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즌 강정호의 피츠버그 이적.그리고 류현진, 추신수 선수가 뛰고 있는 미국 프로야구 MLB.
자랑스러운 한국 선수들의 활약으로 메이저리그는 국내 야구팬들에게도 더 이상 생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메이저리그와 관련한, 한 가지 의미있는 날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매년 4월 15일(미국 현지시간)은 '재키 로빈슨 데이'라고 불리는 메이저리그의 뜻깊은 날입니다.
1919년 1월 31일, 미국 조지아주 목화 농장 소작인인 제리 로빈슨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난 '잭 루스벨트 로빈슨'.
어릴 적부터 야구, 농구, 미식축구, 육상 등 여러 종목에 재능을 보인 재키 로빈슨은 1945년 니그로 아메리칸리그에서 야구를 하다 브루클린 다저스에 입단합니다.
그 후 1947년 4월 15일,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 데뷔 경기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직후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미국. 백인들만의 전유물인 메이저리그에서 흑인 선수로 살아남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 버스 안에서도 백인과 흑인의 자리가 구분되어 있을 정도로 인종차별이 극심했다고 합니다.
(백인들이 재키에게 보냈던 협박 편지)
백인 야구 팬들은 이런 재키 로빈슨과 그의 가족들에게 협박 편지는 물론, 각종 위협과 테러를 가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그의 팀 동료들조차 흑인과 함께 경기에 나설 수 없다며 항의를 하였고, 상대편 감독들은 경기 내내
인종차별 발언을 퍼붓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재키는 좌절하지 않았고 인종차별과, 메이저리그에 맞섰습니다. 그 결과 데뷔 첫해 타율 0.297, 도루 29개로 팀에서는 처음으로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차지했습니다.
이후로도 1949년 내셔널리그 최우수선수 및 타격왕(타율 0.342)으로 선정되었고 통산 타율 0.311, 안타 1,518개
홈런 137개, 타점 734점을 기록했습니다.
팀의 월드 시리즈 6회 진출에 공헌하였고 브루클린 다저스에서만 10년간 활약한 뒤,1956년 은퇴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의미있는 업적은 1962년, 흑인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백인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MLB 명예의 전당
(Hall Of Fame)에 헌액되었습니다.
재키의 활약을 지켜보던 백인들도 시간이 지나자 그를 응원하며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인종차별에 맞섰던 재키는 1954년 미국 대법원의 인종차별 위헌 결정과 인종차별을 금지한 민권법 제정에 큰 영향을 끼쳤고
미국 내 흑인들에게 큰 자부심을 심어주었습니다.
이런 재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메이저리그에서는 1997년 4월 15일 로빈슨의 등번호 42번을 모든 팀에서 영구결번하였습니다.
그 후 2004년부터 4월 15일은 '재키 로빈슨 데이'로 지정되어 그를 기리고 있습니다.
또한 2007년부터는 경기를 뛰는 모든 메이저리그 선수가 재키의 번호인 42번 유니폼을 입습니다. 그 사연인즉슨,
재키 로빈슨은 선수 생활을 하던 시절, 우편함에서 협박 편지 하나를 받게 됩니다.
한번 더 42번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하면 총을 쏴 버리겠다는 협박 편지였죠.
이에 당시 팀 동료 진 허마스키는"우리 모두 42번을 달고 경기에 나가면 누가 재키인지 모르겠지?"라는 농담을 했다고 합니다.
2007년, 이 이야기를 떠올린 켄 그리피 주니어 선수가 MLB 사무국에 재키 로빈슨 데이에 한해 42번 유니폼을 입게 해달라고 건의했다고 합니다.
그 후 지금까지 매년 4월 15일만 되면 모든 메이저리그 선수가 42번 등번호를 달고 경기게 임하게 되었죠.
(모든 선수가 42번 유니폼을 입은 모습)
이 모든 스토리는 2013년 영화 <42>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많은 역경과 고난을 견뎌내며 야구, 그리고 스포츠 그 이상의 것을 몸소 실천한 재키 로빈슨.
우리도 많은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그의 정신을 되새겨 보는 건 어떨까요?
출처.수컷의 취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