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80일째

솔리테어 작성일 17.09.18 14:2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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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는 잘 자라고 있습니다.

 

대략 일주일 뒤에는 추정 생후 90일을 넘기겠네요

 

왠지 불알이 탱글탱글 차오르지 않는데다

 

뭔가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역시나 남자애가 아니라 여자애였습니다.

 

2차 종합접종을 받으러 갔다가, 확인을 부탁드렸더니 역시 의사선생님께서도 '얘 불알 어디갔어?' 하시더니 여아 판정.

 

바로 호적 고쳐주셨습니다.

 

갓 태어난 애들은 노련한 수의사들도 성별 확인 실수 자주 있으니 그다지 별난 케이스는 아니지만...

 

사실 그동안 제가 키워왔던 고양이들은 우연히도 모두 남자애였기 때문에,

 

벌써부터 중성화 걱정이 큽니다.

 

남아보다는 여아의 중성화 수술이 배를 가르는 만큼 큰 수술이기도 하고 리스크도 크고...

 

그렇다고 안 시킬 순 없고.

 

그동안은 남자애만 키워서 별 신경 안쓰던 부분이었는데, 앞으로도 걱정이 커질 것 같네요.

 

그밖에도...

 

애가 왠지 여태껏 키워왔던 애들이랑은 뭔가 다르다 싶은게 좀 많았습니다

 

워낙 개체별 성격 차이가 사람 이상으로 큰 것이 고양이이기는 한데, 얘는 정말 뭔가 좀 다르기도 하고 뭔가 알 수 없다 싶은 부분도 있고

 

그게

 

아, 여자애였구나, 하는 순간 의문이 풀렸지요

 

남자애들은 제가 의도적으로 뭔가 잘 해주어서 기분이 좋아 골골거리며 애교를 떨어오는데,

 

얘는 제가 뭔가 잘해주면 관심도 없고 귀찮아하다가

 

갑자기 뜬금없이 기분이 좋아서 골골거리며 다가와서는 자기 멋대로 부비적거리고는 또 새침을 떨고...

 

정말 사람 여자애 같은 기분입니다 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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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42일 쯤. 

 

사막여우 같은 갸르스름한 얼굴도 사실은 여자애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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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43일 쯤

 

이 즈음 잠깐 고향집에 데리고 가 있었는데,

 

자다가 애가 깔릴까봐 여전히 잘 때는 따로 자고 있었고 고향집에서 쓰던 돌침대의 높이가 꽤 높아서 안심하고 자고 있었는데 

 

새벽에 뭔가 쿵, 턱, 하더니 샤라락 올라와서는 자리잡고 앉더군요

 

어쩔 수 없이 매일 따로 자던 것이 서러워, 부모의 온기가 그리워 결사의 점프를 감행, 살짝 드러난 침대 시트에 발톱을 박고 기어 올라온거죠

 

그리고는 그때부터 그냥 같이 자게 됐습니다.

 

제가 돌아누울 때마다 잠결에도 신경써서 정신을 차리게 되고, 애도 깔릴거 같으면 스윽 벗어나고 있어서 자는 도중에 별 일은 없었습니다.

 

베개도 같이 베고는 얼굴과 몸을 붙이고 자기도 하고, 제 신체 어디엔가는 꼭 몸을 딱 붙이고 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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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자게 된 이후로는 애도 정서적으로 안정됐는지 표정이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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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답게

 

장난감보다는 역시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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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없어도 잘때는 베개를 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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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또 크게 아픈 일도 있었습니다

 

태어나서부터 며칠간 비오는 차량 하부에 혼자 버려져 있었던게 아무래도 안 좋았던지

 

재채기와 콧물을 일상적으로 달고 살더니,

 

어느날은 아직 8월 말인데도 추워서 벌벌 떨기에 전기장판을 틀어주니 병든 노인네처럼 따뜻한 데서 몸을 지지며 나올 생각을 않더군요

 

그러면서 밥도 먹지 않고...

 

병원에 데려가서 항생제도 맞고, 약도 타왔는데

 

갑자기 범백 증상을 보이면서 잠도 자지 않고 멍하니 앉아서 벽만 보더군요

 

그러지 않으면 물 앞에 앉아서 물도 마시지를 못하고 토할 거처럼 괴로워하고

 

설사도 시작되고...

 

아빠로서 각오를 할 수밖에 없었죠

 

그래도 아픈지 사흘만에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잠도 자지 않고 계속 지켜보며 돌봤는데, 새벽 네시쯤인가에 여전히 힘이 없어 비실비실거리면서도 다시 처음으로 아빠에게 다가와 손가락을 물더군요

 

가만히 앉아서 면벽수도, 물 앞에서 물도 먹지 못하고 토할 거처럼 아파하는 거 단 두가지만 하다가 평소의 행동을 하기 시작한거죠

 

그렇게 애를 먹였지만, 낫기 시작하니 무엇보다 안심이었습니다.

 

범백 증상이기는 했지만, 범백이었을 수도 있고 심한 몸살이었을 수도 있어서 아직 원인은 알 수가 없고

 

애를 더 애지중지하게 됐습니다.

 

이동장에 넣지 않은 채로 아빠의 외출에 따라나서고 싶어하는데, 종합접종 3차까지 맞힌 뒤에는 한번 산책을 시켜볼까 했더니 그것도 안되겠네요.

 

애가 심심해하고 권태감에 지친다한들, 아픈 거보다는 나을테니 말입니다.

 

왜 치사량이 엄청난 바이러스가 자연상태에 만연해있는지, 고양이나 개 키우는 입장에서는 항상 신경 쓰이는 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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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거의 다 회복된 이후에 바로 시트를 갈았습니다.

 

설사가 이어졌던 까닭에, 하얀 시트에다 애가 똥칠을 해놔서...

 

애가 건강해졌으니 그냥 웃어버릴 뿐이지만, 어쨌거나 마냥 신나는지 건강해진 몸으로 새 시트 밟고 뛰어놀기에 정신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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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고민거리는 많습니다

 

버려져서 부모나 형제 고양이 없이 혼자 자라는 애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아빠 손에 집착하며 무는 고양이가 되었다는 거.

 

요즘은 무는게 좀 덜해지긴 했지만...예전에는 매일 같이, 요즘은 가끔씩 제가 잘 때 혼자 잠이 완전히 깨서는 제 손을 물고 놀다가, 반응이 별로 시원치 않으니 점점 세게 물어버린다는거.

 

평소에도, 아빠가 쓰다듬는 손을 싸움놀이하자는 뜻으로만 받아들이고 양손으로는 붙들고 양발로는 파다다닥 걷어차면서 입으로 깨물깨물하기 때문에 머리를 잠자코 쓰다듬었던게 꽤 오래전 일이라는거.

 

또 심지어 아팠던 동안, 다른 것은 먹지 않았던 까닭에 유동식인 츄르만 사다 먹였는데 이게 또 비싼 까닭에 하루에 만원꼴을 먹어치웠지요

 

애 먹이는 거니까 돈이 아깝지는 않지만...낫고 난 뒤로도 계속 사료나 다른 간식은 먹질 않고 츄르만 찾아서 고역이었다는거...

 

그리고 지금도 재채기랑 콧물이 다 사라지질 않아서 만성적인 비염이 되어버릴까 걱정이라는거.

 

알레르기가 심하지 않았던 건 애가 태어난지 며칠 되지 않아서부터 맡게 됐던 덕분에 서서히 적응하면서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던 것이기도 하고, 사실은 여자애라서 그만큼 알레르기가 심하지 않았던 것이라 약을 많이 먹지 않아도 아침에 조금만 고생하면 아무렇지도 않다는게 다행이기는 한데...곧 겨울이 와서 환기도 잘 안될테고 동시에 애도 성장하면서 알레르기가 심해질까 또 불안하다는거.

 

이렇게 걱정거리를 달고 살지만,

 

진심으로 부모가 된 입장에서 키우고 있는만큼 어떻게든 하루하루 이겨내갈 용기가 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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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서로 익숙해져서 의사소통도 그럭저럭 되고 있습니다

 

'아 쫌...아빠 불 좀 꺼줘'라는 목소리가 들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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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창가에 앉아 햇볕을 쬐며 거룩하게 바깥을 내려다보시는게 일과

 

대하철이라 대하를 찌고 구워서 애랑 나눠먹었더니

 

갑자기 다음날로 애가 불쑥불쑥 키가 커버리더군요

 

이제 이름을 제대로 지어줘야 할거 같은데,

 

남자애라면 아명이었던 태양이를 그대로 써도 됐겠지만

 

여자애로 분명히 밝혀진 이상 다른 이름을 줘야겠지요

 

턱부터 배까지 새하야니까 범고래에서 따올까,

 

아니면 요즘 특히 말썽이 늘어났으니 나쁜 기집애 나애리로 붙일까

 

이거도 고민거리라면 고민거리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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