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어머님의 울부짖음..

아랑공자 작성일 14.04.23 23: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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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1주일, 지지부진한 정부의 수색작업 은 "남 부럽지 않게 키웠다"고 자부하던 한 엄마를 "내 새끼도 지키지 못하는 부모"라며 자책하게 바 꿔놓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모(50·여) 씨는 백일기도 를 드리고 있었다. 미국에서 의사 공부를 하는 큰 딸, 판사가 꿈이라며 전교 1등을 놓친 적 없는 작 은딸을 위한 기도였다.

"1주일 전만 해도 내 자식들에게 유능한 부모라고 생각했어요. 발버둥 쳐서 이렇게 왔는데, 정말 남 부럽지 않게 내 딸 인재로 만들어놨는데…".

지금 김 씨는 진도항에 있다. 단원고 2학년인 작은 딸이 저 바다 깊이 가라앉은 세월호에 있기 때문이 다. 세월호 침몰 후 사흘 동안 김 씨는 먹지도 자지 도 못한 채 울부짖었다.

견디다 못한 남편이 쓰러졌다. 말을 더듬고 눈이 풀린 채 온몸이 경직된 남편 앞에서 김 씨는 눈물 조차 흘릴 수 없다.

"남편 때문에 눈물을 참다 더는 참으면 안 될 것 같 아서 숨어서 수건으로 입을 막고 울어요. 화장실에 서 울고 눈을 닦는데 눈을 뜨자마자 '아직도 우리 딸이 저기 있네'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확 쏟아져 요.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마음이 추슬러지 지 않아요".

아무리 독한 마음을 먹어도 딸 얘기를 할 때마다 김 씨는 몸을 가누기 힘들어했다.

옷 한 번 사달라고 한 적 없던 딸이다. 용돈을 달라 할 나이에 공부 열심히 해서 받아온 장학금을 엄마 보약 먹으라고 내밀던 딸이다.

"딸이 TV 틀어놓고 스마트폰 만지면 제가 '전기 먹 는 하마'라고 놀렸거든요. 그때마다 '엄마 미안 해'라고 말했는데… 내가 이제 집에 돌아가면, 며 칠 전에 봤던 그 모습을 이제 볼 수 없잖아요".

"내 친척이든 친구든 주변에 멀쩡하게 자식 살아있 는 친구들을 만나지 못할 것 같아요. 솔직한 심정 으로 누구라도 날 건드리는 사람 있으면 칼 가지고 찔러 죽이고 싶어요".

그렇게 진도항과 체육관을 오가며 보낸 1주일. 김 씨의 결론은 "나는 내 새끼도 지키지 못하는 못난 부모"였다.

"내가 참 못난 부모구나, 자식을 죽인 부모구나. 이 나라에서는 나 정도 부모여서는 안 돼요. 대한민국 에서 내 자식 지키려면 최소한 해양수산부 장관이 나 국회의원 정도는 돼야 해요. 이 사회는 나 같은 사람은 자식을 죽일 수밖에 없는 사회에요".

"저 동정받을 사람 아니에요. 나 60평짜리 아파트 살아요. 대학교에서 영문학 전공했고, 입시학원 원 장이고 시의원 친구도 있어요. 이 사회에서 어디 내놔도 창피할 사람 아니라고요. 그런데 이제는 내 가 살아있는 것 자체가 저주스러워요. 우리 딸 나 오길 기다리는 한 시간 한 시간이 피를 말려요".

김 씨는 이제 더는 정부도 믿을 수 없었다.

"능력이 없어서 못 하면, 한 명이라도 구하겠다고 애쓰면 저 사람들도 귀한 목숨인데 감사하죠. 그런 데 구조 매뉴얼도, 장비도, 전문가도 없다면서 아 무것도 안 했어요. '헬리콥터 10대를 띄웠다'고 하 는데 믿을 수 없어서 가족 대표가 가보면 1대도 없 었어요".

"박근혜 대통령이 와서 잠수부 500명을 투입했네 해도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내 자식 을 놓을 수가 없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다리면 또 거짓말이에요. 그렇게 날이 지나서 애들 다 죽 었어요".

꼼짝도 않는 정부에 던진 달걀이 바위를 더럽히지 도 못하는 심정. 김 씨는 대한민국을 버리겠다고 말했다.

"다 정리하고 떠날 거에요. 나 대한민국 국민 아닙 니다. 이 나라가 내 자식을 버렸기 때문에 나도 내 나라를 버립니다".

못 믿기는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남들 눈에는 뻔한 거짓말이라도 확인받고 싶은 부모 마음을 미개하 다는 듯 말하는 사람들이 답답했다.

"부모들이 오보에 놀아난다는 식으로 보도해요. 정 부는 정말 잘하는데 부모들이 조바심이 난다고요. 290명 넘게 갇혀있었는데 한 명도 못 구하면 이상 하다고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구조하겠다는 의지도 없이 구조한다고 발표한 걸 그대로 받아서 방송에서는 열심히 구조하고 있다고 거짓보도 했 어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탓하던 김 씨는 '이 나라에 서는 언제든지 당신도 나처럼 자식을 잃을 수 있 다'고 힘주어 말했다.

"제가 30대 때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어요. 사연 들 으면서 많이 울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뒤로 제 가 한 일이 없는 거에요. 10년마다 사고가 나는 나 라에서 제도를 바꾸려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아서 제가 똑같은 일을 겪었어요. 지금 SNS하면서 울고 만 있는 젊은 사람들, 10년 뒤에 부모 되면 저처럼 돼요. 봉사하든 데모하든 뭐든 해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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