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ch] 소중히 여기던 1루 미트

금산스님 작성일 23.10.27 11: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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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때,

 

스포츠 소년단 야구부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학년 위 선배인 Y라는 형이 있었다.

 

주전 1루수였지..

 

 

 

 

나는 후보 1루수였기 때문에

 

같이 이야기도 많이 했었다.

 

 

 

 

Y형은 엄마랑 둘이 살고 있었는데,

 

일 때문에 바쁘셔서 시합 때 응원을 오시는 일은 드물었다.

 

 

 

 

집에 차도 없어서

 

등하교 당번에서도 빠져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야구화는 졸업한 선배한테 물려받아 낡아빠진 것이었고,

 

1루 미트는 언제나 야구부 비품을 썼었다.

 

 

 

 

Y형은 키가 커서 1루 수비를 잘했지만,

 

미트가 너덜너덜하다 보니 언제나 다루기 어려워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공을 떨어트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 Y형이 어느 날 깨끗한 새 미트를 들고 나타났다.

 

아마 엄마가 사줬던 거겠지.

 

 

 

 

연습이나 시합이 끝나면 Y형은 언제나 조심스레 흙을 털어내고

 

크림을 바르며, 미트를 소중히 대했다.

 

 

 

여름을 앞두고 곧 중요한 대회가 있을 무렵이었다.

 

연습이 끝난 뒤, Y형이 벤치 아래 미트를 놓고 간 걸 발견했다.

 

 

 

 

Y형이 집으로 돌아간 지는 얼마 지나지 않았던 데다,

 

나랑은 집 가는 방향도 같았다.

 

나는 미트를 들고 Y형을 쫓아갔다.

 

 

 

 

Y형이 스포츠백을 메고 걸어가는 모습이 보이자,

 

달려가서 [미트 놓고 갔어.] 하고 말을 걸었다.

 

 

 

 

Y형은 멍하니 나를 바라보더니,

 

[아, 고마워..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쓸 일이 없지 않을까..] 하고 대답했다.

 

 

 

 

Y형은 미트를 받아 가방에 넣었지만,

 

그 순간 얼굴이 몹시도 새하얗게 질려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다음날 연습 때, 나는 Y형에게

 

[어제, 미트를 더 이상 안 쓸지도 모른다고 했잖아..] 하고 말을 걸었다.

 

 

 

 

하지만 [엥?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전혀 기억이 안 나는데.] 하고

 

평범한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대화는 그렇게 마무리되었고,

 

나도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그런데 Y형은 그날 집에 돌아간 뒤,

 

식중독에 걸려 입원한지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났다.

 

 

 

 

물론 자살일 리 없고,

 

타살이 의심되는 정황도 전혀 없었다.

 

그 후로도 가끔씩 그때 Y형이 말했던 말이 떠오른다.

 

 

 

 

[이제 더 이상 쓸 일이 없지 않을까.]

 

뭐, 그것뿐인 이야기지만..

 

 

 

 

출처 : VK's Epita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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