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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전쟁(1)_여순반란사건[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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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바후미카
  • 19.09.1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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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으로 독립한 뒤, 38선 이남에는 미국의 도움을 받아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가 창설되었음.

     


     

    당시 흑백 사진에 컬러를 입힌 희귀본. 국방경비대 장교들의 모습이다.

    창군 당시 최고 계급은 대위였다.

     

     

    기관총을 배우는 국방경비대.

     

    초기 국군은 미군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초대 사령관도 미군 중령이었다. 하지만, 군사적인 전문성을 갖춘 인재가 너무 부족했기에 일제시대 군 경력이 있는 사람은 출신을 묻지않고 대거 입대해 창군의 주역이 될 수 있었다.

     

    박격포를 연습하는 국방경비대 장교들. 

     

     

     

    출신을 묻지않고 장교단을 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중에는 북한의 지휘를 받는 좌익 사범도 섞여있었다.

    김지회는 말 그대로 북한의 지령을 받아 침투해온 공작원이었음. 근데 문제는 이 김지회가 신설된 국방경비대 14연대의 핵심요직에 앉아 있었다는 것임.

     

    1948년 10월 20일, 여러 설이 난무하지만 빨갱이에 물들었다는건 확실한 14연대가 돌연 독립세력이 되어, 순식간에 여수를 점령하고 순천을 향해 돌진해 순천마저 점령함. 그리고 닥치는 대로 불태우고, 군경과 좀 배웠다는 사람은 죄다 우파로 몰아세워서 잔인하게 죽임.

     


    불타는 여수

     

    결국 정부가 꾸린 진압군에 의해 소멸되었으나, 일부는 지리산으로 입산하여 게릴라가 되었고 우리 안에 빨갱이가 있다는 집단공포가 처음으로 뿌리를 내리게 된 사건이다.

     

     

    불행하게도 국군의 본격적인 첫 교전상대는 자국 군경과 시민이었단 소리다..

     

     

    국방경비대의 당시 장비 규모는 장갑차 27대, 57mm 무반동총 140정, 2.36인치 로켓포 1,900문, M3 105mm 야포 91문이며 전차는 한 대도 없었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전엔 규모를 계속 키워 94,974명에 8개 사단(22연대) 수준이었다.

     


     

    사실상 국방경비대 유일의 기갑차량이었던 M8 그레이하운드


    반란군 토벌에 사용된 브라우닝 7.62mm 30구경 경기관총


    구 일본 육군이 사용한 99식 소총이 기본화기였음.
    사진은 똑같은 모양으로 만든 비비탄총.
    물론 국방경비대가 허접이긴 하나 비비탄총이 지급되진 않았다.
    총만 주고 총알은 안 준경우는 흔했던듯 하지만.


    이건 나중에 지급한 미제 M1 개런드 소총






    M9A1 2.36인치 바주카포
    북한이 전차를 앞세워 돌진해 올때 국군에 있어 최후의 희망이었음.
    유럽에서는 나치 전차 군단도 잡은 무기였는데,
    허나 희한하게 북한이 앞세운 소련제 탱크에는 먹히질 않았다.




    몇 안되는 야포였지만, 이마저 없었다면 한반도는 적화되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무기는 뭐니뭐니 해도 짜세

     

    지금도 인간이 유일한 자원인 나라지만, 창군 당시엔 사람 그 자체가 최대 화력이었다. 그런 열악한 형편 속에서 수류탄 하나 들고 북괴군의 진지로 뛰어든 육탄 10용사의 전설이 탄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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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사합니다
  • 극우유투브수준이네요
  • 글은 나름 정리 잘 하셨는 몇몇 글에서 다방면으로 안 읽으신 듯합니다.

    14연대 반란만 해도 제가 본 내용하고 너무 다르네요
  • 와 이 논란많은 사건을 중요한건 죄다 빼놓고...

    게다가 이 글만 본다고해도 이 문구
    ‘불행하게도 국군의 본격적인 첫 교전상대는 자국 군경과 시민이었단 소리다’

    정말 뜬금없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이 안들까요?
    도시를 불태우고 시민들을 학살한건 반란군인데 국군의 첫 교전상대가 시민?
    의도적으로 뭔가가 생략되어 있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이런 글을 올릴때는 그냥 붙여넣지 말고 생각을 좀 더 하고 알아보고 올리시길
  • 아... 디테일 거의 모르고 사는데 한번 살펴봐야겠네요....
  • 박정희가 저때 뒤졋어야 했는데
  • 박정희가 당시에 공산당 지위가 경상도 유격대장이었을걸요?
    상당히 고위간부급 적색분자...
  • 그리고 탱크위에 올라타서 해치열고 수류탄 까는
    일화는 구라라고하죠.
    달리는 탱크에 올라가기가 쉽지 않고
    탱크주변에 보병이 가만 있을리도 없고요.

    보병이 대전차화기없이 전차잡을 때 주로 쓰는게
    화염병을 엔진룸위에 던져서 엔진 과열시켜서
    퍼지게 만드는건데 6.25 묘사에선 전부 tnt 끌어안고
    뛰어듦...
    반공소설 작가새끼가 일본군출신이었나, 일본새뀌들
    쓰던 전법이랑 비슷해서 놀랬어요.
  • 아오... 진짜 딱 극우 유튜브 수준이네요.
    진짜 역사를 살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