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임한테 이용당했던 일..

Tat 작성일 12.09.20 15:4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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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까지 두달 좀 안남았을 쯤이었는데 어느 토요일 점호 끝나고 본부소대에 두달 아래 놈이 절 찾아 옵니다.

조금 있다가 소주 한 잔 할건데 같이 먹자는 겁니다.


문제는, 이 놈이 제가 진심으로 싫어하는(맨날 허리 아프다면서 근무 빠지고 작업 빠지고, 어쩌다 작업 나가도 요령피고,

후임병들 괴롭히고 고참은 줄타기 하고.. 등등) 스타일이라 당직사관 몰래 술 먹어가며 전우애를 불태울 이유가 없었던 것.


이 놈도 저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왜이러나 싶어서 일단 거절을 했습니다. 한참 있으니 본부소대에 저랑 친한 애들까지 와서

저보고 오랍니다. 앞으로 언제 술 한잔 같이 하냐면서..(아직 한참 남았는데..)


한 30분을 꼬드김 당하다 결국 그쪽으로 넘어갔더니 분명 식단표에는 있으나 나온 적은 없었던 골뱅이가 그 자리에

초장 곱게 바르고 잘 썰린 오이랑 부둥켜 안고서 기다리고 있더군요. 마셨습니다.


그 소대 1,2,3,4랑 저까지 5명이서 소주 대꼬리 절반 정도 비웠을 때 갑자기 소대 문이 벌컥 열리고 불이 켜지며

'이 XX끼들'이라는 고함과 함께 당직사관이 딱 등장 합니다. '이 XX끼들 미쳤냐? 지금 뭐하는 짓거리냐?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냐...' 등등.. 욕이 절반인 고함이 나오다가 어느 놈들인지 확인한다고 둘러보다 저랑 눈이 

딱 마주칩니다.


언제 고함을 질렀냐는듯 

'야~ 말을 하고 이러던가 해야지. 얘기하면 누가 허락 안해주냐? 애들 자는데 방해되니까 일찍 끝내고 자라'

그러고는 불까지 직접 꺼주고 나갑니다. 그 날 당직사관은 저랑 친한 중사님이었습니다.


평소에 이 사람 자기 당직날이면 한밤중에 라면을 끓이고, 자기 당직부관이랑 당직병은 내버려 두고 

자고 있는 절 깨워서 같이 라면먹자고(자는게 더 좋은데...)하던 걸 본부 후임 놈이 눈여겨 본 겁니다.

그리고 저랑 마시면 걸려도 안전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딱히 같이 마실 이유 없는 저를 끼워넣고 계획대로 성공...


술맛은 확 떨어졌지만 그냥 기분이 좀 그래서 조금 더 마시고 돌아가는 길에 행정반 들려서 당직사관한테 사과 드리고

소대가서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보니 점호까지 끝나고 다들 활동복 입고 돌아다니는 시간..

놀래서 애들한테 왜 안 깨웠냐고 점호 어쨌냐니.. 당직사관이 냅두랬다고...


기분이 참 묘하더군요,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살짝 화도 나면서 허탈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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