사람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도 비쳐준다.

혹여라도 재판중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반성하는 척이나 거짓말을 하려고 하면 주위에 있는 안내원들이

"당신은 육신에서 벗어낫기에 심층심리 영역에 들어온것 입니다. 이곳에서 거짓말을 하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그래서 거짓말이 불가능한 곳이라 진심으로 반성하는 경우에는 어느정도 벌이 경감이 되거나 정상참작도 되는 거 같았다.

그런데 태생부터 나쁜인간은 숨길수가 없다고 그자리에 서자마자 판결이나 변명도 듣기 전에 곧바로 지옥 아래로 슬라이딩 하며 떨어졌다.

으아아아아악 하며 멀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대기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이 저지른 일들을 스크린으로 하일라이트로 시청했다.

잘 기억은 안나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속여서 돈을 벌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했던거 같은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었거나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경우의 사람들은 일단 판결도 없이 지옥익스프레스행.

 

드디어 내 이름이 호명이 되었고 염라대왕 앞에 서게 되었다.

내가 앞에 서자 염라대왕 앞에 내 이름이 붙어있는 서류철이 나타나고 스크린에 영상들이 뜨기 시작하는데 어린시절부터 죽기전까지 하일라이트들만 편집되서 빠르게 보여준다.

영상으로 보니 상당히 나쁘지 않은 인생이었다. 순간순간 오래되어 기억에서 사라진 반가운 친구들도 다시 봤고 추억이 서린 영상이었다.

남한테 피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불가항력적 피해는 제외되는거 같다)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주거나 도와주는 경우가 많았다.

염라대왕이 "너는 네가 가지고 태어난 외모와 달리 물욕이 없어서 선행을 많이 했구나. 너로 인해 목숨을 건진 사람들도 있으니 더 좋을 수는 없다. 의외로다."

나름 무서운 칭찬을 들어 극락행을 확신하며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아니예요. 쟤 진짜 나쁜놈예요. 여자들을 얼마나 많이 후리고 다녔는지 그것 좀 봐주세요. 야 난 너때매 얼마나 힘들었는줄 아냐"

아 쟨 뭐야 하면서 뒤돌아 보니 오래전 여친 이었다. 아니 그냥 평범하게 깨진거였잖아.. 왜 이제와서 그래...

"치정사건은 두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에 사후 재판에서는 다루지 않지만 이런 상황에 이의를 걸 정도라면 너도 어느정도 죄에 무게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지금 이의를 건 여인 당신도 버리지 못한 사심으로 의견을 제시 했기에 너희 둘다 벌을 내리겠다"

옛날 여친은 판결이 떨어지자 마자 "놔 놔. 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쟤가 잘못한건데 난 왜! 놔!" 하면서 끌려갔고

코앞에서 극락행을 놓친 나는 너무 억울해서 말도 못하고 끌려가면서 염라대왕이

"그녀는 네가 사바세계에 남긴 업이다. 너는 그 업을 마무리 짓고 다음 재판 때 다시 보자"

저승사자들에게 두팔을 붙들려 끌려가던 난 어두운 곳으로 던져져 하염없이 지나가다 아주 밝은 빛이 비춰지기 시작했다.

그 곳을 지나자 어느 순간 어떤 거인이 내 발을 잡아 거꾸로 들고 등짝을 때리고 있었고 내가 "으어어" 하며 숨을 쉬자 "건강한 왕자님이 태어났네요" 라며 포대기에 씌어져 탈진해 지쳐 누워있는 어떤 여자에게 안겨졌는데 아까 먼저 끌려갔던 전 여친이었다.

왠지 모를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는 (전여친이라고 해야할지 엄마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는) 묵은 인연의 표정을 보니 어쩐지 이해가 됐다.

'넌 내가 싫었던게 아니라 떨어지기 싫었던거였구나...'

여기까지가 내 꿈의 기억이었다.

 

 

 

 

여기서부터는 현실이야기.

 

2014년 4월 18일

상당히 힘든 시기를 보내는 중이다.

룸메이트와 불화로 새 방을 알아보는 와중에 영주권 문제와 동생 결혼식등이 겹쳐 급하게 한국을 가야 했다.

방도 못구한 상태로 한국에 다녀오면 지낼곳도 없는데 키우던 고양이를 맡길데가 없었다.

절대로 버릴수도 없고 한국에 같이 데려갈수도 없는 상황이라 고양이만이라도 맡아줄 사람을 구하기 위해 급하게 광고를 올렸다.

3시간만에 연락이 왔고 아무조건 없이 맡아준다는 그 여성분이 너무 고마웠다.

겨우겨우 큰 일은 막고 조금은 가벼운 기분으로 한국에 다녀올수 있게 됐다.

 

 

 

2014년 5월25일

고양이를 맡아준 그 여성분과 인연이 되어 사귀게 되었다.

 

 

 

2017년 4월12일

드디어 양가 부모님들과 함께 상견례를 했다.

우리가 외국에 나와 사는 사람들이라 1년에 한번 한국에 가기 때문에 이번이 아니면 결혼식얘기는 내년에 또 만나서 해야 하게 되니 그자리에서 바로 결혼식 이야기까지 꺼냈다.

바빠졌다.

다행히 결혼식은 1년 후에 하기 때문에 준비할 시간이 넉넉했다.

 

 

 

2018년 2월7일

양가부모님들이 서로 따로 우리들의 궁합을 보셨다고 한다. 

그런데 내용이 비슷하게 나왔다고 한다.

아주 아주 긴 인연을 가진 천생연분으로 나왔단다.

궁합을 봐준 보살님들이 공통으로 한 말은

"얘네들은 전생에 모자지간 이었네. "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한적 있었는데 영화 너무 많이 봐서 그렇다고 한다.

근데 그 친구들이 이야기 하는 영화는 2017년에 나왔다.

 

궁합을 봐준 보살님에게 꿈이야기를 했더니

"그거 뒤에 더 있을텐데 네 기억이 거기부터 인가 보네"

라며 덧붙이며 말하기를

"너희가 모자지간이었던 전생에서는 네가 엄마보다 일찍 갔어. 그래서 엄마는 그게 한이 되서 동시대에 태어나서 너랑 만난거야. 아내될 사람이 너한테 엄마처럼 잘해주지? 전생에 엄마 노릇 다 못해서 그런거야. 너두 잘해줘. 만약 네가 한국에 있었어도, 지금 나라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 있었어도 너랑 만났을 인연이야"

라고 하셨다.

 

 

 

2018년 11월 10일

결혼식 당일날까지 맡겨두었던 신랑 예복이 도착하지 않거나 지하주차장의 차량 엘리베이터가 고장나는등

마지막 순간까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우리는 무사히 결혼했다.

그렇게 나는 6년만에 그 꿈의 뜻을 알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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