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밤 잠 못 이룬 사람의 푸념

음크 작성일 12.12.20 17:44:14
댓글 8조회 645추천 2

어제 환호하신 분도 있겠지만 솔직히 전 절망했기에 저와 같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써봤어요 ....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어서.....

 

정적만이 자리잡은 새벽, 여독을 머금은 눈의 통증을 안고 깨어났다. 역시나 당연하게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절망은 안식을 허용치 않았고 나 또한 그 절망을 안을 수 없었기에... 홀로임이 허락된 이 여명의 시간에 상념은 나의 목덜미를 끌어 챈다.

그건 도래했다. 부정하고 밀어 낼 지언정 맞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 인데.....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제 질문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만감의 어지러움 속에 끙끙대다 어느새 여지없이 햇빛이 내 창에 세어 들고 잠들어 있었던 모든 것에 활기를 불러 들였다. 시끄럽게 울려대는 휴대전화의 알람과 그에 응하는 이의 뒤척임, 째까닥 돌아가는 가스렌지와 구수한 된장국 향이 이 시간을 채운다. 어제와 같은 오늘, 또 내일과 같은 오늘의 의식이 이리도 일사불란 함이다.

공유치 못하는 내 심상이 못내 섭섭 하지만 감히 나의 탄식을 그것들에게 내 보일 수 없었다. 그 충실함에 나의 우울이 해를 끼칠 수는 없는 노릇 이니까. 하여 나는 못내 나를 숨기고 그 모두의 장단에 맞춘다. 그리고 스며들어 탄식을 묻어 간다....

 

난 일상을 살아간다. 눈앞의 부딪침이 지배하는 곳에서 살아가는 것 이다. 저 위에 절망이 나를 통치 하더라도 눈 앞의 이것에 끙끙대는 것이 아직의 나인 것 이다. 나의 진동은 그들에게 다을 수 없는 한정의 내가 가진 제한된 공간 속에 웅어거림일 뿐이다. 그러기에 닿지 않는 분노가 내안에 갇혀 이곳을 방해함은 옳지 못한 것. 나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공허한 울림으로 스스로 고통받지 말고 닿을 수 있는 곳에 충실하고 마땅히 분출하자.울화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 이다. 충실하고 무던하게 이 화를 관리 해 나간다. 이건 피하거나 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가열차게 맞이하고 강하게 행사하기 위한 스스로를 관리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고통은 잊고 인식은 각인 시킨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또한 이 태세는 단순히 위안을 넘어 이 대응 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항 할 하나의 무기 이기도 하다. 소모적이 아닌 발전적인 행동은 나의 한계를 키워 나갈 것 이고 이는 곧 나의 울림이 더욱 커질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이 고통의 근원적 해결에 더 가까이 다가 갈 것 이다. 고결한 가치가 나열 되더라도 무자비한 힘 앞에 여지없이 부셔졌다. 그렇다면 힘을 가져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이 불합리의 구조 속에 힘들어도 한탄 하고 있기 보다는 그 속에서라도 이뤄가야 함이 마땅하다. 그에 이 자세는 톡톡히 제힘을 발휘 할 것 이다.

 

어제의 좌절은 나와는 떨어져 있다고 느끼던 제 3의 박탈감에서 온 전혀 새로운 종류의 아픔 이었다. 이 오묘한 기억은 전에 없던 아픔 이었지만 아픔이 사람을 키운다고 했던가.... 무엇보다 나의 꿈이 자랐다.

 

너무나 아플 수 있구나 . 이 인식은 그 멀어 보였던 것을 직면하게 했다.하여 진실로 그를 위할 수 있게 만들었다.

나는 비로소 사회속의 나를 바라 볼 수 있게 된 것.

 

이 아픔의 기억, 받아 들인다. 그리고 초연하게 또 오롯이 나의 길을 걸어 가겠다. 오늘을 즈려 밟으며......

 

 

혹시라도 저처럼 상심이 크신 분들께 위안을 드리고 또 저 또한 받고 싶어서 일기에 쓴 이야기를 올려봤어요..힘든 오늘이네요

정치·경제·사회 인기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