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PC통신

뇌를분실함 작성일 11.11.07 23: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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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생버튼을 눌러보면, 추억의 사운드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PC통신을 사용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기억할, 바로 모뎀 접속음입니다. 얼핏 들으면 귀가 찢어질 듯한 소음으로 들리지만, 이제는 소리를 듣기만 해도 너무나 그리운 마음에 저절로 입가에 미소를 띠게 됩니다.

  늦은 밤, 부모님 몰래 PC통신에 접속하려고 해도 이 요란스러운 모뎀 접속음 때문에 걸려서 혼났던 기억, 회선 폭주 상태로 계속 통화중이다가 이 접속음이 들려올 때의 희열.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추억이 한 가지씩 마구 튀어나오는 것만 같습니다.

  여러분도 파란색 화면에 하얀 텍스트로 가득한 PC통신을 사용했던 기억이 있으신가요? 상당히 많은 분들이 PC통신을 사용하셨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오랜만에 잠시 PC통신의 추억에 빠져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여러분, 함께 하실 거죠?



  | PC통신의 필수품, 모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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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C통신을 하려면 모뎀이 필수적으로 필요합니다. 모뎀(MODEM)은 'Modulator/Demodulator'의 약자로 변복조 장치인데, 좀 더 쉽게 이야기해 보자면 전화선을 통해 디지털 신호를 보내고 받는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사용하는 초고속 통신도 랜 방식 서비스를 제외한 xDSL, 케이블 방식 서비스에서도 당연히 모뎀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겉모습은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지만….)

  그 당시에는 위 사진처럼 모뎀을 따로 구입하여 컴퓨터 슬롯에 꽂아 사용하는 내장형 모뎀 형태가 많았습니다. 신호 변조 방식 발전에 따라 300bps부터 56Kbps까지 새로운 모뎀이 지속적으로 발표되었는데, 가장 대중화되었던 것으로 2,400bps, 9,600bps, 14,400bps, 19,600bps, 28,800bps, 36,600bps 그리고 56Kbps 모뎀을 언급할 수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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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C통신과 함께 절정과 황혼기를 보낸 56K 모뎀! ]


  개인적으로는 중학생 시절, 소문으로만 듣던 PC통신이란 것을 해보고 싶어서 무작정 모뎀과 전화선을 사서 낑낑대며 설치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집의 전화선을 모뎀으로 끌어와 연결하고, 모뎀과 전화기를 연결하고는 드디어 PC통신의 세계로 풍덩!

  그 당시에는 2,400bps 모뎀을 대부분 사용하였는데, 꽤 고가였지만 좀 더 빠르게 쓰고 싶은 마음에 9,600bps 모뎀을 선택하여 'PC통신 라이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2,400bps 모뎀이었다는 가슴 아픈 추억이….)



  | 내 이름은 '단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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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의 '단말기' ] (사진출처 : 추억거리 갤러리 '고전매냐'님 사진)


  눈을 떠야 별을 볼 수 있는 법!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컴퓨터가 없이는 모뎀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컴퓨터의 보급률이 지금처럼 높은 편이 아니었고, 컴퓨터 가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PC통신을 할 수 없었을까요? 아닙니다. 바로 '단말기'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컴퓨터와 모뎀이 없어도 이 단말기에 전화선만 연결하면 PC통신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컴퓨터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하여 PC통신 이외에 다른 프로그램도 실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20~30만 원가량의 돈을 주고 구입하거나, 임대를 받아서 사용하게 되는데 한 달 임대료가 만 원 이하였습니다. 물론 정보 사용료가 별도로 붙기는 하지만 큰 부담없이 가볍게 PC통신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에게 꽤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단말기는 초창기 PC통신 시절에서는 많이 사용되었지만, 컴퓨터의 보급과 PC통신의 발전이 가속화되면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사용자 수가 빠르게 줄어들었습니다.



  | 공짜? 어림도 없지!


  정액제로 초고속 인터넷을 사용하고 컴퓨터를 켜기만 하면 자동으로 인터넷에 연결되어 전 세계 어느 사이트로건 이동할 수 있는 요즘. 예전을 생각하면 정말 꿈만 같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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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인터넷의 시작도 PC통신이 함께!]
(사진출처 : 추억거리 갤러리 '달비지'님 사진)

 

  PC통신을 사용하던 시절에는 그야말로 공짜가 없었습니다. 연결하는 그 순간부터 전화세가 부과되고, PC통신을 이용하려면 사용료도 내야 했습니다.

  정액제 요금을 받는 곳도 있고, 종량제 요금을 받는 곳도 있었지만, 보통 PC통신 사용료로 만 원내외 정도의 금액을 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전화세였습니다. 한 번 접속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사용하다가 월말에 엄청난 전화요금 고지서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요금 고지서를 붙잡고 뒤로 넘어가는 부모님이 참 많았던 때였습니다. ^^)

  글을 하나 쓰려고 해도, 미리 문서편집기에서 글을 작성하고 접속하자마자 빠르게 글을 올리고, 조금 긴 글은 갈무리('텍스트 캡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하여, 접속을 끊은 후 천천히 읽으며 통신비를 절약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PC통신의 인기가 점점 많아지자, PC통신을 즐기는 사람에게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바로 '야간 정액제'의 탄생!  비록 야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였지만, 일정 금액만 내면 전화요금 고지서를 받는 것을 더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물론 야간 정액제가 생긴 이후, 밤 시간에는 접속하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북새통을 이루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말입니다.

  PC통신에 접속하려면 01410, 01411 같은 전화번호에 연결하여야 합니다. 그 번호 외에 통신사가 따로 제공하는 접속 전화번호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014xx 전화번호로 접속하고는 했습니다. 왜냐하면, 014xx로 접속을 해야지만 야간 정액제 혜택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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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411.net 메인 화면. 그 옛날의 014xx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014xx망은 일반 전화회선보다 저렴한 통신요금체계를 따르는 데이터통신용 전화회선입니다. PC통신마다 앞자리인 014는 모두 같고 뒤의 두 개 숫자가 다른 형태인데, 예를 들면 하이텔에 접속하려면 01410에, 천리안은 01420, 유니텔은 01433으로 연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통화대기'라는 것도 기억나시나요? PC통신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대체 너희 집은 전화만 걸면 통화중이야!"라는 불만 섞인 소리를 자주 들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중요한 전화인데, 너 때문에 못 받았다!"라는 부모님의 태클(!)까지 함께 말입니다. 통화대기는 바로 부모님의 무기였습니다. '통대'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했는데, 전화국에 서비스를 신청하면 PC통신을 하다가 전화가 걸려오면 자동으로 접속이 끊어지고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통화대기 덕분에 주변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일은 거의 사라졌지만, PC통신 사용자로서는 즐겁게 채팅을 하거나 자료를 다운받는 등 항상 중요한 순간에 접속이 끊어져 버리는 좌절감(?)을 맛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 이야기, 그리고 새롬 데이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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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5.0. 이제 한글날은 국경일이 되었죠. 공휴일은 아니지만…. ㅠ_ㅠ ]
(사진출처 : 추억거리 갤러리 'ugha'님 사진) 


  PC통신에 접속하려면, 바로 위 사진의 '이야기' 같은 VT 접속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합니다. 이야기는 쉽게 PC통신을 즐길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편의기능을 담은 프로그램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at x3 &c1~'으로 시작하는 저 복잡한 문자는 무엇일까요?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자동으로 나오는데, 바로 모뎀을 초기화하는 명령어입니다. 초기화한 후, 이제 ATDT 명령어로 전화를 걸어 PC통신에 접속할 수 있는데, 요즘은 없지만 예전 다이얼을 돌리는 기계식 전화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ATDP 명령어로 접속해야 했습니다. 
(모뎀을 미국의 AT&T사에서 처음 만들었던 관계로 AT로 시작하는 명령어가 참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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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4.3. Ketel, PC Serve의 전화번호도 보이는군요. 오오~ ]
(사진출처 : 추억거리 갤러리 'sami*^^*'님 사진) 


  여기서 돌발퀴즈 하나! 만약 접속하기 전에 'ATM0'이나 'ATL0' 명령어를 먼저 입력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네, 맞습니다. 바로 모뎀의 그 요란한 접속음을 안 들리게 하거나 아주 작게 들을 수 있습니다. 왠지 '이런 걸 알았다면 부모님께 걸리지 않고도 PC통신을 즐길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워하는 분들의 표정이 보이는 듯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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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롬 데이타맨. 이야기의 바통을 받아 고고싱! ]
(사진출처 : 추억거리 갤러리 'f'님 사진) 


  외산 VT 접속 프로그램의 접근을 막으며, 오랫동안 PC통신의 친구로 활약한 '이야기'. 그리고 뒤늦게 나왔지만 무척 많은 인기를 얻었던 '새롬 데이타맨'까지 합세하면서, PC통신은 날마다 가입자 수를 늘려가며 승승장구하였습니다.


  | 반가워~!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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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도 정말 추억이 많으시군효! 우왕ㅋ굳ㅋ! ]


  자료를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재미있는 추억이 많이 생각나는 PC통신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라도 더 많은 추억을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에 2부로 나누기로 하였습니다.

  마우스로 웹페이지를 클릭하며 웹서핑을 하는 것과 비교하면, PC통신은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대체 어떤 매력 때문에 컴퓨터 앞에 앉아 하얗게 밤을 지새우도록 만들었을까요?

  PC통신의 추억여행은 2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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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C통신이 활성화되기 전에는 문서작업을 하거나 게임을 하는 등 그저 프로그램을 실행시키고 그것을 즐기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컴퓨터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재빠르게 움직이기만 하는 차가운 기계 덩어리일 뿐, 새로운 프로그램이 계속 공급되지 않으면 조금씩 질린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PC통신은 다른 수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고, 수많은 정보가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지금의 인터넷과 비교하면 골방 수준조차 안 되는 작은 공간이었지만,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특별한 곳이었기에 너나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 PC통신. Start !


  우리나라 PC통신의 양대 산맥이라고 말할 수 있는 하이텔과 천리안. 이 둘 중에서 어떤 것이 먼저 생겼을까요? 전신의 전신을 계속 따라 올라가면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일단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천리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88년 5월에 데이콤 PC-VAN이 나타나며 최초의 PC통신이라는 화려한 꼬리표를 달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1991년에 PC-Serve란 이름으로 바뀌었다가 결국 천리안으로 옷을 갈아입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이텔은 1989년 11월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케텔(KETEL) 서비스와 함께 시작되었고, 코텔을 거쳐 하이텔이란 이름으로 변신하면서 우리나라 PC통신의 강자로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모뎀조차도 10~20만 원씩 하는 고가 장비였고, PC통신 가입절차도 방문을 하거나 팩스를 이용해야만 했을 정도로 상당히 귀찮았지만, 그럼에도 가입자는 지속적으로 늘어갔습니다.



  | 하이텔 vs 천리안, 그리고 나우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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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텔. 기억 하시죠? ] (사진출처 : 추억거리 갤러리 'f'님 사진)


  PC통신을 썼던 기억이 있는 분들. 여러분은 하이텔과 천리안 중 어떤 것을 쓰셨나요? 저는 PC통신을 천리안으로 시작한 기억이 있습니다만, PC통신의 라이벌이라고 해도 될 만큼 두 서비스 모두 상당히 많은 가입자를 보유했고, 다양한 서비스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PC통신 특유의 명령어인 'go'를 이용해서 서비스를 옮겨 다니는(go plaza, go pds 등) 등 특정 명령어를 사용하여 즐겨야 하기 때문에 처음 접하는 사람은 조금 어리둥절하기도 했지만, 조금만 돌아다녀 보면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천리안과 하이텔은 명령어도 조금씩 달랐습니다.) 자료실에는 수많은 자료가 즐비해 있고, 게시판에는 여러 정보가 가득한 별천지를 경험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위의 하이텔과 천리안 중에서 어떤 것을 썼느냐는 질문에 대답을 못 한 분도 계실 겁니다. 아마 그분들의 대답은 나우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이텔과 천리안보다는 조금 늦게 시작한 후발주자지만, 강력한(!) 자료실과 타 통신보다 다소 저렴한 정액요금, 활발한 커뮤니티 등 여러 가지 장점으로 상당히 빠른 속도로 가입자가 늘어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이텔, 천리안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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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PC통신의 강자! 나우누리 ]
(사진출처 : 추억거리 갤러리 '한땐나우폐인'님 사진)


  나우누리가 처음 등장했을 때, 한동안 무료로 서비스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많은 사람이 무료 서비스를 이용하다가 나우누리의 매력에 빠져 유료로 자연스럽게 전환하였습니다. 자료가 첨부된 메일을 다수에게 한 번에 보낼 수 있어서, 특정 메일링 리스트에 가입하면 날마다 수십 개의 게임이 메일로 날아오기도 하는 등 상당히 독특한 매력을 자랑했습니다. 나중에는 나우누리의 인지도가 하이텔과 천리안을 넘어서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 사설 BBS

  하지만, 이렇게 메이저 통신 서비스만 즐겼던 것은 아닙니다. 그 당시에는 사설 BBS도 상당히 유행했습니다. 사설 BBS는 개인이 운영하는 PC통신 서비스라고 생각하면 쉬운데, '호롱불' 같은 호스트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자신의 컴퓨터에 다른 사람이 접속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일부 사설 BBS는 여러 운영자가 뭉쳐 거의 메이저 통신 서비스를 방불케 할 정도로 다양한 정보와 자료를 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다 보니 24시간 아무 때나 접속할 수 없고 일정 시간에만 접속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메이저 PC통신에서는 볼 수 없는 각종 불법 상용 자료들이 가득하다는 것은 상당한 유혹이었고, 게다가 무료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사설 BBS의 인기는 높아만 갔습니다.



  | PC통신의 최고 인기 서비스

  PC통신은 왜 그렇게 많은 인기를 얻을 수 있었을까요? 처음에도 언급했지만 그 인기의 비결은 바로 혼자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만나서 소통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PC통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채팅'입니다.

  채팅은 PC통신 중에서 최고 인기 서비스였습니다. 조금 늦은 시간에 접속하면 모든 채팅방에 사람이 꽉 차 있을 정도로 항상 북적거렸습니다. 종량제였던 천리안에서 채팅과 일부 서비스만을 정액제로 즐길 수 있도록 'POP 아이디'라는 것을 따로 만들어 주었을 정도로 채팅에 대한 관심은 엄청났습니다.

  직딩방, 지역방 등 다양한 성격의 채팅방에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특히 머리를 싸매고 일부러 영화공부를 해야 했던 '영퀴방'(영화에 관련된 퀴즈를 서로 내고 맞추는 채팅방), 그리고 '타자방'같이 독특한 성격의 채팅방에서 매일 밤을 하얗게 지새우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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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팅. 그러나 이제는…. ]
(사진출처 : 추억거리 갤러리 '^_^_^'님 사진)


  그리고 '동호회'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끼리 모인다는 것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는데, 정모(정기모임), 정팅(정기채팅) 같은 문화를 자리 잡게 하였습니다.

  PC통신 환경이 텍스트 기반이다 보니 동호회 메뉴와 대문을 꾸미는 데에 '안시'라는 것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안시'로 여러 가지 글자나 배경 등의 색깔을 바꾸는 등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HTML 문서 코드를 짜듯 조금 복잡한 면이 있어서 일부 능력자(!)들만 안시를 능수능란하게 다뤘고, 그런 사람은 동호회 운영진에게 인기가 상당히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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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드게임 '퇴마요새' ] (사진출처 : 고전게임 갤러리 '좆방새'님 사진)
 

  '머드게임'을 기억하시나요? 머드(MUD)게임도 일부 사용자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었는데, 'Multiple User Dimension'의 약자로 쉽게 설명하자면 '리니지' 같은 현재의 온라인 게임을 떠올리면 됩니다. 다만, 텍스트로 진행된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게임을 진행하려면 이동, 공격 등의 다양한 명령을-머드게임을 하면서 타자실력이 급상승한 사람이 많았을 정도로-직접 타이핑해야 했고, 게임 상황을 텍스트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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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투가 시작되면 정신이 없습니다! ] (사진출처 : 고전게임 갤러리 '십종가리'님 사진)
 

  단군의 땅, 쥬라기 공원, 퇴마요새 등 다양한 머드게임이 인기를 얻었지만, 문제는 요금이 꽤 비싼 편이었습니다. 한 번 게임을 시작하면 끝낼 줄을 모르는 중독성 있는 재미를 주었지만, 어느 순간 수십만 원, 심지어는 백만 원이 넘는 요금이 찍힌 고지서를 받기도 했습니다. 머드게임 하다가 부모님에게 매를 맞은 경험이 있는 분이 아마도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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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 장터 게시판 역시 PC통신의 꽃 ]
(사진출처 : 추억거리 갤러리 '매주맛우유'님 사진)
 

 그 밖에도 'PC통신의 핵'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자료실, 그리고 각종 게시판 등 다양한 서비스들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 새로운 PC통신의 탄생
 

 PC통신이 크게 성장함에 따라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외에도 메이저급 PC통신이 생겨납니다. 그 선봉에 있는 것이 바로 유니텔입니다. 유니텔은 다른 서비스처럼 텍스트 기반의 VT 모드로도 접속할 수 있었지만, GUI를 갖춘 전용 브라우저를 통해 접속할 수 있다는 점이 큰 특징이었습니다. 어려운 명령어 대신 마우스 클릭만으로 쉽게 PC통신을 즐길 수 있다는 것에서 초보 사용자와 여성 사용자에게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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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선씨를 유니텔 모델로 기용하기도 했습니다. ]
(사진출처 : 추억거리 갤러리 '방법대장'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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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리안도 전용 브라우저를! ]
(사진출처 : 추억거리 갤러리 '^^'님 사진) 

 

  하지만, 무엇보다도 전용 브라우저를 사용하면 멀티 태스킹이 가능하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었습니다. VT 모드에서는 자료를 다운받으려면 다운이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Z모뎀, Kermit 등의 프로토콜을 설정해서 다운받는 것. 기억나시나요? ^^;) 하지만 유니텔 전용 브라우저에서는 다운받으면서 다른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왼쪽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듯 천리안도 전용 브라우저를 만들고, 하이텔과 나우누리 모두 전용 브라우저를 만들었을 만큼, 전용 브라우저를 사용하는 유니텔은 다른 PC통신에도 많은 영향을 주게 되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PC통신은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을 썼는데, 가장 마지막 남게 된 곳이 유니텔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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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츠고, Let's Go~! ]
(사진출처 : 추억거리 갤러리 '이니셜S'님 사진)


  그리고 유니텔의 뒤를 이어 넷츠고와 채널아이 같은 또 다른 PC통신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그야말로 PC통신 천하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 안녕. PC통신! 이제는 기억 속으로….
 

  하지만,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걸쳐 인터넷이 점점 각광받기 시작합니다. PC통신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국내외의 방대한 자료를 자랑하는 인터넷은 더욱 넓은 세상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었고, 사람들은 조금씩 PC통신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빠른 속도로 PC통신 인구가 줄어들었고, 채널아이를 시작으로 하나둘씩 문을 닫는 PC통신 서비스가 생겨났습니다.

  각 PC통신 서비스는 웹으로의 변신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PC통신 환경을 웹사이트로 조금씩 옮기게 되었고, 어느 순간 굳이 돈을 내면서까지 PC통신을 즐길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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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즐거웠어~ 하이텔 ]

  결국, 안타깝긴 하지만 하나둘씩 서비스를 중단하였고, 지금은 이렇게 화면사진이나 보며 추억을 더듬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다운받는데 하루 종일 걸리던 자료, 시간가는 줄 모르고 봤던 게시판을 가득 채운 글. 이런 것들이 그저 추억 속으로만 남게 되는 아쉬움 가득한 결말을 맞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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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울거야~ 천리안 ] (사진출처 : 고전게임 갤러리 '구르미'님 사진)


  사실 요즘은 예전에 PC통신에서 했던 모든 것을 쉽게 즐길 수 있습니다. 화상채팅, 수 천개의 카페, 웹하드 자료실, 화려한 그래픽의 온라인 게임 등 PC통신은 명함도 못 내밀 굉장한 서비스가 가득합니다. 하지만, PC통신을 하던 그때의 따뜻한 마음과는 무척 멀어져있지 않나 싶습니다. 채팅방에서 모르는 사람과 곰살맞게 안부를 물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아주 어렵게 찾아낸 자료에 희열을 느끼는 등 그때의 그 감성이 지금은 무척 매말라 있는 듯하여 상당히 아쉽습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PC통신의 추억을 가슴 한 켠에 간직해야만 합니다. 앞으로 PC통신이 부활하는 일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그때의 즐거움과 순수함만은 항상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추억의 PC통신, 그리운 PC통신…. 갑자기 오늘따라 친구에게 메신저로 '방가방가'라는 촌스런(?) 인사를 건네보고 싶어집니다.


  PC통신은 여러분의 기억 속에서 어떤 추억으로 남아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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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모뎀으로 도스게임같은거 받아서 하고 게임잡지 부록씨디를 친구랑 돈모아서사고 컴퓨터 대리점에 돈주고

구워달라거나 씨디라이터기(당시금값임)있는 친구한데 부탁해서 구운게임을 기억이난다.

어떤 썅놈으새끼가 학교앞에서 이야기 씨디를 나눠줘서 그거가지고 pc통신 처음해봤다.

결국 에뮬&도스게임에서 온라인게임으로 넘어갔는데 내가 pc통신& 모뎀  끝물이라 집에서 온라인게임하다가

20만원 나와서 아버지한데 쳐맞고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니까. 얼마 안되서 하나로 인터넷 달아준 기억난다.

또 당시 초등학교 6학년 선생님이 새로온 신입 남선생이였는데 상당히 컴퓨터를 잘해서 학생마다 디카로 사진찍어

고(디카도 금값, 찍어줬을당시 깜짝놀람) 자기 홈페이지만들어서 그곳에 사진 전부 등록해두더라 그거보고 감동

먹어서 나모웹에디터 4.0으로 홈페이지를 만들엇는데 컴내꺼 계정에 올렸었음 그리고 그선생이 돈을 모으기 시작

하더니 DDR을 구입 학생들을위해 참잘햇어요 같은 칭찬 3번 모으면

 

하게해줬는데 과자에서나온 족보를 외워서 하는 애들 많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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