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의 핵무기 거래상 A.Q. Khan

hbogi 작성일 15.04.20 00:3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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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전세계 외교계를 놀라게 한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란과 미국의 핵협상이 12년만에 잠정 타결된 것입니다. 이란은 2002년에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의 존재가 폭로되면서 미국으로부터 심각한 경제제재를 받아왔었는데요, 북한,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불리기 까지 하면서 핵무기 개발을 지속해 왔습니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필사적으로 저지하려는 미국의 경제제재로 인해 이란은 그동안 원유수출이 중단되고 실업률이 30%를 넘는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 왔습니다. 이번 핵협상 타결을 통해 이란은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고 세계 원유매장량 4위의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세계경제에 복귀하는 실익을 얻게 되었고, 미국은 중동의 큰 잠재적 위협 하나를 제거하는 이익을 얻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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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에 살고있는 우리에게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했다는 소식은 솔직히 이민호와 수지의 열애설에 비하면 참 먼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질수 있습니다. 특히 북한의 핵실험 소식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핵개발에 관련된 소식이 그닥 특별한 소식은 아닐 수 있지요. 몇개 나라가 핵무기를 갖는다고 해서 당장 핵전쟁이 나는것도 아니고, 핵무기를 갖고 있는 나라가 몇개 되지도 않으니 그들끼리 서로 잘 견제하고 협력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의문도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 나와서 말인데, 핵무기를 갖고 있는 나라가 전세계에 몇개나 될까요?미국과 러시아야 당연히 2차대전때 부터 갖고 있을테고 중국과 영국정도 갖고 있으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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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공식적으로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생각보다 많은 8개 나라입니다. 미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중국, 인도, 파키스탄, 그리고 북한 입니다. 이 나라들은 핵무기를 소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의 유효성도 입증한 나라들이죠. 북한이 그 중 하나라니 놀랍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약 80개의 핵무기를 소유한 것으로 확인되지만, 이스라엘 스스로 핵무기 소유 여부를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여기 8개 나라 외에도 상당히 많은 나라들이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비밀리에 추진해왔거나 실제 핵무기 보유까지 추정된다는 것입니다. 이번 핵협상 타결의 주인공인 이란을 포함하여, 사우디 아라비아, 이라크, 리비아, 아랍에미레이트 등의 나라들이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비밀리 진행한 것으로 추정되었고, 이중 일부는 프로그램을 중단하였지만 진행된 수준이 실제 핵무기 완성단계까지 갔었던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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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 2003년에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핵무기 개발을 중단단 리비야의 경우, 핵무기 개발진행 수준이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밝혀져서 세상을 경악시킨바 있습니다. 협상 이후 파견된 IAEA의 조사단 보고에 의하면, 리비야는 최첨단 수준의 핵연료 농축 설비를 갖추고 있었고 심지어 핵탄두를 탑재할 미사일 설계 도면까지 확보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미국, 러시아, 프랑스와 같은 나라들이 수십년간 연구와 실패를 통해 개발한 핵무기를 어떻게 핸드폰 하나 개발할 기술이 없는 파키스탄, 북한, 리비야와 같은 나라들이 비밀리에 만들어낼 수 있었던걸 까요?   5개 국가들이 철저히 지켜온 핵무기 개발기술을 어떻게 지금은 십여개 국가들이 보유하고서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걸까요? 이 의문에 답을 갖고 있는 남자가 있습니다. 바로 파키스튼 핵무기의 아버지이자 암흑의 핵무기 거래자로 불리우는 압둘 카디르 칸(Abdul Qadeer Kahn)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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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Q.칸 박사는 파키스탄 뿐만 아니라 북한, 리비야, 이란 등 최소 3개 국가의 핵무기 개발에 기여한 암흑의 핵무기 거래상으로 불립니다. A.Q.칸 박사가 없었다면, 이들 국가의 핵무기 개발은 불가능했다고 봐도 괜찮을 정도이지요. 밝혀지지 않았지만, A.Q.칸 박사는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심지어 알카에다의 핵무기 개발에까지 관여한 것으로 의심을 받고 있답니다. 자동차는커녕 컴퓨터 한대도 만들지 못하는 파키스탄에서 핵무기를 개발한 남자. 나아가 전 세계에 핵무기 암흑 시장을 만들어낸 암흑의 거래자. A.Q. 칸 박사는 어떻게 세계를 핵무기의 위기로 몰아가게 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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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A.Q.칸 박사가 1972년 네덜란드의 Physics Dynamics Research Laboratory라는 연구소에 취직하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파키스탄에서 태어나 자란 칸 박사는 파키스탄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되 정부의 지원을 받아 네덜란드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금속학을 전공한 A.Q.칸 박사는 초고강도 금속을 개발하고 활용하는 연구에 매진해서 금속학 박사학위를 받게 됩니다. 유학을 마치고 처음 취직한 연구소에서 A.Q.칸 박사는 자신의 그동안의 연구결과를 활용할 수 있는 최적의 일을 맡게 됩니다. 바로 독일, 네덜란드, 영국이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최신의 핵연료 농축 기술 개발에 참여하게 된 것이죠. 핵연료 농축 기술이라... 많이 생소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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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연료로 사용되는 우라늄은 두가지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U-238과 U-235라는 성분인데요, 자연상태에서는 U-238이 대부분이고 U-235는 1%도 미치지 못하게 존재합니다. 그런데 핵연료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이 미미한 U-235가 3~4%까지 농축이 되어야 핵발전소에서 사용할수 있을 만큼의 폭발력을 갖게 됩니다. 이 U-235를 1%에서 4%까지 농축시키는 기술이 바료 핵연료 농축 기술입니다. 만약 이 농축을 계속하게 되어 U-235가 90%까지 농축하게 되면 핵폭탄에 사용될 수 있을 만큼의 폭발력을 갖게 된답니다. 독일, 네덜란드, 영국, 이 유럽3개국은 자국의 핵발전소에 공급할 핵연료를 효율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공동으로 효과적인 핵연료 농축기술을 개발하기로 하고 URENCO라는 회사를 설립했답니다. A.Q.칸이 일하게 된 연구소는 바로 이 URENCO의 자회사로서, U-235를 가장 효율적으로 4%까지 농축시키는 설비를 개발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A.Q.칸 박사의 고강도 금속연구가 어떻게 이 핵연료 농축기술과 연관이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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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ENCO에서 개발하는 핵연료 농축기술은 바로 원심분리기를 이용한 기술이었습니다. 액화된 우라늄을 원심분리기에 주입해서 이를 초고속으로 회전시키게 되면 U-238로부터 U-235가  분리되게 되는 방법이지요. 그런데 그냥 고속으로 회전시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에 가까운 초고속으로 회전시켜야 한답니다. 그리고 고속으로 회전해서 농축된 액화 우라늄을 추출해서 순차적으로 다른 원심분리기에서 다시 한번 농축하는 일을 반복해야 합니다. 무려 수천번을 반복해야 1%의 U-235가 4%까지 농축이 된다고 하니 엄청 어려운일이겠죠. 위 사진에서 처럼 길쭉한 실린더 형태의 원심분리기가 수천개 이어져서 한번 농축된 우라늄이 계속해서 농축작업을 반복하게 됩니다. 이 초고속으로 회전하는 원심분리기의 소재를 연구하는데, A.Q.칸 박사가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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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Q.칸박사는 URENCO에서 일하면서 인정도 받고, 네덜란드 부인을 만나 가정도 꾸리며 안정된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A.Q.칸 박사의 고향인 파키스탄에서 어느날 들려온 소식이 A.Q.칸 박사의 평화로운 일상을 크게 뒤흔들게 됩니다. 바로 1971년에 일어난 인도와 파키스탄간의 전쟁이었습니다. 인도의 파키스탄 침공으로 인해 파키스탄의 절반이 방글라데시로 독립하게 되고, 파키스탄인들은 엄청난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힌두교의 인도는 무슬림 파키스탄을 수시로 공격했고 카쉬미르를 비롯한 중요한 영토를 인도에 빼앗겼습니다. 파키스탄에서 자라면서 인도군인들의 만행을 겪으며 살아온 A.Q.칸 박사는 분노와 절망으로 잠조차 제대로 잘수 없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조국이 인도에 의해 찢겨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이 유럽땅에서 할 수 있는게 무엇이 있을까 무력감에 괴로워 했답니다. 게다가 1974년, 인도는 수십년간 비밀리에 진행해온 핵무기를 개발을 완성하고 핵실험을 감행합니다. 핵무기까지 갖추게 된 인도의 군사력은 파키스탄을 날로 위협하게 되고, A.Q.칸 박사는 위험에 쳐해있는 자신의 조국 파키스탄을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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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Q.칸박사는 파키스탄 수상인 부토(Bhutto)에게 무작정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유럽에서 핵기술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으며, 파키스탄이 인도에 대적할 핵무기를 개발하는데 기여를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지요. 그리고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농축우라늄 방식의 핵무기 개발이 파키스탄이 가장 빨리 그리고 비밀리에 핵무기를 갖게 되는데 가장 적합한 방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부토 수상에게 전해진 A.Q.칸박사의 편지는 부토 수상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왜냐하면 부토 수상 역시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었지만 수많은 난관에 지지부진하고 있었거든요. 부토 수상이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하던 방법은 A.Q.칸 박사가 제안한 농축 우라늄 방식이 아닌 플루토늄 방식이었습니다. 플루토늄 방식은 핵 발전소에서 사용하고 난 핵 연료봉을 재처리해서 플루토늄을 추출해 이를 핵탄두에 사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플루토늄 방식 귀에 익지 않으신가요? 바로 북한이 영변핵시설에서 추진한 방법이 바로 이 플루토늄 방식입니다. 하지만 파키스탄은 핵 발전소와 재처리 시설을 건설조차 하지 못했고, 이를 프랑스로부터 수입하려는 노력조차 미국에 의해 좌절되던 상황이었습니다. A.Q.칸 박사라는 듣도 보지 못한 금속학자의 제안은 의심스러웠지만, 부토수상은 그를 파키스탄으로 직접 불러 그의 생각을 들어보았습니다. A.Q.칸박사의 열정에 찬 설명을 들은 부토수상. 그는 칸 박사에게 프로젝트 706이라는 이름으로 URENCO의 우라늄 농축기술을 뺴오도록 지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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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A.Q.칸박사는 학자에서 스파이로 변모하게 됩니다. 그는 URENCO의 우라늄 농축기술과 관련한 문서들을 몰래 복사하거나 직접 손으로 써서 가지고 나왔습니다. 때마침 A.Q.칸 박사는 독일어로 된 농축시설 설계 매뉴얼을 네덜란드어로 번역하는 일까지 맡게 되어 URENCO의 기밀서류를 매일 접할수 있었습니다. URENCO의 문서들은 1급기밀로 절대 외부로 누출되어서도 안되고 심지어 A.Q.칸이 볼수 없는 문서도 많았지만, 느슨한 보안을 틈타 A.Q.칸 박사는 중요한 정보를 차곡차곡 모아 나왔습니다. A.Q.칸박사가 가지고 나온 기밀문서 중에 하나는 바로 우라늄농축설비에 들어가는 부품을 공급하는 회사들의 리스트였습니다. 아무리 설계도를 가지고 나왔다 하더라도, 파키스탄은 그 설계도에 나온 설비를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부품공급 회사의 리스트가 무엇보다 중요한 자료였습니다. 1년동안 차곡차곡 필요한 정보를 수집한 A.Q.칸 박사. 그는 1975년 12월 URENCO에 휴가를 내고서 수집한 모든 자료를 들고 가족과 함께 파키스탄으로 돌아옵니다. 철두철미한 A.Q.칸박사는 혹시 추가로 필요한 자료를 위해 파키스탄으로 돌아오기 전에 파키스탄 정보요원 2명을 URENCO에 취업시키기 까지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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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으로 돌아온 A.Q.칸 박사. 그는 부토수상의 지시하에 핵무기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URENCO에 우라늄농축시설에 필요한 부품을 공급하던 유럽의 회사들에 같은 부품을 주문하기 시작했습니다. 부토 수상은 재무장관에게 A.Q.칸박사가 요청하는 모든 예산을 전폭 지원할것을 명령하고 사실상 칸 박사에게 백지수표를 건냅니다. URENCO에 공급된 부품들은 사실 국제적으로 수출이 금지된 부품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언제든지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90% 농축까지 가능한 시설이기에, 유럽 각국은 우라늄농축설비의 주요 부품에 대해 수출을 금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파키스탄 정부가 지원하고 A.Q.칸박사가 뿌려대는 돈 앞에서 수출금지 조치는 쉽게 허물어졌답니다. 우라늄농축시설에 필요한 부품들은 유럽에서 파키스탄으로 위조된 통관서류와 컴퓨터 부품이라는 가짜 딱지를 달고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바마드에서 백여킬로 떨어져 있는 도시, 카후타(Kahuta)에는 모여든 부품들을 바탕으로 수천개의 원심분리기가 제작되어 갔고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의 꿈이 영글어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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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5월 28일. 파키스탄의 깊은 산속 벙커에 화창한 날씨를 뒤로하고 파키스탄의 수상을 포함한 주요 인물들이 긴장된 얼굴로 모여 앉았습니다. 파키스탄 핵에너지기구의 한 젊은 과학자가 떨리는 손으로 버튼에 손을 얹었습니다. "모든 영광을 알라에게 맡깁니다..." A.Q.칸은 버튼을 누르는 젊은 과학자의 뒤에서 지긋이 눈을 감았습니다. 오후 3시 16분. 5개의 핵폭탄이 지하 터널에서 폭파되기 시작했고 지축을 흔드는 굉음과 함께 먼지가 하늘높이 피어올라 햇빝을 가렸습니다. A.Q.칸 박사가 파키스탄으로 돌아온지 13년만에, 파키스탄은 드디어 핵실험에 성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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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Q.칸박사는 파키스탄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인도에 의해 언제 정복될지 모르는 위협속에 살아온 파키스탄인들은 이제 생존의 위협에서 벗어나 엄청난 자신감과 희망을 갖게 되어습니다. 빈곤과 낙후된 사회시설로 후진국으로 취급받던 파키스탄은 세계에서 7번째로 핵무기를 개발한 핵선진국으로 급부상하게 됩니다. 자신의 조국 파키스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A.Q.칸 박사의 꿈이 드디어 실현되었습니다. 핵기술을 빼앗긴걸 알게된 네덜란드와 미국은 A.Q.칸박사를 맹렬히 비난했지만, 그는 파키스탄의 영웅이자 아랍세계에 핵무기를 갖게 해준 아랍 핵무기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런데, A.Q.칸 박사에게 또다른 별명이 생겼습니다. 바로 암흑의 핵무기 거래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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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이 핵실험에 성공하던 그날, 핵실험 장소를 촬영하던 미국의 스파이 위성에 이상한 모습이 찍혔습니다. 핵실험을 지켜보던 파키스탄 정부 관계자들 뒤에  북한군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여러명 앉아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핵실험이 있고 몇일 후, A.Q.칸의 연구실 근처에서 북한 외교관의 부인인 김신애씨가 총에 맞은채 발견되었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김신애씨는 파키스탄의 핵실험이 있기 몇일 전 미국 CIA 요원과 만나는 것이 목격되어 북한정보요원에 의해 암살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신애씨의 시신은 3일 후 파키스탄 공군에 의해 북한으로 이송되었는데, 그 공군기 안에는 김신애씨의 시신뿐만이 아니라 파키스탄의 우라늄 농축을 위한 원심분리기가 실려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당시 LA타임즈에 보도되면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파키스탄과 북한. 김신애씨의 죽음뒤에 무슨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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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A.Q.칸이 핵무기 개발기술을 다른나라에 퍼뜨리기 시작한 대표적인 증거중에 하나입니다. A.Q.칸 박사는 자신의 우라늄농축기술을 북한에 판매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1993년 A.Q.칸 박사는 당시 파키스탄 수상이었던 부토에게 예정된 중국 방문길에 북한에 들려 김일성 주석을 만날것을 요청합니다. 당시 북한은 영변핵발전소에서의 핵무기 개발이 미국에 들통나 영변 핵 시설에 미사일 폭격을 받을 위협까지 받았었습니다.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하려던 북한에게 A.Q.칸 박사의 우라늄 농축시설은 가장 최적의 대안이었지요. 한편 파키스탄은 핵탄두를 실어 나를수 있는 미사일 기술이 절실 하였습니다. 북한의 노동미사일이 바로 해답이었습니다. 1993년 12월, 파키스탄 수상인 부토는 파키스탄 공군기를 타고 북한을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A.Q.칸박사는 수차례 북한을 방문해서 북한에 우라늄농축기술과 설비를 제공하고 노동미사일 기술을 받아오게 됩니다. 이를 통해 북한은 우라늄농축기술을 바탕으로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게 되고, 파키스탄은 가우리(Ghauri)라는 이름의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성공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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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A.Q.칸 박사는 핵무기 기술을 판매하기 위해 잠재적인 고객들을 직접 찾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서방국가뿐만 아니라 아랍국가들도 핵무기를 가질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며, 이스라엘과 미국의 위협에 대등하게 맞서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1990년에는 당시 쿠웨이트를 침공중이던 이라크를 직접 방문해서 후세인 국왕을 설득하며 우라늄 농축시설의 기본 설계도 까지 제공했습니다. 이후 연합군의 공격으로 이라크는 A.Q.칸 박사의 제안을 받아들일 틈도 없었지만, 이후 연합군의 조사과정에서 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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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Q.칸 박사가 핵무기 기술을 판매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설비 및 부품을 판매하는 공급자들과의 네트워크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URENCO에 부품을 공급하던 전세계의 업체들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A.Q.칸 박사는 자신의 고객들에게 필요한 부품을  공급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과 영국의 정보기관이 이를 알아채지 못하도록, A.Q.칸 박사는 모든 부품거래를 핵무기와 관련없는 거래인 것으로 위조하고, 모든 금융거래는 유령회사를 내세워 이뤄지도록 했습니다. 심지어 부품회사들 조차 자신들이 제조한 부품이 어디로 실려가는지 그 목적지를 모르도록 하는 등, 철저하게 비밀스러운 네트워크를 유지하였습니다.  이렇게 비밀스런 핵무기 네트워크는 거의 완제품에 가까운 핵무기 개발시설을 고객에게 전달하였고, A.Q.칸 박사는 이 거래에서 막대한 차익을 얻었습니다. 수억달러에 달하는 핵무기 거래에서 그는 막대한 차익을 바탕으로 전세계 각지에 호텔, 리조트, 언론사, 카지노, 심지어 중국레스토랑 프랜차이즈 까지 소유하는 거부가 되었습니다








실제 A.Q.칸 박사와 그의 네트워크가 이란에 제의한 거래내용을 보면, 핵무기 거래가 얼마나 체계적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1994년 이란에 전달된 A.Q.칸박사의 1장짜리 브로셔에 따르면 고객들은 네가지 상품중에 골라서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1. 우라늄 농축시설에 필요한 원심분리기 설계도

     2. 원심분리기 샘플 1~2개

     3. 2000개의 원심분리기에 들어가는 모든 부품들

     4. 우라늄 농축시설 전체 설계도, 운영시스템, 핵무기 디자인


마치 자동차 판매 브로셔 같죠? 이란은 이 거래를 받아들였고, A.Q.칸 박사와 네트워크는 두바이에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사무실을 열고 비밀리에 핵기술을 이란에 제공해왔습니다. 1994년에 두바이 비밀 사무실에서 있었던 거래에서 1번과 2번 상품을 직접 이란핵기술자들에게 제공하는 대가로 총 6백만 달러가 지불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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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Q.칸 박사와 그의 네트워크가 이룬 최대의 거래는 바로 리비야와의 거래입니다. 악명높은 리비야의 독재자 카다피(Gadhafi)에게 칸의 제안은 매우 매력적이었습니다. 리비야의 독재자 카다피는 서방세계의 눈에는 테러리스트 그 이상이었습니다. 1986년 230명을 사망케한 베를린 디스코텍 폭발테러, 1988년 270명을 사망케한 스코틀랜드 상공에서 폭발한 팬암 항공기 폭발테러, 170명을 사망케한 프랑스항공 폭발테러 등, 카다피가 지원하거나 관여한 테러사건들로 인해, 카다피는 당시 최고의 위협인물이었습니다. 이 위협인물에게 A.Q.칸 박사의 핵무기 영업이 다다르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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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카다피는 리비야의 비밀 핵무기 프로그램 과학자 두명을 비밀리에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로 보냅니다. 보스포러스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카페에서 A.Q.칸 박사는 이 두명의 과학자들에게 리비야에 대한 핵무기 거래를 약속하게 됩니다. 리비야에 대한 핵무기 기술 판매는 그 이전의 어느 거래보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A.Q.칸 박사는 이란에 우라늄농축시설 설비를 공급하고 있었기에, 더 대규모의 부품공급이 필요하였을뿐 아니라, 리비야의 낙후된 과학기술을 고려했을때, 거의 완제품에 가까운 설비를 리비야에 제공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A.Q.칸 박사와 네트워크는 이란과 리비야와의 거래를 위해 핵무기 부품을 조달하고 배송하는 대규모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됩니다. 말레이시아에 컴퓨터 부품공장으로 위조한 원심분리기 총괄 공장을 설립하고,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등에서 생산된 부품들을 말레이시아 총괄 공장으로 배송시킵니다. 두바이에는 대규모 운송창고를 확보해서 말레이시아에서 완성된 원심분리기가 두바이를 거쳐 목적지가 세탁될 수 있도록 합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운영시스템에 들어가는 부품들을 만들어서 두바이 또는 제삼국으로 위장 배송하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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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인 핵무기 밀거래 네트워크로 성장한 A.Q.칸 박사. 파키스탄 핵무기 개발을 위해 1976년부터시작된 그의 밀거래는 북한, 이라크, 이란, 리비야를 고객으로 삼아 20년 넘게 커져갔습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라고 했던가요, 그의 네트워크는 미국 CIA와 영국의 M16에 의해 항상 감시중이었고, 그 네트워크의 중요 인물중에 한명이 CIA에 포섭되기에 이르게 됩니다. A.Q.칸 네트워크에서 원심분리기 생산 총책을 맡고 있던 티너(Tinner)는 CIA에 의해 포섭되어 네트워크의 기밀을 CIA에 누설하게 됩니다. 2003년 8월. 말레이시아에서 5개의 상자에 나눠 실려진 원심분리기는 말레이시아를 떠나 두바이로 향했습니다. 두바이에서 원심분리기가 담긴 5개의 상자는 A.Q.칸의 비밀 창고로 옮겨졌다 다시 이틀 후 BBC China라는 콘테이너선에 실려 리비야로 향했습니다. 컨테이너선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무렵, CIA는 배를 포획하고 이탈리아 타란토 항으로 미국 해군의 호위하에 끌고 왔습니다. 수년동안 위성으로 A.Q.칸 박사와 네트워크를 감시해온 CIA와 M16은 포획한 컨테이너선에서 원심분리기를 압수하고 모든 증거를 정리하여 카다피에게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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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발을 뺄수 없는 증거 앞에서 카다피는 리비야의 모든 비밀 핵무기 프로그램을 중단한다는 공식 성명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국제원자력기구 IAEA에 그동안의 모든 핵무기 개발 내용을 밝히고 그동안 비밀리에 구입해온 우라늄농축 설비를 미국에 양도합니다. 리비야가 제출한 문서에는 그동안 A.Q.칸박사와의 거래내용과 증거들이 담겨 있었고, 그동안 비밀리에 존재해온 글로벌 핵무기 네트워크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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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밝혀진 A.Q.칸 박사와 핵무기 네트워크.  이후 A.Q.칸 박사는 무샤라프 대통령의 지시로 파키스탄 TV에 나와 그동안의 자신의 무기거래에 대한 행동에 대해 사과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후 파키스탄 정부에 의해 자택구금에 들어가게 되었고 해외는 물론 집 밖으로는 한발짝도 나설수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파키스탄 정부는 그동안 A.Q.칸의 모든 거래내역을 조사해서 그가 비밀리에 축적해온 재산을 찾아냈고, 그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부동산에 대해서도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네트워크에 관여된 전세계 약 360여명의 비즈니스맨들은 자국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A.Q.칸박사와 네트워크의 두바이와 말레이시아의 모든 생산시설 및 저장창고들은 철거되었고 남아있는 원심분리기와 부품들은 미국과 영국에 의해 압수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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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Q.칸 박사의 핵무기 암시장이 막을 내린지 이제 10년이 지났습니다. 세계에 핵무기의 공포를 퍼뜨렸던 10년전 이후, 그 후로 A.Q.칸 박사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1. A.Q.칸 박사는 자택 구금된지 1년후 2004년 2월 5일,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A.Q.칸박사의 모든 혐의에 대해 사면 명령을 내립니다.  A.Q.칸 박사는 그가 이란, 리비야, 북한, 이라크에서 어떤 일을 벌였는지 불구하고, 파키스탄 국민들에게는 파키스탄의 영웅이었습니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A.Q.칸박사를 사랑하는 국민들의 요구에 밀려, 결국 그를 사면하고, 그를 조사하라는 미국의 요구도 거절했습니다

 

 

2. 무샤라프 대통령에 이어 2007년에 취임한 페베즈 대통령은 예정되어 있던 A.Q.칸 박사에 대한 청문회를 무기한 연기시키고 그에 대한 모든 조사결과를 국가 기밀로 분류하였습니다

 

 

3. A.Q. 칸 박사는 2012년 새로운 정당을 설립하고 정치인으로 데뷔합니다. 그는 수년 안에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할 것이라는 야심을 밝히며 강한 파키스탄을 만들겠다고 선언합니다

 

 

보시다시피 A.Q.칸 박사는 파키스탄 국민들로부터 모든것을 용서받고 돌아왔습니다. 그가 저지른 일을 뒤로하고 용서받고 돌아왔다는 사실이 놀랍지만, 그가 만들었던 핵무기 거래 네트워크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됩니다. 하지만 A.Q.칸 박사의 사례를 통해 이제 세계는 핵무기가 얼마나 쉽게 그리고 비밀리에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IAEA와 같은 국제기구들도 이런 핵무기 거래를 막지 못하는 통제불가능한 환경에서 돈이 있는 어느 나라나 조직이라도 핵무기를 비밀리에 만들수 있다는 가능성은 우리를 항상 걱정스럽게 합니다. 

 

 

우리는 이런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나와 내가족의 삶을 수초안에 증발될 수 있는 무기가 돈에 의해 거래되고 있는 세상. 그리고 수지와 이민호가 열애를 하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이란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발표에 무심한 세상. 여러분들 모두 평안하신가요?

 

 

 

 

 

뒷이야기


리비야로부터 압수한 우라늄 농축시설 관련 문서들을 조사하던 IAEA 조사관들의 눈에 이상한 쇼핑백 두개가 발견되었습니다. 리비야에서 가져온 문서상자에 담겨져 있던 쇼핑백 커버에는 파키스탄의 남성복 상점의 로고와 전화번호가 적혀져 있었습니다. IAEA조사관은 잘못 가져온게 아닐까 싶어 조사관은 리비야 담당자에게 쇼핑백의 정체에 대해 물어봅니다


"아 그 쇼핑백은 A.Q.칸 박사가 선물로 저희한테 준겁니다. 수천만달러 짜리 계약을 해줘서 고맙다며 선물이라고 주더군요"


양복이라도 들어있으려나 싶어 뒤져본 쇼핑백. 그 안에는 두꺼운 서류뭉치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휘리릭 펼쳐본 그 서류뭉치에는 빽빽한 글씨와 그림이 가득했습니다. IAEA조사관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떨리는 손으로 상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국장님... 리비야 문서에서 핵탄두 설계도가 발견됬습니다. 그리고 이건 원본이 아니라 복사본입니다!" 




출처 및 동영상 보러가기: http://blog.naver.com/hbogi/220325003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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